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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함백산 구간 산행기
두문동재-은대봉-중함백산-함백산-만항재-수리봉-화방재
"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길을 가르는 고개이다"
['산경표' 19페이지]
"여암 신경준선생"의 "山經表"를 따라 가는 사람들 - [거인산악회 17기] 대원들
그들과 함께 "산경표 19페이지"에 나오는 "大朴山 (咸白山) 구간"을 갑니다.
['두문동재'에서 '화방재'까지 구글어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는 "두문동마을"과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에 있는 "추전마을"을 잇는 고갯마루인 "두문동재(싸리재)"에서 출발하여
"은대봉-중함백산-함백산-만항재-수리봉"을 진행하여
'강원도 태백시 혈동'에 있는 "화방재"까지 접속거리 포함 약14.6km를 갑니다.
['두문동재고갯길 중턱'] 10:20
2018년 1월 20일 (토) 흐림
요즘 날씨가 푸근해 "두문동고갯길"에 눈은 쌓이지 않았겠지...그렇게 기대를 하며 출발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해발 1,200m가 넘는 [백두대간 두문동재]를 넘는 고갯길은 차량통행불가였습니다.
그래도 고갯길 중간지점까지는 버스가 올라가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ㅎ
오늘은 "거인산악회 대간17기팀"과 처음으로 함께 합니다.
['두문동재' 오름길]
해발 1,260m급 [두문동재]까지 버스를 타고 편하게 오르지못하고....에휴~
[두문동재]의 해발이 약1,260m 정도 되는데
[두문동재 정상 520m]라고 알리는 지점부터 눈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지름길]
[두문동고갯길]은 꼬불꼬불 "S자"로 올라 가기에 중간중간 지름길을 이용해 올라 갈수도 있습니다만
눈길이라 저는 도로를 따라 올랐더니 시간이 제법 더 걸리더군요. 대신 헥헥거리지는 않았지만...ㅎ
[대간17기팀]은 지름길을 이용해 저보다 많이 앞서 가게 됩니다.
[차로]
[두문동재]까지 버스를 타고 오르면 매우 쉬운데 [해발 580m]를 어쩔수 없이 걸어 오릅니다.
[두문동고갯길] 도로를 따라 40여분 쉬어쉬엄 오르면 ...
['두문동재 매점']
[두문동재]에 도착하는데, 먼저 간이매점이 라면냄새를 풍기며 산객들을 유혹하고
['두문동재'] 11:00~11:08
"두문동재 杜門洞재"
'국토지리원 1/25,000 지도'에는 해발 1,258.7m라고 알리고 있는데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는 "두문동마을"과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에 있는 "추전마을"을 잇는 고갯마루로서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유서깊은 고갯길이며 저에게는 더더욱 추억의 고갯길입니다.
예전 대간을 할때와 야생화탐방, 그리고 [대덕지맥]을 할때 올랐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정암사"는 조금전 '고한'에서 '만항재'로 가는 길에 있는데
'정암사 일주문'에는 "태백산 정암산"이라고 표기하고 있어 조금 어리둥절했었습니다.
"함백산" 아래에 있으니 "함백산 정암사"라고 해야할텐데...
제가 알기 쉽게 편집한 위의 [구글어스]를 참고하세요
아마도 이 근처 山群들을 예전엔 모두 "태백산"이라고 아우러서 부른듯하군요.
이나저나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에 하나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절간이죠?
['금대봉-매봉산-피재' 방향 들머리]
[백두대간] 북진길 입구로서 "은대봉-비단봉-매봉산-삼수령" 방향으로 가는 길.
"금대봉-은대봉"은 야샹화 천국으로 유명하죠.
"은대봉"보다 "금대봉 지역"이 더욱 유명해서 자연보호를 위해 이곳 출입을 조정하고 있지요.
출입금지 지역은 아니지만 여름철 야생화씨즌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들어 갈수 있습니다.
씨즌엔 하루에 300명 정도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런 겨울철엔 앞에 보이는 출입관리초소에서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그냥 들어 갈수 있죠.
['은대봉-함백산' 방향 들머리]
"은대봉-함백산 방향]으로 대간 마루금 산행을 시작합니다.
2016년 8월에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태백산국립공원" 속으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금대봉-두문동재-은대봉-함백산'도 '태백산국립공원'에 포함되 있기 때문입니다.
[뒤돌아 본 '두문동재'] 11:08
[은대봉]으로 오르면서 뒤돌아 본 "두문동재"의 모습입니다.
우측 '태백시 화전동 추전마을'의 "추전杻田"은 싸리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그래서 이 고개를 "싸리재"라고도 하는데, 즉 왼쪽 '정선 두문동' 사람들은 "두문동재"라고 하고,
우측 '태백 추전마을' 사람들은 "싸리재"라고 해서 두개의 이름이 붙어 있는 고개이죠.
[두문동재] 뒤로 [백두대간]이 북진하며
"야생화천국-천상의 화원"이라는 칭호를 받는 "금대봉 金台峰 1,420m"이
화려한 야생화를 펼치기 위해 봄-여름-가을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듯...
[오름길]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12분여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은대봉' 조망] 11:20
[은대봉]이 보이는 첫번째 봉우리에 올라 [은대봉]을 조망하고
조금 내려 가면...
['산림유자전원 보호구역'] 11:21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판'이 있는 안부를 지나 갑니다.
"아고산지대"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산줄기 중에 1,500m가 넘는 산줄기 정상부엔 거센 바람과 풍설로
식물이 자생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 야생풀들이나 자라고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하겠지요.
이런 지역을 "아고산대"라고 하는데 "태백산구간" "소백산구간" "덕유산구간" "지리산구간"등이 있습죠.
['은대봉'] 11:38~11:41
"은대봉 銀台峰 1,443.2m"
정상석에 있는 높이와 국토지리원 지도의 높이가 약간 틀리는 "은대봉"에 올랐습니다.
"銀台峰"의 "台"는 일반적으로 우리는 "태"라고 발음하는데, 여기선 "대"로 발음하는군요.
지자체 홈피등에는 "돈대 臺"로 표기하는 데도 있는데...
제가 언급하는 "銀台峰"은 국토지리원 자료를 참고했다는 것을 알려드림니다.
여름철엔 야생화 천국으로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곳입니다만
"금대봉"이 더 명성을 떨치고 있죠?
['제1쉼터' 가는 길]
[은대봉]을 지나 [제1쉼터]로 향합니다.
오늘 날씨는 비교적 온화하지만 운무와 미세먼지로 가시거리가 무척 짧아 주변 경관을 촬영 못해
정말 무지무지 아쉬웠습니다. 올때마다 이러니...에휴~
동서남북이 화려하게 조망되는 곳인데 바로 앞 봉우리 하나만 보이는군요.
[은대봉]에서 완만한 능선길을 40여분 제법 긴 시간을 진행하면...
['제1쉼터'] 12:26~12:47
"제1쉼터 - 적조암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적조암"은 '5대 적멸보궁' 중에 하나인 "정암사" 근처에 있지요.
[점심식사]
[제1쉼터] 좌측 바람없는 눈밭에서 먼저 도착한 [거인산악회 17기팀]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군요.
저를 아는 사람은 "홍장천 산행대장"과 "초보산꾼" 밖에 없어 저는 별도로 쉬고 놀고...ㅎ
['제2쉼터' 가는 길]
[제1쉼터]에서 다시 눈길을 진행합니다.
길은 오르내림이 별로 없는 편안한 길이지만 눈길이니 그렇게 편한 길만은 아닙니다.
17분 정도 더 진행하면...
['제2쉼터'] 1:04
[제2쉼터]라고 여겨지는 곳을 지나고
['중함백산' 오름길]
[중함백산] 정상을 향해 오름짓을 합니다.
버스에서 언급했던 "두문동"과 "두문불출"에 대해 요약해서 한번 더 언급하자면...
이 글은 제가 2008년 2월에 쓴 글로서 이미 인터넷에 알려진 글입니다만 참고로 한번 더 올려 드림니다.
"두문동"과 "두문불출"에 대해 알아 보려면 고려 말의 역사 속으로 가 보아야 합니다.
고려말의 정치 상황
우선 그 당시 우리나라 고려 말의 정치 상황은 모두 아시겠지만 다시 되짚어 보고 가겠습니다.
'노국공주'와의 사랑 이야기로 유명하며, 원나라 침입을 몰아내고 원나라 배척화와 국토회복에 앞장선
'공민왕'.
그도 로마제국의 씨이져를 시해하는 '부루터스'와 같은 역활을 하는 최만생(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처참하게 시해되고 말았지요. 특히 '홍륜'은 우리 역사에서 둘도 없는 특이한 역활을 한 젊은이였죠.
'공민왕'의 와이프인 '노국공주'가 죽자 '노국공주'를 엄청 사랑한 아들이 없는 '공민왕'은
자신의 후궁들로 부터 아들을 얻을려고 잘생긴 젊은이들을 뽑아 '子弟衛'라는 아들 낳기 친위대를 만들어
자신의 후궁들과 강간을 시켰죠.
세상에 자신의 세칸드 와이프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갖게하는 남편이 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에휴~~
하지만 고려의 '공민왕'은 그렇게 하여 '子弟衛의 홍륜'과 '공민왕의 益妃' 사이에서 아들을 낳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얻은 후 '공민왕'은 이 아들을 완벽한 자신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 이 사실을 숨기려 했고
가장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홍륜'을 죽일려고 했는데...'공민왕'의 내시였던 "최만생"에게 지시를 하는데
배반한 "최만생"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아챈 '홍륜'이 먼저 '공민왕'을 죽여버렸던 것이죠.
그리곤 '공민왕'의 후대를 이을 세자가 없는 상태에서 '최영장군'을 비롯한 군부세력들이 차기 왕을
선정하는데, 언젠간 '공민왕'이 자신의 왕사였던 승려 '신돈'의 집에 들려 '신돈'의 하녀'와 관계를 맺어
아들을 낳았다고 하는 아들이 유일한 '공민왕'의 핏줄이라고 이 아들을 열살에 왕위에 오르게하니
그가 바로 '우왕'이었던 것이죠....그후 '우왕'은 '이성계'로부터 왕족이 아니라 '승려인 '신돈'의
아들이라고 계속 주장을 하다가 '우왕'도 죽여버리게 되는데...
['중함백산' 전위봉] 1:25
"중함백산"의 전위봉에 올랐습니다.
바람까지 조금씩 거세지며 산행길을 사방을 가리웁니다.
그 시절 신군부세력 '이성계'를 못마땅히 여긴 집권세력 '최영장군'등 무신정권들은
'이성계'를 전장터로 내 몰지만,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 정권을 무너뜨리고 실권을 장악하지요.
이때부터 '신군부 국보위 위원장'은 이성계가 훗날 '전두환'처럼 되며,
'장세동'이 같은 정보부장은 '이성계'의 셋째아들 '이방원'이가 서슬퍼런 칼날을 휘둘럿답니다.
'우왕'을 [백두대간] '대관령' 근처 '능경봉' 아래에 있는 '강릉시 왕산면'의 '제왕산'으로 유배를 보내
죽여버리렸지요. 그래서 그 동네 이름이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가 되었답니다.
'이성계'가 '우왕'을 내몰고 '창왕'을 꼭두각시 왕으로 내세워 섭정을 하게 되는데,
'최규하대통령'과 국보위위원장 '전두환'이와의 관계처럼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할수있겠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도 '최규하'같은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며
'이성계'와 '이방원'이의 얼굴 마담이었을 뿐이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리하여 고려의 실권을 쥐고 있던 '이성계'였으나,
고려의 충신 '정몽주'와 사대부들이 '이성계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했으니...
그래서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와 '정몽주' 사이에 서로 회유하는 시조 대결이 성사 되었죠.
정치권력을 앞에 두고 주고 받는 시조가 함축하는 의미가 크다고 아직까지도 유명합니다요
'이방원'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자오..."
'몽주 형님 내편 되어 주라~~!!"
아무리 애걸구걸을 해도...
'정몽주' :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따식아 니가 아무리 꼬셔도 안넘어 간다~ 이 전두환 장세동이 같은 넘들아~~!!"
이렇게 그들의 시조대결은 정치적 협상은 실패라고 서로 확인시켜 주기만 했을뿐... 그리하여
'이방원'은 '정몽주'와는 도져히 공생할수 없음을 확인하고 '12.12사태'를 일으키죠....선죽교에서...
잔인하게 '정몽주'를 살해하고 이제 어느 누구도 덤비지 못하는 완벽한 절대 권력을 쥐고
새로운 5共을 탄생 시키니 바로 '조용한 아침의 나라' "朝鮮"이었죠...
에구~ 조용할 날 하루도 없는 나라였는데... 지금까지도 ㅎ
['중함백산' 정상] 1:30~1:34
"중함백산 1,501.7m"
[백두대간] "은대봉"과 "함백산" 사이에 있는 "중함백산"에 올랐습니다.
다행이 운무가 약간 걷히기 시작합니다만 여전히 가시거리는 몇백m 정도 뿐
['오투스키장' 조망]
"함백산"의 동쪽 사면에는 "오투리조트"의 스키장과 골프장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부도 난걸로 알고 있는데, 현재 스키 씨즌인데도 손님이 전혀 없는걸로 보아 사실인듯...
아랫쪽으론 '태백시'가 보여야하고, 건너편엔 [낙동정맥]이 조망되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고...
"五里霧中"~~
['함백산' 조망]
다행이 운무가 약간 걷혀 "함백산" 정상부가 희미하게 조망됩니다.
어쩌면 맑은 날씨에 선명하게 조망되는 것보다 희미한 광경이 더 멋져 보이기도 하는군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처럼...ㅎ
그래서 여기서 제가 좋아하는 詩 한수를 읊지 않을수 없군요.
산에게
나무에게
김남조
산은 내게 올수 없어
내가 산을 찾아 가네
나무도 내게 올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서 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을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 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 왔네
그들은 주인 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주목'] 1:43
"중함백산" 정상에서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0분여 내려 가면
"천연기념물 주목" 한그루가 보호 받고 있는 안부에 도착합니다.
[두무동재]에서 5km를 왔고 [함백산]까지는 1.5km가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오늘 "태백산 눈꽃 축제"가 열리는 기간중이라 산객들이 많았습니다.
[대간 우회로]
'주목'이 있는 곳에서 [함백산] 정상까지 사이에는 봉우리들이 몇개 있는데
[대간 마루금]인 봉우리를 넘어야지만 겨울철엔 눈으로 통행이 어려워 산옆구리 일반등산로로
우회하게 되는데 마루금을 우회하는 구간도 알고 가야겠죠?
잠시후 [함백산]에 올라 뒤돌아 보면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두문불출
쿠데타 철혈정권인 신군부 '이성계'세력에 의해 탄생된 새로운 왕조-"조선"
고려를 무너뜨린 신군부 왕조에 협력해서는 政事를 함께 할수 없었던 고려의 충신들 73명이
현실 정치를 떠나 지금의 송악산인 만수산의 어느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숨어 살며 세상을 등졌답니다.
이 73명중에 '黃喜先生'도 있었습니다. 당시는 매우 젊었을 때이죠.
그들이 들어가 은둔생활을 한 만수산의 깊은 산속을 "두문동(杜門洞)"이라 했으며,
그 두문동에서 일체의 세상출입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말이 유행했답니다.
다시 말해 두문동에 들어 간 고려의 충신 73명 중에 72명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란거죠.
이 "두문불출(杜門不出)" 이야기에 얽힌 古史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첫 과거 시험을 치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거시험장에 나온 '이성계'는 과거시험장에 시험보러 온 선비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거의 기절할 지경이되었다고 합니다. 젊은 선비가 없다는 것은 정권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왕조의 운명이 어떻게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겠죠.
이 때 과거시험장의 한 선비가 "이제 보셨소이까? 이것이 바로 백성들의 마음이고,
또한 하늘의 뜻이올시다!"라고 외치며, "우리도 두문동으로 갑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시 두문동에는 73명의 선비가 정권에 거부하고 은거하고 있었다고 위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성질 더럽게 난 이성계와 이방원은 두문동의 선비들을 끌어내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답니다.
고려왕조를 무력으로 무너뜨린 이성계 이방원이가 아무리 설득해도 고집불통인 두문동의 선비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성계와 이방원이는 이들을 끌어내기위해 두문동에
불을 질러버렸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에 타 죽을 운명을 맞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고 그대로 불에 타 죽고 말았답니다.
이때 죽은 72명을 '두문동 72현'이라고 하며
이때부터 한곳에 오래 머무르며 문밖 출입을 하지않는 것을 두고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고.....
['제3쉼터'] 1:55
"주목"이 있는 곳에서 마루금 우회로를 따라 12분여 진행하면 [제3쉼터]를 통과합니다.
"두문동(杜門洞)"에서 살아 나온 유일한 한 사람 --- 그가 바로 "황희 黃喜"였습니다
72명의 고려 충신들이 "黃喜!~ 당신만은 살아 나가 그 학식과 덕을 백성을 위해 베풀게나~!!"라고 했다나요?
이 말은 좋게 평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신군부 세력에 동조했다는 평이지요.
사실, 黃喜는 나중 자신을 회고 할때 "내 생애에 최고로 수치스런 두가지 사건 중에 하나"라고 실토합니다.
"그 하나는 杜門洞에서 나온 일이며, 다음은 제주 감목관 태석균을 사정으로 구원을 청한 일이라고 합니다.
['함백산' 가는 길] 2:04
이제 "함백산" 정상은 성큼 성큼 다가 옵니다.
그리고 "KBS 중계소"와 이동통신중계탑들도 새로움으로 다가 옵니다.
[헬기장] 2:14
"함백산"의 북사면은 완전 스키 슬루프 같았습니다.
일부 산객들은 썰매를 타기도 하더군요.
미끄러운 사면을 잠시 오르면 헬기장에 도착하는데
좌측을 바라보면
['KBS함백산중계소' 조망]
"KBS 함백산중계소"와 이동통신중계소들이 주변 '태백시-삼척시-동해시'들에 전파를 보내고 있고
[뒤돌아 본 '중함백산']
뒤돌아 보니, 지나온 "중함백산"이 벌거벗고 피라밋처럼 서 있습니다.
그리고 대간 마루금을 우회한 루트가 확실이 보입니다.
['함백산' 정상부]
['함백산' 정상] 2:20~2:25
"함백산 咸白山 1,572.1m"
저의 산행기 프롤로그에 [산경표 19페이지]를 캡쳐해서 올렸는데
거기엔 "대박산 大朴山"으로 표기되 있습니다.
白頭大幹을 함축적으로 의미하는듯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지는듯 하군요.
돌탑과 전파철탑....
[동행자]
오늘 저와 후미에서 함께한 산객들입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먼저 후다닥 가버려 이 분들만 저의 산행기에 올려지는군요. ㅎ
한분은 오늘과 같은 산행을 처음 해 보는 초보라고 했습니다만 그런데로 열심히 걸었습니다.
일찍 도착한 횐님들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입니다만,
제가 사진 찍고 감상문 쓰고 하느라 좀 늦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람니다. ㅎㅎ
['함백산' 정상부]
여기선 동쪽으로는 東海와 [낙동정맥]의 '백봉산'등 우리가 지리시간에 배운 [태백산맥]을 완벽하게
조망할수 있는 곳이고, 북쪽으론 '대관령' '오대산'까지도...남쪽으로는 '태백산''소백산' 등등....
서쪽으로는 '장산' '백운산'등이 보여야 하는데 운무와 미세먼지로 조망이 되지 않아 무지 아쉽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에 무지 맑은 날에 "태백산"에 올라 촬영한 사진을 참고로 보여 드림니다.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낙동정맥]의 분기점인 "피재-삼수령"이 보입니다.
[예전에 날씨 좋은 날 '태백산'에서 촬영한 사진]
날씨가 좋은 날엔 좋은 경관을 얼마나 많이 조망할수 있는지 참고 할수 있는 사진이라 참고로 올립니다.
'태백산맥'엔 '태백산'이 없고, '소백산맥'에 '태백산'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국가대표 함백산 훈련 선수촌']
남쪽 아래엔 "국가대표 함백산 훈련 선수촌"이 조망되고
[뒤돌아 본 함백산 정상]
"함백산"을 내려 가며 '함백산 정상부'를 한번더 뒤돌아 봅니다.
잘있거라~~ 나는 언제 다시 오겠나~~
[내림길]
그리곤 30여분 함백산 내림길을 내려 가면....
[도로 만남 - 'KBS중계소 입구'] 2:58
도로를 만나는데 "KBS중계소" 차량 통제 입구입니다.
여기서 대간 마루금은 약간 좌측으로 가야하는데 약간 좌측을 보면
['창옥봉-만항재' 가는 대간길]
"창옥봉"을 경유하여 "만항재"로 가는 대간길이 이어 집니다.
잠시 올라 가면...
['함백산기원단'] 3:03
"함백산 기원단 咸白山 祈願檀"을 만납니다.
'태백산'과 '함백산'은 삼국시대부터 토속신앙이 발달된 곳이었죠.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여기서 뒤돌아 보면...
['함백산' 조망]
지나온 "함백산"이 전체적으로 조망이 됩니다.
함백산을 완전 뒤로하고 [만항재]로 25분여 진행하면...
['함백산등산로' 입구] 3:27
"만항재" 앞 "함백산등산로입구"를 지나며
[''화방재' 가는 길] 3:32
"만항재"로 조금 더 가면 좌측으로 "화방재"로 가는 대간길 입구가 있습니다.
"만항재"를 들렸다가 "하늘숲공원"을 통과해 대간 마루금으로 접속하겠습니다.
['만항재'] 3:33
"만항재 晩項재"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혈동", 그리고 "영월군 상동"의 행정구역 경계선이 만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차량이 통행하는 고개로는 제일 높은 해발 1,341m라고 합니다. (안내석엔 1,330m)
그러니 이 고개가 목덜미 같은 고개여서 넘어 가는데 무지 힘이 들어 늦어진다고 "晩項재"가 되었답니다.
순 우리말로는 "늦은목이"가 되고...
한편 우리나라 6~70년대 경제개발이 붐을 이룰때의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을 채광하여 '태백'이나 '사북'으로
실어 나르던 고개였지요. 그리고 여기서 "백운산" 방향으로 이어진 '석탄 운송도로'가 산을 휘감고 있는데
이름하여 "운탄고도 運炭高道"라고 하지요.
시간 날때 "만항재"에서 "백운산"으로 "운탄고도 運炭高道"를 걸어 "강원랜드"로 가보는 것도
즐거운 도보 여행이 될것입니다.
또한 "운탄고도 運炭高道"가 가는 산줄기는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두위지맥"이기도
['하늘숲공원' 입구]
"만항재" 앞 대간 마루금에는 "하늘숲공원"이 조성되 있는데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여름철엔 야생화로 인기 있는 곳이죠.
['하늘숲공원']
"하늘숲공원"에는 詩등 읽을거리와 쉼터를 조성해 놨습니다.
대간 마루금은 좌측 군부대 도로로 나갑니다.
[군부대] 3:43
군부대 도로로 나가면 바로 군부대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화방재"로 가는 길을 알려 주고
['수리봉' 가는 길]
20여분 좁은 마루금을 진행하면
['수리봉' 조망] 4:23
이번 코스의 마지막 봉우리인 "수리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10여분 진행하면...
['수리봉' 정상] 4:33
"수리봉 1,199.3m"에 도착합니다.
독수리를 닮았다고 "수리봉"이라고
[내림길]
다시 25분 정도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 가면....
['화방재'] 4:58
"화방재 花房嶺 933.9m"
나그네들이 '태백'에서 이 고개를 넘어 '만항재'를 넘어 '사북 고한'으로 가려면 무척 힘들었겠지요?
그런데 이 고개를 넘을 때 이 고개에서 쉴수 있는 바위가 있어 편히 쉬어 갈수 있었다는데
그 바위의 모양이 꽃방석 같다하여 붙여진 지명의 유래도 있더군요. 믿거나 말거나...ㅎ
['태백산석탄박물관' 입구 음식점 거리] 5:18
"화방재"에서 뒷풀이를 위해 버스로 이동한 곳입니다.
이곳은 "태백석탄박물관"이 있는 "당골계곡"입구입니다. "석탄박물관" 바로 앞이죠.
[태백산 주 등산로]로서 "화방재" "유일사" "백단사"등에서 "태백산"을 오른후 대부분 이곳으로 하산하죠
특히 이번 주말은 "태백산눈꽃축제"가 있는 날이어서 간단한 각설이 공연도 하고 있었으며
이곳 음식점들은 많은 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버섯전골로 뒷풀이를 얼큰하게 하고 귀가했습니다.
[거인산악회 17기 대간팀]과 함께한 산행 즐거웠으며,
특히 초대해준 "홍장천산행대장"과 회장님등 회원님들께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즐겁고 안전한 산행 계속 이어 가시길 바람니다. 언젠간 또 만나겠지요?
감사합니다.
[구글어스]
참고로 지나온 대간길을 "화방재"에서 북쪽 "두문동재" 방향으로 바라보는 구글어스를 보여 드리며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접속거리 포함하여 14.6km였습니다.
[백두대간 태백산구간' 구글어스]
우리가 뒷풀이를 한 장소와 [17기팀]이 다음 구간에 진행할 [백두대간 태백산구간] 구글어스를 보여 드리며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합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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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월의 백두대간 (함백산) 설산의 진솔함![~](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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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파란문회원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