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비누의 향기
오늘 아침에 샤워하는데, 왠지 친근한 향기를 느꼈다. 꽤 오래전부터 비누나 화장품에 예민하지 않고 그저 아내가 사다 주는 대로 사용하는 편인데, 오늘 새로 뜯어서 사용한 그 익숙한 향의 비누는 ‘오이비누’였다. 어느 시인은 여인의 머릿결에서 나는 샴푸 냄새가 최고라고 했는데, 나는 이 오이비누 향을 맡으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는 70년대 후반기에 입대하여 전반기 교육을 마치고 육군통신학교에서 다섯 달 동안 전문 지식훈련인 후반기교육을 받았다. 거기서 생활하던 그 겨울에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자원해서 식기 당번을 했다. 매 식사 후 우리 동기들 33개의 플라스틱 식판을 빨랫비누로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닦으며 12월 초부터 5개월을 지냈으니, 한겨울을 온전히 식판과 같이 생활한 것이다. 그런 나를 보고 동기생들, 특히 페치카 당번하던 두 녀석은 혀를 끌끌 차며 그 추운 날씨에 얼음물로 사서 고생하는 나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그 이력으로 지금도 설거지를 제법 잘하고 있으니 그 고생으로 그나마 남은 게 있는 육군통신학교 시절이었다.
비누는 고급 지방산의 알칼리 금속염을 주성분으로 만들며, 물에 녹으면 거품이 일어나고 미끈미끈하다. 이 비누는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인 기원전 3800년부터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기원전 3500년경의 기록에는 비누의 제작 기법이 남아있다고 한다. 비누는 대량생산 이전에는 그냥 물, 창포, 등 식물 우려낸 물이나 기름, 진흙, 모래, 재, 소금, 밀가루, 쌀가루 등을 목욕과 세탁에 썼다고 한다. 사실 ‘비누’는 순우리말로 조선시대에 콩, 팥, 녹두 등을 갈아 (밀가루 같은)스크럽제로 쓰거나 빨래에 비벼서 때를 빼는 데 썼었고 이것을 ‘비노’라고 했단다. 가장 오래된 기록이 1677년<박통사언해>에 한글로 비노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 비노가 음운 변동을 거쳐 지금의 ‘비누’가 되었다고 한다. 실질적인 비누는 개화기에 들어오면서 ‘양비누’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 양비누는 초창기에 ‘석감’이나 ‘사분’이라 불렸는데, 석감은 ‘잿물 감’자를 써서 돌 같은 고형의 잿물을 뜻하고 사분은 포루투칼어의 ‘Sabão(사버웅)’이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을 음역한 것이라고 한다. 튀르키예어로는 오늘날까지도 '사분'이라고 부르며,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비눗방울을 흔히 ‘샤본다마’라고 부른단다.
내가 입대하기 전이나 전역한 후에는 우리 같은 서민들은 세숫비누다운 비누를 잘 쓰지 못했었다. 단지,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시절 너나없이 여드름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던 때에 부잣집 아이들은 수입용 고급 아이보리비누로 세수하고 있었다. 미국 산의 그 아이보리비누는 우지(탈로우)라는 동물성 지방을 베이스로 하여서인지 여드름에 특효여서 그 비누를 사용하는 친구는 항상 얼굴이 깨끗해서 역시 여드름이 많은 내가 무척 부러워했었다. 그런 내가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미군 사령부 직할대인 독립대대에 배치되어 갔더니 입대 전에는 보기 귀하던 좌변기와 소변기가 따로 구비되어 있고, 샤워기 옆에는 오이비누가 비치된 내무반에서 생활하였으니, 여기가 신세계가 아닌가 싶었다. 사실 우리 부대는 미군이 주둔하다가 월남전 종료 후 귀국한 파월 한국군 장병에게 인계되어 주둔한 거의 미군 시설의 부대였고, 내무반의 전우들도 나름 상류층의 귀한 자제들이어서 외박이나 휴가 후 귀대할 때 각자 입대 전에 선호하고 애용하던 비누들을 가지고 와서 사적으로 쓰고 있었지만, 가난한 나는 그런 걸 엄두도 못 냈었고 오이비누만 해도 싱그러운 향이 무척 좋은 고급 비누였었다. 입대 전에는 목욕하려면 공중목욕탕에 가야 할 수 있어서 한 달에 몇 번 못 했었는데, 특히나 명절 전에는 너나없이 모두 목욕탕에 가서 묵은때를 벗기고 차례를 지내는 게 공식처럼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입대해서 매일 저녁 샤워를 할 수 있고 향 좋은 오이비누를 쓸 수 있으니, 행색도 좋아지고 내 개인위생의 분기점이 된 참 좋았던 시절이었다. 정말로 비누는 손발을 씻으면서 질병 전염의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인류 수명을 20년 늘린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한다. 지난 삼 년간 인간을 위협하던 코로나19도 비누로 깨끗이 30초간 손 씻기가 가장 중요한 기본 개인 방역 수단이었고, 손 세정제 또한 또 다른 형태인 비누이다.
현대적인 비누의 대량 생산은 산업혁명 이후의 일로, 18세기 프랑스에서 니콜라 르블랑(Nicolas Leblanc, 1742~1806)이 세탁 소다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면서 비누의 단가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고, 비누 제작 공법의 발전이 이어져 대규모 기계 공장을 통해 비누가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조ㆍ판매되는 미용ㆍ세안용 비누의 경우 보통 팜유와 코코넛유를 베이스로 제조하며, 올리브유나 호호바씨유 등이 첨가되기도 한단다. 군대에서 비누는 치약과 함께 거의 만능으로 쓰이던 물건이었다. 비누는 1970년대 생산된 럭키의 하이크림과 데이트 비누가 선도했었으며, 동산유지의 다이알비누나 인삼비누도 히트 상품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70년대에는 빨랫비누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았었다. 럭키라는 상호는 내가 전역하고 취업할 때는 금성그룹의 한 회사로 1947년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이 전신이며 첫 제품이 ‘동동구리무’라고 불렀던 ‘럭키크림’이다. 지금은 비누나 화장품, 치약 등을 생산 판매하는 엘지생활건강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70년대에는 럭키나 금성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럭키에서 판매하는 가루비누인 당시 고가의 하이타이를 직원들에게 일정량 강매하거나 명절 보너스로 대신 주었었는데, 내가 1980년도에 입사하고 근무하던 금성 그룹에서는 비누와 치약 칫솔 세트를 명절이나 창립기념일 등에 복지 차원에서 무료로 자주 나눠줘서 우리 집에서는 비누나 치약 칫솔을 거의 사서 쓰지 않았었다. 그래도 비누만큼은 굳이 오이비누를 사서 썼었다.
현재 비누의 제조법이나 종류는 무척 다양하여 고체 비누뿐만 아니라 가루비누, 세탁세제, 종이비누, 세정제, 샴푸나 린스 등 다양한 비누가 있고 각종 향 비누를 수제로 만들어 쓰기도 하며 비누로 꽃이나 예술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좋은 이미지와 반대로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서 다치거나 죽는 사고가 가끔 일어나고 있고,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이영애가 작정하고 목욕탕 입구에 비누칠하여 악질 수감자 ‘마녀’가 미끄러져 넘어지게 하여 응징하는 연출도 있으니 부디 목욕탕에서는 조심해야 할 일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샴푸는 여자가 쓰는 것이고 남자라면 비누로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뜬금없는 마초이즘이 성행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각자 피부에 맞는 사용 목적에 맞는 비누를 골라서 써야 할 것이다. 예전에는 오이비누를 목욕탕마다 비치했었는데, 2010년 이후에는 알뜨랑비누로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오이비누의 상큼한 향을 맡으면 20대의 내가 추억이 되어 무척 기분이 좋아진다. 오이비누를 쓰던 그 시절 군 복무 기억도 그리 나쁘지 않은 호시절이었고 지금의 아내와 한집에 살기 시작했었으니 추억하기 참으로 좋다.
* 최 평균 약력
2006년 계간 대한문학세계에 수필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영등포와 청양지부 회원. 대한문인협회 회원.
2013년 시집 ‘자판기 위의 빈 깡통’ 수필집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