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 조 상 훈 23/4/27
4.7-11일간 일본 세토우찌해(瀬戸内海) 나오시마(直島)를 목표로 일본의 역사그리고 미술과 관련된 볼거리들을 관람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첫날 오사카공항에서 오카야마(岡山) 시내 호텔에 이르기까지 궂은 날씨로 비옷을 걸친 채 히메지성(姬路城)을 관람하느라 버거운 일정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나흘간은 비교적 좋은 날씨로 상쾌한 나들이가 되었다. 나오시마의 지중(地中)미술관, 이우환미술관, 베네세뮤지엄은 쇠락한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인간의 지혜로 슬기롭게 개조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사는 좋은 프로젝트였다. 테시마(豊島)와 이누지마(犬島)의 예술적 실험도 인상 깊었다. 오가는 길에 관람한 히메지성, 오카야마성, 고라쿠엔(後樂園), 구라시키(倉敷) 에도(江戶)시대 미관지구, 오하라(大原)미술관 등 역사적 유적들도 일본의 지난날들을 상상해가면서 오늘의 일본을 반추(反芻)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 곳이든 철저히 질서가 유지되고 정결하게 관리되고 있는 점이 다시 한 번 일본을 느끼는 계기를 제공했다. 선편으로 테시마, 이누지마 특히 나오시마에 오갈 때에는 상당수의 관광객, 개중에는 서양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눈에 띄었으나 일단 섬에 들어서자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상업화의 흔적이 최소한에 머무르고 있었다. 갤러리의 입장객들도 분단위로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 관람 시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섬이라는 특수한 자연에 예술이라는 인간의 손질이 부담스러운 것일 게다. 그렇지만 우리가 답사한 세 섬의 갤러리와 전시품들은 섬 본래의 자연스러움 속에 조화롭게 어울리는 그 한 부분이 되도록, 아니 그 자연의 품위를 훨씬 승화시키는 공물(供物)처럼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안의 관람자의 위치에 선 우리도 그 일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고나 할까?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일본 문화성에서 종교인구 센서스를 했는데 일본 전체인구보다 훨씬 많은 종교인구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다. 공식센서스의 결과이니 그대로 공표하여 공식기록으로 되었다하니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일본은 따라서 원래 도처에 내세(來世)에 관한 흔적이 많은 땅인데 우리가 찾은 섬들은 유별나게도 일본인들의 일상에서 일탈할 수 있었던 듯 신들의 표상들이 그리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자리에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이우환, 안도 타다오(安藤忠雄)의 영혼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우리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쿠사마의 호박 조각상은 처연(凄然)하다고 할까, 강인하다고 할까, 가슴을 저미게 두드리고 있었다.
이내 황량한 바닷가에서 무언가 그 땅의 본질을 지키고 있는 듯 의연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안과 소망을 품게 인도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새로운 것으로서 무언가 자신들과 통하는 문물에 맞닥뜨리면 이내 그들의 정신세계의 일부로 품어버리고 늘 섬기는 신들의 경지를 만들어낸다. 지중미술관에 전시된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나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들이 안치된 구조물과 랜스캐입이 덧없이 신비스러웠다. 어찌보면 이러한 특별한 모양새로 포장되어 영구 전시됨으로써 이러한 작품들이 한끝 더 우리의 심금을 설레게 하는지 모른다. 구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의 인상파 그림들을 수집해온 오하라 가문의 집념도 그러한 경지에서 발휘되었을 것이다. 몇 해 전에 파리의 오랑주리(Orangerie)미술관을 관람할 때에도 일본의 브리지스톤 재벌이 소장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인상파 그림들을 이번에는 거꾸로 프랑스에 가져와 전시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하다 싶었다.
나오시마의 이우환 미술관을 다시 기억에서 되살린다. 널따란 공간 곳곳에 자리한 이우환의 작품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하는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자료들을 많이 보면 선입견이 곁들어지기 마련이어 가급적 투명하게 작품세계를 범접해보려 하나 이해와 상상이 애매한 길목에서 기록을 찾기 시작한다. 이우환은 말한다. “저는 종교적 신앙이 없고 여기에는 신사, 사원, 교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박물관이 사유적이고 근본적이며 우주적인 것과의 깊은 대화의 장소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가능한 한 내 자아를 제거하고 오늘날의 사상, 재료 및 기술을 사용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현재의 단면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은 현대라는 시대를 확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현재를 초월하여 무한으로 향하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I have no religious faith and there is no shrine, temple, or church here, but I wanted this museum to be a place of profound dialogue with something reflective, something basic, something cosmic. I eliminate my self as much as possible and try to do everything I can using contemporary thoughts, materials, and technology. I believe that showing this kind of cross-section of the present means confronting the contemporary age and also becomes a way of showing something that transcends the present and leads toward 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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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경내에 들어서자 바다를 향한 시원한 공간이 열리고 관람자들은 자신을 어디에 위치시킬지 잠시 머뭇거린다. 시야에 우선 들어온 작품으로 건물 내부로 향하는 공간에 우뚝 솟은 기둥이 보인다. 높이 18미터의 기둥을 세우는 문제는 건축공학적으로도 상당한 난제였으나 많은 문제를 극복한 끝에 완성되었다 한다. 이우환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콘크리트 기둥이 없었다. 내 마음 속으로는 동굴이나 피난처, 간단히 말해서 은신처와 같은 구조물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에 나는 ‘이것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라고 깨달았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50미터 길이의 직선으로 수평으로 내달리는 긴장감 있는 벽이 보인다. 이것만으로는 공간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평으로 뻗어 있고 양쪽으로 산을 연결하는 벽과는 대조적으로, 공중에 높이 뻗어 있는 가느다란 수직 요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수직 기둥은 그 자체로도 괜찮겠지만 너무 상징적일 것 같아서 가까운 지표면에 둥근 점 같은 돌과 평면 같은 철판을 놓았다. 철판은 자연석에서부터 추출되며, 콘크리트는 분말로 된 돌을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재료들 사이에 연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관 앞에 큰 광장을 제안했고, 이 공간은 바다로 확장되었다. 거기에 기둥을 세워서 공간의 분위기, 일종의 파형 또는 파장을 끌어내고 싶었다.”
바다 가까이 2019년에 세워진 대형 조각작품 아치(Arch) ‘영겁으로의 문’(Porte vers l’infini)에 관한 이우환의 말도 재밌다. “... 사람들이 저 문을 통과하면서 아주 새로운 방법으로 하늘도 보고, 신선한 바다의 터치도 느끼고 산도 바라보게 된다. 무언가 다양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영겁으로의 문’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그러나 작품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관람자들이 문을 지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체험하였으면 좋겠다. ...” https://benesse-artsite.jp/en/story/20190719-1315.html
이우환은 안도 타다오와 상의하여 나오시마에 설치할 아치 작품을 구상하면서 2014년도 베르사이유 전시회 때 전시된 아치와 다른 위상과 상상력으로 세우고자한다고 말했다 한다. (Lee seems to have spoken passionately stating, “I wanted to build something with presence and imagination different from the one I did in France.”) 실제 베르사이유 작품이 궁전을 향하는 상당히 정형화된 디자인인데 비하여 나오시마의 아치는 유선형 곡선에 자유롭고 유연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할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고뇌의 흔적을 술회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영겁으로의 문’을 지나면서 작품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귀에 좀 헷갈리게 들린다.
이우환의 작품세계는 이른바 미니멀리스트 접근으로서 위에서 작가가 말한대로 항상 자아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고 감상자를 대화의 광장으로 이끈다는 개념에 충실하다. 내부 전시품들 점, 선, 바람, 조응, 대화, 관계 모두 이러한 작가의 자세를 곱씹으면 이해가 수월할 듯싶다. 부산 이우환 미술관에서 비디오로 본 기억인데 언젠가 이우환은 고향인 함안의 지리산 자락에서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돌이나 바위를 찾고 있었다. 나오시마에 전시된 바위도 지리산 출신이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도 해가면서 유리위에 바위를 던져 깨트린 전시 작품에 나의 생각의 나래를 펼쳐본다. 유리는 인공이고 바위는 자연이겠지, 인공이면 사람이니 자연과 사람이 부딪치는 장면이겠지, 그러면 유리에 사방으로 퍼진 금들은 자연과 사람 사이의 어떤 관계를 떠올려야 할까, 그러한 금들의 모양에 따라 다른 의미를 주어야 할까, 이러한 소재와 구도 속에서 추출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등등 생각의 꼬리가 이어진다.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문제에 관하여 안도 타다오와의 대화에서 이우환은 말한다. “사람들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모호성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본질이다. 모호성이 있어야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야만 풍성한 감성을 유발할 수 있다. 우리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한다. 이러한 깨달음이 중요하다. ... 사람들은 모르는 것과 모호한 것이 혼재해 있을 때 생각하게 된다. 전시장은 바로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Everyone says they don’t get it or understand, but obscurity is the job of all great artists. The ambiguity is what evokes thought. That’s what generates the wealth of emotions. We learn there are other people besides ourselves. This revelation is important. ...‘People begin to think when the unknown and ambiguous collide. Exhibitions are spaces where that happens.’ Lee explains.”) 안도가 덧붙인다. “사람들에게 구체적 답변이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과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Ando adds. “Teaching people things with concrete answers and making them think are two completely different things.”)
https://www.artm.pref.hyogo.jp/exhibition/t_2212/20221225_taiwa_ENG.pdf
여기까지 들으니 예술작품의 이해에 어려움이 있어도 마음의 부담이 덜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은 예술의 이러한 모호성을 넘어 자신의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전시를 보고 사유하는 습관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나오시마가 ‘안도 타다오의 섬’이라는 불리울 정도로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이 섬의 대부분의 갤러리를 세우면서 자신의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한껏 펼치고 있었다. 사실 안도 타다오는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있는 스타라는 소식은 가끔 들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의 작품 속에 숨 쉬게 되어 좋았다. 콩크리트를 주무르듯 자유분방하게 사선으로 또는 삼각형으로 구사하면서 주변 자연환경에 섬뜩하게 마주해 가는 그의 시선이 가는 데마다 느껴졌다.
이우환 미술관 내부로 들어서며 기다란 콩크리트 벽이나 삼각형의 입구 공간도 그렇고 사각 노출부가 삼각과 편한대로 흩어져 있는 듯하게 공중에서 바라보이는 지중미술관의 산꼭대기 디자인하며, ‘자연, 건축, 예술의 공존’을 추구해서 설계된 베네세 하우스 박물관(Benesse House Museum)의 이미지를 머리에 안고 걸으며 안도의 작품세계를 음미한다. 안도 타다오는 이우환 미술관 입구의 삼각형으로 된 스페이스에 관하여 말한다. “설계는 예각을 가진 삼각형의 형태를 취한다. 이런 종류의 건축은 설계 및 건축이 어렵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개념은 직사각형 형태를 기반으로 하고 시공도 더 쉽다. 매우 높은 수준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의 작업과 대화를 하면서 어려운 계획에 도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부러 삼각형으로 만들었다. 물론 건물 부지의 모양이 삼각형에 가깝다는 점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 만약 이것이 직각의 사각형처럼 더 안정된 형태였다면 이러한 긴장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https://unimportantdetails.tistory.com/136
100년 된 주택에 내부를 콩크리트 벽으로 개조하여 전시한 안도 박물관에는 내부를 보지는 못했지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안도 특유의 디자인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유의 공간을 안겨준다고 한다.
일본처럼 조직화된 사회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카탈로그에서 출발하여 독학으로 일관해온 그의 인생역정이 감동이다. 일본은 인재양성의 강국이다. 이미 노벨상 수상 기록으로 판명되었지만 사회 전체가 인재에 관한 독특한 옹호의식이라 할까 하는 토양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의식적으로 스타로 만들어 준다. 효고현립박물관에 전시된 안도 타다오의 전시품들을 보면서 그가 일본의 스타로, 나아가 세계의 스타로 현대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자세히 돌아보지 못했지만 나오시마의 이에(家)프로젝트(Art House Project)도 가치 있는 사업으로 보였다. 버려진 집이나 안 쓰고 있는 집을 예술적으로 작품화한 것으로 현재 7집이 참여하고 있다 한다.
테시마(豊島)의 물방울 모양 건조물 작품도 독특했다. 멀리서 보았을 때 조개모형인가 비행접시모형인가 했지만 안내서는 물방울이 처음 떨어졌을 때 모습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기둥이 없이 최고 높이 4.5미터로 40x60미터의 조개(shell)형 콩크리트 건조물로서 두 개의 계란(oval)형의 커다란 구멍(opening)을 통해 바람 빛 소리가 내부와 자연스럽게 소통되고 내부 바닥면부터는 군데군데 물이 이슬처럼 조금씩 스며올라오도록 설계되어있다. 내부에 이리저리 걸으면서 처음에는 신비스러웠다가 점차 편안한 안식을 안겨주는 분위기랄까 밖에서 들어오는 빛 소리 바람에 귀울이며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폐쇄된 정련소(精鍊所)를 개조해 건조한 이누지마(犬島)미술관도 흥미로웠다. 해변을 거닐며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는 현대 설치미술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 또한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눈에 들어오자 신선한 충격이 일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잠시 사진도 찍다가 자리를 뜨며 아쉽게 돌아보곤 하는 그리움의 작품들이었다. 바닷가 바람과 빛, 내음에 어울리며 나름대로의 환상적인 공간을 안겨주고 있었다.
5일 동안 어느 날은 2만보 가까이 걸었다.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무언가 끌림에 이끌려 잊은 채 계속 이어갔다. 여행이 끝난지 상당히 시간이 흘렀지만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위에 묘사한 이미지들이 마음에 그윽한 점액질을 선사한다.
그 외에도 수없이 번갈아가며 생각난다. 고락구엔에 이어 히메지성 그리고 오카야마성의 정상에서 조망해본 일본의 옛 시절들이 그려진다. 오하라미술관의 레온 프레데릭의 대작 ‘모든것은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두 부활하리라’(All Things Die, But All Will Be Resurrected through God’s Love)가 떠오른다. 아직도 논어를 서당식으로 열공 중인 시즈다니(閑谷)학교 일본 차세대들의 낭랑한 목소리도 들린다. 안도 타다오가 주도한 효고 현립미술관의 한신대지진 피해 복구 모형도도 기억에 남는다. 미술관 앞에 전개되는 여전히 부산한 현대 일본의 고베항이 늠름하다.
인도자의 익살 넘치는 다음 객설(客說)을 기대하며 이누지마 정련소 뒤안길에 이어 더없이 상쾌한 해변을 누비는 우리 일행의 행렬도 그림속의 주인공들 같다. 일본 우익의 값싼 도시락만 먹는 한국 관광객이라는 날선 공격에 관한 보도도 있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그 값싼 일본 음식을 즐기면서 숨가쁘게 다음 여정에 달려 다녔다. 4월 꼭 그 시점에 나오시마와 그 인근에 함께함으로써 고맙게도 서로 가슴과 머리를 조아린 우리 일행들은 그 만큼 우정도, 성정도 가까워진 것 아닐까 싶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