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 참고 양보하는 착한 친구는 그렇게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작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가끔 대학로에 찾아와서 맺힌 얘기들을 풀어놓고는 떠들고 나니 좀 살겠다며 돌아가곤 했다.
그날도 아침나절에 찾아 와서 다짜고짜 내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남의 핸드폰으로 뭘 하는지 이것저것 누르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대답도 건성이었다.
“이거 농장게임인데 지우지마. 좀만 더 하면 나 보석 바가지 받는단 말이야.”
친구는 새싹 모양의 아이콘을 보여주며 당부했다. 점잖은 어른이 게임을 한다는 것도 어이없는데 그 진지함에 웃음이 나왔다.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꽃샘바람이 매섭더니 감기를 호되게 앓고 그 끝에 접촉성 피부염에 걸렸다. 가렵고 쓰린 것도 괴로웠지만 울긋불긋하게 부풀어 오른 얼굴을 보면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외출도 못하고 종일 뒹굴 거리며 핸드폰만 뒤적거렸다. 그러다 정말이지 너무나 심심해서 친구가 깔아놓은 새싹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해보았다.
나는 숲속의 작은 오두막에 사는 청년이 되었다. 청년은 주변을 일구어서 몇 개의 텃밭을 만들고 육묘장과 비료제조시설, 그리고 알 수 없는 기계들을 뚝딱거리며 만들곤 했다. 오른쪽에 있는 가방그림을 클릭하니 농기구와 작업복이 있었다. 먼저 터를 잡은 이웃들이 우체통에 환영 인사를 남겨주었고 그 중에는 내 친구도 있었다. 농장에서 친구 이름은 ‘머리핀’ 이었고 친구가 만들어놓은 내 이름은 ‘허브33‘이었다. 이미 허브라는 이름이 있어서 33을 붙였다고 했다.
농장의 하루는 실제시간으로 1분이어서 하루 동안 농장에서는 여러 번의 계절이 지나간다. 첫날 상추를 심고 저녁을 먹고 왔더니 농장의 시간은 두 달이 흘러서 상추는 밭에 말라붙어 죽어 있었다. 나 같은 초보들은 상추나 시금치등 재배하기 쉬운 작물을 기르고 레벨이 올라가면 커피와 인삼 같은 특용작물을 재배 할 수 있었다.
게임은 엄청난 순발력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줄 알았지만 의외로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레벨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그것이 함정이었다. 쉬우면 금방 싫증이 나고 너무 어려우면 포기 할 텐데 눈앞의 작은 목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멀리까지 와 있다. 조금만 더. 한 레벨만 더. 작은 욕심은 나를 내달리게 했고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레벨 30의 중견 농부가 되었다. 내가 이토록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처음 부딪힌 난관은 농장에서 통용되는 화폐 ‘골드’의 부족이었다. 시골생활은 돈이 안들 것 같지만 거름과 장비를 구입하는 푼돈부터 창고와 집을 증축하는 목돈까지 자금이 필요했다. 골드가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레벨을 올릴 수가 없었다. 시작할 때 받은 정착금은 밭을 사느라고 벌써 바닥났다. 농사를 지어도 내다 팔 때쯤 되면 시세가 엉망이어서 모종 값도 못 건지는 날이 많았다. 한꺼번에 출하되는 것이 가격폭락의 원인인 것 같아서 나는 절기보다 하루 이틀 앞서 심고 남보다 일찍 내다 팔았다. 풋마늘이 똥값이라고 징징대는 글을 보며 같은 행동과 후회를 반복하는 융통성 없음을 비웃었다.
장사를 잘 해도 골드 부족은 여전해서 비료를 사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머리핀이 가끔 들러서 골드를 보태주었다. 머리핀은 이곳에서 레벨 50의 고수였다. 그녀는 넓은 농장에 전원주택을 짓고 자가용 비행기까지 있었다. 쪼들리는 나에게 골드뿐 아니라 쓰던 농기구를 던져주기도 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친구마저 없었다면 진즉에 거지가 되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걸까.
하루는 마음먹고 이웃농장이며 게시판이며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다. 게시판에는 안부를 주고받는 사랑방과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방이 있었다. 그런데 매매되는 물건과 단위가 이해되지 않았다. ‘시균 금반 22억’ ‘바씨 금목 40억’ 하는 식이었다. 나는 비료 값 십만 골드가 없어서 절절매는데 게시판의 돈 단위는 딴 세상 같았고 희한한 이름들의 정체는 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게임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궁금한 것을 배워 나갔다.
시균 금반은 ‘시간의 균열 금반지’의 준말로 시간의 균열은 작물이 성장하는 시간을 단축해주었다. 재료 중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물건인데 시균 금반지를 끼고 수확하면 밭에서 시균이 쏟아져 나왔다. 바씨 금목은 ‘바람의 속도로 씨앗을 심는 목걸이’ 이런 식으로 낯선 용어들을 이해했다.
고급 농기구와 장신구는 전쟁국가의 무기만큼 위력이 있었다. 그것들을 이용해서 쉽게 골드를 벌고 레벨 상승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농기구를 얻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인지 게임을 하기 위해서 농기구를 구하는 것인지도 헷갈렸다. 이것들은 보석바가지에서 나오는데 게임에 친구를 초대하면 한 개씩 받을 수 있었다. 나도 친구나 동생을 만나면 핸드폰부터 달라고 했다.
재발을 거듭하며 한 달 넘게 괴롭히던 접촉성 피부염은 수많은 흉터를 남기고 완치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집안에 갇혀 지내는 것이 우울하지 않았다. 가렵고 쓰린 통증도 수월하게 견뎌냈다. 외출할 일이 생기면 작물 수확 시간에 알람을 맞춰 놓았다. 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알람이 울리면 핸드폰을 켰다. 같이 밥을 먹던 딸애는 말리다가 지쳤는지 ‘한참 할 때는 누가 말려도 안 듣지.’ 라며 체념했다.
딸애는 고3 수험생 시절에 게임을 시작해서 두 달 넘게 속을 썩인 적이 있었다. 진로 문제로 나와 갈등을 빚을 때였다. 학교와 화실을 오가며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고 밤이면 갑옷 입은 전사가 되어 나쁜 마법사를 물리치고 불을 뿜는 용과 싸웠다. 잠깐의 일탈은 눈 감아 줄 수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게임이라서 용납할 수 없었다. 있지도 않는 세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까웠고 애들의 영혼과 돈을 빼앗는 사기꾼이라고 욕을 했다. 내가 게임을 한 다음부터는 있고 없고는 알고 모르고의 차이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식목일이 되자 농산물 값을 두 배로 주는 이벤트가 열렸다. 종일 집에서 빈둥대니 밤에 잠도 오지 않던 참이었다. 이벤트가 끝나는 자정까지 게임을 하고 모처럼의 늦잠을 즐기는데 시끄러운 스피커 소리에 단잠을 깨고 말았다. 마침 선거가 코앞이었다. 우리 집은 혜화동 로터리의 대로에서 가깝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유세차량의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존경하는 종로 구민 여러분!”
후보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졌고 지쳐 있었다. 스피커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바닥난 기운을 단전 아래에서 억지로 끌어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선거가 이틀 뒤가 아니라 한 달 뒤라면 저 사람은 구청장을 포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로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면서 존경한다고 골목까지 외치고 다녔다. 누구는 저리도 치열하게 사는데 오십이 넘은 나이에 게임에 매달려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길거리에서 소리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분초를 쪼개며 평생을 전쟁처럼 살았던 우리 아버지라면 내게 혀를 차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생전에도 자식들이 꿈도 야망도 없는 것을 서운해 하셨고 그런 너희들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에게 조차 정치적이었던 아버지의 포장된 생색이고 본인 스스로 명예와 권력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다. 원하는 만큼 성공했고 말씀대로 자식들도 그 덕을 볼 수 있었다.
외가의 소박한 성품을 닮은 우리 삼남매는 아버지가 버겁기도 했다. 나는 그나마 어릴 적에는 총기가 좋아서 오빠와 막내를 제치고 아버지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것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어느 날부터 부담스럽기 시작하더니 나이를 먹을수록 두려워 지기까지 했다. 종일 침대에서 뒹구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될 무렵 어린 시절의 욕심은 아버지에서 비롯된 최면일 뿐 나야말로 엄마의 게으름과 무욕을 고스란히 받았다는 걸 알았다. 사랑도 결혼도 일도 살림도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며 살았다. 투표권을 가졌다는 것 외에 존경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나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구청장의 목소리조차 다시는 듣지 못 할 것이다.
평생 발동 걸리지 않았던 내 열정이 뒤늦게 만난 게임에서 불타오르고 있다. 한편, 너무도 쉽게 함정 같은 게임중독에 빠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애는 그동안 몇 개의 게임을 섭렵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밤잠 안자고 매달릴 때는 언제고 이제 궁금하지도 않느냐고 했더니 접으면 그만인 것이 게임의 매력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마음 놓고 빠져드는 거야. 나 같은 사람들이 내가 했던 것처럼 또 하고 있겠지 뭐. 순서도 비슷해. 마비노기 하던 사람들이 마비노기 영웅전으로 옮겨가는 식으로. 엄마는 리얼팜 좋아 하는 거 보니 ‘심즈’로 갈아탈 거 같은데?”
내 손으로 이룬 농장을 언젠가 떠날 거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았다. 현금을 결제해서 산 별장도 있고 죽어라 농사지은 돈을 모아서 땅도 넓혔는데 그것들을 버릴 수 있을까.
‘하얀색 말 인형 일억에 팝니다.’
거래 방 게시판을 보다가 웃고 말았다. 말 띠 해를 기념해서 출시된 복 바가지에서 간혹 말 인형이 나왔다. 그것들을 색깔별로 모아서 교환소에 가져가면 한정판 망아지로 바꿀 수 있었다. 한정판 망아지는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이벤트는 지난주에 끝났고, 망아지로 교환할 수 없는 인형은 이제 쓸모가 없다. 닉네임 ‘수지러브’는 종일 1억에 판매한다는 글을 올리더니 다음날부터 잠잠해졌다.
나는 교환마감이 임박하면 말 인형 값이 급등할거라고 생각해서 일찌감치 몇 마리 사두었었다. 그리고 막바지에 세배의 이익을 남기고 팔았다. 흐름을 읽는 것으로 밥은 굶지 않겠지만 부자가 되려면 통 큰 베팅이 필요했다.
남보다 작물을 일찍 심고, 매점매석을 하며 차액을 챙기고, 나는 농부가 아니라 장사꾼이 되었다. 그것도 모험과 편법을 일삼는 그야말로 꾼이 되었다. 레벨도 친구보다 높아져서 친구에게 온갖 선물을 한 짐씩 보내주었다. 친구는 내 이름을 허브33으로 할 게 아니라 ‘늦게 왔으나 먼저 된 자’ 로 할 걸 그랬다며 감동했다.
나의 농장은 처음에 부러워하던 머리핀의 농장을 닮아갔다. 오두막을 헐어내고 자가용 비행기를 사들이고 땅도 넓혔다. 게임을 끄고 눈을 들면 방은 난전처럼 어질러져 있고 내 몰골도 엉망이었지만 게임을 켜면 궁궐 같은 별장이 있고 나는 모든 초보들이 꿈꾸는 ‘레벨 55’였다.
머리핀은 내게 하소연 하러 찾아오는 일이 눈에 뜨이게 줄었다. 가끔 전화해서 내 농장에 도라지가 썩고 있으니 얼른 수확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어느덧 동생도 농장 이웃이 되었고 동창회에서 꼬드긴 친구 두 명도 새로운 이웃이 되었다.
5월에는 가족의 날 기념으로 복 바가지를 주는 이벤트가 열렸다. 게임을 시작하던 날부터 이벤트는 끝이 없었다. 구정 맞이, 화이트데이, 경칩 맞이, 식목일 기념…. 동서양의 온갖 기념일을 망라하며 하나가 끝나는가 싶으면 다른 이벤트가 이어졌다. 경품을 받기위해 바쁘게 농사를 지으며 점점 지쳐갔지만 온갖 선물이 쏟아지는 동안 나 혼자 모른 척 돌아설 수도 없었다. 숨 돌릴 틈이 없어서 멀미가 난다고 딸에게 하소연 했다.
“조만간 그만두겠군. 엄마는 참을성도 없으니까 3개월이 고비겠다.”
“그게 참아야 하는 문제야? 좋아서 해야지.”
“다른 사람들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오히려 다음 이벤트를 기다려.”
열심히 농사를 짓는 내게 조만간 그만 둘 것이라는 말은 치열하게 사는 사람에게 인간 수명 80년 이라고 일깨워 주는 것처럼 맥 빠지는 소리였다.
‘당신 신고했어. 영구 정지 좀 당해봐’
어느 날 아침. 게임을 열어보니 쪽지가 와 있었다. 실수로 잘못 배달되었나 싶었지만 연달아 세 개나 와 있었다. 게임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고, 정지, 라는 모진 단어 앞에서 이성도 맥을 못 추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누구냐고 했더니 카페 게시판에 가보면 알거라고 해서 카페에 가보고는 기암을 했다. ‘허브33은 사기꾼입니다.’ 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삼 천만 원짜리 낫을 팔면서 주문서에 동그라미 하나를 더 썼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도리어 누구냐고 묻는다며 뻔뻔한 사기꾼이라고 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했더니 발뺌한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아말감’이었다.
놀라움은 분노로 변했다. 주문서 실수는 누구나 흔하게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진실이 변명이 되고 발뺌이 되는 상황이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었다. 나의 거래내역을 공개하며 이번 사건이 고의가 아님을 해명하고 ‘아말감’에게 요즘 애들은 왜 이리 못되먹었느냐고 혼을 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는 30대의직장인 남자였다. 끝까지 해보자며 기세등등하더니 다른 사람들이 내편을 들며 비난하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농장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골드 때문에 다툼이 많았고 그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맹목적으로 숫자에 매달리며 한 푼이라도 덜 주고 더 받기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긴장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은 내게 돈을 가져다주었다. 수시로 지갑을 열었지만 내가 쓰고 있는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남편은 집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반주를 곁들였는데 기생노릇 안하고 마음 편히 술 마실 수 있는 건 집뿐이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아버지 덕으로 편하게 살았다. 아사리판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 열매만을 보여주었다. 원하는 것을 손에 거머쥐기까지 수 없이 밟히며 공격을 당했을 것이고 아버지 또한 누군가에게 그리 했을 것이다. 말년에는 허공을 응시하며 담배를 무는 시간이 많았다. 성공의 쾌감에 마비되었던 오감이 뒤늦게 깨어나 묵은 상처가 도졌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혼자서 성당을 찾아 가시더니 묵주를 손에 쥔 채 잠이 들기도 했다. 그리곤 누구나처럼 빈손으로 가셨다.
딸애가 말했던 3개월의 근거는 모르겠지만 사기꾼 사건 이후 내 마음은 빠른 속도로 식어갔다. 그 곳이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곳은 현실도피의 천국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웰 컴 홈 엄마!’
딸애가 방문을 열더니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핸드폰을 멀찍이 두고 아침드라마를 보는 내 모습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티비나 핸드폰이나.”
“하긴 그렇다.”
“현실이나 게임이나.”
“에이, 엄마. 그건 아니죠.”
아이콘 하나 지우면 사라지는 게임속의 허망한 숫자처럼 여기도 눈 한번 감으면 끝인데 뭐. 많은 세상을 전전했지만 열정이 식을 때 마다 세상은 하나씩 사라졌다. 그 중에서 뭐가 진짜였는지도 모르겠다. 시간과 정성을 바치며 나는 남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접고 보면 그 세상 속에서 주어진 것을 소비했을 뿐이고 내 것인 줄 알았던 것 중에 정말 내 것은 없었다. 나는 컴퓨터에 머리를 처박고 눈을 들지 않는 딸아이를 염려했었지만, 그 때 아이는 모든 것이 입시의 가치로 재단되는 현실을 부조리한 게임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게임에서는 궁극적인 승패가 없다.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죽이지만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모든 것이 셋업 되어있고 죽었던 내가 매일 아침 부활한다. 그래서 마음껏 벼랑을 달리고 불을 뿜는 용에게 달려들며 기를 펴고 위안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현금 결제 한 것이 남아 있어서 가끔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어느 날 허브33은 아예 사라지고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에게서도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라도 허브44 허브 55가 새로 나타나 이웃을 구하고 손바닥만한 농장을 거대 기업으로 일구기도 할 것이다.
어질러진 싱크대며 베란다 창고를 보면 다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초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대학로의 가로수가 눈에 들어왔다. 신축건물 공사장 담벼락에 연극 포스터가 가득 붙어있고 혜화역 1번 출구 옆에는 그 사이 나폴레옹 빵집이 생겼다. 딸아이 말대로 나는 컴백 홈 했다. 다시 빈손이 되어 레벨 1 로 태어나는 저 세상에서는 아버지가 웰 컴 홈을 외치며 나를 맞아 주실까.
(2016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작)
첫댓글 새로운 세상 이야기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멋진 작품입니다. 소재도 신선하고 여기에 삶을 얹은 글이라니.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잔잔하게 삶을 성찰하며 다가오는 글입니다.
가상의 세계와 현실들이 예민하게 얽히면서 작가의 목소리를 토해낸다.
치밀하고 자유롭다. 흔들리는 인정물태의 뒷모습 속에 삶의 통찰이 어른댄다. 정말 특별하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