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주현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카드를 판독기에 댔다. 어쩐 일일까. 당연히 떠올라야 할 900원 표시가 안 찍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먹통이 되었는지 으레 들려오던 '감사합니다'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카드를 판독기에 댔다. 역시 불통이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카드를 만져 보았다. 가운데 부분이 깨져 있었다.
어쩐지…….
"아저씨 잠깐만."
그녀는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도로 내렸다. 어떻게 할까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가슴이 무진장 뛰고 있었다. 아까 버스 카드가 정지된 것을 알고 난 후부터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있었다. 사람이 원체 부족하다 보니 작은 일 앞에서도 맥 못추고 당황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책하며 발걸음을 전철역 쪽으로 옮겼다. 우선 역 창구에 가서 버스카드를 어떻게 회생시킬지 물어볼 작정이었다.
거리는 학원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젊은 인파들로 북적였다. 상가에서 틀어대는 음악과 노점상들로 거리는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웬 핸드폰 기기점은 그리도 많은지 한 집 건너 통신사 점포였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집 건너 공인중개소가 판을 치더니 지금은 핸드폰 기기점이 거리를 다 차지한 모양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시 육교를 지나 전철 역사로 들어섰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자동판매기에 나오는 승차권과 카드를 사용하는 탓인지 창구는 한산했다. 주현은 그중 인상이 순해 보이는 여직원이 있는 창구로 가 카드를 내밀었다.
"저, 이 카드가 깨져서 정지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여직원은 카드를 받아들더니 판독기에 댔다. 역시 검정색 그대로일 뿐 숫자가 찍히지 않았다.
"이거 카드 정지 먹었네요, 이 카드 아랫 부분에 회사 전화번호가 있을 거예요 거기 전화하셔서 문의하세요."
"아! 네에."
카드를 들고서 공중전화 북스로 걸어가는 동안 열등감과 두려움이 소리없이 목울대를 채웠다. 손해보지 않을까 강박관념도 뇌리를 점령했다. 카드는 이미 오래 사용한 탓에 글자가 희미해 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랫단에 있는 전화번호는 칠이 벗겨진 페인트처럼 불분명했다. 그녀는 카드를 옆에 서있는 학생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여기 이 글자 말예요, 무슨 자죠?"
"여기 이 숫자 말인가요?"
"네."
"7521인데요."
"네에 감사합니다."
그녀는 비굴하리만치 허리를 숙이며 감사표시를 했다.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고 번호판을 눌렀다. 신호음이 가자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장황하게 버스카드가 정지된 사실을 설명하며 또다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댁이 어디세요?"
"네 서울 동작구인데요."
"그럼 우리은행에 가셔서 신고하시고 환불받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전철 역사를 내려왔다. 핸드폰을 눌러보니 벌써 6시였다. 은행 마감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버스카드를 다시 살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어차피 내일 은행 가서 신청하고 나서 사도 늦지 않았다. 그녀는 달려오는 버스를 향해 몸을 실었다. 돈 천 원을 요금함에 집어넣고 나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휴유! 한숨이 나왔다. 오늘은 버스카드가 없으니 환승을 못할 터였다. 버스요금이 900원으로 오르고 나서는 교통 요금이 만만치 않게 많이 나왔다.
650원에서 900원이라니 당장 수입이 없는 그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사실일 것이었다. 그러나 반면에 좋은 면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환승 혜택을 누리는 것이었다. 버스를 갈아 탈 때 30분 안에만 타면 다시 요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환승 혜택을 톡톡히 누리기로 했다. 그래서 한번이면 갈 것을 일부러 중간에 내려서 필요한 물건을 산다든가 잠깐씩 쇼핑을 하는 등 시간 활용도 적당히 했다.
그러나 이제 카드를 정지 먹은 이상 당분간 그 혜택도 못 볼 것이었다. 대신 현금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환승은 다시 카드가 나올 때까지 보류해야 했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동네에 있는 은행에 들렀다. 창구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더니 '교통 카드 접수증'이란 흰 종이를 주면서 계좌 번호와 연락처를 적으라고 했다.
"교통 카드는 저희가 판매하거나 교환해 드리는 게 아니고 새로 사셔야 합니다. 그리고 환불 금액은 카드회사에서 확인한 뒤 일 주일이나 열흘 뒤 통장 계좌로 입금됩니다."
"그렇게나 오래 걸려요?"
"네, 카드는 저희가 하는 게 아니고 카드회사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녀는 은행을 나와 근처 카드 충전소를 찾았다.
"교통 카드 하나 주세요."
만원 지폐를 내밀었더니 주인 여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서울에서만 사용하실 건가요 아님 경기도도 함께 사용하실 건가요?"
"가격이 다른 가요?"
"네, 서울에서만 사용하는 건 카드값이 이천 원이고 경기도까지 함께 사용하는 건 티 머니로 이천오백 원이에요."
"그럼 그냥 티 머니로 주세요."
그녀가 다시 만원을 주인 여자에게 내밀자 여자는 카드를 충전기에 올려놓았다. 계기판에 10000원 숫자가 떴다. 그녀는 주인여자가 건네주는 카드와 잔금을 들고서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상가마다 뿜어내는 음악과 차량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더불어 혼란스러웠다. 조금 떨어진 곳에 고층짜리 기독교 텔레비전 방송국이 보였다. 그 맞은편으로 수산시장이 사람과 차량을 엄청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생각난 듯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이 길을 40년 넘게 걸었구나.
어린 초등학교 시절 지금의 전철역은 조그만 기차 역사(驛舍)였다. 기와집으로 겨우 표 파는 창구와 역 직원이 간이역 구실을 담당했다. 역사 앞에 조그만 펌프가 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목을 축이기도 했다. 여름이면 한강물이 범람해 역 근처까지 물이 차는 바람에 물난리를 겪은 적도 있다. 그녀가 초등학교 4학년 때는 한강물이 흑석동까지 밀려오는 바람에 엄청난 재앙을 겪기도 했다. 그때는 한강 주변도로가 잘 포장되지 않아 대낮에도 낚시를 드리우거나 강가에 나가 빨래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 한강 다리 옆에 쌍둥이 다리가 놓이고 그녀는 그 다리를 건너 중 고교와 대학을 다녔다. 이제 나이 마흔 아홉이 된 그녀는 회한에 찬 눈빛으로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학원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로 거리는 매우 혼잡하다. 젊은 시절, 주현은 이 거리를 남편과 함께 걸으며 애정을 쌓았었다. 그녀와 남편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어린 시절, 그들은 지금 경찰서가 자리한 뒷동네에 함께 살았다. 동네 한복판에 콜크 공장이 있었고 그 앞에 여성 근로자를 위해 만든 모자원이 있었다. 지금은 그 모자원이 사라지고 KTF 큰 빌딩이 들어섰다. 그 길 건너 맞은편이 전철 역사였다.
옛날에는 그 모자원 뒷길로 콜크 공장이 두꺼운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 앞길은 약간 경사진 길로 겨울이면 빙판이 지는 바람에 아이들의 썰매장이 되기도 했다. 고급 주택가는 어린 그녀의 눈에 궁궐처럼 보였다. 각종 과일나무와 어린이용 그네, 자갈 마당과 널찍한 실내 공간이 비치는 저택은 그녀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도대체 저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말씨를 쓸까. 집이 이백 평도 더 되어 보이는 이해수네 집은 마치 숲속의 궁전 같았다. 대문에서 현관까지의 거리가 백 미터쯤 되어 보였다. 정원을 한참 지나 현관문에 이르면 안방과 거실을 지나 이층이 그녀가 거하는 방이었다. 방 앞에 응접 세트와 피아노 바이올린이 있었다. 언제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해수는 성격도 온순하고 착했다.
공부도 잘해 반에서 단연 일등을 차지했다. 주현은 해수의 짝이었다. 주현은 가끔씩 해수의 집에 놀러가곤 했었는데 해수의 오빠인 해철이 늘 그녀를 반겨주었다. 해철은 당시 중학교 일 학년이었는데 미소년이었다. 큰 눈망울에 오뚝한 코에 곱슬머리에 누가 봐도 반할만큼 잘생긴 미소년이었다. 그 해철이 자신을 반겨주자 주현은 어린 마음에도 마음이 뿌듯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공부한다 핑계 대고 해수네 집에 놀러갔다.
어느날 해철이 말했다.
"주현아 다음주에 우리 교회에서 성극하는데 너도 올래?"
주현은 기쁜 마음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주현은 깨끗이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었다. 그리고 몇 벌 안 되는 옷을 꺼내놓고 그야말로 패션쇼를 벌였다. 가슴이 무한정 부풀어오르면서 어깨에 날개가 솟는 듯했다. 다음주 일요일은 유난히 추웠다. 밤새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러웠다. 그러나 주현은 일부러 원피스에다 긴 양말을 꺼내 신었다. 체크 핑크색의 원피스는 그녀가 가장 아끼는 옷이었다. 머리를 곱게 빗고 나서자 엄마가 소리쳤다.
"야아! 주현아 추운데 얼어 죽을라고 환장을 했냐 웬 치마고."
그날 본 해철의 모습은 기대 이상으로 멋있었다. 해철은 멋진 왕자님으로 출연했다. 그때 해철은 아마도 모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모세가 어머니인 바로의 공주와 대화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왕자는 의젓한 모습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바로의 왕자가 되기보다 차라리 불쌍한 내 민족 히브리인이 되어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하겠소."
그때 주현은 속으로 탄복하며 말했다.
저엉말 잘생긴 오빠다.
주현은 또래에 비해 유난히 겁이 많았다. 툭하면 눈물부터 쏟아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더했다. 머리는 좋은 반면 누구보다 비교의식이 강해 자주 열등감에 빠졌다. 더구나 잘 사는 집 딸 해수와 가까이 지내다 보니 그 증상이 더 심했다. 그녀는 해수와 자기 집을 비교하면서 '차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그건 슬픔과 모욕감을 동반한 '처지'라는 단어도 생각하게 했다.
그녀는 공부를 잘 했음에도 그 처지라는 단어에 순복해야 했다. 돈 없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말끝마다 내세우는 아버지의 무능감 때문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아버지는 언제나 무능력자였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가족들을 괴롭히는 게 그의 직업이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망할 놈의 세상을 들먹이며 자신의 무능을 세상 탓으로 돌려보냈다.
주현은 그 처지라는 단어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해야 했다. 꿈조차 그녀에겐 사치였다. 안정과 미래라는 단어는 한때 그녀와 아무 상관도 없는 듯 보였다.
그때 앞집에 사는 찬미의 집은 한술 더 떴다. 찬미는 대방동에 있는 스웨터 짜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의 등쌀에 밀려 공장으로 내쫓기고 만 것이다. 열 네 살의 나이에 공장에 다니는 찬미는 원한에 사무친 인생을 살았다. 그녀는 중학교에 다니는 또래 친구들만 보면 부러워서 가슴을 치고 울었다. 그러면 그의 부모는 온갖 욕설과 함께 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때렸다.
"이년아 뭘 잘했다고 울어."
찬미는 공장에서 번 돈을 부모에게 몽땅 빼앗기고 겨울이면 입을 옷이 없어 공장에서 짜다 만 스웨터를 기워 만든 옷을 입고 다녔다. 집에서 대방동까지는 걸어서 30분되는 거리였다. 버스를 타면 5분 안팎이었다. 그러나 찬미 부모는 한번도 딸에게 버스를 못 타게 했다. 그녀가 버는 돈은 배 다른 여동생과 아버지의 약값에 들어갔다. 찬미는 어린 나이에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운 한에 자살 시도까지 했다. 그러나 부모의 반응은 싸늘했다.
딸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들은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들의 관심은 어린 딸이 벌어오는 돈에 있었다. 그 피땀 어린 돈을 그들은 악착같이 빼앗아 썼다. 찬미는 나이 스무 살이 넘어서도 집을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구박받고 살 바에 차라리 멀리 도망 가 살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수중에 돈이 단 한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대학가고 결혼하는 시기에도 그녀는 뼈빠지게 일만 했다.
그녀의 배다른 여동생은 흑석동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이민 갔고 계모는 남편상을 치르기 무섭게 재가했다. 그러자 찬미에게는 그제서야 자유가 찾아왔다. 그녀에게 남은 건 상도동 언덕배기에 있는 슬레이트 집 한 채였다. 그녀는 그 집안에 틀어박혀 한동안 자유를 만끽하는 듯했으나 곧이어 찾아온 재개발 주택지구에 묶여 그곳을 영영 떠나야 했다.
해수는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아버지가 미국에 있는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는 바람에 아예 영주권을 얻어 눌러 살 작정으로 간 것이다. 그녀는 장차 꿈이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기에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학교에 등교할 때마다 아버지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그녀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살다 드디어 먼 땅으로 떠나고 만 것이다.
주현은 해수가 미국으로 떠나던 날 함께 김포공항으로 갔다. 국제선 앞에 서서 기념 촬영을 하는 해수와 주현. 그들은 앞날의 운명을 놓고 서로 카운트다운했다. 그러나 한번 떠나고 나면 그만인 것을 어린 그들은 알지 못했다. 주현은 해수가 떠나는 순간까지 처지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집안 환경에서 오는 처지라는 단어는 그녀를 일평생 가슴에 피멍 들게 했다.
김포공항을 떠나 집으로 오던 주현은 동네 언덕길에서 하숙이를 만났다. 하숙이는 노래를 잘 불러서 얼마 전 극장 쇼프로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중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 만 하숙이는 늘 계부에게 맞고 살았다. 바로 밑에 있는 여동생 준영이는 조금 나았는데 그마저 중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남의 집 가정부로 갔다. 막내 윤미는 계부의 친딸로 중학교를 간신히 마쳤는데 하숙이와 준영이의 씨다른 여동생인 셈이었다.
하숙이는 한강 다리 건너편에 있는 모 중학교에 다녔는데 엄마가 두부장사를 해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았다. 그런 처지에서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어 공장과 식모살이를 전전하다 술집 가수로 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은 가끔씩 시장에서 얼굴이 마주치곤 했다는데 서로 모른 척 할 만큼 상처의 골이 깊었다고 한다. 하숙이와 준영이 어머니 모두 처지의 피해자였다. 그런데 하숙이의 노래 솜씨는 정말 알아줄 만했다.
아침만 되면 목소리를 틔우는데 매일같이 듣는 소린데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계부에게 매를 맞고 나서도 노래를 하고 엄마에게 머리를 쥐어뜯기고 나서도 노래를 불렀다. 집안에 먹을 것이 없어 건조된 우동을 한 솥 끓여 먹고 나서 여전히 고픈 배를 움켜쥐고도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그녀의 노래를 들은 한 전문가가 나타나 그녀를 술집 밤무대 가수로 픽업한 것이다.
그 후 그녀는 동네를 떠났기에 소식은 뚝 끊기고 말았지만 아마 지금도 어디쯤에선가 노래를 부르며 밥을 먹고사는지 모른다. 주현의 남편은 하숙이가 살던 앞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 집은 총 여섯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공동 수돗물 하나에 여섯 식구가 모여 사는 바람에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자고 일어나면 여자들이 수돗가에 모여 입방아를 찧는데 그것도 맨 남의 가정사였다.
"아이고 홍식아! 퍼뜩 일어나 동생 우유 안 주고 뭘하냐."
그의 계모는 전실 자식 이름을 부르며 매일같이 호령을 했다. 눈이 독사처럼 매서운 계모는 아들보다 딸을 더 핍박했다.
"은옥아 이년아 얼른 동생 안 보고 뭘하냐, 니 자꾸 그러면 내 손에 죽는다."
은옥이는 양팔에 불에 댄 자국이 뱀처럼 엉켜 있어 불쌍했다. 매일 계모에게 얻어맞고 수시로 내쫓기고 동네에서 제일 불쌍한 아이였다. 늘 굶기를 밥 먹듯하고 나중에는 외삼촌의 돈을 훔쳤다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길거리로 내쫓겼다. 그런데도 그녀의 아버지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다.
홍식이는 계모의 등쌀에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 고학을 해 겨우 야간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리고 일년간 피나는 노력 끝에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러자 계모는 기다렸다는 듯 자기 소생의 딸과 다 늙은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가 버렸다. 거기에 자기 친정 피붙이가 있다고 했다. 이상하게 그 동네는 정상적인 가정이 드물었다. 아이들은 대개가 계부모와 함께 살았고 구박받고 쫓겨나고 성인이 되어서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주현의 친구인 은주도 그랬다. 은주는 성품이 곱고 착해서 늘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과도 단 한번도 싸우는 일이 없었고 남을 도와주고 언제나 친절하게 행동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에만 가면 눈치를 보고 절절 맸다. 엄마와 언니 말이라면 경기를 일으킬만큼 무서워 벌벌 떨었다. 그녀는 쌍둥이 여동생 과 얼굴이 전혀 달라 이상하다 했는데 나중에 실상이 밝혀졌다.
쌍둥이가 아닌 서모(庶母)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은주와 현주는 전혀 남남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집안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모든 집안 일은 은주가 하다시피했다. 현주도 서모도 모두 곱게 치장할 뿐 허드렛일은 은주가 다 했다. 나중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하는데 은주는 야간 상고를 현주는 인문계로 진학했다. 또 은주는 늘 남루한 옷차림으로 다니는데 비해 현주는 언제나 새옷에다 괴외공부 다니기에 바빴다.
또 윗 동네에 사는 수현이도 그랬다. 수현이의 생모는 긴 생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다녀 언 듯 보면 처녀 같았다. 대학생으로 보일 만큼 청초한 보습이었는데 하루도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었다. 어깨에 일제 핸드백을 메고 매일 외출했다. 택시 운전 기사인 남편의 성화에도 돈을 물쓰듯하고 돌아 다녔는데 어느날 집을 나가버렸다.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 간 것이다.
그녀가 나간 이후 새엄마가 들어왔다. 생모보다 열 살 많고 아빠보다 세 살 많은 여자였다. 시골에 전 남편에게서 난 딸이 있다고 했다. 수현이보다 4살 많은 12살이었다. 서모(庶母)는 수현이 밑에 있는 남동생은 끔찍이 위하면서도 수현이에게만 매를 들었다. 매일 때리고 울려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서모가 들어와 전실 자식 구박하는 꼴을 더 이상 못 보겠다고 남편에게 일러야 한다고 동네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입을 모았다. 나중에 서모는 시골에 있는 제 친딸을 불러 올렸는데 그때쯤 가서야 수현이에 대한 구박이 잦아들었다는 소문이었다.
그와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었다. 주현의 집 앞에서 구멍가게와 연탄가게를 하는 하씨는 국졸이었는데 여동생은 대학을 나와 학교 교사를 했다. 여동생은 계모의 소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하씨는 계모만 보면 어머니 어머니하며 깍듯하게 예우를 갖추었다. 자식들에게도 할머니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고 어떤 부당한 요구에도 그대로 순종했다. 그래서 하씨의 부인은 늘 속터져 죽는다고 하소연하고 돌아다녔다. 차라리 처자식한테나 잘 할 것이지.
언덕배기에 사는 영실이의 경우는 좀 달랐다. 영실이는 공무원하는 아빠와 동네에서도 예쁘기로 소문난 엄마 사이에서 맏이였다. 밑의 남동생 순명이는 아빠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었다. 영실이는 고아원에서 주워 온 자식이었다. 그러나 너무 어릴 때 데려온 탓인지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인 줄 알고 살았다. 그 사실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그녀만 몰랐다. 그래도 영실이는 유복한 집의 딸로 곱게 자랐다.
일요일이면 엄마 아빠 남동생과 함께 교회에 가고 옷도 비싼 걸로만 입고 매일 학원에다 괴외에다 피아노에다 제일 바빴다. 남동생은 동네에서 꼬마 골목 대장을 하고 여자 애들 울리기에 바빴다. 영실이는 공부는 못했지만 엄마 아빠의 배려 속에 여고를 나오고 전문대학을 마쳤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그것도 인물 좋고 부유하고 가문 좋은 집안으로. 한마디로 영실이는 운 좋은 아이였다.
친부모 밑에 자라도 매맞고 굶주리고 내쫓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녀는 피 한방울 안 섞였는데도 공주처럼 자라 일찍 결혼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경자는 아주 정상적인 케이스였다. 경자는 엄마 아빠가 중앙시장에서 야채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외동딸인 경자를 끔찍하게 귀애했다. 주현이 보기에 경자의 부모는 육십이 다 되어 보였다. 길거리를 지나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를 듣을만큼 노인네 축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하나 뿐인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현은 부러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어쩌다 주현이 놀러 가면 가게에 딸린 다락방으로 올려보낸 뒤 계속 먹을 것을 날랐다. 군고구마, 밤, 붕어빵 감 대추 등.
그리고 주현이 집에 가기 위해 나오면 안 보일 때까지 배웅했다.
"또 놀러 오거라 우리 경자 안 심심하게, 주현이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곱구나. 이 담에 커서 시집 잘 가게 생겼어야."
집에서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칭찬을 덕담과 아울러 그녀의 귓속에 들려주었다. 경자는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사랑받고 살아서인지 늘 씩씩하고 마음도 너그러웠다. 주현이가 시장으로 놀러 가면 한번도 거절하지 않고 잘 대해 주었다.
그때 시장가에 살던 태순이도 있었다. 태순이는 엄마 아빠가 장사를 해 늘 덩덜아 바빴다. 엄마를 대신해 아기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위의 언니는 상도동에 있는 공장에 다니고 오빠는 먼 시골로 머슴살이를 떠났다. 아빠는 늘 콜록 콜록 기침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폐결핵이 아닌가 싶었다. 시장 한 귀퉁이에 있는 슬레이트 집에서 일곱이나 되는 식구가 바글바글 모여 사는데 가난도 그런 가난이 없었다,
수돗물도 없어 시장 복판에 있는 펌프를 길어다 먹었다. 한여름이면 시장에서 버리는 시레기 나물을 주워다 국을 끓여 먹었다. 방에는 연탄 가스가 새는지 태순이는 만날 때마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중학교 들어갈 즈음인가 장질부사에 걸려 머리칼이 홀랑 빠진 일도 있었다. 주현과 태순이 경자는 함께 어울리곤 했는데 그중 태순이가 가장 불쌍했다. 술에 취한 아빠가 허구헌 날 아이들을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아빠는 지병에다 생활력이 없어 더 술 주정을 심하게 했다.
나중에는 엄마까지 병이 들었는데 병원비가 없어 길거리에 그대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 태순이는 길거리에서 울고 불고…… 다행히 길을 지나던 교회 목사가 발견하여 병원으로 옮겼다. 태순이는 겨우 중학교만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해야 했다. 몇 달을 집에서 엄마 대신 살림하다가 가발 공장에 취직했다. 이후의 소식은 모른다. 가족 전체가 시골로 이사가 버렸기 때문이다.
암튼 그 동네는 정상적인 가정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운전사와 식모로 살다 눈이 맞아 결혼한 형근이 엄마 아빠는 매일같이 싸움질을 했는데 이유는 형근이 엄마가 카바레에서 만난 제비와 놀아났다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동네 남자들은 여편네 단속 잘 해야 한다고 술만 마시면 입방아를 찧었다.
"그 놈의 여편네 내 일찍부터 알아봤다니께, 고 눈웃음치는 거 하며 엉덩이 살랑 살랑 흔드는 거 하며 내 알아봤다니께."
"그 정씨 그 놈은 배알도 없는 놈이여, 바람난 제 여편네가 여태 좋은 모양이구
먼, 나 같으면 당장 내쫓았을 거구먼."
홍식이 육사를 마치는 동안 주현은 교육대학을 나와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다. 교육 대학 2년 다니는 동안 그녀는 온갖 죽을 고생을 다 했다. 우선 집안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쳤다. 여자가 많이 배우면 팔자가 사납다는 아버지의 그릇된 고정관념에 묶여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차라리 능력이 없어 학비 대줄 자신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지. 그때 아버지는 또다시 말했었다.
사람이 제 처지를 알아야 한다.
내 처지가 어때서? 나도 엄마 아빠처럼 살아야 한다는 법이 있어? 나는 엄마나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서 대학 가려는 거야 알았어.
대학 입학금은 은행 대출을 받았는데 그 돈을 갚느라 아버지는 건축 공사장에 가서 날품을 팔아야 했다. 그랬던 아버지가 딸이 막상 대학을 졸업하자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랑했다. 우리 딸 학교 선생 되었어야. 그녀는 서울서 교사 생활 2년 하다가 홍식과 결혼했다. 그들은 별다른 연애기간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결혼했다. 갑자기 둘 다 큐피드가 쏜 화살에 맞은 모양이었다.
육사를 졸업하던 날 홍식은 주현이 근무하는 학교를 찾아왔다. 어깨에 소위 계급장을 달고서. 작은 체구에 장교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그런 대로 어울렸다. 수줍은 미소를 띈 그는 주현을 향해 꽃다발을 내밀며 청혼했다.
"나랑 결혼해 줘.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너 이외의 어떤 여자도 생각해 본 적 없어."
그 말에 주현은 정신없이 결혼을 결정해 버리고 말았다. 집안의 반대가 대단했지만 처지라는 단어로 무마하고 말았다. 당시로선 육사 출신의 남편감이라면 최고나 마찬가지였다. 군부 독재 시절이었고 주현의 집안도 그리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 전 어머니는 궁합과 사주를 들먹이며 반대를 했다.
"아야, 안 된다 홍식이와 니는 궁합도 사주도 안 맞는다. 금방 헤어질 상이라 홍식이가 팔자가 세서 안 된다 말이다."
"팔자는 무슨 요즘 세상에 궁합과 사주가 다 무슨 소용이야."
"그래도 안 된다 엄마 말 듣거라이."
엄마는 거듭 반대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요즘 세상은 군인 세상이다. 육사라카믄 제대한 후에도 앞날이 보장돼 있고 그만하면 괜찮다. 니 처지에도 맞고."
"맞긴 뭐가 맞는다고 그라노?"
엄마는 끝내 반대하지 못했다.
"할 수 없지, 지 좋은 남자하고 사는 게지 뭐."
그녀는 결혼 후 근무지를 전방에 있는 학교로 옮겼다. 남편 따라 근무지를 최전방으로 옮긴 것이다. 장교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툭하면 비상근무요, 유격훈련에다 거의 해마다 근무지를 옮겨 다녔다. 그것도 최전방으로만. 홍식은 소위 백그라운드가 없어 더 그랬다. 그러던 어느날 홍식은 금강산이 마주 보이는 곳에서 근무하다 순직했다. 지뢰 매설 작업을 하던 중 부하의 실수로 인해 젊음을 한순간에 날려보낸 것이다.
그때 남편의 나이는 29세였다. 나이 삼십을 채 넘기지도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고 만 것이다. 어머니의 말이 맞았던 것일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남편의 시체를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나서 주현은 교사 생활을 접었다. 생각 같아서는 수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마저 쉬운 건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뿌리를 박고 산 서울 토박이인 그녀가 택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전방 지역은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과부가 된 이후부터 그녀는 사람 대하는 게 싫어졌다. 한동안 밑도 끝도 없이 남편에 대한 환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계모에게 구박받고 자란 그와 그의 친 여동생 은옥이. 은옥이는 집을 쫓겨 난 이후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홍식은 죽기 전날 말했다.
"어젯밤 꿈에 은옥이를 만났어 내 손을 붙잡고 말없이 울기만 하더라,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그렇게 말하는 홍식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했다. 왜 육사를 갔느냐는 질문에 홍식은 말했다.
"대학 갈 형편은 안 되고,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고."
그에게는 투철한 국가관이나 장교로서의 소명의식도 없었다. 그저 하루 하루 삶에 충실할 뿐이었다.
"나는 그저 잊기 위해 사는 거야. 내 과거와 싸우고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 도박하듯 살아가는 거야."
그러면서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주현이 너는 내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해, 또 나의 미래도 되지 주현아 우리 어린 날 생각나니? 그 공동 수돗물 말야, 그곳에서 매일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남 흉보고 싸우고, 그때 우린 너무 힘든 날을 살았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날을."
홍식은 생각이 늘 과거지향적이었다. 그는 언젠가 어릴 때 꿈이 음악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음악가라니 그녀로선 금시초문이었다. 그가 노래를 하거나 악기 연주하는 일을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 보내 달라고 말했다가 죽지 않을만큼 맞은 적이 있었어, 사내 녀석이 무슨 딴다라냐고 차암 내 기가 막혀서."
홍식은 기가 막힌 표정을 하더니 말했다.
"나 사실은 음악 안 하기 위해서 육사를 갔던 거야, 그리고 되도록이면 집에서 멀리 떠나 살고 싶었거든."
대위로 임관되던 날 홍식은 울었었다. 당시로선 육사출신의 장교는 출세가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군사정권 시절이었고 그에게는 소위 잘 나가는 선배가 진을 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일부러 최전방 지역을 자원했다. 그것도 가장 위험하다는 지뢰 매설 작업을 자원했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는데도 한번도 아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까.
그의 말투나 행동은 전혀 군인답지 않았다. 아니 그는 처음부터 군인 체질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던 대로 음악가나 예술 계통이 더 적성인지 몰랐다.
"주현아 너와 나는 서로 추억으로 사는 거야. 세월이 가도 추억은 변하지 않는 법이란다."
그때 그녀는 소리쳤다,
"이제 지난날은 그만 잊어버려 미래가 더 중요하잖아."
"그렇지."
홍식은 돌아누우며 낮게 울었다.
은옥아…….
그는 여동생이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소심하고 연약한 심성으로 군대생활 하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육사 출신이면 누구나 스타를 꿈꾼다. 사단장이 되어 명예롭게 퇴역하는 걸 평생 꿈으로 간직하고 산다. 그러나 그에겐 그런 꿈이 없었다. 그러면서 한사코 최전방만을 주장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갔다. 덕분에 그녀는 신혼 5년 동안 최전방 동부전선을 골고루 돌아다닌 셈이다. 최전방은 겨울이면 보통 영하 20도를 오르내린다. 더 산악지대에 들어가면 영하 30도는 기본이다.
한번 철책선에 근무하면 한달에 한번 사택으로 내려오기도 힘들다. 또 비상이 걸렸다 하면 아예 면회도 안 된다. 그 당시는 후방에서 데모만 벌어져도 전방에서는 비상이 걸렸었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선거철이면 더 심했다. 남편상을 치르고 서울로 돌아오자 모두 눈꼬리가 달라졌다. 차라리 시골서 교사생활이나 할 것이지 뭐하러 왔느냐는 힐난이 눈빛마다 묻어났다.
"더이상 교사 생활하기 싫어."
"왜?"
"좀 쉬고 싶어."
"그럴수록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야."
"열심히 살면 뭐해 어차피 죽을 걸."
"살다 보면 다 잊혀지는 거란다. 세월이 약이라도 하지 않든, 또 살다보면 좋은
사람도 만나고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는 법이란다."
"다 귀찮아."
그녀는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 때 거리가 떨어질 쯤이면 할 수 없이 일어나 일했다. 그러나 그 빈 공간이 많아질수록 슬픔과 외로움은 배가 증가했다. 그래서 그녀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한동안 미친 듯이 일했다. 하루 두세 군데씩 학원 강사로 뛴 적도 있었다. 생활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과부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라도 힘에 부치도록 일했다. 그러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 그녀 곁을 떠났다.
한강에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어쩌다 얼음이 얼면서 세월은 차츰 그녀 곁을 비껴갔다. 남들은 자식이 고등학교 대학 가고 취직하고 직장 잡는 동안 그녀는 혼자 세월을 떠나 보냈다. 재가(在家)를 하라는 소리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한번 남편상을 치른 이상 그녀는 다른 남자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또'라는 단어가 수없이 머릿속을 오갔다. 어릴 때 수없이 들었던 '처지'라는 단어도 떠올랐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인생에 엮이고 싶지 않아는 불길한 암시도 섞여 있었다.
보통 남자들은 과부라면 회를 치고 좋아하는 게 상책이다. 임자 없는 몸이라고 너도 나도 달려들고 보는 게 보통 남자들이 하는 수작이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런 것마저 없었다.
그녀는 시간만 나면 동네 밖을 나가 돌아다녔다. 영등포 거리를 걸었고 멀리 수유리 의정부까지 가 보았다. 어떨 땐 제기동 경동시장과 신당동의 중앙시장을 한동안 쏘다니기도 했다. 가리봉동에 있는 공장 근로자로 취직해 일 년간 다닌 적도 있었다. 세상은 달라져 누구도 육체 노동을 하기 싫어했다. 3D니 공해 산업이니 하면서 모두 몸 사리기 바빴다.
비정규직이니 이태백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말도 유행처럼 나돌았다. 그러나 그녀완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녀는 나이나 대우와 상관없이 마구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이력서도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썼다. 그나마 나이가 사십 줄에 접어들자 쉽지 않았다. 그동안 몸을 너무 혹사한 것일까. 여기저기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관절에 이상이 오고 기억력도 자꾸 감퇴됐다. 외로움이 뼛속같이 스며들면서 우울증이 발생한 것이다. 어느날인가부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술을 입에 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중독 현상이 왔다. 정신 체계에도 혼동이 왔다. 분별력이 떨어지고 두려움이 부지불식 간에 뇌를 뒤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수입이 완전히 끊기던 날, 그녀는 살고 있는 집을 팔아야 하는 심각한 고민에 들어갔다. 그러자 무기력증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무기력증은 그녀의 영(靈)과 몸과 마음을 혼미하게 했다.
불면증도 찾아왔다. 수면제를 먹고 잠을 드는 날이 많아졌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어느날 그녀는 꿈에서 은옥이를 만났다. 은옥이는 아직도 어린 아이였다. 마음이 여린 은옥이는 불에 댄 상처를 내보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팔뚝이 뱀이 지나간 것처럼 흉측했다. 그녀의 영혼은 점점 사그러들고 있었다. 촛불처럼 위태한 모습으로 잦아들던 그녀의 영혼은 갑자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흰옷 입은 천사가 그녀의 영혼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있었다. 그 뒤에서 찬란한 광채가 그녀를 뒤덮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디선가 음률이 들려왔다. 천사들의 합창 소리 같았다. 은옥의 마음에서 주현의 가슴으로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나 마음이 너무 평안하고 좋아, 살았을 때는 그리도 고통스럽고 무섭더니 지금은 마음이 평화로워. 마치 천국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애.
그곳이 어딘데?
언니도 이 다음에 이 곳에 왔음 좋겠어.
은옥은 엷은 미소만 지은 채 사라졌다. 어떤 날은 꿈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헉헉대던 날도 있었다. 쇳덩어리를 등에 지고 산비탈을 오르거나 아님 날카로운 창에 찔려 고통 당하다 꿈에서 깨어난 적도 있었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온종일 비몽사몽간을 헤맸다. 활력을 찾기 위해 길거리에 나섰다가 기운이 없어 도로 집안으로 들어온 적도 많았다. 자리에 누우며 그녀는 뼛속같이 스며오는 외로움을 느꼈다.
이 세상에 나 혼자구나.
그러자 안에서 벽력같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아니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텅 빈방이었다. 일 년 내내 가야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방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는 여태껏 무얼 하고 살았던고. 성과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 인생의 성과는 과연 무엇인가. 후회감이 가슴에서 머리로 전신으로 타고 흘렀다.
나는 여태껏 참된 만족도 평안도 모르고 살았구나. 이렇게 헛된 인생이 또 있을까.
차라리 교사 생활이라도 계속 했었더라면,
남들처럼 돈이라도 실컷 벌어놓았더라면. 아니 재취라도 결혼해 자식을 두었더라면. 허송세월하고 살았구나.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미안했다. 시간을 유용하지 못하고 낭비한 자신에 대해 깊은 자책감이 들었다. 자책감이 들수록 새로운 다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살아야 한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네 시장으로 갔다. 마을 금고 앞 생선가게 난전에서 노인네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70대로 보이는 노파가 마주 앉은 노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우리 아들 생각만 하며 눈물만 나요, 못 먹이고 못 입히고 그렇게 키웠어요."
옆에서 소주잔을 홀짝이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옛날에는 다 그랬지유, 제대로 못 먹이고 못 가르치고 다 그랬슈."
찌개 그릇에 수저를 퍼올리던 또다른 노파가 말했다.
"요즘은 어찌나 며느리년 눈치가 보이는지 그저 늙으면 죽어야 되는 겨."
노인들은 소주잔과 생선찌개를 번갈아 오가며 열심히 수저질을 했다. 그때 주현의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아! 저게 바로 인생이다.
그 생선가게는 난전이기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어 단골도 많고 꽤 쏠쏠해 보였다. 한가지 특이한 건 늘 노인들이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목욕탕 골목 끝에 있는 약국도 그랬다. 항상 노인네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무언가를 먹었다. 고구마도 먹고 과자 음료수도 서로 가지고 와서 먹었다. 그 맞은편에 있는 미용실도 그랬다. 머리 하는 손님보다 놀러온 손님이 더 많았다.
그 미용실은 완전 동네 사랑방이었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거의 다 꿰뚫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식들 공부 가르치는 이야기에서부터 못된 남편 못된 며느리가 자주 화제에 올랐다. 주된 결론은 항상 돈과 건강과 노후대책이었다.
그저 늙을수록 돈이 있어야 해, 그래야 자식들도 꼼짝 못하는 겨.
주현에겐 이웃이 없었다. 비록 두어 번 이사를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40년간을 내리 한 동네에 산 그녀로선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편을 따라 전방에 산 5년간을 빼고는 그녀는 계속 이 동네에서 뿌리를 박고 산 셈이었다. 어쩌다 길을 지나면 초등학교 동창도 만나게 되는 것도 다 우연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전철 역사 앞을 지나는데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그녀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나오지 않았나요?"
"그런데요."
"아! 맞구나, 저 친정에 왔다가…… 저도 그 학교 출신이거든요 71년도 졸업 맞지요?"
주현은 고개만 끄덕이고는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대화를 계속 했다간 무슨 말이 나올지 몰랐다. 대화를 하다 보면 남편 자식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이다. 결혼을 했다고도 안 했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그녀의 처지였다. 과부라고 하면 눈빛마다 애처로움이 다가오는가 하면 팔자 한번 사납군 하고 노골적으로 회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어느덧 마음의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모처럼 얼어붙은 한강 바람이 동네를 한바탕 휘몰아치던 날이었다. 집을 나서는데 무릎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무릎뼈가 산산조각이 나는 듯한 통증이 하반신 전체를 강타했다. 급히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정형외과는 대형 마트 건너편에 있는데 이제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다.
푸른색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가끔씩 길을 지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주현은 접수대에 보험카드를 놓고는 한참을 기다렸다. 이윽고 차례가 되어 진찰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의사가 챠트와 그녀를 번갈아 보더니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눈빛이 희색을 띄어가고 있었다.
"저 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나오지 않았나요? 저기 경찰서 뒤쪽에 있는 옛날 콜크 공장 있던 동네 살지 않았나요?"
"네?"
주현은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질 지경이었다. 자신을 알아보는 남자가 있다니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절 아세요?"
"그럼 알다 말다."
말투가 당장 반발로 바뀌었다.
"그럼 알다 말다, 나 해수 오빠 되는 해철이야 나 모르겠어?"
이미 중년으로 변해버린 그는 더 이상 미소년, 아니 미남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배가 나오고 머리가 약간 벗어진 게 완전히 영감이었다. 세상에…… 어쩜 변해도 저렇게 변했을까.
"그때 해수랑 가족과 함께 이민 가지 않았나요?"
"난 미국에 갔다가 거기서 공부 마치고 귀국한 지 오 년쯤 돼. 이젠 나이도 먹고 했으니 고국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왔지."
"네에."
주현은 옛 추억을 떠올리듯 갑자기 가슴 한 구석이 벅차왔다.
"그런데 너 홍식이랑 결혼했었다며?"
했었다며? 과거형의 말투가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주현의 눈꼬리가 당장 뒤틀어졌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눈빛이 사납게 되묻고 있었다.
"아! 미안 미안, 공연히 아픈 과거를 묻다니 그나저나 병원엔 웬일로."
그제서야 의사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 해철이 물었다.
"무릎이 아파서요."
"그래?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해철은 여전히 반말이었다. 그는 주현에게 침대에 누우라고 하고는 무릎을 여기저기 눌러보았다.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전에도 그런 증상이 있었나, 계단을 내려 갈 때 아파 아님 올라갈 때 아파?"
"내려갈 때 더 심하게 아파요."
해철은 챠트에 무언가를 적더니 말했다.
"2층에 올라가서 혈액 검사하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내일 다시 한번 들러 알았지."
그는 교사가 초등학생에게 하듯 말했다. 입가에 연신 미소가 번졌다. 뒤돌아 나가는 주현의 등뒤에 대고 그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어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자 주현아."
다음날 아침 주현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정형외과에 갔다. 병명은 퇴행성 관절염이었다. 해철은 병 증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 나서 말했다.
"이 병은 일종의 노화병이야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고 진행 속도를 완화시켜 주거나 통증을 감해주는 정도야, 최악의 경우 인공관절을 하는 방법이 있어. 이왕 내 환자가 되었으니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줄게,"
그는 주현의 어깨와 가슴께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너 옛날에는 꽤 날씬하고 예뻤었는데."
"지금은 요."
"세월은 못 속인다고 너도 이젠 중년티가 나는구나."
"그러는 오빠는 요, 배만 나와 가지고."
주현은 해철의 배에 시선을 꽃으며 말했다.
"내 배가 어때서? 이 정도면 양호한 편 아냐?"
"양호는 무슨 배불뚝이 하마 같은데."
그녀는 옛날로 돌아간 듯 무시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도 해철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에 내가 성극할 때 너 그때 입었던 그 체리 핑크 원피스 말야 그 옷 입었을
때도 이렇게 다리가 예뻤었는데. 그때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일부러 치마 입고 온 거 아니었어?"
"아니에요."
주현은 필요 이상으로 소리 지르며 말했다.
"아님 말고."
병원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던 날이었다. 날씨가 유난히 쌀쌀하던 날이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거리는 온통 낙엽 천지였다. 뒤늦게 찾아온 가을이 길바닥을 보료 깔 듯 낙엽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는데 무릎이 시큰거리고 무거웠다. 그녀는 차도를 건너 제일 먼저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카드를 판독기에 대니 으레 '감사합니다' 멘트가 흘러나왔다. 버스가 삼거리를 지나 한강다리를 건넜다. 시퍼런 강물이 당장 눈을 찌를 듯이 다가왔다.
용산과 서울역을 지나니 광활한 광화문이 나타났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였던가. 청계천 물가가 보였던가. 잠시 시야에 혼동이 왔다. 어디선가 아득한 함성이 들려왔다. 갑자기 도로가 뻥 뚫린 느낌이었다. 버스가 청계천 입구에서 정차하더니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했다. 종로통과 광화문통이 모두 길이 막혀 있었다. 데모대의 함성이 가까이서 들려왔다. 사방이 경찰 수송차량으로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었다.
따다타다다…… 따다다다다.
광화문 하늘에 헬기가 떴다. 정권 말기 누수현상인가. 빌딩 옥상을 선회하던 헬기가 건물 중간쯤을 선회하며 경찰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광화문통은 밀려오는 데모대의 행렬을 막기 위해 경찰 버스로 두껍게 바리게이트를 치고 그래도 안 되자 물대포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거대한 물줄기의 호스가 인파를 향해 분수처럼 내뿜었다. 울긋불긋한 깃발이 쏟아지는 물줄기에 젖기 시작했다. 인파는 잠시 멈추는 듯했지만 또다시 전진을 시도했다.
아마 청와대로 행진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성난 물줄기에도 전진을 시도하다 안 되니까 그중 한명이 경찰 수송차로 올라섰다. 대단한 용기였다. 아마 선두에 섰
던 데모 대원인 모양이었다. 옆에 서있던 경찰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자 이번에는 호스가 그 사람을 향해 물을 뿜기 시작했다.
데모 대원은 물줄기에 그만 미끄러져 바닥으로 쿵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헬기는 계속 저공 비행을 했다. 이제 광화문은 완전 불통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데모 행렬이었다. 주현은 발걸음을 5호선 전철이 있는 쪽으로 옮겼다. 전철역 입구 계단을 내려서는데 전경과 경찰 수송차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설 때마다 무릎에서 통증이 찌르르하고 전해져 왔다.
옆을 바라보니 사람들은 모두 무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계단은 가파
르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데도 계단이 유난히 많았다. 마지막으로 계단을 내려서는데 굉음이 울렸다. 전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표시였다. 그런데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전동차 타는 입구에 투명한 유리막 같은 게 있었다. 자살방지용으로 일부러 설치해 놓은 것 같았다. 가까이 다
가가 보니 유리판 위로 글씨가 보였다.
전철 스크린 도어.
자살 방지용으로 급조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비단 광화문뿐만이 아니었다. 신길역에서도 전철 스크린 도어를 본 것 같다. 순간 기억이 40년 전으로 돌아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던 복희 아빠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는 보험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복희 아빠가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그대로 돌진 목숨을 버린 것이다.
교통 사고 보상금을 타기 위한 계책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해줄 것은 그것밖에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복희와 그녀의 오빠는 땅을 치고 울었다. 복희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그 소식을 듣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그러나 후유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보상금의 액수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복희는 그토록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녀의 오빠도 다니던 공장에서 나와 고등학교에 편입학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복희 아빠의 자살 사건으로 인해 가족은 한때나마 돈 가뭄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 사건이 있은 후 그들은 그 동네에서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복희 아빠와 마찬가지로 술에 젖어 살던 관득이 아빠도 있었다. 그는 매일 술이 거나하게 취해 동네에 나타났는데 하루라도 나타나지 않으면 궁금할 정도였다. 동네 여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마누라 흉보고. 어디서 무슨 돈이 나서 그렇게 술을 마시는지 모르지만 그는 술 걸레가 되어 살다 어느날 죽은 시체가 되어 나타났다. 길거리에서 객사한 것이다. 자살이 아닌 자연사였다.
그 역시 가슴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는 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던 헐벗고 굶주리던 전후 세대 이야기였다. 그때 복희 아빠 마음 속에 스크린 도어가 있었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자살하진 않았을 텐데.
주현은 전철 안에서 내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전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는데 판독기에서 "환승입니다"하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신기했다, 아무리 기계라지만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계기를 다 알아서 판독해 주는가. 거리까지 정산하고 환승인지 아닌지 알아 맞추는가 말이다. 자리에 앉는데 핸폰이 울렸다. 해철이었다.
"주현아 거기 어디니?"
"여기 버스 안이요."
"아니 내 말은 있는 위치가 어디쯤 되느냐고."
"전철에서 내려 지금 집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어요."
"그래? 그럼 생각난 김에 하는 이야긴데 우리 옛날에 나갔던 교회 있잖아."
"교회요?"
"응 돌아오는 일요일에 너 나올 수 있니?"
"왜요?"
"왜요는 뭐, 오면 그동안 궁금했던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는 무슨 신나는 일이 있는지 의기양양하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버스가 시장 입구에 닿았다. 그녀는 동네 길을 걸으면서 내내 알 수 없는 흥분에 휩싸였다. 누굴까. 궁금했던 얼굴들이란. 지난 40여 년의 세월이 낡은 필름처럼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해수와 해철, 은주와 현주, 수현이와 찬미, 영실이와 경자. 그리고 불운의 가수 하숙이와 준영이 또 태순이와 복희. 은옥이,
그들의 면면이 영상이 되어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0년대.
거의 반세기가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갔다. 방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주현은 옷장부터 열어제쳤다. 거의 반세기만에 만나는 옛 친구들을 보고 무슨 말을 할까. 모두 어떻게 변했을까.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벌써 손자를 봤을지도 몰라. 옛날에는 그렇게도 궁색하고 힘들게 살더니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주현은 벌써부터 가슴이 뛰었다. 세월이 흘러도 옛 감정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순수와 진실이 어린 시절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 뒷켠에 감춰
진 수치스런 감정도 남아 있었다. 과연 몇 명이나 나올까. 그보다도 내가 너무 오버센스한 건 아닐까. 자신이 생각하는 궁금한 얼굴과 해철이 생각하는 궁금한 얼굴에는 분명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주현은 옷장을 뒤지다 이내 문을 꽝 닫고 말았다. 아무리 뒤져도 입을만한 옷이 없었다.
특별히 봐주는 사람이 없다고 치장은커녕 옷매무새도 신경 안 쓰고 살아온 결과였다. 거리에 눈비가 내리고 낙엽이 깔리고 가뭄과 홍수가 져도 그녀는 감각을 잃은 채 살았다. 목적의식도 없이 그저 세월에 편승해 살아갔다.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의식도 없었다. 자신을 돌아보거나 미래를 생각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늘 혼자라는 좌절감에 사로잡혀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살았다.
가족들은 모두 그녀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했다. 과부라는 이상한 거부감이 그녀를 더욱 혼자 있게 했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과부를 향해 말했었다.
남편 잡아먹은 년.
과부가 된 것도 서러운데 재수가 없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그녀를 경원시한 것이다. 그녀는 재혼을 하게 되면 또다시 과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살았다. 그녀의 의식 저변에 깔린 혼자와 처지라는 단어에 붙잡혀 옴쭉달쭉 못했는지 모른다. 홍식과 결혼하기 전 어머니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아야, 안 된다 홍식이와 니는 궁합도 사주도 안 맞는다. 금방 헤어질 상이라 홍식이가 팔자가 세서 안 된다 말이다."
그러나 그건 핑계였다. 나중에 이모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그녀가 결혼하면 일찍 청상이 될 팔자라 했다. 그런데 엄마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니까 홍식, 그녀의 남편 탓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그 불길한 예언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녀의 뇌리 속에는 계속 암시적인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한번 죽을 건데 뭘.
삶의 의욕을 빼앗아 가는 그 말은 그녀의 의지와 상충되면서 세월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렸다. 무의미와 허무는 그녀의 최대 적수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인생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주현은 집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세월의 부스러기를 알리는 낙엽이 지천으로 흩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내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녀는 후회를 했다. 남대문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서대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잘못 탄 것이다. 그녀는 남영동에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카드를 판독기에 대니 "환승입니다"하고 여자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 나왔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녀가 대학 다닐 때 아니 십여 년 전만 해도 이런 버스 카드 제도가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차비는 한번만 내고 버스는 두 번 세 번 아니 다섯 번까지 공짜로 타도 되다니, 누가 발견해 냈는지 모르지만 참 기막힌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버스는 그녀를 정확하게 남대문 앞에 세워 주었다. 버스를 내리면서 주현은 카드를 또다시 판독기에 댔다.
정확하게 잔액이 계기판에 찍혔다. 거리는 인파로 혼잡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휘묻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각종 화려한 색상이 눈을 찌를 듯이 다가왔다. 여성 의류 매장은 3층에 있었다. 정장 스타일을 보니 보통 가격이 백 만원 수준에 육박했다. 세일이라고 쓰여진 코너에 가보니 그나마 가격이 오십만 원대였다. 주현은 그 중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어 보았다. 백화점 여직원의 부드러운 손길이 어깨를 스치며 말했다.
"어깨가 좁으신 걸 보니 옷이 잘 어울리겠어요."
요즘 옷은 타이트한 게 주류를 이룬다. 정장이라도 배가 나오면 입을 옷이 없다. 어깨와 허리 힙 부분이 꽉 조이듯 하기 때문에 체형이 좋아야 한다. 몇 벌 입어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러다 행거 한켠에 걸어 놓은 코트가 눈에 띄었다. 옅은 카키색에 안에 부드러운 털이 장식된 고급스러워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몸에 걸쳐 보니 잘 어울렸다.
"이 옷 얼마죠?'
"그 옷은 칠십 오만 원입니다."
"네에?"
그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이미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이왕 사는 김에 검정색 투피스도 한 벌 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래층에 들러 지갑도 새로 샀다. 직원은 명품이라고 거듭 말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백화점을 나오면서 속으로 말했다.
백수 처지에 너무 과용한 것 아닌가.
쇼핑백이 상당히 무거웠다. 그러나 비싼 만큼 값어치가 있으리라 믿으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주현은 새옷을 옷장 속에 집어넣자마자 잠에 골아 떨어졌다. 꿈속에서 그녀는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밝은 빛이 천장에서부터 부서져 내리는 건물이었다. 천장이 높은 걸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것 같았다. 합창 소리가 들려오고 이따금씩 함성도 들려왔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건 몸은 어른인데 얼굴은 어린 아이인 것이었다. 그것도 여덟 살 열 살 정도의 모두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그 천차만별의 사람들은 어느 한 대상을 향해 제각기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가슴을 치고 울고 분노하다가 웃고 한숨을 쉬는가 하면 감사를 연신 외치기도 했다.
그곳에는 전혀 어둠이 없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어둠을 꺼내 놓다가도 이내 빛속에 함몰되어 갔다. 눈물과 탄식이 감사와 노래로 변하기도 하고 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험악한 인상이 부드러운 얼굴로 변하면서 서로 못 알아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소란스러운 듯했으나 조용했고 조용한 듯했으나 웅장하고 힘이 있었다. 또 한 가지 그곳에선 진실만 통할뿐 거짓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영(靈)과 영(靈)이 통한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곳은 평안과 안식이 흐르고 있었다. 상처 난 마음이 치유되고 병든 육신도 점차 회복의 기미를 띄어갔다. 어느덧 자유의 물결로 사람들의 마음은 출렁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새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롭고 산길이었다. 사람들은 그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옛길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현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해 망설이고 있었다. 주현은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앞에 과거가 나타났다.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한 험한 산길이었다. 그 길을 바라보는데 언젠가 들었던 세미한 음성이 마음속으로 들려왔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늘 너와 함께 하였느니라."
길 모양이 험로에서 평지로 바뀌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보았다. 과거와 현재가 합치되면서 미래가 희망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을.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날은 해철과 함께 교회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늦지 않게 와라. 장승백이 돌아가는 쪽에 교회는 아직도 옛날 모습 그대로란다 이해철」
주현은 백화점에서 사 두었던 정장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정성 들여 화장을 했다. 얼마 만에 해보는 화장이던가. 스커트 정장 차림을 하기도 근 몇 년만의 일이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주눅들고 대인기피증에 걸려 살아온 지난날 탓이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나게 될 옛 얼굴들을 생각하며 더 외모에 신경을 썼다. 눈가에 주름살과 두터워진 턱이 영락없는 중년의 모습이었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얼굴이나 알아보려나 몰라. 눈이 와 길이 미끄러웠다. 오랜만에 꺼내 신은 구두가 발끝에서 자꾸 헛도는 것 같았다. 엉금엉금 기다시피해 간신히 예배 시간에 닿을 수 있었다. 교회는 사십여 년의 세월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내부 장식만 조금 바뀌었을 뿐 적어도 겉모습은 옛날과 똑같았다. 그건 놀라운 사실이었다.
교인 수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대략 이백 명쯤 되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교회 주변의 집들도 옛날 하꼬방 수준을 못 면하고 있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주변환경이 사십 년 간 세월이 정지된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언덕배기에 있는 파출소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살면서 이 근처를 지나갈 일은 많았지만 한번도 이 곳을 찾지 않았다. 멀리서 지날 때마다 옛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정도였다. 자리를 찾아 앉는데 주현은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많은 눈빛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처음 대하는 이방인을 향해 낯섬과 반가움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뒤에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는데 가슴이 찌르르하고 감동이 전해오는 것이었다.
"왜 내가 안 나왔을까봐 찾는 거야?"
해철이었다.
"찾긴 누가 찾았다는 거야."
"방금 찾았잖아."
세월이 40년도 더 지난 탓일까. 면면이 살펴보는데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모두가 변하여 못 알아 보는지도 몰랐다. 잠시 두리번거리는 사이 복음 성가 가수가 나와 찬양을 인도했다. 가사와 음률이 마음을 적셨다.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며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나를 돌아보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널
도와 주리니 일어나라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이어 경쾌한 리듬의 찬양이 이어졌다.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신나고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들을수록 마음에 힘과 위로가 느껴졌다. 예배는 마치 축제 분위기였다. 음악의 힘이 그렇게 위대한 줄 미처 몰랐다.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평안과 안식이 임하고 있었다. 주현은 얼마 전 꾸었던 꿈 내용을 다시 떠올리며 다시 한번 복음 성가 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였다. 또다시 그녀의 귓가에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찬양하는 저 가수가 누군지 아니?"
"누군데?"
"하숙이. 기억나니?"
"하숙이……."
"그 의붓 아버지 밑에서……."
주현은 거기서 말을 끊었다. 밤무대 가수로 갔다더니 어떻게 된 걸까.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지."
해철은 그 말을 하고서 하숙이를 바라보았다. 찬양이 끝나자 예배 순서가 진행되었다.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자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놀랍게도 하숙이였다. 하숙이는 설교 중간 중간 아멘을 연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현의 귓가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찬양과는 달리 예배 순서는 지루했다. 그동안 주현은 깜빡 졸았다. 예배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였다. 주현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한 단어가 떠올랐다.
어린 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처지'라는 단어였다. 그리고 좀 전에 들은 공평이란 단어도 떠올랐다. 그 두 단어가 하숙이의 얼굴과 겹쳐 자꾸 생각났다. 목사가 교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여자는 부인인 모양이었다. 꽤 미인이었다. 날씬한 몸매와 선한 눈매가 한눈에 보기에도 호감 가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주현을 보더니 반색을 했다.
"주현이 주현이 맞지?"
그러자 어느새 곁에 왔는지 해철이 말했다.
"주현이가 맞습니다."
누구? 주현의 무응답에 여자가 말했다.
"나 모르겠어? 나 은주야."
"뭐라구? 은주 그럼 현주랑?"
"응 그래 현주와…… 나 그 은주야."
세상에 어쩜 그 숱한 세월 속에서 그녀는 전혀 늙지 않았다. 아직도 팽팽한 피부와 몸매가 삼십 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은주를 쳐다보는데 이쪽을 향해 황급히 걸어오는 발걸음이 있었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은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아이는 손자 같았다.
"복희야 인사해 니가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주현이야,"
"뭐라구? 주현이."
복희는 반가운 나머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말 주현이 맞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주현은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구야?"
"으응 내 손자."
"뭐어 손자라구?"
이번에는 주현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게 너도 홍식이 떠나자마자 재혼했더라면 벌써 손자를 봤겠다."
복희는 주현의 감정과 상관없이 말을 뱉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야! 그만해."
옆에서 해철이 황급히 말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갔다. 복희 나이가 아무리 많아 봐야 오십 안짝일 텐데 벌써 손자라니…….
"복희야 너 나이가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나한테 너무 함부로 하는 것 아냐? 적어도 나보다 세 살은 어린 것 같은데."
"아니야 그건 호적상 나이일 뿐이야."
"그런가? 그런데 이 애가 다섯 살은 되어 보이는데 손자를 너무 일찍 본 것 아니니?"
"응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했거든."
그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참 너 태순이 소식 아니?"
"태순이 시골로 가서 살다 얼마 전에 암으로 죽었어, 살아서 그렇게 고생 고생하더니만."
복희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말했다.
"영실이는 남편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 갔어."
"그래, 언제 갔는데?"
"응, 한참 돼, 자기가 주워온 딸이란 걸 알고 나더니 남편을 졸라서 이민 갔어."
"경자 소식은 아니?'
"경자? 경자가 누구더라."
"중앙시장에서 야채 장사하던, 있잖아 엄마 아빠가 늙어서 할머니 같다고 우리가 놀렸잖아."
"아! 그 경자. 지금 대전인가 어디서 전자 대리점 한다고 하던데. 걔 제작년에 재
혼했어."
"뭐 재혼?"
"응 남편이랑 갈라서자마자, 걔 남편도 경자랑 이혼하자마자 재혼했다지 아마, 벌써 오래된 이야기야."
"그런데 하숙이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안 보이는 거지?"
"하숙이 지방 갔어. 그곳에서 공연이 있어서."
"그럼 아직도?"
"으응 하숙이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형편이 많이 나아진 거야,"
그 뒷 이야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모두 상상으로 치부하고 마는 눈치였다.
옛 지인들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주현이 교회 문을 나서는데 해철이 따라 붙으며 말했다.
"다음주에도 또 나올 거지."
"시간 봐서."
"그러지 말고 꼭 나와라."
"그런데 오빠 부인은 왜 안 보이는 거야?'
"응 다음주에 나오면 내가 보여줄게."
주현은 해철의 아내가 도대체 어떤 여자인지 궁금했다. 옛날에 그 미소년을 가로챈 여자라면 틀림없이 미인일 것이다. 그나저나 은주가 목사 사모가 되다니 정말 그야말로 그건 예상 밖이었다. 그 옛날 그렇게 서모와 이복 자매들 사이에서 눈치보고 주눅들어 살던 은주가 아니었던가.
다음주 일요일 주현은 또다시 교회에 발걸음을 내밀었다. 보고 싶었던 옛 얼굴들이 궁금해서였다. 그들과의 만남이 계속될수록 꿈속에서 느꼈던 평안이 계속 느껴졌다. 그건 신앙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녀는 목사의 설교보다 찬양이 좋았고 옛 지인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다. 어느날은 뉴질랜드로 이민 갔던 영실이가 돌아와 축제 분위기가 벌어졌다. 영실이는 친정 가족과 함께 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뉴질랜드 자랑에 열을 올렸다.
뉴질랜드에서 구입한 거라며 반지와 목거리를 자랑했다. 그녀는 마치 돈 자랑하기 위해 귀국한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옛 모습이 남아 있는데 유독 영실이만 상처와 번민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주현은 마음이 씁쓰레했다.
그러나 해철의 아내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씩 주현이 오빠 집사람 언제 보여줄 거냐고 물으면 다음주 또 다음주로 미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그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묘해졌다. 마치 둘 사이를 기정 사실화시켜 말하는 것이었다.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그러나 주현은 그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주현은 열심히 정형외과에 가 물리치료를 받았고 어느날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더 이상 치료받을 필요가 없어졌어. 그동안 물리치료를 한 결과가 좋았고 무엇보다도 심리적인 안정이 이루어졌기에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돼."
"이건 불치병이라며?"
"그렇긴 한데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
"기적?"
"응. 기적. 그게 다 의사 잘 만난 덕이 아니겠어."
해철은 끝까지 자기 공치사를 했다. 주현은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집사람은 언제 보여 줄 건데."
"응. 나중에 따로 보여줄게."
그 말에 주현은 비로소 의심을 품었다. 이혼했거나 사별한 모양이구나.
"그보다도 교회 내에 이상한 소문 퍼진 거 너 알고 있니?"
"소문? 이상한 소문이라니 무슨?
"그러니까 너랑 나랑."
"뭐어?
주현은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실신할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소문이 사실로 되면 되잖아. 한두 해 안 것도 아니고."
주현은 너무 기가 막혀 멍하니 해철을 바라보았다.
"너 어릴 때부터 나 좋아한 것 아니었어. 그때 체리핑크 옷 입고 나 보기 위해서 교회 왔었잖아."
"그때가 언제인데."
"지금도 나 보기 위해 교회 온 것 아니었어."
"뭐야, 착각은 자유라더니 참 내 기가 막혀서."
그 자리에 더 있다간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라 주현은 밖으로 나왔다. 한참 걷다 보니 버스 정류장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옛날 어렸을 때 해철이 교회에서 성극하던 그날도 이렇게 눈이 내렸었다. 그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체리핑크 원피스를 꺼내 입던 생각이 났다. 해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누구보다 잘생긴 미소년인 해철은 인기 또한 만점이었다.
게다가 해철은 부잣집 외아들에다 친절하고 영리했다. 그날 연극을 보면서 주현은 얼마나 감탄했던가. 저엉말 잘생긴 오빠다. 간간이 내리던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서 주먹만한 솜 덩어리를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니 센치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그러면서 주현은 정형외과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병원은 여태 네온을 밝히고 있는 걸로 보아 해철은 아직도 진료 중일 터였다. 그때 버스가 눈길을 미끌어지며 와 섰다. 그녀는 무작정 올라섰다. 올라서자마자 버스카드를 판독기에 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무 글자도 안 떠오르는 것이었다. 으레 들려오던 "감사합니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판독기 자체가 고장 난 건 아닐까. 주현은 한쪽에 서서 다른 승객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이상 없이 판독 처리가 되었다. 또 고장난 것이다. 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고장이 난 걸까. 주현은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닿자마자 내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해철에게 전화를 했다.
"나 어떡케 버스 카드 또 불통 됐어."
"거기가 어딘데 내가 데리러 갈게."
"응, 옛날에 우리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이야."
"그럼 잠시만 기다려 이제 진료 막 끝났으니까 내가 데리러 갈게, 거기 꼼짝 말고
서 있어 알았지."
해철은 마치 초등학생에게 하듯 단단히 주의를 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한참이 지나서야 나왔다.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다.
"이게 바로 새로 나온 유 패스라는 건데 주현이 너 써."
"이렇게까지……."
"나 미국에 있을 때 교통사고 나서 죽을 뻔한 적 있었어, 그것도 세 번 씩이나, 그래서 다음부턴 다신 운전 안 하기로 했어, 그리고 결심했지 죽을 때 죽더라고 고국에 가서 보고 싶은 얼굴이나 실컷 보고 나서 죽자, 나 요즘 너무 행복해 내 바람을 모두 풀었거든."
그러면서 그는 주현의 손목을 꼭 쥐었다.
"그게 바로 너야."
해철은 손가락으로 초등학교 담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현아, 저기 좀 봐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야, 사십 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
도 그대로야 바로 우리들 마음처럼. 이제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이제부턴 지난 세월을 만회하며 살자 무슨 뜻인지 알지?"
주현은 해철의 손을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가져가며 생각했다. 그래 나도 그동안 허송세월 한 것을 한꺼번에 만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 바로 오빠와 함께. 눈송이가 그녀와 해철의 어깨 위로 자꾸만 쌓여갔다. 그들 앞을 초등학교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며 지나갔다.
"주현아 우리 초등학교 뒷길을 걸을까. 동사무소 옆길도 걷고 바로 그 길이 우리가 자주 다니던 콜크 공장이 있었던 곳이잖아."
"나 아무래도 무릎이……."
"왜 아직도 아파? 내가 업어줄까."
"아니 그게 아니고 미끄러질까 봐 그렇지."
"뭔 걱정이야 내가 옆에서 붙들어줄게, 이렇게."
해철은 주현의 허리를 자신의 팔로 휘어 감았다. 옛날에 콜크 공장이 있었던 길을 지나며 그는 낮게 노래했다.
"너무 걱정하지마 너무 슬퍼하지마 내가 널 붙들어줄게."
"그건 무슨 노래야?"
"응. 새로 나온 복음성가인데 가사 괜찮지?'
아!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내 마음 속에서 불안이 떠나고 평안했던 이유가 누군가 내 마음을 붙들고 있었나 보다. 생각해 보니 소심증도 두려움도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주현은 해철에게 자꾸만 그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다. 그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사십 년의 세월을 한꺼번에 압축하려는 듯 옛길을 걷고 또 걸었다. 어느새 눈이 잦아들고 있었다. 한참 걷다보니 KTF 건물이 나타났다. 주변에 술집과 여관, 노래방 음식점들로 가득했다.
"주현아 저 건물 보이지? 저 건물 뒤가 우리가 신나게 썰매 타던 비탈길이었잖니
그때 너 썰매 탈 때 내가 뒤 밀어주던 생각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난 전혀 생각 안 나는데."
"벌써 잊었구나, 하긴 그동안 세월이…… 난 미국에 가서 살면서도 가끔씩 주현이 너 꿈을 꾸곤 했어. 아마도 나는 정신연령이 어린가봐, 아직도 어린 시절 생각이나 하고, 우리 집사람이 세상 뜨면서 말하더라, 고국으로 돌아가서 당신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사람들을 만나세요, 보고 싶은 사람 보지 못하면 병이 난답니다. 옛 추억을 되살려가며 인생의 후반기를 즐기세요."
그 말을 하며 해철은 눈물을 글썽였다. 그 말을 듣는데 주현은 마음 한 구석이 적이 안심이 되었다. 역시……. 해철은 상처가 많아 보였다. 부잣집 외아들로 자라 부족함 없이 행복한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주현의 머릿속에서 처지라는 단어가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누군가 내게 그랬어, 인생은 서로 추억으로 사는 거라구. 세월이 가도 추억은 변하지 않는 법이라면서."
"누가?"
"응 있어."
"추억은 추억일 뿐이야, 지난날은 어쩔 수 없어. 우리 인생을 새롭게 환승하자고."
주현은 해철의 말을 들으며 새롭게 다짐했다. 그래 지금부터는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움으로.
경이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버스를 환승하듯 새로움으로 시간을 바꾸고 싶었다. 그들이 전철 역사 쪽으로 걸어가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주현과 해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중의 하나가 주현에게 말했다.
"주현아 새해에는 좋은 소식이 오려나보다. 이렇게 두 분이서 공개적으로 데이트도 하시고."
그러자 옆에 있는 또다른 사람이 말했다.
"너무 닦달하지마, 자기들이 알아서 하게 냅둬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러자 또다른 사람이 말했다.
"저 둘은 너무 우유부단해서 옆에서 닦달하고 볶아쳐야 돼 아님 또 해 넘기고 만다니까."
그들은 서로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잘해보라고 손짓을 하고는 사거리 쪽으로 사라졌다. 모두 초등학교 동창인 복희와 은주, 하숙이 또래들이었다. 그들 앞에 40년의세월이 찬 겨울바람과 함께 떠밀려 가고 있었다. 잠시 멈칫했던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들려왔다. 주현과 해철은 옛날 콜크 공장이 있던 길을 걷고 있었다. 눈이 쌓여 길이 미끄러웠다.
그들은 미끌어질새라 서로의 허리를 꼭 잡고 걸었다. 그 길을 빠져나와 다시 초등학교 앞길을 지나 장승백이 쪽으로 걸어갔다. 왼쪽으로 도서관이 보였다. 그 앞에 조그만 화단이 보였다. 쌓인 눈 사이로 파릇한 이파리가 보였다. 손으로 헤쳐보니 풀잎이었다. 이 엄동설한에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니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저절로 들었다. 뭉클한 감동이 가슴속으로 전해져 왔다. 눈을 들어 삼거리 도로 쪽을 바라보는데 전에 보이지 않던 길이 직선도로로 나 있었다.
이정표에 ooo중학교라는 글자가 보였다. 근래에 새로 생긴 중학교인 모양이었다. 도로는 언덕배기를 타고 곧게 뻗어 있었다. 언젠가 꿈에서 보았던 것처럼 새롭고 산 길이 열리고 있었다. 희망이라는 단어와 함께.
첫댓글 '인생을 새롭게 환승한다는 것' 의미심장한 말이네요! 소설이지만 주현의 인생후반부는 해철과 함께 아름답게 장식됐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200 매에 가까운 장문인데 끝까지 읽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파도님의 동화도 곧 볼 수 있겠죠?
뜨아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부담 팍팍![!](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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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