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관봉석조여래좌상(八公山冠峰石造如來坐像)(갓바위)
김 종근
팔공산(八公山)은 대구광역시의 동구와 북구, 군위군과 경상북도의 경산시, 영천시, 칠곡군에 넓게 걸쳐 있는 백두대간의 줄기이다. 1980년 5월 13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 5월 23일, 23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2024년 1월 1일 국립공원으로 출범하게 될 예상 면적은 126,058㎢이다. 삼국시대부터 신라인들이 "아버지의 산(父岳)" 또는 "중심이 되는 산(中岳)"으로 신성시하며, 제왕봉 밑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놓여져 있다.
팔공산은 봉황(鳳凰)의 모습으로 대구분지를 감싸는 대구, 경북의 최고로 높은 산이다. 최고봉인 帝王峰 (毘盧峰, 1,192m)이 봉황(鳳凰)의 머리이고, 彌陀峰(東峯, 1,167m)과 三聖峰(西峯, 1,150m)이 솟아오른 봉황(鳳凰)의 날개라고 한다. 예로부터 불교 문화의 중심지여서 150여개 사찰(庵子포함)들이 골짜기마다 명당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찰로는 동화사, 은해사, 선본사, 송림사, 파계사, 부인사, 북지장사, 환성사, 거조사, 관암사, 관음사, 삼존석굴사(제2석굴암) 등 이름난 사찰들이다.
팔공산 이름의 유래로 대구분지는 과거에 습지와 호수가 대부분이어서 호수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각종 새가 많이 살았는데, 특히 ‘닭과 물닭’ 등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구의 예전 이름이 달구벌이 되었다. 팔공산도 예전에 꿩이 많이 살아서 "꿩산"이라고 했는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팔공산이 있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를 한자로 "꿩 치(雉)"자를 써서 ‘치수화(雉水化)’라고 불렀다. 팔공산은 봉황(鳳凰)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형상이다. 이런 닭과 꿩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팔공산이 봉황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 같다.
이것이 신라 말~고려 초에 전국 지명이 한자어로 바뀌면서 "공산(公山)"이 되었다고 한다.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했던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의 견훤에게 참패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신숭겸은 한 고조 유방을 살리기 위해 미끼가 되어 죽은 기신(紀信, ? ~ 기원전 204년) 모방하여 자신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을 빌려 입고 후백제군을 유인했으며, 왕건은 일반 군졸의 옷을 입고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신숭겸의 희생 덕분에 왕건은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후백제군은 신숭겸이 왕건인 줄 알고 쫓았고 결국 신숭겸은 전사했으며, 함께 유인 작전에 나선 김락, 김철, 전이갑· 전의갑 형제와 그 사촌 동생인 전 락, 개국공신 평장사 호원보, 대상 손행 등을 포함한 8명의 장수가 전사했고 김철 혼자 생존해서 후백제 멸망 전인 일리천 전투에도 참전하는 등 후삼국 통일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이때 4명을 포함하여 모두 8명의 장수가 전사하였다. 이로 인하여 公山의 이름이 팔공산(八公山)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왕건과 관련된 지명으로는 군위군, 무태동, 연경동, 살내, 지묘동, 파군재, 불로동, 해안, 안심, 반야월, 은적사, 안일사, 왕굴 등이 있다.
팔공산의 비로봉, 동봉, 서봉 외에 관봉(冠峰)은 해발 856m이다. 파계봉은 해발 991.2m이다. 신림봉은 해발 820m이다. 인봉(印峰)은 해발 579m이다. 노적봉은 891m이다. 삿갓봉의 해발 931m이다. 팔공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 제일 유명한 봉우리는 관봉(冠峰)으로 팔공산관봉석조여래좌상(八公山冠峰石造如來坐像)이 있다. 일명 ‘갓바위 부처님’ 때문에 팔공산에서 제일 유명할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관봉에 올라 갓바위 부처님께 108배도 수없이 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대구에서 다시 갓바위에 올라 보기로 했다.
동화사 자리가 봉황의 아기궁이라서, 겨울에도 오동나무 꽃이 필 정도로 따뜻하지만,갓바위가 있는 관봉(冠峰)은 봉황(鳳凰)의 날개 부분이라 경사가 심한 편이고 험하다. 미타봉에서 능선을 타고 외곽인 관봉까지 가는 등산로에는 밧줄로 암벽을 타고 오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어려운 난코스는 데크길을 놓아 산행하기에 아주 편하게 만들어 두었다.
갓바위 가는 길은 대구에서 가는 방법과 경산시 하양읍에서 가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대구에서 갓바위에 갈려면 “자가용, 401번 버스”를 타고 팔공산 갓바위시설 지구 주차장에 내린다. 팔공산 관리사무소를 지나 관암사에 도착하면 1365계단이 나타난다. 그 의미는 1년 365일 연중 찾는 소원을 기도하는 명소라는 뜻이다. 이 계단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면 갓바위에 도착한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 빙판이 되어 올라가기가 힘들다. 그래도 대구는 대중교통으로 동대구역 지하도2 버스정류소에서 401번 버스가 10분마다 경유하기 때문에 편리하다.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에서 가는 방법으로는 “자가용, 803번 버스”를 타고 선본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선본사에서 계단은 대구 쪽 계단 보다 훨씬 완만하고 오르기가 쉽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사찰에서 제설 가루를 뿌려 빙판이 되는 일도 없다. 오르는 시간은 성인 기준으로보통 40분이 걸린다. 그러나 대중교통의 경우 지하철 2호선 임당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803번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의 운행 간격이 30분 이상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일명 갓바위는 삼국 신라의 원광법사의 제자인 의현스님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인도하기 위해 아미타불을(석가모니불) 조성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미륵불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이후 팔공산이 약사여래신앙의 성지가 되면서 현재 약사여래불이 되었다. 정확한 주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44번지이다. 팔공산 남쪽 관봉(冠峰)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다. 원래 불상이 있는 봉우리의 이름이 관봉이 아니었는데, 고려시대부터 ‘갓(관(冠)’을 쓴 불상이 유명해져 봉우리의 이름이 관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불상의 방향은 북위 35도 58분 54초, 동경 128도 44분 11초로 울산의 간절곳 주변을 향한다고 한다.
1965년 9월 1일자로 지정된 보물 431호로 팔공산관봉석조여래좌상(八公山冠峰石造如來坐像)으로 856m에 있다. 그동안 갓바위 부처님 왼손에 둥근 물건이 올려져 있는 듯 보여 약사여래불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정밀조사를 하여 본 결과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손바닥 위에 얹고 있는 형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약병이 없다는 과학적 증명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이 예불할 때 약사여래불이라는 염불을 외며 소원을 기원한다. 이제는 왼손에 약병이 없어도 약사여래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갓이 학사모와 비슷하여 각종 시험이 있을 때마다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특히 수험생을 둔 학부모님들이 수능시험 기간이 되면 갓바위 부처님께 고득점 기원을 하며 기도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면 꼭 한 가지 소원을 이루게 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꼭 입시철이 아니더라도 많은 신도 및 일반인들이 갓바위를 찾아 정성을 다하여 치성을 드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기도 도량이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인근 주민들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울산 등 전국각지에서 관광버스로 오는 경우도 많다.
갓바위 부처님을 세세히 관찰해보면 신체적 특징은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뚜렷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어깨는 다소 올라가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고 건장하지만 가슴은 평평하고 신체의 형태는 둔중(鈍重)해 보인다. 손 모양은 석굴암 본존상과 같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불좌상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인데 앞면과 옆면으로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광배의 구실을 하고 있으나, 뒷면의 바위하고는 따로 떨어져 존재하고 있다.
갓바위 부처의 검은 색깔을 띤 것은, 1960년대 초만 해도 부처의 몸에까지 촛불을 피우는 별난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그으름으로 지금보다 더 시꺼먼 모습이었다. 또 그 당시 농경사회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사람들이 가물면 비를 내려 달라고 소나무를 베어다가 부처님 몸에 두르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그러면 부처의 코가 시커멓게 바뀌면 용이 깜짝 놀라 비를 내려 그으름을 씻어준다는 속설을 믿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부처의 색깔이 지금도 군데군데 거뭇거뭇하다. 또 갓 모양에 대한 일설에 의하면,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산은 민둥산이었다. 높은 산에 올라야 땔감을 구할 수 있어서 인근 동네 청년들이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가서 갓바위 부처에 장난치며 놀았다고 한다. 괭이나 도끼로 갓바위 부처님의 갓을 내리치는 등 장난을 치다가, 갓 모양이 8각형에서 금이 간 부분이 떨어져 나가 현재와 같이 불규칙한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2012년경에 선본사는 불교문화연구소와 함께 3D 촬영을 하고 갓바위 부처를 분석한 결과 '갓'의 윗면에는 보상화(寶相華)가 새겨져 있었다. 보상화는 꽃잎이 5개인 가상의 꽃으로 불교에서 ‘만다라화’라고 부르는 흰색 연꽃이다. 그러므로 돌을 8각형으로 가공하고 보상화 무늬를 새긴 다음 홈을 내어 부처의 머리에 올린 것으로 되어 있다.
참배하러 온 신도들은 촛불을 켜고, 향불 피운 후 참배를 하고 나면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속도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유명한 사찰은 산 중턱에 있다. 세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늘 근심 걱정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것을 떨어내기 위하여 산에 오르다 보면 힘이 들고 온몸에 땀 범벅이 된다. 그럴 때 시원한 바람 한 자락 불어오면 몸도 개운해진다. 산 위에 올라 갓바위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 들으면 마음속에 가득차 있던 세속적 욕망이 다 비워지고 깨끗해진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부처님 앞에서 다짐하지만, 산 아래로 내려오면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불교 교리에 의하면 무소유가 행복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과연 그럴까?. 이것은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중생은 원래 부처와 다름이 없으나 자식이나 부모를 위해 좋은 것 나쁜 것 가리지 않고 행하다 보니 업장(業障)이 많이 쌓이게 된다고 한다. 원하는 것은 많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부처님께 하소연하듯 하나하나 마음속으로 말씀드리고 풀어나가다 보면 마음에 업장이 소멸하고 기쁨과 환희가 넘쳐 세속에 막힌 마음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물질이란 건강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다 보면 저절로 먼지처럼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고뇌도 먼지처럼 쌓이면 병이 되니까 절제할 줄 알아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부처라는 것은 원래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다 준다는 뜻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보면 “크게 버리는 자만이 크게 얻을 수 있고, 아무것도 갖지 않는 무소유자가 될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설파하고 있다. 소유하지 않는 상태에서 소유한 상태보다 더 큰 기쁨과 만족감 또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것은 분수를 벗어난 과도한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갓바위 목탁소리 들으며 부처님 앞에 백 팔배를 하고 관봉 아래 펼쳐진 산을 내려다보면 인간의 욕심이란 것은 티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갓바위 부처님 전에 정성을 다하여 기도드리다 보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