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공론장 댓글 창 없애자 점유율 4%이하로
'아시안게임 응원 여론조작' 혐의까지 씌워
네이버, 좌편향 억지에 팩트체크 서비스 중단
그 통에 '외국산' 구글·유튜브로 이용자 이동
한때 국내 간판 포털로 명성이 높았던 ‘다음’이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지난 5월 과거 위상을 회복하겠다며 사내 독립기업으로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으나 이용자 감소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엔 항저우 아시안게임 응원페이지 여론 조작 논란에 휩싸이면서 더 궁지에 몰렸다. 다음의 위기는 다른 포털에 비해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진 원인도 있으나 정부 눈치를 보며 댓글 창을 폐지하는 등 스스로 서비스 질을 떨어뜨린 탓도 크다. 네이버 역시 정부와 여당의 눈치를 보며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하며 퇴행적 모습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포털 사이트 다음은 6월 8일부터 기사 댓글을 없애고 실시간 채팅인 '타임톡'을 도입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공론의 장이 위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카오 홈페이지 갈무리.
5일 인터넷트렌드의 웹사이트 분석 데이터에 따르면 다음의 국내 포털시장 점유율이 4% 밑으로 떨어졌다. 이달 1일부터 3일까지 MAU(한 달에 1번 이상 서비스를 쓴 이용자 수)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 다음 점유율은 3.9%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네이버는 57.5%, 구글이 32.9%인 것과 비교하면 민망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에서 다음을 보는 이용자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모바일 빅데이터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5월 804만1760명이었던 다음 모바일 MAU는 6월 785만4547명으로 80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에도 7월과 8월 각각 784만2000명과 783만9630명, 9월 762만4265명으로 이용자가 계속 이탈하고 있다.
다음 운영업체인 카카오는 지난 5월 다음을 사내 독립기업으로 운영 방식을 전환했다. 독자 경영과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서비스 수준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다. 당시 점유율은 5.1%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사내 독립기업 전환을 계기로 이용자 요구에 즉각 대응하고 부족한 서비스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MAU 점유율은 6월과 7월 4.5%로 되레 떨어졌고 8월과 9월은 4.1%까지 추락했다. 그러다가 이달 들어 4% 선마저 무너진 것이다.
카카오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조직 개편 효과는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이용자 유입의 주요 채널이었던 댓글 창을 지난 6월 폐지한 게 결정적 악재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댓글 대신 도입한 ‘타임톡’은 이용이 불편할 뿐 아니라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도 한계가 있어 이용자 만족도가 떨어진다. 다음카페 등 다른 서비스도 개편했으나 점유율을 높이는 데는 역부족이다.
다음이 댓글 창을 없앤 사정에는 정부와 여당의 ‘가짜뉴스 몰이’가 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네이버와 다음에 올라오는 댓글이 여론 조작과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네이버는 기사 댓글 수를 제한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댓글을 달 수 있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개편했다. 다음은 아예 댓글 창을 없애고 게재 후 24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사라지는 타임톡을 도입했다. 정부와 여당 눈치를 보느라 공론의 장인 포털의 활발한 의사소통 기능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서비스를 개악한 것이다.
그 결과 두 포털 모두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네이버는 2018년 점유율이 70%가 넘었으나 지금은 60% 밑으로 떨어졌다. 이용자들이 네이버와 다음을 떠나 구글과 유튜브로 가고 있다. 구글은 오랜 기간 국내 검색 시장 점유율이 한 자릿수였으나 지금은 30%가 넘는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이용자 조사' 뉴스 및 시사정보 주 이용경로 자료 갈무리
국내 포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가짜뉴스 몰이에 여념이 없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4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다음의 응원 메시지 여론 조작 의혹을 보고받은 뒤 범부처 대책 전담팀(TF) 구성을 지시했다.
지난 1일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한국과 중국의 8강 경기가 진행되던 중 중국 응원이 비정상적으로 압도적인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다음의 실시간 응원페이지에 중국 응원을 클릭한 비율이 한때 91%에 달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는 “이용자가 적은 심야 시간대 2개 IP(인터넷주소)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들어낸 이례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비스 취지를 훼손시키는 중대한 업무방해 행위로 간주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국민 75% 이상이 포털에서 뉴스를 접하는 상황에서 사업자가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채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질타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좌파 성향이 강한 포털사이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여론 조작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건 아닌지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음을 포함한 국내 포털에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과잉 반응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포털의 응원 메시지는 스포츠의 흥미를 높이기 위한 것일 뿐인데 여론 조작으로 몰아가는 건 과도하다는 얘기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내년 총선을 의식해 이번 사건을 빌미로 포털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연합뉴스
네이버와 다음의 정부와 여당 눈치 보기도 도를 넘었다. 네이버는 2018년부터 뉴스 홈에서 제공했던 팩트체크 서비스를 최근 중단했다. 이는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SNU팩트체크센터와 30여 제휴 언론사가 참여해 기사의 사실 여부를 검증해왔던 서비스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팩트체크 서비스가 좌파 편향적이라며 네이버를 압박해왔다.
그러나 이는 억지에 불과하다. 정부와 여당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정부와 여당이 가짜뉴스를 많이 생산한 탓이다. 네이버 팩트체크 서비스는 근거 자료를 명확하게 밝히고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 더욱이 이 서비스에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좌편향’이라고 비난하는 건 누워서 침 뱉는 꼴이나 다름없다. 가짜뉴스 척결을 위해 더 강화해야 할 서비스를 네이버가 폐지한 셈이다.
네이버는 또 고침·정정·반론 보도만 추린 ‘정정보도 모음’ 페이지를 상단에 노출하는 방식으로 뉴스 서비스를 변경했다. 언론중재위원회와 법원 등 관계 기관의 심의 최종 결과뿐 아니라 진행 상황에 대한 안내도 개별 기사 페이지 본문 최상단에 노출하도록 했다. 네이버는 정정보도 기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와 여당이 마음에 들지 않은 기사나 보도를 가짜뉴스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입으론 포털의 자율규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포털 콘텐츠에 대해서는 가짜뉴스 프레임을 씌어 언론을 통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도 정부와 여당의 눈치를 보며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 이용자의 급속한 이탈은 이런 행태에 경고장을 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