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있는 대형 아울렛에 갔을 때입니다. 제법 고가인 아웃도어 브랜드 ‘C’ 매장엘 들어갔는데 왠걸요, 꽤나 고기능성 재킷이 ‘떨이’품으로 매대에 쌓여 있는 겁니다. 그것도 달랑 5만원에요.
마침 방수발한(빗물은 막고 땀은 배출하는 기능)되는 바람막이를 찾고 있었으니, “아니 이게 어떻게 이 가격에?” 라며 빛의 속도로 재킷을 잡았습니다. 떨이 옷은 주로 너무 크거나 혹은 너무 작고, 아니면 색깔이 너무 원색인데 이 옷은 색깔도 옅은 하늘색. 왠 떡이냐 싶어 계산을 하면서도 너무 이상해서 직원에게 물어봤습니다.
저 : “이거 정가가 25만원이 넘는데 어케 5만원에 나왔죠?”
직원 : (심드렁하게) “로고가 없잖아요.”
헐.. 그러고 보니 정말 옷 겉감에 ‘C’사 브랜드 로고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려는 사람이 없던 겁니다. 물론 저야 고맙죠.
대신 ‘T…’이라고만 써있네요. C사는 자사 제품 중 하이엔드 품목에 이 ‘T…’를 붙입니다. ‘T…’는 브랜드나 회사 이름이 아니다 보니 소비자들이 꺼렸던 겁니다.
소매에는 ‘O…’가 새겨져 있습니다. C사 특허 소재로, 방수에 발한투습, 방풍까지 되는 섬유입니다. 늦가을까지 입을 수 있는 옴니테크 재킷이 5만원이라니요..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영어로 땡큐.. 일본어로 아리가또..라고…
‘C’ 브랜드 로고는 옷 안쪽에서야 볼 수 있네요. 이 색상에 이 기능을 갖추고 로고가 밖에, 그것도 가슴팍에 있었다면 아마 ‘땡처리’로 나오지 않았을 텁니다.
이해는 됩니다. ‘C’사 하면 누구나 알아주는 아웃도어 의류. 큰 맘먹고 큰 돈들여 사는 재킷인데 가슴쪽에 로고가 크게 있어야 하겠죠.
한편으로는 아웃도어 시장의 ‘허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이태리 명품브랜드 ‘F’ 의 한국지사 직원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로고가 잘 안보이는 제품은 재고로 쉽게 쌓여 결국 직원들을 대상으로 세일을 해서 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옷이나 가방이나 자기가 좋으면 되는데, 꼭 이게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하는 걸까요?
얼마 뒤, 아내에게 기능성 재킷을 마련해 주기 위해 청계산 밑에 있는 ’M’ 매장에 들어갔습니다. 2층에 할인 제품이 있었는데 검정-회색 투톤의 재킷이 50% 할인돼 나와있습니다. 물론 이월상품이죠. 색상도 무난한데 왜 지난해까지 안팔렸을까??
아하, 이유를 알 듯 합니다. 로고가 가슴팍에 없고 왼쪽 밑단에 있네요^^; 덕분에 안 팔려 저야 아내에게 싸게 마련해 주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아쉬운 기분이 듭니다.
“정말 브랜드 로고에 대한 ‘허영심’이 있는 걸까”…
내친김에 국내 최대 아웃도어 웹 쇼핑몰 O사의 페이지를 들어가 봤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눈길을 자주 끄는 건 ‘최종 땡처리’라는 메뉴입니다. 재고를 빨리 처리하기 위한 이 업체의 서비스인데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최종 땡처리’ 상품 중 상당수는 가슴에 로고가 없는 옷들입니다. 위 사진은 K사의 비싼 방한 재킷인데 ‘땡처리’ 상품으로 나왔습니다.
땡처리로 나온 P사의 이 다운점퍼도 역시나 가슴에(!) 로고가 없습니다.^^;
그럼 가장 잘 팔리고 있는 ‘베스트 상품’을 볼까요? 오늘(11월25일) 들어가 보니… ’3+1′ ’2+1′ 등 특별행사를 제외한 일반 판매 재킷 중 위 제품이 사실상 가장 많이 팔린 품목입니다. 요즘 청계산에서 먹어준다는 스위스 브랜드 ‘M’ 고어텍스 재킷입니다. 검정색인 오른쪽 가슴팍에 빨간 ‘M…’ 로고가 선명합니다. 왼쪽 손주머니 옆엔 ‘고어텍스’도 잘 보입니다.^^ 가격은 회원할인가로도 70만원이 넘네요.
지난 10월 달엔 이게 베스트 상품이었죠. 파랑 검정 등 무난한 색상에 커다란 시조새 그림까지 더한 가슴팍 ‘A’사 로고. 몇년전부터 등산객들 사이에 ‘로망’으로 떠오른 브랜드죠. 60만원이 훌쩍 넘는 이 재킷이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가슴팍 로고도 점점 커지고 있는듯 했습니다. 눈에 확확 잘 띄게 말이죠. 아예 두터운 입체로 나오는 것들도 있습니다.
아웃도어 관계자 분들에게 간청합니다.
“가슴팍에 로고 없는 옷도 많이 만들어 주세요!! 그래야 저도 ‘땡처리’ 된 옷이라도 싸게 입어보죠!!!” ^^;
만약 제가 아웃도어 옷 수입업자라면, 절대 가슴에 로고가 없는 옷은 수입하지 않겠습니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