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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창작방법과 실제
서정문학 9.10월호 5회 연재 /김관식
4. 정서와 이미지의 형상화 방법
1) 서정시의 개념과 변화 인식
서정시란 주관적인 정서나 감동을 노래하는 방법으로 표현한 시이다.
그리스에서 주로 악기에 맞춰 노래하는 오드라는 시로 많이 창작되었다. 시의 출발은 고대로부터 발달해온 서사시와 극시였다. 서정시는 이러한 서사시와 극시가 개인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음에 비해 이와는 대조적으로 개인의 감정을 다룬 시가 나중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형식의 시가 중국의 賦나 우리나라의 시조가 이에 해당하며 노래와 함께 불리워졌다.
따라서 서정시는 오랫동안 서사시나 극시처럼 확고한 장르로 정착되지 못하다가 근대에 와서 서양의 보들레르, 말라르메, 폴 발레리에 의해 장르로 정착되었다. 점차 서정시는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는 시로 발전되었다. 개인의 정서를 표현한다는 말은 주관을 중시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서정시는 주관적인 정서표현일 수밖에 없다.
주로 시인이 눈으로 관찰되는 사물이나 시인의 영감에 감지된 순간적인 감정이나 생각들이 시의 모티브가 되어 개인의 정서적인 체험을 노래하는 것으로 서정시가 발전해왔으며, 현대에 와서는 정서를 노래로 부르기보다는 이를 명확한 이미지로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회화적인 경향의 형상화 방법으로 표현한다.
이미지로 시각화할 때 주로 많이 사용되는 신체의 감각기관은 눈이다. 시각에 의해 보여주게 되나 시각에만 절대 의존하여 표현하라는 말은 아니다. 시각을 비롯하여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오감으로 표현되어야 구체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주관적인 정서를 객관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드러내기 위해 객관적인 상관물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세밀한 묘사를 통해 주관적인 정서를 보다 명확하게 시각화해내야 한다.
시를 창작함에 있어 슬픔, 기쁨, 고독, 허무, 등과 같은 주관적인 정서를 시각화하여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형체가 없는 것을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사물로 시각화하여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이 형상화다.
주관적인 정서나 감정을 그 상태로 토로하는 것은 낭만주의 시대 개인의 감정을 중시했던 시기의 시 창작 방법이었다. 그러나 현대시에서는 감정을 절제하고 반드시 가공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마치 음식을 요리하지 않는 채 재료 상태로 그대로 내미는 것을 낭만주의 감정 토로의 시라면, 오늘날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미적인 감각을 살려 음식을 다양하게 요리하여 보기 좋은 그릇에 담아내는 것처럼 누가 보아도 맛깔나고, 때깔 나는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 과정을 시의 형상화라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의 원재료인, 쌀, 보리, 콩 등의 잡곡과 배추, 무, 파, 감자, 호박 등을 그대로 내놓고 음식이라고 내놓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건강식을 하려면 가공과정을 적게 거칠수록 좋다고 하지만 음식재료를 그대로 내놓고 먹으라 하면 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의 소재에 자기 생각을 보태어 그대로 시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 시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요리하지 않은 음식을 내놓듯 형상화과정을 거치지 않는 주관적인 감정을 그냥 토로하는 시를 시라고 발표하는 시인들이 의외로 많다. 보통 습작기를 거치지 않고 사설 문예잡지에서 상업성을 목적으로 무작정 등단한 시인들이 시인칭호가 마치 자격인양 착각하고 요리를 하지 않는 재료상태의 음식을 무성의하게 내놓듯이 형상화 과정이나 정교한 시어 선택이라는 세공과정을 거치지 않는 주관적 감정 토로의 시를 시라고 발표하고 있다. 이런 시들은 낭송했을 때는 직접적인 감정토로이기 때문에 청중들의 시각적 이미지를 잠시 자극하여 감동을 줄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활자로 발표되었을 때 전혀 이미지가 없는 잡다한 재료 상태를 내놓은 것과 같이 정서적인 미감을 느낄 수 없다. 고급 독자의 인상을 찌푸리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서양의 현대시가 들어온 역사가 100여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예사조의 취향의 시가 범람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수세기에 걸쳐 발달한 여러 사조가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들어와 유입됨으로써 근대적인 정서를 표현했던 사조의 영향과 현대시의 흐름이 혼재해 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따라서 낭만주의적인 주관적인 감정의 직접적인 토로형식을 현대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마치 김치와 된장국을 먹어온 사람이 오늘날 서구식 다양한 음식에 대한 거부반응처럼 고대로부터 발달해온 노래와 결부된 시적 표현을 답습하려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때 선비들만이 시를 향유했다. 유교적인 전통에서 남존여비의 시대 남자들만이 시를 창작하고 즐기다가 더 즐겁게 시회를 열기 위해 기생제도를 두어 기생에게 시 창작과 악기 다루는 방법을 익히게 하여 남녀가 같이 즐기는 남성위주의 시 문화를 즐겨왔다. 이러한 특권층의 전유물로 시는 창작되고 향유되었다. 일반 백성들은 구전되어오는 민요를 부르고 살아왔다. 이러한 특권층의 전유물에 대한 부러움에 향수가 오늘날 너도 나도 시인이 되겠다는 열풍을 일으키고 독재 권력에 억압되고 가난의 굴레에서 억압되고 표현하지 못한 문화적인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일반인들도 낭송시 열풍에 휩싸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문화의 대중화 형상은 선진문화시민으로 가는 긍정적인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대시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화적인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시 공부를 하지 않고 시를 창작하고 발표하는 무모한 행위는 시를 불신하는 풍토로 변질되게 되고, 시단의 무질서한 물질화, 속물화, 대중화를 부추기는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문단에 수많은 부작용과 잡음을 낳게 한다.
시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턱대고 뛰어든 사이비 시인들이 하는 짓이란 결국 그의 의식 수준에 맞는 문화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전력투구할 뿐이다. 즉 시 창작 능력이 부족하니까 대필로 대리만족하고 남의 작품을 표절하기도 하며, 문학단체의 감투를 노리는 일에만 문학적인 열정을 낭비하고, 감투를 얻음으로서 시인이 된 대리만족감을 채우려는 속물적인 행태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나라 시단은 시인이라는 간판이 있을 뿐 시가 존재하지 않는 시의 불신풍토가 가속화되고 있고, 이를 부추기는 사설 문학잡지들의 신인 제도에 의해 거짓된 시인 노릇 행세를 하는 시인들을 무더기로 양산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인은 인간 내면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진실과는 상반된 시인 칭호로 거짓된 시인 행세로 자신을 속이고 시를 창작하는 시인이 독자를 감동시킬 시가 나올 수 없고, 자신을 돋보이려는 거짓된 야심만 드러나기 마련이다. 시는 시인 자신이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진실 되게 내면을 드러낼 때 다른 사람이 공감하는 것이지 시단의 높은 감투가 있다고 하여 그 시인의 시가 독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는 곧 그 사람인 것이다.
거짓된 삶을 진실 된 삶으로 바꾸는 고통을 감수했을 때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명시가 창작 되는 법이다.
남에게 돋보이는 야심 보다는 자신에게 솔직했을 때 좋은 시가 탄생된다. 오늘날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시 창작을 위한 공부는 소홀히 하고 인간관계에 치중한다거나 모임을 만들고 잡지를 창간하여 문학 밖의 일에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이 많다.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이야 가치 있는 일이지만, 자칫 가진 것 없이 남의 것에 의존하여 문학 활동에 치중하다보면 시를 잃고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온다. 시는 자기 내면세계를 충실히 가꾸었을 때 좋은 시가 탄생되는 것이지 엉터리 시를 발표하는데 급급 한다고 해서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알리려하지 하기 때문에 문학 이외의 일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그렇게 되면 좋은 시는 한 편도 남기지 못하고 화려한 문학 활동 이력과 잡동사니 시집만 남게 된다. 남이 읽어주지 않는 시집을 혼자 자비출판 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시인의 명리적 가치를 실현할 뿐이다. 좋은 시를 쓰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가 시인의 선결과제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개화되면서 오랫동안 익혀온 시적인 전통은 노래와 결부된 것들이어서 개인정서를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부적응 문화현상으로 현대시에 대한 접속이 불량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핸드폰의 문화가 터치기능으로 모든 정보를 시각화하여 편리하게 제공하는 시대인 것처럼 현대시의 문화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미지를 시각화하여 우리들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만큼 많은 시인들이 현대시의 감상능력을 기르는 일은 바로 현대시를 올바르게 창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국내외 유명시인의 명시를 많이 감상하여 그들이 복잡한 현대정서를 어떻게 형상화하여 시적인 미감을 표현했는지 다양한 방법을 익히는 일이 최선의 방법이다.
2) 이미지의 형상화
이미지란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사물에 대하여 마음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이나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서 받는 인상”이다. 심상, 영상, 표상 등이라고도 하며, 인간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사물의 감각적 영상으로 주로 시각적인 것을 뜻 하지만, 시각 이외의 감각적 심상도 이미지에 포함된다. 이 낱말의 어원은 라틴어 이마고(imago)이다. 동사형인 라틴어 이미타리(imitari)는 '모방하다(imitate)'는 뜻이다. 따라서 이미지는 "어느 대상, 특히 사람의 외적 형태의 인조적 모방 또는 재현", “머릿속에 떠오른 것으로 감각적인 성질을 지닌 것”을 뜻한다.
이미지는 주로 육체적인 감각기관을 통해 산출되지만, 이는 지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면 육체적 지각을 통하지 않고 산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의 경우 상상력이나 환상과 관련을 맺는다. 지작관 관계 되든 상상력이나 환상과 관계 되든, 이미지는 모든 정신 속에 기록되는 감각적 모습이라는 공통성을 띄고 있다. 즉 이미지는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각이 상상력을 통해서 새로운 감각적 모습으로 기록된 것이며, 이는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생산된다.
시는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특수한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 우리들의 감각기관에 호소하여 사물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환기시킨다. 시의 이미지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을 보다 구체화함으로써 시의 내용을 보다 선명하게 인지시키고, 시적 상황을 암시하거나 상징함으로써 독자들의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서 시의 이미지는 시인이 전달하고픈 관념이나 실제 경험, 또는 상상적 체험들을 미학적으로 그리고, 호소력 있는 형태로 형상화 시킬 수단으로써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이미지는 관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관념의 육화하게 된다. 관념을 직접 진술하지 않고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생생한 현실감을 환기시켜주는 예술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시어의 모호성을 야기 시키기도 한다. 또한 이미지는 시의 배경을 마련해주는 기능, 즉 시적 상황을 구성하는 기능도 수행하며, 상상력을 자극하고 쾌감을 주는 그림의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루이스는 “이미지란 독자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방법으로서,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그림의 언어이다.” “시인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이미지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그가 현재 쓰고 있는 시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기여하지 않는 한 또는 시 속의 다른 이미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시인은 그것을 쓸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 한데서 시의 정서와 무관한 이미지는 시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많은 시인들이 서정시가 정서표현임에도 정서를 표현하기 보다는 머릿속의 관념에 매달려 시어의 의미를 쫓아가는 시를 쓰기 때문에 정서가 혼란한 시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의 이미지와 관련 있는 소나기나 바다 소재의 시인데, 전혀 관련이 없는 먼지나 불의 이미지 표현이 등장한다면 옥에 티가 되어 시의 분위기를 망가뜨려 놓게 된다. 이는 마치 옛날 역사물의 드라마를 촬영하는데 전봇대나 현대식 건축물이 배경에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리얼리티가 깨져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시각으로 각종 문학지 추천작이나 문학상에 당선된 시에서도 이런 언밸런스의 시가 종종 눈에 띄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심사위원의 안목을 의심하게 하는 중요한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지와 묘사는 매우 상호 보완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묘사만 잘 되어도 이미지가 살아나게 되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에서 축어적 묘사나 암시, 은유의 보조관념, 등 감각적 지각의 모든 대상과 특성을 넓은 의미의 이미지에 해당되며, 좁은 의미의 이미지는 시각적 대상이나 장면의 묘사를 의미한다.
이미지와 비유는 사물의 겉과 속과 같은 관계이다. 사물의 시어로 드러내는 외연적 시점을 비유라 한다면, 시인이나 시를 분석하고 감상하는 독자의 마음속 정신 작용의 내면적 시점을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로 형상화할 때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언어의 조형물을 세우게 된다. 조형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화된 언어의 조형물을 통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독자가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슬픈 느낌을 들도록 형상화하려면 슬픈 상황에 걸 맞는 소재의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슬픈 상황이라면, 병원에 누워 있다던가, 요양원에 있는데 자식이 찾아오지 않는 환경, 초상집 같으면, 검은 옷, 검은 리본, 조화, 촛불, 국화, 향로, 관, 장례식장 풍경, 부의봉투, 향불 등이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의 형상화 작업을 할 때는 시인은 희곡작가나 드라마작가 또는 연극의 연출자, 드라마나 영화 촬영 감독이 되어야 한다. 사진작가의 경우는 가장 멋있는 미감을 표출할 수 있는 위치나 시간대를 골라 가장 마감이 고조된 순간을 포착하여 서터를 눌러야 한다. 그리고 화가의 경우 그림을 그리는 대상을 화가의 정서를 가장 적절하게 담기 위핸 구도와 색을 배치하여 정서를 표현하게 된다. 조각가는 자신이 표현하고 자하는 형상을 구상하여 가장 적합한 소재를 선택하여 자신이 의도한 바를 조각품으로 나타내게 되는 이치이다.
시의 형상화는 곧 언어로 조형한 조각품이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그렇다면 조각품과 그림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각가나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창작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은 조작가나 화가의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재능보다는 꾸준한 노력의 결과가 더 클 것이다. 따라서 시의 형상화를 잘 하려면 평소 이미지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미술학원에 가면 그림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데생 연습을 수없이 반복하게 한다.
기초적인 데생 훈련이 잘되어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 창작에도 기초적인 데생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시의 데생은 정서의 이미지화 연습이다. 기쁨. 슬픔, 허무, 고독, 분노 등의 인간의 정서를 날마다 임의적으로 식물이나 동물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각각의 정서를 이미지화하는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이러한 정서의 이미지화를 정밀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시의 형상화라고 볼 수 있는데, 시의 형상화를 위해 눈, 코, 귀, 입, 손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조형하고, 그 감각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언어를 선택하여 구체적으로 이미지를 시각화해내야 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형상화, 감각화가 잘 되어야 만이 독자들을 공감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초보 화가가 제 기분대로 마구잡이로 그림을 그려놓고, 추상화 운운하면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혼자 떠들어댄들 누가 그 그림을 공감하겠는가? 그림을 잘 그리려면 스케치나 데생 연습을 반복하여 자기만의 기술을 습득하는 일이나 색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그림의 효과를 십분 노릴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화가라야 좋은 그림을 그려 감상하는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듯이, 시를 잘 쓰려면 많은 명시를 읽거나 여러 시인들의 시론을 읽고 나름대로의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 시를 잘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 있거나 시 소재를 찾는다며 여러 곳을 여행을 쏘다닌들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기초적인 이미지 훈련을 하지 않고 시를 잘 쓰겠다고 큰 소리를 치는 시인은 일생동안 좋은 시 한편을 남기지 못하고 시라는 형식을 빌린 낙서만 남기게 된다.
형상화란 시 창작하는데 있어서 가장 벗어나기 힘든 관념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정서의 전달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시인들이 관념 속에서 시상을 전개하다보니 정서가 전달되지 못하고 장식적인 수사나 설명이 되어 자칫 시인 혼자 시어에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 주관적인 정서의 표현으로 독자에게 시적 정서를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게 된다. 한자어는 상형문자로 한자어 자체가 하나의 모양을 본 딴 관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한자어로 시상을 전개하면 리듬이 깨져버리고 명확한 이미지로 시각화되지 않게 된다. 한자어나 상투적인 시어로 시적인 심미감을 표현하기에는 부적당하다. 따라서 한자어는 되도록 그에 상응하는 한글로 대체하여 표현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명확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시각적으로 정서를 형상화하여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형상화작업은 집을 지을 때 설계도와 같다. 설계도가 없이 집을 지으려면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3) 시의 형상화 방법
시를 형상화하려면 시적 대상에 대한 다각적 세심한 관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물을 새롭게 보는 안목이 없이는 좋은 시를 쓸 수가 없다. 사물의 보는 안목은 유명한 시인들이 시를 빚는 창작기법을 익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나라 유명시인들이라고 해서 대중들이 선호하는 시들에서는 별로 시적인 미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가 없다. 대중들이야 문학성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쉽게 읽고 위안을 받는 시를 선호할 뿐이다. 대중들이 선호하는 시인들의 시는 문학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시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칫 이러한 시인들의 시를 자신도 따라하면 현대시의 기법을 익히지 못하고 시를 잘 못 이해하기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아류가 되어버리고 만다. 시의 아류는 모창 가수와 다른 바가 없다. 남의 것을 흉내만 낼뿐 자기 목소리가 없기 때문에 예술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 문학사에 남은 시인들의 시 창작 기법을 익히고, 세계 노벨문학상이나 각국의 문학사에 기록된 시인들의 시작품을 감상하고 그들의 시론을 읽고 다양한 시 창작 기법을 익힐 때 시를 보는 안목과 사물을 보는 안목이 길러지게 되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안목이 길러지면 사물을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에서 새롭게 보고 형상화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러한 기술을 발상이라고 한다. 시의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발상이다. 누구나 보는 일상적인 눈으로 사물을 표고 표현하면 상투적인 표현밖에 나오지 않는다. 상투적인 표현의 시는 독자들의 눈 밖에 난다. 사물을 꿰뚫어 보려는 깊은 사색이 없이 즉석에서 보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데서 상투적인 표현이 나온다, 이런 표현의 시 창작은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참신한 발상은 좋은 시를 창작하는 전제조건이다. 심마니가 산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산삼을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 먼저 자신의 몸을 가다듬고 경건한 마음 자세로 산삼이 있을 곳을 몇 날 며칠 찾아나서야 겨우 찾아낼 수 산삼을 있다. 부단한 정성과 노력이 있어야 산삼이 눈에 띄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시를 창작하기 위한 노력이 있을 때 참신한 발상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항상 시를 빚을 때는 심마니의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자연과 가까이 하고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할 때 산삼과 같은 좋은 시가 창작되는 것이다.
① 일상생활의 현장과 연결하여 형상화한 예
우리의 일상생활의 현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을 연결하여 형상화한 이하석의 「새1」을 예를 들어보자.
제 18번곡만 온몸의 상황으로 줄곧 불어대는 새. 우리들의
신청곡을 받지 않네.
- 이하석의 「새 1」 전문
새가 노래하는 것을 자신의 생활 경험으로 미루어 표현한 시이다. 노래방에서 사람마다 자신의 18번곡 즉, 애창곡을 선택해서 부르는데, 새들을 노래방에서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못 부르게 하고 자기 노래만 부르는 사람과 비유해서 제 18곡만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들의 신청곡을 받지 않는 상황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표현했다. 누구나 표현할 수 있는 것임에도 ‘새=노래방’의 발상이 이 시의 형상화의 바탕이 된 것이다.
바캉스/휴대폰/무료로 대여해드립니다.//가로수마다/휴대폰/벨소리/요란하다.//맴맴맴/진동하는/ 나무들의 휴대폰//지금은 땡볕 수업중입니다./나중에 전화하겠습니다.
-김관식의 「매미」 전문
이 시는 ‘매매=휴대폰’이라는 간단한 발상으로 형상화한 시이다. 누구나 발견해낼 수 있는 우리 주위의 상황을 가져온 것뿐이다. 이와 같이 어떠한 현상을 우리 생활에서 경험하는 사실과 유사성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연결해보지 않는 사물이나 상황을 연결해내는 작업이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② 작은 벌레의 세심한 관찰과 사유로 형상화한 예
우리 생활에서 발견한 벌레 한 마리에 대해 세심한 눈으로 관찰하고 깊은 사색을 하면 좋은 시를 빚게 된다. 형상화는 묘사로 구현되기 때문에 사물을 묘사만 잘 해도 그 자체가 형상화되는 것이다.
유리창에 송충이 한 마리 붙어 있다
아파트 10층 창문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
송충이가 기어 온 긴 높이를 생각해 본다
오를수록 더 높아지는 높이
아무리 힘차게 꾸물거리며 기어도
벽 창문 벽 창문 벽 창문 벽 창문 벽 창문.......
온몸이 허리로 된 송충이는 그래도
부지런히 뒤 허리로 앞 허리를 밀어 올린다
허리 밑 다닥다닥 점 같은 다리들이
유리창에 아슬하게 붙어 있다
흰 갈대잎 같은 털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몸도 털이 휘어지는 방향으로 기우뚱거린다
습관의 힘이 아니었다면
송충이는 벌써 10층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떨어져도 부러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이다
그러다 갑자기 허리걸음을 멈추고
송충이는 허리로 된 머리를 높이 들어
여기 저기 허공을 한참 더듬는다
이 나무는 가도가도 거대한 평면 사각뿐이다
이파리 하나도 없이 어떻게 광합성 하나
아무래도 길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허리를 늘였다가
깊은 주름이 생기도록 줄이면서
송충이는 11층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 김기택의 「유리창의 송충이」 전문
아파트 10층 창문에 송충이가 달라붙은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생명력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묘사로 형상화해낸 시이다. 이 시의 첫머리를 “유리창에 송충이 한 마리 붙어 있다/아파트 10층 창문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라는 의문의 발상에서 시작하고 있다. “부지런히 뒤 허리로 앞 허리를 밀어 올린다.” “허리 밑 다닥다닥 점 같은 다리들이/유리창에 아슬하게 붙어 있다/흰 갈대잎 같은 털들이 바람에 휘날린다/몸도 털이 휘어지는 방향으로 기우뚱거린다”, “송충이는 허리로 된 머리를 높이 들어/여기 저기 허공을 한참 더듬는다” 등의 세심한 관찰 상황의 기록, “습관의 힘이 아니었다면/송충이는 벌써 10층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떨어져도 부러질 것은 없지만/그래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이다”라는 화자의 해석적인 진술로 이 시는 짜여 있다. 이처럼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사물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묘사하는 것도 형상화의 한 방법이다.
③ 과거 체험을 형상화 한 예
시의 소재 원천은 시인 자신의 경험이다. 그 경험을 객관적 상관물인 사물을 통해 재현해내어 형상화 할 수 있다. 손택수의 「소가죽북」은 과거의 체험을 끌어내어 ‘소=북=어머니’로 발상하여 형상화 한 예를 보자.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살가죽만 남아 북이 된 소의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한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어머니가 그랬다
병든 사내를 버리지 못하고
버드나무처럼 쥐어뜯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던 울음에도
저런 청승맞은 가락이 실려있었다
채식주의자의 질기디질긴 습성대로
죽어서도 여물여물
살가죽에 와닿는 아픔을 되새기며
둥 둥 둥 둥 지친 북채를 끌어당긴다
끌어 당겨 연신 제 몸을 친다
-손택수의 「소가죽북」 전문
「소가죽북」은 북을 두드리는 공연장의 모습을 보고 불현 듯 떠오른 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 북소리와 연결 짓는 방법으로 형상화한 했다. 이처럼 현재의 사물이나 상황을 과거의 경험과 연결지어 형상화함으로써 한 편의 시로 압축해 표현할 수 있다.
④ 자연사물을 깊이 사유하여 형상화 한 예
자연현상이나 사물을 깊은 사유과정을 거쳐 시로 형상화할 수 있다. 시골 처마의 「거미줄」을 자세히 관찰하고, 시인 자신 나름대로 그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해석하여 진술하는 방식으로 형상화해도 좋은 시가 된다.
허공에서 찢어져 펄럭이는 거미줄
해질녘이면
처마그늘로 엉금엉금 돌아가던
늙은 왕거미는 홀로
죽었다
허공이 왕거미의 큰 무덤이다
허공이 왕거미의 큰 자궁이었지
찢어진 거미줄에 내려오는
해 삭은
달빛
맺히는 흰 밤 이슬
-최승호의 「거미줄」전문
최승호의 「거미줄」은 시골 한옥집의 천정에 매달린 거미줄을 자세히 관찰하고 측은지심을 담아 시각화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⑤ 시인의 내면세계를 형상화 한 예
시인 자신의 내면세계를 사물의 존재 형태나 상황으로 엮어가는 방식으로 형상화 할 수 있다. 시적 대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짜임새 있게 연결하여 형상화해내야 성공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주관적인 감정이 많이 개입되므로 자칫 객관성을 잃어버릴 개연성이 많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 테니
-나희덕의 「뿌리에게」
자신의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한 폭의 내면세계 그림이다.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될 소지가 많아 객관적인 정서로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할 개연성이 있으며, 주로 암시와 상징의 시어로 표현하여 애매성과 모호성을 야기 시킬 우려가 있다. 자칫 잘못하면 난해시가 되어버릴 경향이 짙다. 고도의 형상화 작업으로 내면세계를 명징하게 드러내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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