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반도에는 지난 1953년도에 6.25 전쟁이 휴전되면서 오늘 2003년 까지 50년동안 불안하나마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좀 불안해 질 것 같습니다. 이번 이라크 전쟁으로 인하여 지구촌에 전쟁이라는 도화선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전쟁이 빈번할 것 같습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미국의 패권이 약해간다는 것입니다.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함락 되고 24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왔던 후세인이 축출되자 바그다드는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무정부 상태라는 것은 무법천지라는 뜻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악덕 정권이긴 하지만 후세인이 집권하고 있을 때는 그 나라가 질서가 있고 나라꼴이 있었는데 정부가 무너지고 나자 모두가 도둑근성이 살아나서 왕궁과 박물관과 심지어 병원까지 약탈하는 추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정부라는 것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직장에 출근하면서 다녀올게 하고 가족과 편안하게 작별할 수 있는 것도 정부가 있기 때문이고,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버스가 시간 맞추어 오는 것도 정부가 있기 때문이고, 다음 화요일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 그것을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정부가 있기 때문이고, 월말에 봉급 받을 것을 믿고 한 달 내내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정부가 있기 때문이며,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마음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정부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도덕한 정부라 할지라도 정부가 무너지면 최소한의 질서마저 없어지고, 질서가 무너지면 모두가 내일을 기약할 수가 없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라 안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미국이 세계의 골목대장 역할을 하면서 그런대로 질서를 잡아 주었는데,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해서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 등이 전쟁반대를 명분으로 미국에 대하여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전쟁을 쉽게 승리함으로서 얼마동안 세계의 골목대장역할을 더하게 되겠지만, 전쟁에 반대하며 딴죽을 걸던 프랑스와 독일과 러시아가 전후 복구사업에 끼어들려 하고, 미국은 자기가 잡은 사냥감을 나누어 먹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전쟁의 마무리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후세인이 죽지 않고 시리아나 이웃 나라로 몰래 숨어들어간 것이 드러난다면, 미국은 후세인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그 나라를 공격할 것이고, 시리아를 미국이 공격하면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고,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 가담하면 아랍권 전체가 가담하게 되어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이 났는데도 미국의 주가는 올라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아직도 그런 불안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번 전쟁이 깔끔하게 마무리 되지 못하고 복잡하게 얽혀서 미국의 경제가 타격을 입게 되면 미국의 주도권이 약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패권국이 되려는 야심을 품은 나라들이 덤비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기 까지 한동안 전쟁의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앞으로 미국과 겨룰만한 나라는 중국이라고 하는데, 만약 중국과 미국이 한판 붙게 되면, 한국은 그 중간에 끼어서 또다시 옛날의 청일전쟁, 러일전쟁처럼 강대국들의 전쟁 마당이 되는 신세가 될지 모릅니다.
둘째는 공산주의가 실패로 끝나고, 소련이 무너지면서 이념중심의 시대가 가고 민족주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난 십 여 년 만에 백여 개의 새로운 나라들이 세워졌습니다.
이제 같은 나라 안에서도 종족끼리 뭉치고 종족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동 티모르나 코소보나, 아프가니스탄 등의 예가 그것입니다.
마24:에 보면,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 고 6-8에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바야흐로, 전쟁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을 누구보다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입장입니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에 이라크와 이란과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목한 바 있습니다.
이들 나라는 테러단체들을 지원 해왔고,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고 있는 나라이며, 국제적인 규범을 지키지 않는 나라이고, 북한 같은 나라는 핵으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고, 백성들이 수없이 굶어죽어도 그것은 상관도 하지도 않고 무기만 비축하는 나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이라크의 전쟁이 끝나가자 세계의 이목은 이 다음은 어딘가 하면서 북한을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기회 있는 대로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 북한의 문제는 대화로 해결 할 것이라 고 말을 해왔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음달에 우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그 문제를 많이 논의하겠지만, 북한이 고분고분 하지 않을 경우에 아무리 우방국들이 말려도 미국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말 것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자꾸 내려갈 조짐을 보이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까지 정말 큰일이 납니다.
이렇게 불안요소들이 증가하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이 불안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 불안장애의 일종인 공황장애 라는 증세로 입원하는 사람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숨이 막히고 쓰러질 것 같은 증세가 나타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사가 계속되거나 변비가 계속되어 병원을 찾은 사람들이 있는데, 의사의 진단결과는 불안장애라는 것입니다.
이런 불안감은 달러 사재기, 금 사재기 같은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는데, 3월 초의 달러예금은 139억 달러나 되는데 이것은 2월초보다 30%정도 늘었고 금값도 꽤 올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불안해할까 하고 인터넷 조사를 해봤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나왔답니다. 첫째는 북한 핵 문제로 인한 전쟁공포이고, 둘째는 정부와 정책의 미숙 때문이고, 셋째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인 갈등 때문이고, 넷째는 경기불황과 이로 인한 사업부진 때문이고, 다섯째는 주한미군 철수논란 때문이고, 여섯째는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는 서열파괴 등 사회적 변화에 대한 불안감도 한 이유가 된답니다. 특히, 20대의 실업자가 많습니다. 국가 전체의 실업률은 3.7% 인데 비하여 20대의 청년 실업률은 8.5%나 됩니다.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요즈음 SARS 라는 괴질이 전 세계를 휩쓰는 바람에 더욱 불안이 가중됩니다.
이렇게 불안감이 증가되자 사람들은 마음을 달랠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심신수련이 인기를 끌고 있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마음을 달랠 방법을 찾아 각종 수련원으로 몰려든다고 합니다. 기를 불어 넣는다는 단학, 신라시대 화랑도에서 발전시켰다는 국선도, 인도에서 비롯된 신체 단련법인 요가가 인기를 끈다는 것입니다. 저 계룡산에는 마음수련원 이라는데 있다는데, 요즘 갑자기 수련생이 40%나 늘었다고 합니다. 지난 3월20일에는 베트남에서 온 틱낫한 이라는 중이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화를 주제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을 강연을 했는데 3,000여명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자기 마음을 다스려서 불안감을 없애보려고 하지만, 처음에는 안정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을 자기가 다스리는데 성공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 같은 사람도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만 행하는 자기를 고발하면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절망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세상에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수련을 한다는 곳에 가도 결코 평화를 얻지는 못합니다.
그럼 우리에게 대안은 무엇입니까?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천지를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내가 너를 만들었고 조성했고 불러내 내 것을 삼았으니, 천하의 모든 나라들에게 명령하여 너희를 해치지 못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를 철저하게 책임지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분명한 약속입니까?
이 세상의 만사는 그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바다의 풍랑도 그가 조성하시고 땅의 골짜기도 그분이 조성하셨습니다. 이 땅의 백성 중에 누구하나도 하나님이 만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들은 그분의 아들의 피로 거듭난 사람들이요, 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역사를 주관한다는 말은, 한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고 한 나라를 패망하게도 하시며, 당신의 뜻을 위하여 어느 왕조를 일으키기도 하시고 어떤 사상을 망하게도 하신다는 말입니다.
애굽 땅에 7년 동안 풍년이 들게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요셉이 해석한 꿈이 들어맞게 하려고, 그렇게 해서 요셉을 신임받게 하려고 하나님이 일으키신 7년 연속 풍년이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7년 대흉년을 들게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요셉의 정책대로 7년 풍년동안에 비축했던 곡식으로 애굽의 백성들을 먹여 살리고, 애굽의 조세정책을 완성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일으키신 흉년이었고, 가나안에서 사는 가족들을 애굽으로 보내려고 일으키신 흉년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옛날에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애굽 땅에서 수백만으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요셉의 덕을 보면서 애굽에서 잘 살고 번성하자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잊어버리고 애굽에서 안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번성했으니 이제 그들에게 주신 땅 가나안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모르는 사람들로 애굽의 왕조를 바꾸어 버리셨습니다.
출1:8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라고 쓰여 있는데, 요셉을 등용한 왕은 애굽의 17왕조인 힉소스 왕조였습니다. 그런데, 정변이 일어나서 힉소스 왕조가 몰락하고 제 18왕조의 티투모세 1 세가 집권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을 박해해서 그들은 애굽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거기서 꺼내어 가나안으로 가게 하려고 만들어 내신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역사를 당신의 마음대로 주관하시며 당신의 백성들을 중심에 놓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두려움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는 어떻게 불안과 두려움을 이길까요?
1.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모든 재난은 인류가 죄 지은 뒤에 찾아온 것이고 죄는 재난을 불러오고 심판을 불러옵니다. 그러나 죄를 용서받으면 채찍이 그치고 재난이 물러갑니다.
잠 28:1 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성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심판받아야 마땅한 죄인이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를 믿어 그동안의 죄를 용서받고 의인이 되는 입문식입니다.
요6: 54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 5:24에는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사람을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어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 죄 사람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거두어졌고,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개벽하는 난리가 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동행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단이 예수님에게 와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는 시험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과연 함께 하실까? 하는 의심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이후에 하나님은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보호하며 인도해 주셨건만 므리바에서 물을 얻지 못해서 잠시 목이 마르자 그들은 하나님이 정말 우리 중에 계신가 하고 의심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것을 의심하면 사람은 불안에 빠집니다.
그러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라고 하셨으며,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두려움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3. 사명이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그의 피에 참여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생명을 나눈 사람이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됩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 대신으로 살아야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바울사도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만드셨고 나를 살려주셔서 내가 주님 때문에 살게 되었으니, 그를 위해서 일하다가 죽는 것도 보람된 일이다.” 라고 사명의식을 고백한 말입니다. 이렇게 자기 사명을 투철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할 일이 남아있는 사람은 재난에 걸리지 않게 하시며 어떤 재난에서도 그를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명으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
세상 사람들은 수많은 불안요소들 때문에 마음에 안정을 잃어버리고 장래를 불안해하며 두려워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를 죄에서 건져서 당신의 것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 이 상황에서도 나를 지키시고 동행하신다는 것을 믿고 오직 내게 맡기신 사명을 다하리라,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의 복음을 힘을 다해 전파하리라,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리라 하고 결심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담대하고 견고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