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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계간평
가치 있는 체험의 문학적 형상화
- 『대한문학』 2004년 봄호를 읽고 -
권대근
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성찰한다. 이러한 성찰을 문학적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면 감동과 공명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수필이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일어나는 교감이 중요하다. 교감은 체험을 정서적으로 형상화했을 때 일어난다. 문학적 표현이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창작한다는 것은 ‘가치의 창조’이다.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이다. 사실의 기록으로 문학이 되지는 않는다. 가치 있는 체험을 바탕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철저한 집필 의도가 있어야 한다. 여과되지 않은 감정의 노출은 수필의 재료가 될 수 없다. 세련되지 않은 표현이나 심미적 가치가 배려되지 않은 소재는 문학적 의의가 없다. 수필이 고백 문학이라고 했을 때는 그 고백에 흥미를 갖고 귀기울일 만한 가치가 견지되어야 한다. 수필이 문학 장르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기쁨을 주는 높은 차원의 쾌락성과 교훈을 주는 교시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향기로운 세상’에 실리는 수필들은 인간애의 향기가 물씬 풍겨 교시성은 충분히 나타나지만 미학성의 부재로 지적 쾌락성은 약하게 드러난다. 수필은 고도로 세련된 지적 성찰의 형상화여야 한다. 이러한 요소의 심화와 확대는 수필의 문학성을 높이는 데 필요 불가결의 것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김향자의 <되돌려 준 상품권>은 ‘향기로운 세상’ 코너에 실린 짧은 수필이다. 수필은 길이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적은 분량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한정된 분량 속에 최대한의 알찬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작가는 제재를 하나의 초점에 맞추어 전개해 나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제재에 포커스를 집약해서 주제를 구체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수필의 틀을 유지해서 짧은 수필에 문학성을 부여했다. 그녀가 다룬 소재는 교단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민감한 촌지 문제다. 뇌성마비의 휴유증으로 보행이 자유롭지 못한 아이를 배려하는 작가의 사랑에 감동한 아이의 할머니가 성의를 표하고자 작가인 선생님에게 상품권이 든 편지를 전달했는데, 작가는 이를 되돌려 준 경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한 편의 수필에 향기를 불어넣었다. 선행의 과정을 수필화하는 경우, 대체적으로 내용의 가치로움을 떠나 독자와의 교감면에서 실패하기 쉽다. 선행이 자랑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제의식이 약해진다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작가는 인물의 설정에서부터 사건의 전개 과정까지 ‘되돌려 줌’의 당위성과 인과성을 설득력 있게 잘 드러내어 리얼리티의 진솔성을 보여줌으로서 선행의 제재가 갖는 약점을 잘 극복했다.
김홍은의 <사랑의 선물> 역시 짧은 수필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향기로움을 전하기 위해 편집인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기획 코너가 ‘향기로운 세상’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코너에 실리는 수필은 엄밀하게 말하면 테마수필에 속한다. 위의 작품 역시 편집자의 의도를 작가가 수용함으로써 씌어진 한 편의 감동 수필로, 인간의 향기를 내자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호에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었지만 하나 같이 이 코너에 실린 작품들은 감동적으로 읽힌다. 가슴 찡한 감동을 준다는 것은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그렇다고 이런 글들이 전부 좋은 수필인가 하는 의문에는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문학적 감동이란 체험의 인간화에서 오는 감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문학이 수필의 전부는 아니다. 수필은 인식과 형상의 복합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문학수필은 아니다. 그런데 왜 감동을 주는 걸까. 작가는 가치 있는 체험을 수필화해서 주제의식인 메시지를 내면에 숨겨 두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적인 문학적 틀은 갖추지 못했으나 분명히 잡문이 아니라 수필이다. 주제적 장르로서의 특성을 삼단 구성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주었고, 한 스님의 선행을 소개함으로써 인간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엄현옥의 <겨울비 내리던 날>도 마찬가지로 짧은 수필이다. 이 짧은 수필이 말해주는 것은 뭘까. 바로 수필과 잡문의 차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화소를 중심으로 하나의 주제를 전략화하는 과정에서 수필문학이라는 문학적 장르 의식이 생긴다면, 잡문은 여러 가지 화소가 뒤섞여 하나의 주제가 잡히지 않는 수필 같은 글이라 할 수 있다. 수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제재에서 주제로 이르는 과정을 질서화하는 것이다. 좋은 수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제를 의미화하는 데 필요한 결상 하나만을 취하고 거기에 맞는 체험만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 ‘향기로운 세상’ 코너에 실린 수필들은 전부 주제적 통일성이 완벽하게 구축되고 있다. 이런 짧은 수필에서 작가가 크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서두의 암시성과 결미의 여운성이다. 또 짧은 수필에서는 수미 상관성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 작품은 ‘이 아침의 겨울비가 유난히도 포근할 수밖에 없는’ 따뜻한 마음의 운전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수필화한 것이다. 자기 택시가 오물에 더렵혀지더라도 연약한 여자 손님을 편안하게 모셔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택시 기사의 직업정신을 발견하여, 직업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작가의 모습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성의 모범으로 충분하기에, 이 이야기에는 작가의 집필의도가 함축적으로 녹아 있다고 하겠다.
정여송의 <심천>은 앞의 글과는 확실히 다르다. 형상미학이 빛나는 작품성을 보여준다. 자신의 호를 제재로 한 수필인데, 작가는 이 호를 통해 자신의 내면적 모습을 문학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발단에서 한때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나도 한때 새로운 생명을 얻고 싶어 봄비를 기다리는 나무가 된 적이 있습니다. 생각에 가난이 들면서 마음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을 때였지요’로 표현하고, 전개에서 해갈을 돕는 목비가 내려 ‘심천’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문학과의 인연을 숙명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수필의 미점은 문학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함축성도 있고, 참신성도 보이며, 탄력성과 형상성도 돋보인다는 점이다. 작가는 결말에 가서 자신의 호가 지어진 이유를 일반화하고, 그 호가 지향하는 바 이 글의 주제의식을 ‘너와 나를 가르기보다 우리라는 두루뭉실이가 됩니다’라는 표현 속에 숨겨두었다. 작가는 이런 주제를 의미화하기 전에, ‘심천은 내 문학의 안식처다’, ‘심천은 숨겨두었던 말을 꺼내어 시를 짓는 시인입니다’라는 표현으로 종속제재를 구체화하였다. 이 수필의 결말은 ‘심천은’으로 시작해서 ‘포숙아를 닮은 친구입니다’로 끝맺고 있다. 수필의 묘미인 여운성이 주는 끝맛을 달콤하게 느끼게 한다. 다양한 작법을 시도하면서 주제에 맞는 수필의 틀을 확보하려는 치열성이 돋보인다.
서영애의 <선율처럼 번지는 그리움>은 미학 에세이다. 평자는 수필을 고급문학이라는 위치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수필이 문학성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미학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미학성의 본질인 난해성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는 작가의 예술적 안목이 수필 작품 속에 투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설파해왔다. 대한문학이 기획하고 있는 테마 수필의 하나인 ‘미학 에세이’는 고급수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림 앞에 서면 피어오르는 영상을 아름다운 묘사로 구체화하고 있는 이 수필은 문장을 따라가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주는 효과는 작가의 미술 감식안이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것이다. 화가가 그린 미술품의 흐릿한 화면에서 동양적 관조와 현대적 우수를 읽어내는 작가의 안목은 인식 그 자체다. 미술에 문외한인 독자들이 발견해내지 못하는 메시지를 예리하게 밝혀 자신의 느낌과 인식을 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읽는 맛을 준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이유 없는 그리움이 느껴진다‘는 지성화된 문장을 정서화된 문장으로 뒷받침하는 탁월한 언어 운용 능력에도 박수를 보낸다. ‘왜곡은 추하게 오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표현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문체가 얼마나 개성적인가를 알 수 있다. 문단 전개도 완벽했다. 결속성의 원리에 반하는 브레이크가 없어서 어느 작품보다 깔끔했다.
라대곤의 <행복한 감옥>은 제목만 봐도 좋은 수필임을 직감할 수 있다. ‘행복한’이란 관형사와 ‘감옥’이란 명사의 결합에서 낯설게 하기 수법이 적용되었고, 행복한 감옥이라는 제목에서 주제가 암시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수필에서 제목 짓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낮은 천장 밑에 창이 없는 세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들어가 ‘문고리를 잠그고 혼자 누워 있으면 속세를 떠난 기분까지 든다’는 것은 나만의 공간에 대한 작가의 특별한 느낌이다. 문학은 가장 개성적이어야 하면서도 객관적인 것이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다만 그런 환경이 구축되지 않을 뿐이다. 작가는 이런 자기만의 방에 대한 꿈을 어릴 때부터 키워온 것이다. 돈을 벌면 제일 먼저 내 방부터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오십여 년이 지난 후에 이룬 꿈이니, 그 기쁨이 오죽하겠는가. 이 수필의 매력은 구성의 체계성과 질서화다. 발단은 자기만의 방이 주는 편안함을, 전개는 두 파트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집을 짓게 되어 나만의 방을 얻게 된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왜 이렇게 나만의 방을 갖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어릴 적의 체험을 빌려 표현하고 있다. 결말은 나만의 방이 주는 편안함을 서술하고 있는데, 자신의 서재가 행복한 감옥에 비유되고 있어 문학성이 더해진다.
임동옥의 <벚나무>는 ‘생명수필’이란 코너에 실린 비교적 짧은 수필이다. 이름의 마지막 자가 ‘옥’이라 사진과 함께 글이 실리지 않았다면, 여자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문체도 여성적이라 더욱 오판의 가능성은 많다. 서정적인 서두로 안정감을 주는 도입부가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이 수필이 갖는 첫 번째 매력이다. ‘벚나무는 우리를 두 번 홀린다’는 서두 문장이 하는 역할이 도입부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기능을 잘 소화하고 있다. 정이 많은 벚꽃 나무의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안도현 시인의 ‘벚나무는 건달 같다’는 시구를 빌려 온 것도 좋았다.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 돈 떨어진 건달 같이’라는 시구의 인용은 주제의식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보면, 이번 경우는 시 전문을 인용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 이 작품에서 빛나는 것은 제재에 숨은 의미를 발견하는 작가의 인식이다. 다른 하나는 구성의 논리적 체계성이다. 짧은 도입부에 제기된 두 가지 특성을 차례로 전개부에서 다루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 많은 벚나무, 올 봄에는 어느 여자 가슴에 꽃 멍을 들일까’라는 결말의 마무리 문장도 주제 여운성과 암시성을 동시에 주면서 수필미학을 구축한다고 하겠다.
이태경의 <덫 없는 세상>은 문학적 형상과 현실적 인식이 잘 조화된 수필이다. 이미 제목에서 주제의식이 잘 암시되고 있다. 제목을 보면 수필의 값어치를 재단할 수 있다. 이는 제목이 내용의 단적인 표현으로써 주제의식을 함축하고 상징해야 한다는 숙명적 존재라는 의미다. 이태경의 ‘덫 없는 세상’은 세상에 덫이 널려 있어 ‘덧없는 세상’이라는 의미 확대가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를 활보하는 어둠의 세력에 의한 무차별적인 인권 침해 사례를 비판하고 있다. 사생활 엿보기에 대한 군중의 관심이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의 성숙도는 개인의 사생활이 얼마나 보호받느냐에 달려 있다. 작가는 군중들은 명성이나 대중의 관심을 얻으면, 지나치게 사생활을 들추어내려 하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하는 우리 민족의 심리를 성공한 사람을 영웅으로 내세우지 못해 안달하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여 대비시키는 방법으로 주제의식을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음이 돋보인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현실의 모습을 정확히 재단해서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함축하는 그녀의 언어능력이다. ‘비난은 사람이 유명해졌을 때 대중에게 바치는 세금이라 하였는가’, ‘이 나라에선 모두 비슷비슷해야 무사하다. 두드러지거나 돋보이면 정을 맞는다’는 표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수필의 결말부 단락 첫 문장인 ‘온통 사격장이다’는 표현은 절묘하게 주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다.
오덕렬의 <톤레삽 호수의 학생들>은 설명적인 표현이 흠이 되었던 서두를 멋진 결말로 상쇄시킨 좋은 작품으로서, 베트남 아이들의 처절한 삶이 가슴을 아프게 울렸다. 윤현수의 <어느 봄 오후>도 수필의 바람직한 주제 지향성이 드러난 작품이었다. 여린 꽃잎 같이 순수한 분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어찌 윤현수 혼자뿐이겠는가. 유혜자의 <작은 염원>은 작가의 세련된 지성미가 돋보이는 수필이었다. 브람스 소나타 연주를 즐겨 듣는다는 말에 첼리스트 재클린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담아 놓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뜻하지 않은 일로 예술적 활동을 그만두게 되는 천재들의 불행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작가의 고운 마음이 제목인 ‘염원’에 잘 담겨 있다. 장광자의 <그리운 시베리아>는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과 자연이 주는 멋에 흠뻑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하순옥의 <능선의 비밀>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수필이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바로 능선을 넘는 것이라는 것도 들려주고 있다’라는 마지막 어구가 문학적인 맛을 더해준다. 하현옥의 <백조의 늪>은 자신의 성과 이름이 갖는 특성으로 인해 제일 마지막에 실렸다. 먼 시베리아 벌판에서 날라 온 백조들과 대화하는 작가의 모습도 인간적이고, 더욱이 수필의 결말을 고조적으로 처리하여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 것도 감성이 풍부한 작가답다.
지난 해 겨울호에는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수필이 많았다. 봄호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았으나 봄호에서의 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내용의 감동은 약하지만 감동이 약한 내용의 한계를 극복해서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작품들이 눈에 띄어서 평을 하는 동안 행복했다. 이제 겨우 두 번째 평으로 독자와 작가 앞에 나섰다. 문학성이 돋보이는 몇 작품이 더 있었으나 내게 주어진 지면을 모두 채우고 보니, 더 이상 자세하게 작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어 아쉽다. 지금 평자의 입장은 링 위에 금방 오른 복서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이 라운드가 끝났다. 아직은 더 탐색전을 펼쳐야 한다. 탐색은 삼사 라운드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초반전이 지나고 나면, 평론가로서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비평은 작가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정은 무엇인가. 작품을 예리한 시선으로 세밀하게 살펴서 잘못된 점과 잘된 점을 따져서 밝혀 작가가 더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필 아닌 수필이 난무하는 수필문단에서 ‘벼’ 같은 ‘피’를 제거해서 고급수필이 안온하게 숨 쉴 수 있도록 정화해 보고 싶은 평자의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작가들이여, 긴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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