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十三章 굽이치는 강(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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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현(臨高縣)은 해남도 서북쪽에 위치한다.
바다가 가까워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일부
는 농사를 짓기도 하는 평범한 곳이다.
해남도 주민들은 임고현을 주목하지 않는다.
뛰어난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산물이라고 내세울만한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남도를 좌지우지 히는 십이가 중 일
가가 있는 것도 아니며, 우화가 터를 잡은 것도, 관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대부족 족장도 없다. 아무 것도 없다.
임고현으로 가는 관도는 늘 한적했다.
임고현에서 서쪽으로 십여 리 정도 곧장 나가면 커다란 향
나무 두 그루가 수호신처럼 서있고, 향나무를 지나 오십여 보
쯤 걸어가면 이십여 호가 모여 사는 촌락이 나온다.
약간의 논과 밭을 일구어 근근히 목숨을 연명하는 여족인
부락.
빗줄기가 제법 세차질 무렵, 부락에 낯선 이방인이 들어섰
다.
마을은 텅 빈 듯 조용했다.
하기는 빗발이 우박처럼 굵게 쏟아지는데 골목에 나와있을
사람도 없으리라.
이방인은 마을 입구에 나있는 다리를 건넜다.
첫 번째 집은 담장 밖으로 곧게 자란 대나무들이 보였다.
두 번째 집은 길가로 축사(畜舍)가 있는지 돼지 우는 소리가
기승을 부린다.
두 번째 집에서 길이 세 갈래로 갈렸다.
중앙과 오른쪽으로 난 길은 좁으면서도 구불구불했고, 왼쪽
으로 난 길은 반듯하고 넓었다.
그는 길을 잘 아는 듯 서슴없이 가운데 길로 접어들었다.
가운데 길은 반월처럼 둥글게 휘어졌다.
그는 담장을 따라가다 감나무가 멋들어지게 자라있는 집으
로 들어갔다.
몽(夢).
이방인을 맞이한 중년인의 이름이다.
그는 점심을 먹는 중이었으나 이방인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한달음에 뛰어나가 반갑게 맞이했다.
"태풍이 심한데 어떻게 여기까지……?"
"나는 바다를 잘 모르지만…… 배를 띄울 수 있겠소?"
"글쎄요, 이런 날씨에는……"
몽은 이방인의 말에 난색을 표시했다.
이런 날씨에 배를 띄우는 것은 자살 행위나 진배없다. 그러
나……
"해남도 일에 손을 떼라는 장군의 명령이오."
"완전히…… 말입니까?"
"완전히. 비파주 하파가 죽고, 비파와 추운단이 몰살당하
고, 적엽명을 치는데도 실패했소."
"하지만 손을 떼기에는……"
"나머지는 알아서 선택하시오. 해남도에 남는다 하더라도
만류는 하지 않겠지만 장군으로부터 연락은 없을 것이오."
"매정하군요."
"적엽명이 들어온 것도 모른 것은 그대들이오. 화문과 한백
까지 합해서 겨우 세 명. 그 정도를 어쩌지 못한대서야……"
"장군이 보내준 적궁랑 팽훈장군과 일시사 문공장군도 죽었
소. 그렇게 말하신다면 쓸만한 자들을 보내주셨어야……"
"팽장군과 문장군을 모욕하는가!"
이방인의 음성은 나직했으니 힘이 실려 있었다. 웬만한 사
람이라면 황급히 머리를 조아릴만한 음성이었다. 허나 몽은
머리를 조아리기는커녕 눈을 가늘게 뜨고 마주 대한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럼 패장(敗將)을 칭송하겠습니까?"
방안 공기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아직 서로 낯빛을 굳히
지는 않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반가운 분위기는 아니었
다.
"좋소. 어떻게 생각하든 이미 지난 일이니…… 어쨌든 장군
의 뜻은 분명히 전했으니……"
이방인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갔다.
몽은 따라 일어서지 않았다.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어둠이 깔릴 무렵 몽은 몸을 일으켰다.
비파, 추운단, 팽운, 문공…… 기장군이 보내준 사람 중 칠
할이 죽었다. 그리고 나머지도 해남도를 떠나려고 한다. 가만
이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몽이 해남파를 향해 치달리고 있을 무렵, 이방인은 삼십여
명에 이르는 험상궂은 자들을 이끌고 경주부를 향해 치달렸
다.
"모두 몇 명이냐?"
"열두 명입니다."
"잘 생각해 봐. 한 명이라도 놓쳐서는 안되니까."
"틀림없어요. 몇 년이나 접촉했는데 인원수조차 헤아리지
못할까봐요. 그 놈들, 가족이 몇 명인지도 환히 알고 있어
요."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돼."
"장군, 차라리 적엽명을 치는 쪽이……"
"대장군의 명이다."
적엽명을 치자고 말한 사내는 대장군의 명이라는 말에 군소
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가라."
"존명(尊命)!"
험상궂은 사내들은 이방인에게 군례를 취해 보였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이방인은 비를 피해 잎이 우거진 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그의 머릿속에는 대장군의 말이 살아서 움직였다. 뇌주반도
로 오면서도, 바다를 건너면서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미련한 놈들이야."
"대장군, 적엽명은 물에 빠진 쥐새끼나 다름없습니다. 비록
팽장군과 문장군이 죽었지만 그 놈 한 놈쯤은……"
"늦었어."
"예?"
"적엽명을 죽인다 해도 늦었어. 후후후!"
"아닙니다. 적엽명을 죽이면 아무리 관충장군이라 해도
……"
"한혁, 그 놈은 나를 속였다."
"……"
그 점은 할 말이 없었다. 비가보주를 죽이고 은궤를 갈취한
사실은 적엽명이 반격을 한 다음에야 알았다. 정확히 말하면
적엽명이 적사장군의 무덤을 파헤친 다음에.
만약 한혁이 해남파 무인들을 동원해서 적엽명을 쳤다면 아
직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으리라.
한혁은 본격적으로 해남파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는 적엽명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고, 무군이 적엽
명을 상대해야 했다. 한혁은 적엽명이 적사장군의 무덤을 뒤
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그랬다면 무슨 수를 써서
라도 해남파 무인들을 투입했을 테니까.
"나를 속인 놈과 같이 일할 수 있나?"
그는 대장군의 말투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남도에 아무 미련이 없는 듯한 느낌……
"장군, 그럼 계획했던 일은……?"
"무슨 계획?"
"예?"
"오래 살고 싶으면 입 조심부터 하게. 누가 무슨 계획을 세
웠다는 것인가?"
그는 대장군이 모든 계획을 접어버렸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
다.
"장군, 그 일은 해남파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허! 이 사람이!"
"알겠습니다. 그럼 해남도에 보낸 무장들은……"
"누가 누구를 보냈단 말인가?"
대장군은 모질게도 모든 인연을 끊어버렸다.
한혁과 손을 끊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남도에 파견한
무인들은 데려와야 하지 않는가. 대장군은 그럴 생각조차 없
다. 그럼 그들은 어찌할 생각인가. 의문은 곧 풀렸다.
"상관을 가장 잘 받드는 법이 뭔지 아나?"
"충성을 다하는 겁니다."
"그야 물론이지. 몸과 혼을 다 바쳐서 충성을 다해야지. 하
지만 그런 사람은 많아. 상관에게 중용되고 싶으면 말일세,
하나를 생각해야 돼. 상관의 입장에 서서 무슨 일이 가장 골
치 아픈가 생각해보면 무슨 행동을 해야 할 지는 명확하게 드
러나는 법이지. 상관이 가장 흡족해하는 방법으로 말야."
그는 알아들었다.
해남도에 보낸 무인들은 그의 몫이다.
대장군은 그가 해남도로 가주기를 바라고 있고, 해남도와
연관되었던 모든 흔적을 지워주기 바란다.
"내일부터 한 달간 고향에 좀 다녀왔으면 합니다."
"그래? 하하하! 좋아. 그 동안 고생했으니 고향쯤 다녀오는
것도 좋겠지."
그는 군례를 취하고 물러 나왔다.
대장군의 그의 뒷꼭지에 대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내가 늦었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나?"
"……"
"나는 말야…… 관충장군이 좀 더 빨리 움직여 주기를 바랬
어. 홍암…… 그 놈을 좀더 빨리 파견했어야 돼. 어떤가? 그
놈은 해남도에 들어가서도 살아있지 않은가. 왜 그런지 아나?
홍암이 해남도 출신이라서 그래. 해남도 출신이기에 모두 방
심한 거고, 그래서 뒤통수를 얻어맞게 되는 거지. 하하하!"
그는 군막 입구에 쳐진 휘장을 들어올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해남도는 장마가 한참이라고 하던데.
"자네의 충성심을 생각해서 비밀 두 가지를 알려주지."
그는 군막 밖으로 나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고향에 내려간다고 했으니…… 빨리 내려가야 할거야. 지
금쯤 관충장군에게 서신이 전달되고 있을 테니까. 그 뭐라더
라? 무군이라나? 군에서 쫓겨난 자들이 야합해서 황상께 올리
는 공물을 강탈하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해남도를 움켜쥐려
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지."
그는 등이 오싹해졌다.
대장군은 너무 무서운 사람이다.
"비밀 또 하나는…… 서신이 전해진 경로가 적사장군이 서
신을 보냈을 때와 똑같다는 것이지. 하하하!"
그는 빗속에서 대장군을 떠올리며 고민했다.
대장군을 끝까지 따라야 할 것인가.
적사장군은 아무 것도 모르고 죽었다. 적사장군은 일을 터
트리는 시발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가 그러니까…… 한혁이 비가보를 몰락시켰을 때다.
대장군은 이미 그 당시에 한혁이 은궤를 빼돌린 사실을 알
았다. 그래서 일을 시작한 게다.
대장군은 장악하고 있는 군세와 해남파의 무인들을 이용해
서 광동(廣東), 해남(海南), 절강(浙江), 강서(江西)를 움켜
쥔다는 반란계획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공물이 수송되는 경로를 말해주는 대가로 강탈한 공물의 반
을 상납 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기는 군세를 혼자 움켜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황
상에게 누가 반란을 시도할 것인가. 대도독부를 오군도독부로
나눈 것도 장군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책이거늘.
관충장군에게 적사장군의 죽음을 알려준 것도 기사청 장군
이다.
타살 당했다는 의미를 은밀히 내포하면서.
관장군에게 해남도 출신에다가 무공도 뛰어난 홍암장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 계획한 것이리라.
그리고 보니 앞뒤가 꽉 들어맞는다.
한혁과 손을 끊되, 자연스럽게……
해남도에 침투한 무장들을 죽여 관장군의 심기를 건드리는
한편 이미 무뢰배로 전락해버린 장병(將兵)들을 들쑤셔 한혁
의 결단을 유도해냈다.
대장군은 군인이 아니다. 정치가로 전락해버렸다. 지금 대
장군이 보여준 행동은 당쟁에 열을 올리는 정치가들의 비열한
술수를 그대로 빼 닮았다.
대장군을 계속 따를 것인가……
경주부로 스며들었던 사내들은 삼경(三更)이 되기 전에 돌
아왔다.
"애새끼, 노인 할 것 없이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흐흐!"
"수고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이들만 데리고 해남도를 떠나가면 모두 끝난다. 아니
면 모두 죽이거나…… 그로써 해남도에 남아있던 대장군의 근
심거리는 모두 제거되는 셈이다.
그는 사내들을 이끌고 곧장 해안으로 향했다.
"비가 엄청나게 퍼붓는데 배가 뜰까 몰라."
"이거 모두 물귀신이 되는 건 아냐?"
"지금에 와서 그런 걸 따지면 뭐해?"
"왜?"
"이런 돌머리하고는. 생각해봐. 날이 밝자마자 경주부가 발
칵 뒤집힐 판인데 한혁이 가만있겠어?"
"그 놈들을 괜히 죽였나?"
"쉿! 대장군 명이래잖아."
뒤따라오면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까지 들렸다.
모른 척 했다.
이들 말마따나 지금은 모든 게 늦어버렸다.
열두 가족이 피살당한 사건은 날이 밝자마자 경주부를 발칵
뒤집어 놓으리라.
제일 먼저 경부지부 관원들이 나와서 시신점검을 할 게다.
그리고 경주지부 관원들이 생각도 못하는 사이에 그들 열두
가족의 죽음은 한혁의 귀에 흘러들어 가겠지.
열두 명은 기사청 대장군과 건곤검 한혁을 잇는 끈이다.
그 끈이 모두 절단된 사실을 알게 되면…… 한혁도 미련하
지 않은 이상 기사청 장군의 뜻을 짐작할 게다. 그는 가만히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제일 먼저 화(禍)를 당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다.
기사청 장군이 파견한 군졸들.
쏴아아……!
빗방울이 거세게 쏟아졌다.
배를 띄울 수 없는 날이다. 허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래도 배를 타는 쪽이 해남도에 남아있는 것보다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는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백사장을 가로질렀다.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는 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
들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도.
그는 걸음을 멈췄다.
"어디를 가는가?"
검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휘적휘적 걸어오는 사내.
그는 이 사내가 한혁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말은 많이 들었
지만 만나기는 처음인 사내. 사실 그는 해남도도 초행(初行)
이었다.
"대장군의 뜻을 전해들었으면 길을 비켜주시오."
그는 한혁의 뒤에 서있는 몽을 보며 말했다.
실수했다.
지금은 비록 군에서 떠나 있지만 그래도 한 때는 자신의 지
휘를 받았던 몽.
그는 기사청 장군과 한혁에게 휘둘린 군병들이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몽에게 대장군의 뜻을 전해줬는데.
몽과 몽이 이끄는 무군은 피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활개치며 사는 사람
들이다.
고요하기가 무덤 속 같은 해남도에서 이만큼 그들을 자극하
는 일도 없을 게다.
무군은 해남파와 뜻을 같이 한다. 명백했다.
"하파가 죽은 게 그리 큰 충격이었나? 간이 좁쌀 만한 인간
이군."
"비켜주시오."
"해남율법을 모르는가? 해남도에 들어와서 살인을 한 자는
그냥 돌아갈 수 없어."
"그렇다면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겠군."
"맞아."
그는 검을 끌어냈다.
해남파 무공이 기괴하고 강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하지
만 자신 역시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
나……
스릉……!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는 천둥번개가 치는 줄 알았다. 검은 하늘이 싯노란 번개
를 토해내는 줄 알았다. 찰나에 불과하지만 진하디 진한 고통
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크윽!"
"악!"
그를 따라왔던 사내들이 맥없이 무너졌다.
역시 무인과 군인은 무공의 종류가 다르다. 지금은 무인의
방법으로 싸우고 있으니 처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군인의 방법을 준비하는 건데.
'잘 됐어.'
그는 생각했다.
참장이 되어 오랫동안 장군을 모셔왔는데…… 기사청 장군
에게 돌아가면 잘했다는 말을 들을까? 아닐 게다. 기사청 장
군은 자신을 죽일 게다. 모든 비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
람을 내버려둘 기사청 장군이 아니다. 장군에게 죽임을 당하
느니 해남도에 뼈를 묻는 것이 한결 낫다.
'장군…… 모든 임무를 완수……'
그는 고개를 떨궜다.
그의 등을 굵은 빗방울이 거세게 때렸다.
"손을 뗀단 말이지. 후후! 좋아, 모든 준비는 다 끝났어.
어차피 거치적거리는 인간들이었으니 이쯤에서 헤어지는 것도
좋겠지.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니까. 오히려 고마워해야겠군.
손을 떼 줘서. 하하하!"
한혁, 그도 기사청 장군과 연관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군인은 군인의 길이 있듯이 무인에게는 무인의 길이 있다.
그는 기사청 장군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킬 생각은 추호
도 하지 않았다.
장군과 손을 잡은 것은 그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파가 무군을 말했을 때만 해도 그는 웃어버렸다.
군에서 나온 인간들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그래
봤자 검 한 번 휘두르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나가떨어지
는 벌레들이.
그러나 정작 하파가 한 명, 두 명 사람을 끌어 모은 다음에
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고 인정했다.
무군 개개인의 무공은 결코 무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허나 그들은 그들대로 싸우는 방식이 있다. 그들은 무인들처
럼 비겁하다느니 치사하다느니 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적자생존(適者生存),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그들의 싸
움방식이다.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기 힘들면 이대일로 싸운다. 그래도
힘들면 삼대일로, 그래도 힘들면 사대일로……
함정도 사용하고, 암기도 사용하고, 독도 사용하고……
그렇게 싸워도 그 누구도 그들에게 사이한 무공을 익혔다느
니, 사파인물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으레 그런 줄
안다.
정당하게 검을 맞댄 후 이겨야만 승리하는 줄 알았던 한혁
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해남도 출신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꽤나 많았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데는 역시 기사청 장군이 한 몫을 해줬
다. 무군이란 말에 단호히 고개를 흔들던 사람들도 팽훈이란
자나 문공이란 자가 찾아가서 말하면 순한 양처럼 질질 끌려
왔다.
해남파와 상대하기에는 부족하지만 큰 힘인 것만은 틀림없
다.
기사청 장군이 요구한 것은 돈.
그것을 장만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기사청 장군이 공물
수송 경로를 일러주었고, 무군을 보내 치면 된다. 그러면 기
사청 장군에게도 자신에게도 돈이 굴러들어 온다.
당시에는 둘이 모두 서로를 원했다.
하파가 원한 것은 가주 한민의 몰락이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해남도의 제왕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하파는 부단히도 노력했다.
이제는 다르다.
서로 갈 길이 다르다.
한혁은 기사청 장군과 완전히 손을 끊기 위해서 이들을 죽
였다. 죽은 참장이 생각했듯이 배신당한 것이 억울해서 죽인
것은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하하하……!"
한혁은 통쾌하게 웃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