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삽시다 / 이미란
1.친정집을 찾는다. 집이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동네 입구에서 고샅길을 한참 오른다. 예전에는 동네에 들어서면 아이들 울음소리, 웃음소리, 아주머니들의 고함, 짐승들 울음소리 살아서 꿈틀거리는 소리의 울림으로 항상 시끌벅적하고 북적거리며 생기가 있었다. 지금 이 동네에는 침묵이 구석구석 떼 지어 놀고 있다.
2. 모구실아지매 집, 머리방아지매 집, 여러 집 대문을 열고 들여다보면 대부분 집의 댓돌 위에는 여자 신 한 켤레가 댕그라니 놓여 있다. 여자들의 수명이 남자보다 길다 보니 이 집도 저 집도 여자 노인들이 홀로 거주하시는 독거노인 동네다.
3. 도시의 자식들은 홀로 된 시골 노인을 모시기 힘들다. 좁은 아파트에 거주할 방도 없고 생활방식이 너무나 다른 시어머니를 반길 며느리도 그리 많지 않다. 시어머니가 못 찾아오게 아파트 이름도 외국어로 지은 것이 잘 팔린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 함께 산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4. . 노인 본인들도 넓은 들을 맘대로 휘젓고 다니다가 좁은 닭장 같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것이 싫다. 도시화한 손자, 손녀, 며느리들 눈치 보며 함께 사는 것도 서툴고 주눅 들어 힘들다. 자연 생활하기가 좀 불편하고, 혼자 잠들기가 외롭더라도 내가 선장인 익숙한 시골 오막살이집이 맘이 편하다. 노인들도 아들네와 합치기가 썩 내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댕그라니 남아 고향 지킴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실정을 참작하여 동 회관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여러 곳에서 후원받아 공동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등 노인 문제에 신경은 쓰고는 있다.
5. 독거노인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박원숙의 함께 삽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 중인 상처받은 싱글 여배우와 여가수들이 출연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중장년 세대가 직면한 현실과 노후 고민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상처와 고민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대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온 화려하게 화장한 모습 대신 화장 하지 않은 민얼굴로 일상생활 모습은 프로그램의 솔직담백함을 보태고 있다.
6. 이 프로그램의 든든한 중심이자 맏언니 박원숙은 세 번 결혼, 세 번 이혼에다가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아픔을 가지고 남해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 남해 집에 아픔을 지닌 사람들로 홀로서기 초보 혜은이, 자칭 한식의 대가 김영란, 문숙이, 통통 튀는 매력으로 언니들을 휘어잡는 기 센 막내 김 청이 합류해 함께 거주하며 서로 아픔을 힐링하고 있다.
7. 외로움과 아픈 사연을 서로 나누고 위로하며, 같이 사는 재미를 통해 새로운 인생의 장을 펼치는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프로그램은 관찰 예능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중장년 여성’의 이야기란 점, 1인 가구의 노후 문제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 등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호평을 받았다.동시간대 시청률 1위 석권은 물론 매회 방송 실시간 검색어 1위 장악하며 TV 프로그램 단일 유튜브 채널로는 드물게 몇 개월 만에 구독자 수십만 명을 돌파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8. 이처럼 노인 문제의 심각성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하여 콩 튀듯 뛰어다니는 젊은이나 오늘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하고 넘쳐나는 시간 보내기가 힘든 노인들에게나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진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여 노인들은 아침 해가 저녁노을에 물들기까지 보내기가 너무 힘들고 길다. 이런 상황에 같은 고민을 가진 또래 집단이 함께 사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9. 혼자 살아가기가 지루하고 외롭고 주위의 상황이 두려울 때 같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웃으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종전에 지자제 별로 독거노인들을 함께 거주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았다고 한다. 이해의 폭이 좁아지고 판단이 흐려지는 노인들끼리 동거는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사소한 것으로 다투고 삐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결국 외로운 독거 인들끼리의 동거는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10.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하게 되어버렸다. 여기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풀어가며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연구해 볼 만한 푸로젝트다.
11. 나중에 혼자되었을 때 함께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헤아려 보았다. 손가락이 모두 깁스를 했는지 굽혀지지 않는다. ‘우리’라는 명찰을 다는 그 많은 인연 중에 이렇게도 찾기 힘들까. 한 사람이라도 좋으련만 …….. 지금부터라도 나중에 함께 살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자. 어려운 숙제를 안고 친정집 대문을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