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의 미학 <34> 난닝구와 빽바지 정치판 등장한 사투리 '독설'로 악용 게으른 사람 '농띠이' 능숙한 사람 '질나이' 받침 단순한 일어 자칫 경상도말로 인지 '-개이' '-뱅이' 등 경상도말 지칭어 발달 멸시적 감정 실어 차별화 수단으로 변질
평상복차림으로 국회에 첫 등원, 일부 의원들의 거센 항의로 의원 선서를 못한 채 머쓱해 하는 유시민의원.
최근 정치권에서는 '난닝구와 빽바지'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난닝구'는 열린 우리당 전당대회 때 유시민 의원 지지자들이 민주당과 통합을 외치는 문희상 염동연 후보를 비판하는 용어이다. 이 말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사수파'와 '발전적 해체 뒤 신당 창당파' 사이에 다툼이 있던 민주당 당무회의장에 당직자가 러닝셔츠 차림으로 나타나 소란을 피운 것을 근거로 '난닝구'를 '기득권을 고수하고 패거리 주의를 만드는 세력이 완력에 기댄 비합리성을 가진 호남 지역주의'라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이와 달리 '빽바지'는 유시민 의원이 첫 국회 등원 때 흰색 면바지를 입고 등원한 것을 빗대어 부르는 말로 형식과 관습을 무시하고 무조건 튀고 보자는 세력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특히 이 말은 원리주의적으로 급진적인 정치판 뒤집기 세력의 의미로 유시민 의원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를 부르는 말로 쓰고 있다.
특정한 정치 세력을 서로 별명으로 부르고 있는 것도 재미있지만 표준어가 아닌 '난닝구'와 '빽바지'가 정치판에 별명으로 그대로 사용되는 것이 더 흥미롭다. 원래 '난닝구'는 '러닝셔츠'의 일본식 발음인데 경상도말처럼 쓰는 낱말이다. 일본말은 발음의 편의를 위해 긴 외래어는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고, 음절 구조가 특정한 ㄴ, ㅇ 받침 외는 허용하지 않으며, 5개의 모음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일본말의 특징은 축약이 빈번하고 모음이 6개로 제한되어 있는 경상도 말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일본말은 경상도 사람들의 언어 구조에 쉽게 인식되어 경상도말처럼 인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경상도 말은 일본사람에게는 높낮이, 발음하기 힘든 받침 등 특이성 때문에 쉽게 습득되기 어렵다.
또, '빽바지'는 '흰색 면바지'를 말하는 속어이다. '흰색 면바지'는 때가 쉽게 타서 보통은 입기 어려운 바지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멋을 내기 위해 많이 입기 때문에 '백바지'로 불렀다. 젊은이들의 '백바지'는 첫 음절 된소리 되기(어두경음화)에 따라 '빽바지'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원래 어두경음화는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방의 특징적인 음운 현상이었으나 이제는 우리 나라 전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되었다.
이 어두 경음화의 세력 확대는 강한 어두 음절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성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쐬주(소주) 까죽(가죽) 쭝국(중국) 등과 같이 자극적이고 강한 말을 사용하려 하는 젊은 언중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며 이제는 모든 계층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부산말에서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히뿌이'라고 하면 '히뿐사람' 즉, 헤픈 사람이라는 뜻이고, '깽깨이'라고 하면 '깽깽이처럼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사람'의 뜻이다. '헐지이'이라고 하면 입이 헐어 째진 사람인 '언청이'를 지칭하는 말이고, '허더푸리'하면 '단정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풍재이'라고 하면 '허풍'을 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러한 경상도 말의 지칭말은 특성이나 부류를 나타내는 말 뒤에 사람을 뜻하는 '-이, -애이, -개이, -뱅이, -재이, -보'가 붙어서 만들어 진다.
'-이'는 사람을 나타내는 일반적이 접사이며, '-애이, 개이'는 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에 붙이는 접사이다. '-뱅이'는 사람을 뜻하는 '-방'에 '-이'가 같이 붙은 꼴이며, '쟁이'는 '장이'를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보'는 '울보, 짬보'와 같이 다른 표준어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접사이다. 만일 덜렁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덜렁거린다'는 뜻의 '털털하다'에다 '-뱅이'를 붙여 '털페이', 인색한 사람은 '인색하고 더럽다'는 뜻의 고유어 '다랍다'에다 '-이'를 붙이 '다렙이'로 만들어진다. 더러운 사람이면 '추접다'(더럽다)에서 '추제비'로 만들어진다.
사람을 잘 꼬집는 사람이 있다면 째비다(꼬집다)에 '-재이'를 붙여 '째빈재이'로 나타난다. 바보같은 사람은 '축'(바보)에다 '애이, 앵이'를 붙여 '추깽이, 추깨이'로 부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칭어 중에 특이한 것은 '초콜래비, 골골래, 뻘따이, 반그치, 삘내미' 등이 있다.
초콜래비는 (얼굴이)좁은 꼬라지('꼴'의 속된 말)'에서 변이된 말로 '얼굴이 좁은 못난 사람'이란 뜻이다. '골골래'는 '골골' 즉, 어떤 부분이든지 골고루 잘하는 사람으로 여러 일에 관여하는 사람으로도 쓰이는 낱말이다. '뻘따이' 혹은 '뻘때추니'는 뻘대처럼 투박한 '말괄량이'를 뜻한다. '반그치'는 '반 것' 즉, '온전하지 못하고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란 뜻으로 같은 말로는 '반푸이'가 쓰인다. 또, '삘내미'는 '삘삘거리며 울다'는 뜻에서 '잘 우는 아이'를 뜻하는 말이다. 이처럼 부산에서 사람을 부르는 말은 동작이나 행동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뒤에 사람을 나타내는 접사를 붙여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지칭어는 존재에 대한 인식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지칭어는 추상적인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친근성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칭어가 부정적인 멸시적인 감정을 부여해, 서로간의 구분을 위해 차별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위의 정치인들 이야기처럼 '하고재비'(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사람)가 '덩더꾸이'(아무것도 모르면서 끼어 드는 사람)처럼 격식 없이 '난닝구'만 입고 나서는 사람도 '싱기비'(싱거운 사람)이지만 '빽바지'만 입고 '난다이'(제멋대로 구는 사람)로 나선 사람도 '고깨이'(웃기는 사람)이다. 또한 서로 반목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하지 않는 '쫌패이'(옹졸하고 못난 사람)같은 '조막디이'(조그만 사람)는 우리 사회의 너그러움을 죽이는 '히깨이'(망나니)이다. 우리 모두 '차돌빼이'(야무진 사람)처럼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첫댓글 하고재비, 덩더꾸이... 잼있어요
이 사투리들을 잘 버무려 동화 속 양념으로 넣으면 정말 맛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