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류문(매표소)~농산정] 구간
탐방로 도중의
홍련암
[홍련암은 해인사 구역에 있지만,
해인사 부속 암자는 아니다.]
[홍련암~농산정] 구간
홍류동계곡 소리길
주변 풍경
신라 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인
농산정
농산정 안내문
최치원이
농산정에서 지은 시
[농산정~길상암] 구간
소리길 도중의
가야 19명소인
취적봉과 음풍뢰를 소재로 지은
한시
해인사 가는 길 6㎞… 쉿! 속세의 시비 소리 귀에 들릴라
한국일보 기사 입력일 : 2022.07.27.
합천=글·사진 최흥수 기자
<166> 합천 가야면 홍류동계곡 소리길과 팔만대장경
합천 가야면 대장경테마파크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홍류동 계곡 소리길. 가야산 홍류동 계곡은 최치원이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첩첩 바위에 세차게 부딪치며 겹겹 봉우리 울리니 / 지척에서 하는 소리 알아듣기 어려워라 / 속세의 시비 소리 귀에 들릴까 염려하여 / 일부러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싸게 하였다네.”
최치원이 지은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의 시구다. 독서당은 가야산 서남쪽 홍류동 계곡에 지은 정자다. 지금은 시구의 한 대목을 따 ‘농산정’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다.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로 유학해 6년 만에 빈공과에 장원급제했지만, 귀국해서는 고운(孤雲)이라는 호처럼 구름 같은 삶을 살았다. 태어난 해(857년)는 알아도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홍류동 계곡은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야기꾼들은 농산정을 일러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곳이라 한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가야산 소리길
홍류동 계곡은 합천 가야면 소재지에서 해인사까지 약 6㎞ 이어진다. 가을에 단풍이 떨어지면 계곡이 온통 붉은 기운을 띤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지만, 빼어난 경치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그 개울과 숲길을 따라 ‘소리길’이라는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음미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길이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오르막으로 특별히 힘든 구간은 없다. 가야산국립공원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탐방로도 대체적으로 깔끔하다. 시원하게 발 한 번 담글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짙은 그늘 속 청량한 물소리와 함께하는 길이니 한나절 더위를 식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략 2시간이 걸린다.
소리길 출발점은 대장경테마파크다. 2011년 고려대장경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천년관과 빛소리관에서 대장경 제작 과정과 경판의 모습을 영상과 미니어처로 살필 수 있다. 외부에는 인공폭포와 바닥분수 등을 조성해 가족 여행객의 쉼터로 적당하다.
테마파크 아래 개울가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내암 정인홍이 지은 부음정이라는 소박한 정자가 있다. 이 고을 출신 정인홍은 광해군 즉위 후 영의정에 올랐던 인물로 임진왜란 때는 3,000명의 의병을 모아 활약했다. 때문에 지역에서는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인물로 떠받든다.
소리길 들머리는 산자락에 터를 잡은 민가와 논밭을 지나는 정겨운 시골길이다. 계곡 옆 비탈밭은 합천군에서 꽃밭으로 가꾸고 있다. 대부분 막 움을 틔운 새싹으로 덮여 있고, 간간이 백일홍이 피어 있다. 바람이 선선해질 때라야 제 모습을 갖출 듯하다.
시골길 정취는 약 1.5㎞ 상류 황산마을까지 이어진다. 30년 전만 해도 도자기를 굽는 소규모 업체가 몰려 있었는데 지금은 일부 체험 공방만 남아 있다.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인 집들 뒤로 가야산 바위 능선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황산마을 주차장에 차를 대면 걷는 길이 그만큼 단축된다.
마을을 통과하면 물소리는 더욱 가깝고 그늘도 짙어진다. 계곡이 좁아져 수량은 오히려 풍부하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당히 섞인 숲으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의자 쉼터가 조성돼 있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서너 개 놓여 있다. 다리 위는 그늘이 없지만 내려다보는 경치는 시원하다. 닳고 닳은 하얀 암반 위로 초록을 가득 머금은 계곡물이 연이어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다.
탐방로는 중간쯤에서 도로로 잠시 나왔다가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해인사 매표소인 홍류문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홍류문 바로 위에 최치원의 유적인 농산정(籠山亭)이 있다. 1922년 해체·복원했고 1936년 보수했다고 한다. 정자 앞 커다란 바위 사이로 옥빛 물줄기가 몇 차례나 미끄러져 떨어진다. 홍류동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니 암반 곳곳에 방문객의 이름이 줄줄이 새겨져 있다. 정자 옆에 ‘고운최선생둔세지(孤雲崔先生遯世地)’라는 비석이 있고, 암반에 그의 시가 새겨져 있는데 세월에 닳아 흔적이 희미하다.
정자에 걸린 여러 시판 중에서 노상동이라는 인물이 쓴 시가 농산정의 의미와 최치원의 삶을 잘 묘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나는 듯한 정자 푸른 산에 있고 / 풍월과 연무는 계곡 사이에 있네 / 이곳은 선생께서 신선되신 곳 / 천지는 드넓고 산은 구름 같네.” 산이 정자를 감싸고 있다는 건지, 정자가 산을 품고 있다는 건지 헷갈린다.
개울 건너편에는 가야서당과 학사당이 위치한다. 가야서당은 최치원이 세상을 등지고 책과 씨름한 곳으로, 학사당은 그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학사당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곧장이라도 허물어질 듯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농산정에서 다시 숲길을 통과하면 해인사의 부속 암자인 길상암이 왼편 바위절벽에 매달려 있다. 암자 앞에도 차를 댈 공간이 제법 넓다. 전체 구간을 걷기가 부담스러우면 이곳부터 시작해도 괜찮다. 탐방로를 따라가며 검푸른 연못과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진다. 계곡은 험한데 길은 오히려 순하다. 그렇게 짧은 숲길을 통과하면 드디어 해인사 입구다.
매주 80명에게만 공개되는 팔만대장경의 비밀
해인사는 큰 절이다. 802년 창건한 화엄종 사찰로 주변 골짜기에 원당암, 홍제암, 삼선암, 약수암, 국일암, 지족암 등 수많은 부속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가야산 서편 산자락 일대가 사실상 해인사인 셈이다. 고려대장경판을 비롯해 사장경판전, 반야사원경왕사비, 치인리마애불입상 등 국보와 보물을 포함해 문화재도 7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속속들이 살피자면 2~3일로도 모자랄 판이다. 수십 채의 전각을 거느린 해인사 경내만 돌아봐도 2~3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래도 탐방객이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는 장경판전이다. 사찰 가장 위쪽에 있어 주차장에서 천천히 걸으면 30분가량 걸린다. 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두 차례 간행됐는데, 처음에 만든 것은 몽골군의 침입 때 없어졌고 해인사에 보관된 건 두 번째로 만든 경판이다.
장경판전은 수다라장, 법보전, 동사간판전, 서사간판전 네 개의 건물로 구성된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수다라장의 연화문을 통과한다. 호박처럼 둥그런 모양인데, 1년에 두 차례 춘분과 추분 오후 2시경 문안으로 햇살이 들이치면 음영의 윤곽이 연꽃 모양으로 선명해진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문으로 들어서서 좌우 문살을 통해 팔만대장경을 볼 수 있다. 바로 위는 경판을 인쇄한 책이 보관된 서고다. 문을 통과해 법보전 마당에 서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장경판전의 외부 구조가 파악된다. 일반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면 해인사 홈페이지에서 ‘팔만대장경 순례’ 프로그램을 예약해야 한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회당 20명까지만 신청을 받는다. 이미 8월까지 예약이 찼고, 9월분 일부가 남아 있는 상태다. 순례 프로그램은 해인사 일주문에서 시작해 40~50분간 진행된다. 법보전 안에서는 팔만대장경의 제작과 보관의 비밀, 역사적 의의 등의 해설이 곁들여진다.
장경판전 내부는 의외로 시원하다. 장마철 특유의 눅눅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크기가 다른 위아래 문살로 들어온 바람이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이다. “바닥은 깊이 60~90cm의 숯, 소금, 황토와 회로 다져져 있습니다. 강회다짐 공법으로 벌레를 막고 습기를 제거해 줍니다. 제가 아는 한 20년 동안 특별한 작업을 한 적이 없는데, 기둥에 거미줄 하나 없습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연구원 보존국장인 일한 스님의 설명이다.
“경판 양옆에는 옻칠이 돼 있고 네 귀퉁이에는 순동으로 만든 금속 장석이 손잡이와 서로 맞닿는 부분을 단단히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판과 경판 사이에 약 10밀리미터의 틈이 벌어져 내부까지 바람이 통할 수 있죠.” 고려 시대에 제작한 팔만대장경이 800년 가까이 온전한 모습으로 전해지는 비결이다. 설명을 들을수록 오래된 유물이 현실의 과학으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장경판전은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슬리퍼를 신거나 반바지를 입어도 입장할 수 없다. 사찰 측은 신앙의 공간이기 때문에 기본적 예의를 갖출 것을 당부한다.
사찰 앞 식당은 대개 산채비빔밥이 주요 메뉴다. 가야면 소재지의 솔밭쉼터식당은 조금 특화된 비빔밥을 내놓는다. 기존 비빔밥 재료에 파프리카, 인삼, 도라지 등이 들어간 생약채비빔밥에 청국장과 두부두루치기가 함께 나온다. 1인 1만2,000원.
해인사IC에서 멀지 않은 가야산별빛농장에서는 색다른 체험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해발 400m에 위치한 파프리카 농장으로, 파프리카 피자와 샐러드(키도파샐), 청란햄버거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40~60분 정도 소요되며 1인 2만 원으로 체험과 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예약 필수. 가야산 능선을 배경으로 즐기는 ‘팜핑(농장 캠핑)’도 운영한다.
[길절] 가을 보내는 해인사 소리길
불광미디어 기사 승인일 : 2021.11.30.
최호승
길[道]은 여러 갈래입니다. 행복을 찾는 길, 즐거움을 좇는 길,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길 등등. 어찌 보면 여행이고 수행이자 순례이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둘러 길 걸으면서 절에 들러보는 여행이자 순례길을 걷습니다. 발이 젖으려면 물가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광미디어가 아름다운 길 찾아 절로 함께 걷습니다. 사진은 아이폰으로 촬영했습니다.
깐부? 아니 소리길
그날이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깐부’ 오영수 배우가 주왕산국립공원의 72시간을 목소리로 연기한 날이었다.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이 방영됐다는 11월 7일, 주왕산 들러 가야산으로 향했다. 소리길에 올랐다.
들머리는 대장경 테마파크 주차장이었다. 여기서부터 소리길 시작이다. 사실 1km 더 걸으면 소리길 탐방지원센터가 나오는데, 본격적인 소리길 시작점이었다. 테마파크 주차장부터 시작하는 소리길 초입은 나무로 된 데크를 걷고, 탐방지원센터부터는 산길이다.
테마파크 주차장 들머리에는 ‘소리길’이라는 이름이, 탐방지원센터에는 ‘가야산 소리길’이라는 이름이 내걸렸다. 이름이 몇 개로 불리는 이유가 궁금했던 대목이었다. 소리길은 ‘가야산 소리길’, ‘해인사 소리길’ 등으로 불린다. 가야산에 길도 있고 해인사도 있으니 그냥 ‘가야산 해인사 소리길’로 통칭하기로 했다. 줄여서 그냥 소리길. 소리길은 홍류동 옛길을 복원하고 다듬어서 홍류동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걷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탐방로다.
미련 없는 가야산
가야산은 미련이 없었다. 소리길 초입, 홍류동 계곡 억새도 길 곳곳 나무들도 겨울 채비에 들어갔다. 11월 초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가야산은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맞다. 오고야 마는 계절이 겨울이다. 바람은 이미 겨울을 예고하고 있었고, 가야산은 긴 겨울 버틸 준비에 바빴다.
소리길 곳곳에서 카메라 들고 추억을 담아갔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 중년 부부, 연인,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홀로 걷는 몇몇이 그랬다. 이미 알고 있었다.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졌다. 애써 외면하며 가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일까? 소리길이 심심치 않게 단풍을 내밀었다. ‘빨갛다’라는 느낌보다는 약간의 빛바램이 더 좋았다. 절정의 타오름이 뜨겁다면, 따뜻해 보여서다. 성급해 보이지도 않았다.
흙길과 바위 곳곳에 흩뿌려진 낙엽이 먼저 눈에 밟혔다. 과연 소리길이었다. 길은 바스락거렸고,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는 찼다. 겨울엔 어떤 길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되는 길이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체력은 금세 바닥났다. 주왕산을 8km 걷고 남은 체력 탓이겠지만, 스스로 격려할 수밖에. 그러기엔 살짝 오르막인 소리길의 끝은 한참 멀어 보였다.
홍류동 계곡 따라
“산형은 천하에 절승하고, 지덕은 해동에서 제일이다.”
조선 시대에 조선 팔경 중 하나가 가야산이란다. 나라에서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인 셈이다. 그래서 나라는 1966년 6월 가야산국립공원을 1966년 6월 사적 및 명승지 제5호로 지정한다. 가야산국립공원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에 걸쳐 자리했는데, 정상인 상왕봉은 해발 1,430m이다. 멀리서부터 바라봐도 절경이 바로 가야산이었다.
주왕산도 그랬지만, 역시 물이다.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귀를 즐겁게 했고, 발걸음을 쉬게 했다. 소리길 매력이 여기 있다. 홍류동 계곡이다. 해인사 입구까지 4km에 이르는 계곡으로 봄에는 꽃, 가을에는 단풍으로 계곡이 물든다. 오죽하면 붉은색이 계곡물을 물들인다고 해서 ‘붉은 홍(紅)’자가 들어간 홍류동(紅流洞) 이름이 붙었을까. 사방이 붉은색으로 물든 홍류동을 못 봐서 아쉬웠지만,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물줄기로 눈과 귀는 즐거웠다.
소리길 곳곳의 푯말에 적힌 시가 홍류동 계곡의 멋을 전했다. 한자로 시 짓기를 즐겨 삼던 식자층이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곳이긴 했다. 시마다 계곡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냥 시다. 무릉도원을 상상하며 가야산을 바라보는 곳 ‘갱멱원(更覓源)’, 계곡에서 흘러온 꽃잎을 따라 올라가는 곳 ‘축화천(逐花川)’,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다리 ‘무릉교(武陵橋)’, 북두칠성에 예향 하던 곳 ‘칠성대(七星臺)’, 선인 내려와 피리를 불던 바위 ‘취적봉(翠積峰)’, 풍월을 읊는 여울 ‘음풍뢰(吟諷瀨)’, …. 아직 멋 한 개가 더 남았다. 수석과 산림이 가장 아름다운 계곡 ‘홍류동(紅流洞)’.
春風躑躅發層巒 봄바람에 철쭉이 온 산봉우리에 피어나니
膩漲臙脂水鏡間 거울 같은 물속에 붉은 연지 가득하구나.
若使重移楓葉景 만약 단풍 붉은빛을 다시금 옮긴다면
溶溶錦浪半函山 크고 넓은 비단 물결에 반쯤은 잠기리라.
부처님도 누워 쉬는 곳
칠성대 지나, 조금 더 힘을 내니 쉼터에 다다랐다. 돌탑이 곳곳에 놓였길래 잠시 쉬어가자고 앉았는데, 뒤통수가 섬뜩했다. 묘한 시선을 느끼며 돌아보니, 부처님이다. 쉼터라더니, 부처님도 누워계신 곳이다. 작품명은 ‘바위에 갇힌 부처를 보다’. 박상희 작가가 걷다가 힘들 땐 기도하며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는 그런 부처님을 바위에 새기고자 했단다.
여기서부터다. 홍류동 계곡보다 소리길 자체가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 <타짜>였던가. 아귀(김윤석 분)를 속이는 고니(조승우 분)는 스승의 말을 되뇐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눈이 정신없는 사이에, 손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손은 눈보다 빨랐다. 홍류동 계곡도 예뻤지만, 길 자체도 예뻤다. 소나무 군락 사이사이로 길이 굽이굽이 흘렀다. 평경장(백윤식 분)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아수라 발발타, 아수라 발발타 주문을 외우듯 ‘이건 찍어야 돼’를 중얼거리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길 따라 굽이굽이 걷다 작은 정원을 마주했다. ‘소리길 소(小) 생태계’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등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작은 생물들을 위한 공간이자, 서식지 간 연결을 돕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단다. 여러 곤충과 개구리, 올챙이, 우렁이 등 다양한 생물을 볼 수 있다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차가운 바람 피해 숨었다.
법보종찰 해인사, 길상암 그리고 하심
홍류동 계곡 너머 ‘법보종찰 해인사’ 편액이 어른거렸다. ‘다 왔다’라는 안도감에 휩싸였다. 섣불렀다. 여전한 소리길의 매력은 지친 걸음마저 움직였다. 저 멀리 보이는 탑과 합장하는듯한 사람의 실루엣에 홀린 듯 다시 걸었다.
길상암이었다. 1972년 영암 스님이 창건한 암자로,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단다. 가파른 계단은 전의를 상실케 했다. 멀리서 합장 반배로 인사 올리고, 다리를 건넜다. 괘씸했을까? 곧 ‘하심’이 나타났고, 다시 길상암 쪽으로 합장 인사를 올렸다.
재차 나를 낮추니, 소리길은 무심하게 선물하나 던졌다. 꽃이 떨어지는 소 ‘낙화담(落花潭)’이었다. 시 한 편 곁들이면 탄성을 자아낸다.
風雨前霄鬪澗阿 어젯밤 풍우에 골짜기가 요란하더니
滿潭流水落花多 못 가득히 흐르는 물에 낙화가 많더라.
道人猶有情根在 도인도 오히려 정의 뿌리가 남아있어
雙淚涓涓添綠波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이 푸른 물결에 더해지네.
안부를 묻지 못한 멧돼지.
가야산에 밤이 기어 들어왔다. 그리고 소리길에 배가 고픈 멧돼지도 등장했다. 몇몇은 깜짝 놀라 소리 지르며 숨었지만, 멧돼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소리길 내려오던 이는 “아직 그 멧돼지 있을까”라며 별일 아닌 듯 말을 꺼냈다. “올라오며 보니 아직 있습니다”라고 말을 전했다. 매일 멧돼지를 친견한다는 해인사 국일암 명법 스님이 “개체 수가 늘어서 먹이 구하기가 어려워 성보박물관 근처까지 내려갔다”라고 했다.
멧돼지 안부를 더 물을 여유가 부족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소리길은 사진에 담기 어려웠다. 해인사 성보박물관을 거쳐 도량으로 향하는 소리길 끄트머리도 놓치기 싫은 풍경이었다. 가야산은 틈을 주지 않았다. 해인사를 참배하지도 못했다. 일주문에 도착할 즈음, 해는 이미 졌다.
미리 밝힌다. 이제부터 사진은 불광미디어 데이터베이스에서 빌려왔다. 해인사를 참배하지 못했지만, 천년고찰 해인사에 숨겨진 과학과 신심을 이야기해야 하니까!
천년고찰에 숨겨진 과학과 신심
해인사는 법보종찰(法寶宗刹)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새긴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도량이라서 법보종찰이다. 이 팔만대장경은 장경판전에 있는데, 여기에 놀라운 과학이 있다. 5개 층으로 구분된 판가(板袈·경판꽂이)에 촘촘히 꽂혀 있는 대장경판을 보면 큰 도서관의 서고와 닮았다. 경판을 두 단씩 세워 놓도록 단을 둬서 공기가 잘 통하게 했다. 장경판전 바닥은 땅을 깊이 파서 숯,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를 뿌렸다. 비가 많이 와서 습기가 차면 바닥이 습기를 빨아들이며, 반대로 가뭄 때 바닥에 숨어 있던 습기가 올라와 습도 조절을 스스로 해준단다. 장경판전 전면과 후면에 있는 붙박이 살창의 방향이 통풍을 좋게 만들기도 한다고. 맞다. 목재의 수분 관리 기능이 완벽한 건물이 장경판전이다.
이 장경판전에 우리가 팔만대장경으로 부르는 고려대장경이 있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 등 삼장(三藏)을 일컫는데,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담겼다고 보면 된다. 고려 시대에 간행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8만 1,258장에 달하는 판에 8만 4,000 법문을 실었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장경판전 법보전에는 『화엄경』 등 대승불교 경전이, 수다라장에는 『아함경』 등 초기불교 경전이 보관돼 있다.
부처님 가르침으로 몽골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무려 5,200만 개에 달하는 글자가 오자 하나 탈자 하나 없이 고르고 정밀하다. 강화도 선원사에 있었지만, 조선 초인 1399년 합천 해인사로 옮겨진 후 600년 넘게 이곳에서 보존되고 있다. 지금도 경판에 먹을 발라 한지에 찍으면 글자 한 자 한 자가 또렷이 나타난다고 한다.
맞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1995년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수다라장과 법보전, 고려 각판을 보관하는 동서 사간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팔만대장경은 기록유산으로 등록했다.
이 모든 것을 볼 수가 있다! 해인사가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팔만대장경의 문을 열었다. 팔만대장경 순례 인터넷 사전예약 탐방제를 실시하고 있다. 눈앞에서 보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헤어지자, 가을 그리고 소리길
밤과 몸을 섞은 가야산은 해인사 참배를 허락하지 않았다. 딱 좋았다. 더 오를 기력도 없는 참이었다. 일주문 야경을 찍고, 택시를 타고 들머리로 돌아왔다. 소리길은 어땠나, 소리길의 가을은 어땠나…. 돌아오는 길에 되새겼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았다. 글을 쓰는 11월 30일, 비가 오는 오늘 가을은 갔다. 가을도 단풍도, 소리길도 그만 놓아줄 때다.
헤어지자/ 상처 한 줄 네 가슴 긋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 수없이 헤어지자/ 네 몸에 남았던 내 몸의 흔적/ 고요히 되가져가자// 허공에 찍었던 발자국 가져가는 새처럼/ 강물에 담았던 그림자 가져가는 달빛처럼// 흔적 없이 헤어지자/ 오늘 또다시 떠나는 수천의 낙엽/ 낙엽(도종환 ‘낙엽’ 전문)
수없이 헤어지자, 상처 한 줄로 가슴 긋지 말고. 헤어지자, 가을 그리고 소리길.
소리길 여정
코스 : 대장경 테마파크~소리길 탐방지원센터~칠성대~소(小)생태계~매표소~농산정~길상암~낙화담~물레방아~성보박물관~해인사
거리 : 편도 약 8km
시간 : 2시간 50분(편도, 휴식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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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 문화 유산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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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08월23일(화요일) 합천군 [ 해인사 소리길 & 해인사 14 암자 ] 탐방기 산 : 합천군 [ 해인사 소리길 & 해인사 14 암자 ] [소리길의 ‘소리(蘇利)’는, 즉 이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뜻.] 산행코스: [ 홍류문(매표소)~홍련암~홍류동계곡 소리길~농산정~(1.3km)~길상암~ (410m)~낙화담~(1km)~해인사 성보박물관~(721m)~보현암~(131m)~ 금강굴~(569m)~삼선암~(100m)~금선암~(549m)~원당암~(429m)~ 홍제암~(296m)~용탑선원~(700m)~해인사 장경판전의 북쪽 건물인 법보전~ (1.4km)~지족암~(280m)~희랑대~(577m)~백련암~(926m)~국일암~ (698m)~약수암~(689m)~해인사 성보박물관~(674m)~치인 주차장 ] (약 12km) 일시 : 2022년 08월 23일(화요일) 날씨 : 구름이 끼고 가끔 이슬비가 내린 날씨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4시간37분 소요) * 07:05~11:35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지하철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502-9 번지에 있는 홍류문(매표소)으로 이동 (281km) [4시간30분 소요] [해인사 입장요금 : 3천원] * 11:35~11:37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502-9 번지에 있는 홍류문(매표소)에서 산행출발하여 첫 번째 방문 암자인 홍련암으로 이동 [홍련암은 해인사 구역에 있지만, 해인사 부속 암자는 아니다.] * 11:37~11:43 홍류동 계곡을 따라서 농산정(籠山亭)으로 이동 [농산정(籠山亭)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2호. 신라 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 11:43~12:07 두 번째 방문 암자인 길상암(吉祥庵)으로 이동 [길상암은 암자 주변의 백화담을 위시하여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972년에 영암 대종사께서 창건한 이 암자의 최상부에는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 12:07~12:18 길상암(吉祥庵) 관람 * 12:18~12:23 낙화담(落花潭)으로 이동 [가야산 최고의 비경 중 하나인 낙화담(落花潭)으로 웅장한 바위 벼랑을 타고 쏟아지는 장쾌한 물줄기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키는 듯하다.] * 12:23~12:28 사진촬영 * 12:28~12:45 해인사 성보박물관(海印寺 聖寶博物館)으로 이동 [해인사 성보박물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종찰 해인사에 위치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2002년에 개관하였다. 현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는 보물 11건(기탁 2건 포함) 및 9건의 지방유형문화재를 포함한 약 7천여 점에 달하는 불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대표적 소장 문화재로는 우리나라 현존 유일의 초상조각인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을 비롯하여 부처님의 설법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영산회상도(보물), 조선 성종 대에 만들어진 홍치4년명 동종(보물) 및 수많은 불교미술품과 왕실유물인 광해군 복식 등이 있다.] * 12:45~12:55 세 번째 방문 암자인 보현암(普賢庵)으로 이동 [보현암은 1973년에 혜춘 스님의 원력으로 세운 비구니 수행처이다. 전망이 탁 트여 가야산과 홍류동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승지이다.] * 12:55~12:58 네 번째 방문 암자인 금강굴(金剛窟)로 이동 [보현암과 나란히 있는 금강굴은 1976년 창건한 비구니 스님들 수행처로 성철스님의 둘째 딸인 불필(不必)스님이 계셨던 암자다. 원래 이곳의 지명이 오가리(五佳里)인데 이 다섯가지의 아름다움이란 다음과 같다. 청룡과 백호와 전망(展望)과 문수보살의 정진과 보현보살의 교화, 이 다섯 가지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이다.] * 12:58~13:03 사진촬영 * 13:03~13:08 다섯 번째 방문 암자인 삼선암(三仙庵)으로 이동 [삼선암은 1893년에 자홍스님께서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 스님과 지종스 님 두 분이 중건한 바 있으며, 최근에 새로이 비구니 선원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도량의 규모가 꽤 커졌으며 면모도 새로워졌다. 가까이에 문오 스님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 13:08~13:12 여섯 번째 방문 암자인 금선암(金仙庵)으로 이동 [금선암은 1945년에 하담스님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로서, 큰절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암자다. 법당 앞에는 금붕어들이 있는 연못이 있다.] * 13:12~13:22 일곱 번째 방문 암자인 원당암(願當庵)으로 이동 [신라 왕실의 원찰로 세운 원당암은 큰절이었는데 대덕광전과 마주 보이는 비봉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래서 본디 이름을 봉서사라고 했다. 이 암자는 해인사 창건을 위한 기초 작업장의 역할을 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본절인 해인사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역사가 오랜 만큼 풍부한 사적과 더불어 몇 차례의 중수 기록을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세조임금 때에는 학조대사가 오랫동안 주석했고, 철종 3년 곧 서기 1852년에는 우룡스님이 중수하였으며, 고종 11년 곧 서기 1874년에는 비구니인 성주스님이 또 중수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해운스님과 지금 이곳에 주석하고 있는 혜암 큰 스님께서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원당암에는 귀중한 유물과 유적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보물 제 51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점판석 다층탑과 석등, 그리고 정교하게 안상을 넣은 금당의 축대석 들은 중요한 사적으로 꼽힌다. 원당암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미소굴은 혜암 스님이 입적하신 곳이며, 그 옆에는 ‘공부하다 죽어라’라고 쓰여진 석조 죽비가 있다. 미소굴 옆에는 가야산 최고의 전망대인 운봉교가 있다. 운봉교에서 원당암 전경과 그 뒤로 가야산 정상이 조망된다.] * 13:22~13:41 원당암(願當庵) 관람 * 13:41~13:49 여덟 번째 방문 암자인 홍제암(弘濟庵)으로 이동 [홍제암은 해인사의 서편으로 일주문에서 한 200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암자이며, 특히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이곳에 은거하던 사명대사는 광해군 2년에 속세 나이 예순일곱으로 입적하였는데,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統弘濟尊者)라는 익호를 내리고 이곳에 스님의 비를 세웠다. 그 뒤로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라 이 암자를 홍제암이라 하였다. 사명대사의 비문은 홍길동전으로 더 잘 알려진 석학 허균이 지은 것으로서, 문장도 아주 빼어날 뿐 아니라 대사의 행장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 있어 사적으로의 값어치가 높다. 지금의 홍제암 건물은 최근에 신축한 것이며, 암자 안에는 청허, 사명, 기허대사를 비롯한 뭇 큰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영자전이 있다. 그리고 뒷동산에는 평범한 석종의 모습으로 만든 사명대사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 13:49~13:56 홍제암(弘濟庵) 관람 * 13:56~13:58 아홉 번째 방문 암자인 용탑선원(龍塔禪院)으로 이동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분이었던 용성 스님을 위하여 창건된 이 암자는 스님의 사리탑을 수호관리하기 위하여 1945년에 창건되었으며 용탑암(龍塔庵)이라 불리기도 한다. 용성 스님의 용자와 사리탑의 탑자를 합하여 용탑암이란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주 법당인 칠불보궁과 부처님을 모신 미타전이 있다.] * 13:58~14:03 용탑선원(龍塔禪院) 관람 * 14:03~14:16 해인사(海印寺) 장경판전의 북쪽 건물인 법보전으로 이동 [해인사(海印寺)는 의상(義湘)의 화엄10찰(華嚴十刹) 중 하나이고, 팔만대장경판(八萬大藏經板)을 봉안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합 수도도량이다. 이 절은 신라 애장왕 때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하였다.] * 14:16~14:19 사진촬영 * 14:19~14:33 열 번째 방문 암자인 지족암(知足庵)으로 이동 [지족암은 신라말과 고려초에 걸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본디 이름은 도솔암이었다. 오래도록 터만 남아 있던 자리에 조선시대 후엽에 이르러 철종 7년 곧 서기 1856년에 추담대사가 창건하였는데, 뒤에 다시 고종 30년 곧 서기 1893년에 환운 스님이 건물을 중건하면서 도솔의 의역인 지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근래에 일타 스님께서 주석하시면서 도량의 면모가 새로워졌다. 지족암의 주 법당인 대몽각전은 세상 만사가 하나의 큰 꿈이니 빨리 깨우치란 뜻에서 그 이름이 붙여진 건물이고,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진영각에는 일타 스님의 존영이 모셔져 있다.] * 14:33~14:40 지족암(知足庵) 관람 * 14:40~14:46 열한 번째 방문 암자인 희랑대(希朗臺)로 이동 [암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살았던 승려인 희랑조사가 머물던 곳으로서, 자연이 이루어낸 기기묘묘한 지형과 빼어난 경치로 말미암아 일찍이 금강산의 보덕굴에 비유되곤 했다. 희랑대는 이곳의 독성전에 모셔진 나반존자의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해서 기도처로 퍽 유명한데, 이를테면 이곳에서 기도하여 부자가 되었다거나 하는 따위의 여러 영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 14:46~14:54 희랑대(希朗臺) 관람 * 14:54~15:09 열두 번째 방문 암자인 백련암(白蓮庵)으로 이동 [백련암은 해발 고도 약 800미터의 높은 곳에 위치하여 한가할 뿐 아니라 경계 또한 탁 트여 시원하다. 특히 암자 주변에 우거진 노송과,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신선대와 같은 기암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예부터 백련암터를 가야산의 으뜸가는 절승지로 일컬어 왔다. 백련암을 처음 창건한 연대는 잘 알 수 없고 다만 선조 38년 곧 서기 1605년에 서산대사의 문하였던 소암스님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래 전부터 고승들이 즐겨 수행처로 삼아 오던 이곳은 역대로 산중 어른들이 주석해 왔다. 곧, 소암대사를 비롯하여 환적,풍계, 성봉, 인파대사와 같은 스님들이 일찍이 주석하였고, 성철스님께서 입적하기 전까지 주석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원통전과 영자당을 위시한 요사채 몇 동이 조촐하게 서 있고 축대를 새로 쌓고 기도터를 새로이 신축하여 도량이 일신되었다.] * 15:09~15:24 백련암(白蓮庵) 관람 * 15:24~15:36 열세 번째 방문 암자인 국일암(國一庵)으로 이동 [국일암의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중건한 기록만이 있는데 부휴대사의 문하인 벽암 각성대사가 이곳에서 오래 주석하면서 인조 15년 곧 서기 1637년에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벽암 스님은 일찍이 글씨와 군법에 능통한 스님으로, 조선조 인조임금 때에 남한산성을 축성한 공적으로 인조임금으로부터 원조국일대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국일암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일제 시대에 국일암에는 비구니 강원이 있었다. 정인스님이 해방 전후에 두 차례에 걸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부휴스님, 고한스님, 벽암스님의 부도들이 모셔져 있다.] * 15:36~15:38 사진촬영 * 15:38~15:41 이 날의 열네 번째이자 마지막 방문 암자인 약수암(藥水庵)으로 이동 [약수암은 비구니 수도처로서, 구한말인 1904년에 비구니인 성주 스님이 창건하였고 1927년에는 도삼스님이 중건하였다. 가까이에 해봉스님의 부도와 도삼스님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암자 마당 한편에 약수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약수터가 있다. 사찰 안에 비구니 선원인 죽림선원이 있다.] * 15:41~15:45 약수암(藥水庵)의 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면서 휴식 * 15:45~15:57 해인사 성보박물관(海印寺 聖寶博物館)으로 회귀 * 15:57~16:12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6-1 번지에 있는 치인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 16:12~17:00 치인 주차장 옆에 있는 GS편의점에서 즉석 조리 우동으로 간식 후 아이스크림으로 후식 * 17:00~17:11 “좋은사람들 “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 대기 * 17:11~21:11 “좋은사람들 “ 버스로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6-1 번지에 있는 치인 주차장을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귀경 (285km) [4시간 소요] 해인사 암자 위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