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경남 가야유적을 찾아서 (13) 창원 도계동고분군
경남도민일보 2022년 03월 15일
'행운' 평가받는 도심 문화재… 시는 어영부영
'골포국(骨浦國)과 탁순국(卓淳國)'. 창원지역에 따라붙는 가야 소국 이름이다. 여느 곳처럼 두 나라도 가야 구성원 중 하나로 독립된 세를 떨쳤다. 바다와 강을 매개로 성장했고, 해양을 이용해 중국·왜 등과 활발히 교역하며 힘을 키웠다.
가야유적 분포를 살펴보면 마산만과 진해만·덕동만·진동만 등 바다와 낙동강을 접하거나 하천으로 연결된 지역에 주요 유적이 뻗어있다. 고분을 중심으로 고분 축조집단의 생활유적(주거지·패총), 관방유적(산성), 생산유적(논·야철지) 등을 갖춘 모습이 나타난다. 고분군과 지근거리에 산성, 패총, 논, 주거지, 생산유적이 분포하는 구조다. 현재까지 창원에서 확인된 가야시대 유적은 78곳 138개. 그중 지정·관리 중인 문화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창원 성산패총, 다호리유적, 내동패총, 가음정동유적, 남산유적 등 지정 문화재는 5개뿐이다.
도계광장서 걸어서 5분 거리
구석기·삼국시대 흔적부터
가야시대 무덤·유물도 확인
창원시 의창구 도계광장 주변에도 비지정 가야시대 유적이 있다. 광장과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도계동고분군이다. 1968년 석곽묘와 고배 등이 출토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진 곳으로, 1986년 명곡로 확장공사 과정에서 첫 발굴조사가 이뤄진 이후 여러 차례 조사가 진행됐다. 지금도 이곳에 가야유물이 여럿 묻혀있다.
▲ 창원 도계동고분군. 인근 주민들이 불법으로 텃밭을 일구고 있다. 이곳은 창원시 땅이다. /최석환 기자
창원대박물관이 제공한 발굴조사 자료를 보면, 도계동고분군에서는 최초 발굴 당시 원삼국시대 움무덤 3기, 가야시대 움무덤 12기, 돌덧널무덤 13기, 독무덤 4기, 조선시대 움무덤 8기 등 고분 41기가 발견됐다. 이듬해 동의대박물관이 벌인 2차 발굴조사에서도 가야시대 고분이 확인됐다. 1999년 창원대박물관 도계 택지 조성 터 시굴조사에선 고분뿐만 아니라 옛 논과 주거지 존재가 드러났다. 금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신라, 왜 등 다양한 지역색을 가진 토기들도 이곳에서 다수 출토됐다.
도계동고분군은 창원 중동 유적과 함께 마산만·낙동강·함안·김해 등 육로와 해상교통로의 중심에 위치한다. 주변에 망호등산성과 소답동패총, 남산패총, 중동토기요지, 제철유적, 10m가 넘는 대형 주거지, 수전지, 수로 등이 분포하고, 청동기시대 환호유적인 남산유적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이 일대는 청동기시대부터 하나의 거대한 복합유적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분군은 2세기 후반부터 5세기 후반 사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일 오후 기자와 도계동고분군 현장에 동행한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곳에서 창원지역 최초로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데 이어 삼국시대 수전과 수로 등 생산, 생활유적 등도 일대에서 확인됐다고 밝히면서 중동 유적을 포함한 도계동고분군이 창원 중심 가야유적이라고 설명했다.
▲ 2020년 촬영한 창원 도계동고분군 유적 모습. /창원대박물관
"유니시티 아파트로 통하는 도로가 나면서 안내판 뒤 도로가 끊겼어요. 이 도로를 내기 전에 발굴조사를 했었는데 당시 조사 땐 땅 밑에 고분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다시 흙으로 덮었거든요. 도심 속에 남아있는 고분이 드물고 보존 가치가 높다는 점을 들어 그때 문화재위원들이 밑에 모래주머니를 깔고 네임태그도 붙인 뒤 1m 이상 복토한 다음 도로를 놓게 했었어요.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 그렇게 한 거죠. 나중에는 유니시티와 이어지던 도로도 잘라버렸어요. 도로부터 펜스 구간 안쪽도 다 보존이 된 거예요. 도계동고분군을 비롯해서 중동 유적까지가 창원의 대표 중심 가야유적인데, 도심 속에 이렇게 유적이 남겨진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죠."
이날 찾은 고분군 일대는 흔히 떠올릴 법한 고분군 외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볼록하게 솟아오른 봉토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실장의 긍정적인 평가가 무색하게 유적 전 구간에 걸쳐 밭이 일궈진 모습이었다. 고분군 규모는 4330㎡(문화재 보존구역 3610.5㎡). 대부분 문화재 보존구역으로 묶여있는 곳이지만, 배추와 파·감나무 등이 심겨 있었다. 의자와 고무 함지, 음식물쓰레기 등도 보였다.
도계동고분군이라고 적힌 안내 푯말이 하나 서 있었는데 그 위쪽으로는 안전 펜스가 유적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이달 말 도계동고분군 정비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므로 현재 경작 중인 농작물을 조속히 철거해달라는 내용의 현수막도 6개 걸려 있었다. 도계동고분군 일대 땅은 창원시 소유다. 지난 12일 오후 도계동고분군을 다시 방문했다. 이날 만난 60대 남성은 10년째 도계동고분군에서 파와 상추·고추 등을 경작해왔다고 말했다.
▲ 창원 도계동고분군 옆 도로. 유니시티가 생기면서 길이 끊겼다. 도로 밑에는 가야시대 유물 등이 묻혀 있다. /최석환 기자
ㄱ(65) 씨는 "창원시가 10여 년 전에 문화재 정비하겠다고 해서 여기를 싹 다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가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는 바람에 땅이 놀고 있었다"며 "여기처럼 놀고 있는 곳이 창원시에 한둘이겠나. 도계동·중동·소답동 70대 전후 시민들이 여기서 이것저것 심고 있는데 나도 재미로 취미 삼아 조금씩 심는 거지 크게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창원시, 일대 땅 소유하고도 방치
유적 전 구간 무단경작 몸살
이달부터 4개월간 정비 예정
김진섭(68) 도계주민대책위원장은 도계동고분군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15~16명가량 될 거라고 밝히면서, 수년째 창원시가 예산 문제를 이유로 유적을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몇십 년째 방치돼 온 땅이었다. 우리 동네 2~3명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다른 동네 사람이 여기서 경작하고 있다"며 "시가 계속 방치하니까 주민들이 텃밭으로 쓰고 있는 거다.
쓰레기 갖다버리지, 여름 되면 벌레 생기지, 동네가 무법천지가 되고 해서 시에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도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청에서 정비하겠다는 약속을 5~6번 정도 어겼다. 지금부터라도 깨끗하게 관리가 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창원시는 이달 말부터 4개월간 문화재 구역 정비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수석 시 문화유산육성과 주무관(문화재 보수 담당)은 "도계동고분군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작하지 말아 달라는 현수막을 여럿 걸었는데도 시민들이 경작하는 상황"이라며 "추후 도계동고분군에는 복토를 진행한 뒤 잔디를 심을 방침이다. 산책로도 만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도 지정 문화재는 추후 지정을 검토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