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형집행 전 149일(오후 6시)
오후 6시
자동차가 길 모퉁이에 멈춰서 있는데
어딘가 가까운 교회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울리는군." 하고 버지스가 말했다.
그들은 10분쯤 전부터 자동차의 시동을
걸어놓고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헨더슨은 자유의 몸도 아니고 체포된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버지스와 또
다른 남자 사이에 끼어 차의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또 다른 남자란 다름 아닌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그의 아파트에서
끈질기게 심문했던 나머지 두 형사 중의 한
더치라고 하는 또 한 남자는 차 밖의
길가에 서성거리며 서 있었다. 그는 종이
울리기 직전까지 길 한가운데에 주저앉아서
구두끈을 고쳐매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일어섰다.
어젯밤과 똑같은 밤이었다. 인파로
활기찬 거리. 서쪽 하늘은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이 모두 어딘가로
외출하는 시간이었다. 헨더슨은 꼼짝없이
두 남자의 사이에 붙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몇 시간만 지나면 눈이
아찔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기대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집은 거기서 불과 두세 집 뒤쪽의
모퉁이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서
살지 않았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헨더슨은 힘없이 버지스에게 말했다.
"너무 앞쪽이오. 한 집 뒤로 물러나야
해요. 내가 저 여자용 옷가게의 진열창
앞을 지나갈 때 종이 울리기 시작했거든요.
이제 조금씩 기억이 나는군."
버지스는 보도에 있는 남자에게 그것을
말해 주었다. "더치, 한 집 뒤로 물러나서
거기에서 시작하게. 그래, 거기야. 그럼,
시작이야!"
두번째 종이 울렸다. 버지스는 손에 쥐고
있던 스톱워치를 작동시켰다.
길거리에 있던 키가 크고 다리가 긴 빨간
머리의 남자가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동시에 차도 조금씩 미끄러져 가기
시작해서 그 남자와 나란히 길거리의
바깥쪽 차도를 나아갔다.
더치라는 남자는 처음에는 약간
거북스러운 듯이 다리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걷게 되었다.
잠시 뒤 버지스가 물었다. "속도는
어떻소?"
"조금 더 빨랐다고 생각합니다."
헨더슨이 대답했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으면 발걸음이 빨라지는 버릇이
있거든요. 아마 어젯밤에는 꽤 빠르게
걸었을 겁니다."
"좀더 빨리 걷게, 더치!" 하고 버지스가
명령을 내렸다.
다리가 긴 그 남자는 점차 발걸음을
빨리했다.
다섯번째, 이어서 마지막 종소리가
울려왔다.
"대충 맞는 것 같습니다." 하고 헨더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차로에 도착했다. 신호등에 걸려
자동차가 멈춰섰다. 다리가 긴 남자는
그대로 길을 건너고 있었다. 어젯밤의
헨더슨도 신호를 무시했었던 것이다. 다음
구획의 중간 정도에서 자동차는 더치를
따라붙었다.
그들은 50번 구획에 와 있었다. 구획
하나를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두 번째
구획---
"발견했소?"
"아직 못했습니다. 혹시 지나쳐
버렸는지도 모르겠군요. 웬지 눈에 확
들어오질 않는데...... 저것도 아니고,
매우 새빨갰거든요. 보도가 온통 빨간색
세 번째 구획. 이어서 네 번째.
"있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시오." 하고 버지스가 경고
비슷하게 말했다. "시간을 끌려고 한다면
당신이 만들어놓은 그 알리바이도 불리하게
돼. 당신 진술대로라면 지금쯤은 이미 술집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할 텐데. 8분 30초를
지나고 있으니까."
"어차피 당신은 나를 믿고 있지 않잖소."
하고 헨더슨은 차갑게 말했다. "그러니 뭐
다 똑같은 일 아니오?"
다른쪽에 있는 남자가 끼어들었다. "두
지점 사이의 정확한 보행시간을 계산하는
것이 좋을 거요. 그러면 당신이 실제로
테니까."
"9분을 넘어섰소!" 하고 버지스가
읊어대듯이 말했다.
헨더슨은 머리를 낮추고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어떤 간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네온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그는 얼른 되돌아보았다. "저겁니다! 아직
불이 켜져 있지 않지만 저게 틀림없어요.
안젤모라고 하는 술집입니다. 분명해요."
"멈춰, 더치!"
버지스는 소리치며 스톱워치를 눌렀다.
"9분 10초 반--- 거리가 복잡하고
교차로의 신호등도 매일 밤 똑같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10.5초의 오차는 무시해도
괜찮을 거요. 정확히 9분--- 당신의
걸어오는 데 걸린 시간이오. 당신이
아파트에서 종소리를 들은 모퉁이까지 가는
시간을 1분으로 생각하겠소. 그 시간은
여기서 조사해 보면 되니까. 다시
말해서......" 그는 헨더슨 쪽으로 몸을
돌려 말했다. "당신이 늦어도 이 술집에서
6시 17분--- 그 이후는 곤란하오--- 그
시간에는 이미 술집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자동적으로 자유로운 몸이 되는 거요.
아직도 기회는 있다는 뜻이오."
"그 여자를 찾아낼 수 있다면--- " 하고
헨더슨은 버지스에게 말했다. "내가 6시
10분에 여기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될
텐데."
버지스는 차의 문을 열었다. "자, 들어가
"이 남자를 본 기억이 있습니까?" 하고
버지스가 물었다.
바텐더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하지만 우리들의
일이라는 것이 늘 수많은 손님들의 얼굴만
쳐다보는 것이 돼놔서......" 그는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이리저리 헨더슨을 천천히,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그때 버지스가 끼어들며 말했다. "때로는
액자가 그 속의 그림만큼 잘 보이는 경우도
있지. 자, 방법을 바꾸어 봅시다. 당신은
카운터의 맞은편 쪽에 서 있으시오."
모두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헨더슨, 당신은 어느 의자에 앉아
있었소?"
있었고, 마른 안주 접시가 옆에서 두 번째
자리 앞에 놓여 있었으니까."
"좋아, 그럼 앉으시오. 그렇게 해봅시다.
이봐요, 바텐더, 우리들에게는 신경쓰지
말고 이 남자의 얼굴을 잘 보시오."
헨더슨은 어젯밤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카운터의 앞쪽을 바라보았다.
효과가 있었다. 바텐더는 손바닥을
치면서 말했다. "아, 그래요! 그 불쾌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손님이로군요.
생각났어요. 아마 어젯밤이었죠? 딱 한
잔만 드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시간을 알고 싶은데......"
"내가 가게에 나온 지 한 시간이
안되었을 때였을 겁니다. 손님이 그다지
붐비지 않았으니까요. 어젯밤에는 꽤
때때로 있는 일이긴 하지만......"
"당신이 가게에 나온 지 한 시간이
안되었을 때라고 하면?"
"6시부터 7시 사이입니다."
"흠--- 하지만 우리는 6시 몇
분이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바텐더는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우리들은 자기 차례가 끝날 때밖에는
시계를 쳐다보지 않거든요. 일을 시작할
때도 대개는 보지 않지요. 정확히 알
필요도 없고, 안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버지스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헨더슨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다시 바텐더에게 눈을
돌렸다. "그때 여기에 있었던 여자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겠소?"
헨더슨의 얼굴은 새파랗게 되었다가 다시
새하얗게 바뀌어갔다.
그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하자
버지스가 가로막았다. "이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어떤 여자 곁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거요?"
"그래요. 이 손님이 다른 사람 곁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확신할 순 없지만, 내
기억으론 그 시간에 가게에는 이분이 말을
나눌 만한 상대가 한 사람도 없었거든요."
"그렇다면 당신은 여자가 혼자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은 보았지만, 이 양반이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거로군?"
번째 자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오렌지색
모자 말이야!" 버지스가 말릴 틈도 없었다.
"그런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오." 하고
형사가 주의를 주었다.
바텐더는 갑자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37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고요. 매일밤 입을
뻐끔뻐끔 열고 닫으면서 술이나
부어넣지요. 손님이 어떤 모자를 썼으며,
누구와 누가 눈이 맞았는지는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기억할 필요도 없고요.
내게는 손님이란 곧 주문을 말합니다.
주문, 곧 술, 어때요? 손님은 단순한 술에
지나지 않아요! 그 여자가 어떤 술을
마셨는지 그것을 말해 준다면 여자가
있지요. 전표는 모두 보관해 두니까요.
지금 사무실에 가서 갖고 오지요."
사람들의 시선이 헨더슨에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스카치에 물을 섞어서
한 잔 마셨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언제나 그렇게 마시지요. 잠깐만, 그녀가
마시던 잔에는 바닥에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었는데......"
바텐더는 커다란 양철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헨더슨은 이마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잔
밑에 체리가 남아 있었는데--- "
"그것이라면 여섯 가지 종류가 있지요.
내가 도와드리죠. 잔에는 받침대가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바닥이 평평한
것이었습니까? 남아 있던 술은 무슨
잔에 술은 갈색이고--- "
"그래요, 그녀가 만지작거리고 있던 잔에
받침대가 있었습니다." 하고 헨더슨이
말했다. "그러나 남아 있던 술은 갈색이
아니라, 그래, 핑크색이었던 것 같습니다."
"잭 로즈군." 하고 바텐더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다면 금방 알 수 있지요."
그는 전표를 뒤지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걸렸다. 맨 처음 것이 맨 밑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한장 한장 뒤집어보아야 했다.
"보세요, 이렇게 번호 순서대로 잘 정리해
놓지 않았습니까?" 하고 바텐더가
설명했다.
헨더슨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지금 생각났는데,
내 전표 위에 인쇄되어 있던 숫자
번호였지요. 건네받았을 때 유심히
쳐다보았기 때문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숫자라면 어느 누구라도
잊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바텐더는 전표 두 장을 사람들 앞에
펼쳐놓았다.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것이 손님 겁니다. 그런데 전표는 두
장으로 되어 있군요. 13번이 스카치에 물을
섞어서 한 잔, 그리고 이것은 잭 로즈 세
잔, 74번이군요. 이것은 내 앞에서 일했던
오후 당번인 토미가 취급했군요. 그 친구의
글씨는 금방 알아볼 수 있지요. 그리고 그
여자에게는 다른 남자 일행이 있었습니다.
잭 로즈 세 잔에 럼이 한 잔 있군요.
그것을 모두 혼자서 마실 여자는 없을
테니까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가령 그 여자가 내가 일하는 시간까지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고 해도 역시 본
기억은 없습니다. 하여튼 주문을 받은 것은
내 앞의 토미이지 내가 아니니까요. 만일
여자가 그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해도
37년의 경험으로 보아, 이 손님이 그
여자의 곁에 가서 말을 걸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내 경험으로 봐서는, 먼저 함께
있었던 남자가 그 여자와 같이 있었을
겁니다. 한 잔에 80센트나 하는 잭 로즈를
세 잔이나 사고서, 그 투자물을 뒤에 오는
손님에게 남기고 가버리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치고는 그는 이제 끝났다는 듯이
헨더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기억하면서,
어째서 그녀는 기억을 못 한다는 겁니까?
훨씬 눈에 잘 띄었을 텐데."
바텐더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분명히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두
번이나 만났으니까요. 그리고 그 여자도
얼굴을 본다면 생각해 낼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으면야 확신할 수 없습니다."
헨더슨은 다리가 풀린 주정뱅이처럼 두
손으로 카운터에 매달렸다.
버지스가 그 한쪽 손을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갑시다, 헨더슨."
하지만 헨더슨은 한 손으로 여전히
카운터를 붙잡은 채 조금도 움직이려고
목소리를 낮추어서 외치듯이 말했다. "내가
무슨 혐의를 받고 있는지 압니까?
살인입니다, 살인!"
버지스가 재빨리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시오,
헨더슨."
헨더슨은 계속 버티다가 형사들에게 끌려
뒷걸음질쳐 나왔다.
"13번이 맞긴 맞는 모양이군." 형사 한
사람이 비꼬는 투로 중얼거렸다. 헨더슨은
형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길거리로 나왔다.
"이제는 어젯밤에 당신이 갔던 장소에서
그 여자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거요."
버지스가 경고하듯이 말했다. 그는 택시
운전사를 찾아 데리고 오기를 기다리고
17분에는 저 술집 앞에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늦은 시간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여겨지는데. 또,
그렇다 해도 얼마나 늦게 나타날지 그것이
궁금해. 그래서 이렇게 한발 한발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어젯밤 행적을 조사해 보는
거요."
"그녀를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다. 모를
리가 없어요!" 헨더슨은 끝까지 버텼다.
"어젯밤에 우리들이 간 곳에 있었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녀를 보고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만일 그녀를 찾아낼 수 있으면
그녀가 언제 어디에서 처음으로 나를
만났는지 말해 줄 겁니다."
버지스의 명령으로 택시 운전사들을
조사한 사람이 돌아와서 보고했다.
안젤모 근처에 차를 세워두었더군요. 둘 다
데리고 왔습니다. 버드 히키와 앨 앨프라고
합니다."
"앨프!" 하고 헨더슨이 소리쳤다. "내가
생각해 내려고 한 그 기묘한 이름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했었죠? 너무나
우스꽝스러워서 우리들이 큰소리로
웃었다고."
"앨프를 데려와. 나머지 사람은
돌려보내도 좋아."
그는 면허증 사진과 마찬가지로 실제의
모습도 매우 우스워 보였다. 아니, 실물은
총천연색이라 더욱 우스웠다. 버지스가
물었다. "어젯밤에 이곳 정류장에서 메종
블랑세라는 레스토랑까지 손님을 태워다
주었소?"
생각을 더듬었다. "밤새도록 많은 손님들을
태우고, 또 내려 드리고 해서--- " 이내
그는 기억이 나기 시작했는지 덧붙여
말했다. "메종 블랑세라면 날씨가 좋은
밤이면 65센트가 나오는 거리인데." 하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다시 본래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 태웠습니다!
30센트짜리 두 번 사이에 65센트짜리가 한
번 있었습니다."
"잘 살펴보시오. 이 중에 당신이 태워다
준 손님이 있소?"
그의 시선은 헨더슨의 얼굴을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이
사람이죠, 아닙니까?"
"분명히 말하시오."
운전사는 의문부호를 걷어치웠다. "이
"혼자였소, 아니면 동행이 있었소?"
그는 잠시 사이를 두고 나서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동행이 있었던 것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혼자였던 것
같은데요."
헨더슨은 갑자기 발목이 뒤틀린 것처럼
휘청거렸다. "당신은 그녀를 틀림없이
보았을 겁니다! 다른 여자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나보다 먼저 타고 먼저
내렸습니다."
"쉿! 조용히 하시오." 하고 버지스가
가로막았다.
"여자라고요?" 운전사는 기분나쁜 듯이
말했다. "당신이라면 기억합니다. 예,
기억하고말고요. 당신을 태우려다가 차가
부딪칠 뻔했으니까."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당신은 그녀가
차에 타는 것을 못 보았군요. 당신은 그때
다른쪽에 정신을 쏟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
운전사가 헨더슨의 말을 되풀이하고는
확실한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다른쪽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택시 운전사들은
요금을 받을 때는 한눈을 팔지 않거든요.
하지만 나는 여자가 내리는 것은 보지
못했는데요. 자, 이제 됐습니까?"
"차내등이 켜져 있었잖습니까?" 하고
헨더슨은 애원하듯이 말했다. "당신 바로
뒤에 앉아 있었던 그녀를 보지 못했을 리가
없어요. 백미러에, 아니 앞 유리창에라도
비쳤을 겁니다."
말했다. "이젠 틀림없습니다. 나는 8년
동안이나 택시 운전을 해왔지요. 차내등이
켜져 있었다는 것은 당신이 혼자였다는
증거입니다. 여자와 둘이 있으면서
차내등을 켜는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거든요. 다시 말해서, 차내등이 켜져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손님이 혼자였다는
증거라고요."
헨더슨은 목에 뭔가 걸린 느낌이었다.
"내 얼굴은 기억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운전사가 대답할 겨를을 주지 않고
버지스가 먼저 말했다. "당신도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잖소? 당신
말대로라면 당신은 그녀와 여섯 시간이나
정도--- 그것도 그녀와 등을 지고 있었던
상황이었소." 버지스는 그것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좋소, 앨프, 이젠 됐소."
"아니,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젯밤에 이 사람을 태웠을 때는 분명히
동행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메종 블랑세에 들이닥쳤을 때에는
마침 뒷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테이블보는 모두 벗겨지고, 손님들도 모두
돌아간 뒤였다. 주방 쪽에서 그릇들이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종업원들이 밤참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아무 장식이 없는 테이블 하나에
다가가서 의자를 끄집어내어 앉았다. 그
모습은 마치 망령들이 보이지 않는 요리를
앞에 놓고 지금부터 난장판 파티라도
손님을 보면 인사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는 지배인은 근무 시간이 아닌데도
그들의 앞에 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절대로 예의바른 것이
아니었다.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풀어헤친
데다가, 입에 음식물을 가득 넣고 있어서
한쪽 볼이 혹처럼 불거져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고
버지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검고 움푹 들어간 지배인의 눈이
헨더슨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그리고는 곧
대답했다. "예, 있고말고요."
"가장 최근은 언제였습니까?"
"어젯밤입니다."
"어느 자리였습니까?"
않고 벽 쪽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흠,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누구와 함께 있었습니까?"
"아니, 혼자였습니다."
헨더슨의 이마에서 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여자가 나보다 조금 늦게
내 자리로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단 말이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함께 앉아
있었는데...... 거짓말하지 말아요. 당신이
바로 옆에 와서 인사를 하며, '뭐 불편하신
점은 없습니까, 손님?' 하고 물어보기까지
했잖습니까?"
"예, 그것은 제 일이니까요. 어느
손님에게나 적어도 한 번은 인사를
드리지요. 손님의 경우는 분명하게
조금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손님 양옆의 자리가 모두 비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손님'이라고 했다면--- 사실,
그렇게 말했지만--- 그것은 당신이
혼자였다고 하는 절대적인 증거이지요.
여자 손님과 함께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손님, 그리고 부인'이라고
말씀드리거든요. 이것은 틀에 박힌
문구이지요." 지배인의 눈동자는 얼굴
깊숙히 박힌 총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뒤 그는 버지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의심스러우면 어제 예약장부를 조사해
보시죠?"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 버지스는
일부러 귀찮은 듯이 느릿느릿 대답했지만,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배인은 식당을 가로질러가서 찬장
서랍을 열고는 장부를 가져왔다.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장부를
펼치지 않은 채 그들에게 건네 주면서 짧게
말했다. "날짜는 맨 위에 쓰여 있습니다."
헨더슨을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장부
위로 머리를 모았다. 헨더슨만이 떨어져
있었다.
장부는 연필로 대충 기록되어 있었지만
읽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열려진
면의 맨 위에 '5월 20일 화요일'이라고
날짜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면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으로 커다랗게 X자가
그어져, 이미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을
글자를 읽는 데는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곳에 열 사람 정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18번 테이블--- 로저 애슐리,
4인분(밑줄)
5번 테이블--- 레이번 부인, 6인분(밑줄)
24번 테이블--- 스코트 헨더슨,
2인분(밑줄 없음)
세 번째 이름 옆에는 (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지배인이 설명했다. "이것을 보면 모두
알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밑줄을 그어
지운 것은 예약한 손님이 오셨다는
표시이고, 줄을 긋지 않은 것은 오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또, 줄을 긋지 않고
일부분만이 오시고 나머지 분은 오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작은 괄호 속의
숫자는 제가 기억하기 좋게 만든 것이지요.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손님 일행이
찾아오더라도 여러 가지를 묻지 않고도
어느 테이블로 안내해야 되는지 알 수가
있거든요. 가령 디저트를 드시고 식사가
끝날 때가 되어 일행이 또 나타나면 줄을
긋고 지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부에 의하면, 이 손님은 두 사람
자리를 예약했지만 이 손님 혼자만
오셨다는 이야기죠."
버지스는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며 혹시
지워진 흔적은 없나 하고 장부를
살펴보면서 말했다. "고친 흔적은 없군."
헨더슨은 한쪽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리고
있었다.
지배인은 두 손으로 장부를 치켜들었다.
"저는 이 장부를 전적으로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헨더슨 씨는 어젯밤에 혼자
오셨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럼, 우리들도 똑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 이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두게. 다시 찾게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음에 테이블 담당 보이인
미트리 맬로프를 만나보세."
이내 헨더슨의 눈앞에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꿈인지
장난인지 알 수 없는 이 게임은 계속되어
갔다.
이것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연극이었다. 보이에게는 조금도 장난스러운
우스운 게임에 지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메모하는 것을 보고 보이가 재빨리
지적했다. "아, 잠깐만요, 손님, 제 이름에
필요없는 D자가 하나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발음되지 않지요."
"그런 것은 상관없어." 하고 버지스가
말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자네가 24번 테이블 담당인가?"
"예, 저기 10번부터 28번까지가 제
담당입니다."
"자네, 어젯밤에 24번 테이블에서 남자
손님의 시중을 들었나?"
보이는 정식으로 소개를 받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 맞습니다!" 하고 말하고
안색이 밝아지며,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셨습니까? 또 찾아주십시오." 하고
그는 아무래도 그들을 경찰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듯했다.
"아니, 이 양반은 다시 오지 않아."
버지스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나서 손을
들어 그 보이의 상투적인 인사를 막았다.
"자네가 시중을 들었을 때, 테이블에는 몇
사람이 있었나?"
보이는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능한 한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말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전혀 짐작을
못하는 것 같았다. "이분뿐이었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혼자였어요."
"어떤 여자하고 함께 있지 않았나?"
"아뇨, 여자라니 대체 어떤 여자
말입니까?" 이어서 그는 천진스럽게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이분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헨더슨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벌리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 밤새도록 헤어져 있었지." 하고
형사 하나가 익살맞게 말했다.
보이는 자신이 말한 것이 적중했다는
것을 알고 신나는 듯이 눈을 껌벅거렸다.
그때 헨더슨이 힘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그녀에게 의자를 빼주지 않았나, 응?
그리고는 메뉴판을 펼쳐서 그녀에게
건네주었잖아!" 그리고는 자기 머리를 몇
번 가볍게 때린 뒤에 말했다. "나는 자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어.
그런데도 자네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는
보이는 동부 유럽 특유의 애교 넘치는
커다란 몸짓을 섞어가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예의바른 태도는
아니었다. "예, 여자 손님이 오셨을 때는
반드시 의자를 빼드리지요. 하지만 오시지
않았는데 어째서 의자를 빼드렸을까요?
그럼, 제가 빈자리의 의자를 빼드리고
메뉴판을 펼쳐보였다는 것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사람에게 하지 말고, 설명은
우리들에게 하게. 이 사람은 체포된
사람이야." 버지스가 이렇게 말하며
끼어들었다.
보이는 머리만 홱 돌려서 쳐다보았을 뿐
거친 말씨는 그대로였다. "이분은 팁을 한
사람 반에 해당되는 것만큼 주었습니다.
있겠습니까? 만일 어젯밤에 여자와 함께
와서 팁을 한 사람 반어치를 주었다면 오늘
제가 이렇게 친절하겠습니까?"
"한 사람 반어치란 무슨 뜻이지?" 하고
버지스가 물었다.
"한 사람에 50센트, 두 사람이면 1달러.
그런데 이 손님은 75센트를 주셨어요. 곧
한 사람 반의 팁이지요."
"두 사람 시중을 들고 75센트를 팁으로
받는 경우는 없나?"
"농담하지 마세요." 하고 보이는 숨을
거칠게 쉬며 말했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이렇게 해주지요." 그는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는 흉내를 냈다. 그것은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진 듯한,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나서, 손님 -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상대방이 위축될
정도로 따가운 시선이었다. 그 다음에
두터운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조소가 담긴
곁눈질로 상대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말해 주지요. '고맙습니다, 손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많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요. 여자와 함께 온
손님이라면 대개 무안해서라도 조금 더
주게 되지요."
"나라도 그렇게 하겠군." 하고 버지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머리를 돌려서 말했다.
"그런데, 헨더슨 씨, 당신은 팁을 얼마나
주었소?"
헨더슨은 기운 없이 말했다. "이 보이가
말한 대로 75센트를 주었습니다."
수 있겠나?" 버지스가 보이에게 물었다.
"지배인이 알고 있습니다." 보이는 이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곧 증명되리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지배인이 전표를 가지고 왔다. 전표는
하루치를 클립으로 묶어서, 월말에
집계하기에 편리하도록 정리해 놓았다.
문제의 전표는 곧 찾을 수 있었다.
테이블--- 24번, 보이--- 3번(정식
1인분--- 4.25)
그리고 '완불--- 5월 20일'이라는
보라색의 둥근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그 날짜의 24번 테이블 전표는 그 외에
두 장이 더 있었다. 하나는 '홍차 1---
0.75'로 이것은 저녁식사 시간 직전의
것으로, 밤 늦게 문닫기 직전의 것이었다.
헨더슨을 차에 태우기 위해서 모두가
애를 써야만 했다. 그는 완전히 인사불성
상태였다. 다리가 마비되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윽고 현실감이 없어 보이는 건물과
가로수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계속
뒤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그는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놈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모두가 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어!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저놈들이......" 헨더슨은 몸서리를 치고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무대에서는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음악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때때로
흘러 들어왔다가는 다시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지배인은 전화를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입장 수입이 좋은지 회전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표를 두 장 사신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고 그는 정중한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분에겐 동행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아, 기분이 좋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죄송하지만, 이분을 곧 여기에서 데리고
나가주십시오. 쇼가 진행되는 도중에
소란이 일어나면 곤란하니까요."
그들은 문을 열고 짐짝을 옮기다시피
해서 헨더슨을 끌고 나갔다. 등이 뒤로
젖혀져서 바닥에 닿을 것 같았다.
한 줄기 바람처럼 노래소리가 무대
쪽에서 날아왔다.
치카 치카 붐 붐
치카 치카 붐 붐
"아, 그만해요." 하고 헨더슨은
애원하듯이 말했다. "이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는 경찰차의 뒷자리로
굴러들어가 앉았다.
"이젠 털어놓지. 여자 같은 것은
애당초부터 없었다고 말이오. 그렇게 하면
시간도 절약되지 않겠소, 응?" 하고
버지스가 설득조로 말했다.
헨더슨은 냉정을 되찾고 대답하려고
애썼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만일
그 뒤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마 나는
미쳐버리고 말 겁니다.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릴 겁니다. 내 이름이 스코트
헨더슨이라는 것조차 믿을 수 없을 거란
말입니다." 하고 그는 자신의 넓적다리를
내리쳤다. "이것이 내 넓적다리라는 것도
믿지 못하게 될 거요. 그리고 완전히
미치게 될 때까지 모든 사실을 의심하고
거부하게 될 겁니다. 그 여자는 여섯 시간
동안 내 곁에 있었어요. 그녀의 팔과
스치기까지 했는걸요."
그는 손을 뻗어 버지스의 건장한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옷이 끌리는 소리,
소곤거리던 목소리, 은은한 향수 냄새,
그녀의 숟가락이 달그닥거리는 소리,
의자에 앉을 때 난 희미한 소리, 그녀가
잔을 치켜들었을 때 내 눈에 비친 그
술잔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는
주먹으로 무릎을 내리쳤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그녀는 있었어. 분명히
내 곁에 있었어!"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 가득히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그녀가 없었다고
생각토록 꾸미고 있어!"
자동차는 계속해서 꿈의 나라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어느 용의자도 입에 담지 않을
소리를 외쳐댔다. 그것도 마음 깊숙이에서
나오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무서워요.
나를 유치장으로 데리고 가주시오.
부탁입니다. 나는 두껍고 튼튼한 벽이
필요하단 말이오."
일처럼 어떤 형사가 말했다.
"뭘 좀 마시게 해주지." 버지스가
말했다. "차를 세워. 누가 가게에 가서
음료수를 좀 사다 주게.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군."
헨더슨은 갈증난 사람처럼 벌컥벌컥
그것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자, 가요. 빨리." 그가
애원했다.
"이 친구, 유령이라도 본 모양입니다."
한 남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령 같은 건 모두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거야."
그 다음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차는 경찰서에 도착해서, 모두
헨더슨을 둘러싸고 계단을 올라갔다.
헨더슨이 계단 하나에 걸려 비틀거리자
버지스가 그를 부축해 주었다.
"푹 쉬시오, 헨더슨."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나서 좋은 변호사를 찾는
거요. 이제부터는 그 두 가지가 필요하게
될 테니까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