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여름, 가을용 작아져서 못 입는 헌 옷이나, 학용품(볼펜,공책,연필 등) 렌턴 또는 건전지, 양초, 초코파이 등을 준비하여 오시면 나눔의 행사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KINGDOM HOTEL 또는 동급 (263 13 44 586)
*보츠와나 자연환경
남아프리카 고원의 일부를 이루는 보츠와나는 단절이 있는 구릉성(1,400m)의 남동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끝없이 이어지는 평지(평균해발고도 1,000m)이다. 남북으로 뻗는 광대한 고원(1,200m)이 전국토를 뚜렷이 다른 2개의 지형구로 나눈다. 고원 동쪽에는 쉽게 마르는 수로들이 가로지르는 구릉성의 초지(벨트)가 있고, 서쪽에는 북으로 1만㎢에 달하는 오카방고 습지와 남으로 칼라하리 사막이 펼쳐져 있다. 칼라하리 사막의 대부분은 풀과 아카시아 가시덤불이 나 있는 반사막지대이며, 모래 언덕이 있는 남서부지역만이 진짜 사막지대이다. 항구적인 지표수의 수원으로는 북서부에서 나미비아와의 국경을 이루는 초베 강(유역 면적 14만 5,000㎢), 보다 먼 북서쪽의 오카방고 강(유역 면적 13만 7,300㎢), 남동쪽에서 남아프리카와 국경을 이루는 림포포 강(유역 면적 7만 7,700㎢) 등이 있다. 보츠와나 남부의 대부분에서는 지표의 배수가 없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아열대기후 지역이나, 내륙의 한가운데 위치하기 때문에 여름(10∼3월)에는 기온이 38℃까지 오르며, 겨울(4∼9월)에는 기온이 0℃ 이하로 떨어진다. 연평균강우량(12∼4월에 집중됨)은 약 460㎜인데 북부 지역은 635㎜, 동부는 380㎜, 남서부는 127㎜ 이하를 기록한다. 강우량은 변동이 많아 예측이 어려우며 몇 년씩 계속되는 극심한 가뭄과 기근이 잦다. 그러나 보츠와나 동부(림포포 강 유역) 지역은 강우량이 적절해 농업 및 축산에 알맞기 때문에 이 지역은 보츠와나 최고의 목축지 중 하나이다. 국토의 약 3/4이 불충분한 사바나형 식생으로 덮여 있다. 강우 패턴에 상응하여 남서부의 듬성듬성한 풀과 가시덤불이 동쪽과 북쪽으로 가면서 점차 관목숲으로 바뀌고 이어 사바나 삼림지가 나타나지만, 사실상 삼림이라고 할 만한 것은 초베 강 연안에서만 볼 수 있다. 칼라하리 사막에도 많은 야생동물들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양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보츠와나에는 사자, 코끼리, 표범, 하마, 기린, 각종 영양과 독사, 악어 등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몇 군데의 국립공원과 금렵구역에서 보호받고 있다.
보츠와나에 매장되어 있는 광물들이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다이아몬드·니켈·구리·석탄 등은 일찍이 개발되었다. 오라파·레타카네·즈와넹 등의 다이아몬드 광산지대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매장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 탄전이 보츠와나 동부 모루풀레와 세로웨 근교에 있으며, 소금, 공업용 탄산나트륨, 탄산칼슘 등이 보츠와나 북동부의 마카디카디 염전에서 난다. 플루토늄·크롬·백금 산지도 있다.
*보츠와나 국민
국민의 3/4 이상이 반투어를 쓰는 8대 부족에 속하며, 이들 8대 부족은 역사 및 문화적으로 서부의 소토족과 관계가 있다. 8대 부족은 퀘나족·응과케체족·응과토족·크가틀라족·말레테족·롤롱족·틀로콰족과 국명의 기원이 된 츠와나족(혹은 보츠와나족)이다. 이들 8대 부족은 각기 고유의 영토에 토착 족장이 있으며(예를 들어 퀘나족과 응과케체족은 보츠와나 남동부 가보로네 근처에 살고 있음), 각각 고유의 영토에 대해 양도할 수 없는 공동소유권을 갖고 있다. 보츠와나의 원주민인 칼라하리의 유목민 산족(부시먼)과 수천 명에 달하는 유럽계 백인들(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통해 들어옴)은 이러한 관례를 적용받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사르와 혹은 마사르와라 부르는 산족은 현재 인구의 극히 일부를 구성할 뿐이며, 지금도 칼라하리에서 계절에 따라 나미비아 국경을 넘나드는 유목생활을 하고 있다. 보츠와나의 공용어는 츠와나어(Setswana 또는 Siswana라고도 함)와 영어이다.
보츠와나 국민 대다수의 종교는 명목상 그리스도교이나 실제로는 그들의 토착신앙과 결합된 형태의 종교이며, 그리스도교도라 할 수 있는 사람은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대다수는 영국성공회파·조합교회파·감리교파·장로교파 중 하나이며, 위의 4개 종파가 보츠와나에서는 통합되어 있다. 그밖에 다른 소수 종파도 있다. 이 나라에는 물이 부족해 인구 또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인구밀도는 남동부 지역이 가장 높고, 중서부와 남서부가 가장 낮으며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곳도 있다. 출생률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편이며, 평균기대수명은 남자 55세, 여자 61세이다. 도시인구는 전체의 1/5 정도이고, 국민의 절반 정도가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다.
*보츠와나 경제
보츠와나는 공기업과 사기업이 동참하는 혼합경제 체제의 개발도상국이다. 다이아몬드·구리·니켈 채굴업 및 축산업이 경제의 주된 기반이며, 수출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럽 경제공동체(EEC) 국가들에 편중되어 있다. 제조업 발달은 극히 저조하지만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은 인구 증가율을 훨씬 웃돌고 있다. 1인당 GNP는 남부 아프리카 최고의 수준이나, 세계 수준과 비교해볼 때 여전히 낮은 편이다.
농업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지만 전체 노동인구의 3/4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색인 : 소). 농업의 주를 이루는 목축업의 경우, 가축의 절반 이상이 소수의 축산 가구에 의해 사육되고 있으며, 이들 가축의 대부분은 로바체에 있는 보츠와나 육류위원회에서 관리한다. EEC에 대한 육류수출은 로메 협정(Lom Convention) 체결 후 그 혜택을 받고 있으나 한때 가축 전염병인 아구창(가축의 입, 발굽에 걸리는 병)이 크게 번지면서 엄청난 타격을 받기도 했다. 이 병은 1981년 보츠와나 정부가 가축에 예방접종을 하고 전염병 방역벽을 설치하면서 사라졌다. 대부분의 보츠와나인들은 가뭄에 잘 견디는 수수·채소류·멜론·옥수수·기장·콩 등을 주식으로 한다. 이들 곡물류 생산은 대부분 자급자족 수준인데 불규칙한 강우량과 척박한 토양 때문에 생산량이 국내수요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 목화·땅콩·해바라기씨 등의 환금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광산업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 이상이나, 전체 노동인구의 소수만이 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다이아몬드·구리·니켈의 생산 및 수출이 광산업의 주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다이아몬드 수출은 외환과 공공수입의 주된 공급원이다. 다이아몬드는 보츠와나 정부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데베르스통합광산회사가 공동으로 채굴하고 있다. 보츠와나 정부는 구리 및 니켈 생산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석탄은 채굴되어 국내에서 발전용으로 쓰인다. 숙련 노동자가 부족하며, 그나마 수천 명의 보츠와나 노동자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광산에서 일하고 있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보츠와나의 수입품 대부분을 공급하는 남아프리카 관세동맹의 회원국들과 보츠와나 수출품의 대부분을 받아들이는 EEC 회원국들이다. 주요수입품목은 공산품과 식료품이다.
*보츠와나 정치와 사회
보츠와나는 의회정치의 다당제 공화국이며 1966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르면 단원제 국회에 입법권이 주어져 있다. 국회는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34명의 의원과 특별선출되는 4명의 의원, 그리고 법무장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원 임기는 5년이다. 보츠와나 주요부족의 추장들로 구성되는 추장회의는 정부에 대한 자문기관 역할을 하며, 부족생활에 영향을 줄 법을 제정할 때는 국회 통과 이전에 반드시 먼저 족장회의의 심의를 받게 되어 있다. 국가 통치권은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임기 5년의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고, 대통령은 국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부를 직접 구성하여, 그 정부의 보좌를 받으며 국가를 통치한다. 보츠와나가 독립한 이래 보츠와나 민주당(Botswana Democratic Party)은 줄곧 집권당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민보건 상황은 열악하나 11세까지의 아동은 무료진료의 해택을 받는다. 1970년대 들어 국민보건에 대한 정부 지출이 대폭 늘어나서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이동진료소를 통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 및 의료진 부족현상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유아 및 아동 질병은 보츠와나의 큰 문제거리로 높은 유아사망률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밖에 말라리아와 결핵·위장염·폐렴·영양실조 등도 보츠와나인들을 괴롭히는 만성적인 질병이다. 보츠와나 인구의 약 70%가 글을 쓰고 읽을 줄 알며, 1980년에는 초등교육이 의무교육으로 정해졌다. 학령 아동의 4/5 이상이 초등학교에 취학하나, 중등학교 진학률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고등교육은 가보로네에 있는 보츠와나대학교(1976)에서 받을 수 있다.
*보츠와나 역사
보츠와나 일대에 제일 먼저 정착한 것은 산족이다. 그후 1600년경에 소토족이 현재의 보츠와나에 이주해왔다. 1801년 초창기 유럽 원정대가 이 지역을 답사했고, 1813년 런던 선교회가 쿠루만 강변에 선교본부를 세웠다. 1821년에 로버트 모펫이 선교 책임자가 되었다. 바로 그무렵, 줄루족 군대에 쫓긴 수천의 피난민이 보츠와나에 들어와 약탈을 자행했으며, 음질리카지가 이끄는 은데벨레족이 줄루족에서 이탈, 서부 트란스발에 정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보츠와나를 공격했으며 1837년 보어인들에게 패한 후에도 계속 보츠와나를 괴롭혔다. 보어인들은 1835년 케이프 식민지로부터의 대이동시 보츠와나 국경지대까지 밀려들어오기도 했다.
1867년에는 타티 강 유역에서 금이 발견되어, 1884년 이 지역 일대가 영국의 베추아날란드 보호령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몰로포 강 남부지역이 영국직할 식민지가 되었고 10년 후에는 케이프 식민지에 합병되었다(→ 색인 : 대영제국). 베추아날란드는 1960년대까지 영국의 보호령으로 남았다. 1961년에는 기존의 식민지 판무관제도 대신 행정 및 입법 위원회 제도가 도입되었다. 1965년에는 헌법에 따라 최초의 총선거가 실시되어 베추아날란드(보츠와나) 민주당이 총 31개 의석 중 28개 의석을 차지했다. 1966년 9월 30일 보츠와나 공화국은 영연방 내의 독립국으로 선포되었고, 이어 국제연합(UN)의 회원국이 되었다. 보츠와나는 1970년대 경제적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의존하고 정치적으로는 주변 아프리카 흑인 국가들과의 선린을 다지기 위해 줄곧 노력했으며, 1970년대말에는 보츠와나와 잠비아를 잇는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또한 같은 기간중 보츠와나는 로디지아 난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으며, 1980년 짐바브웨가 독립하기 직전 짐바브웨 인민혁명군 게릴라들의 거점 구실을 하기도 했다.
*보츠와나와 한국과의 관계
보츠와나는 1968년 4월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1974년 11월에 북한과 수교하고 그동안의 입장을 바꿔 친북한 경향을 보이기도 했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고 있다. 현재 한국과 보츠와나 사이에는 의료기술협력협정(1970. 7), 무역협정(1986.5) 등이 체결되어 있다. 특히 한국은 실질협력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보츠와나에 자동차·트럭 등을 무상으로 원조하는가 하면 의료진을 파견하고 연수생을 초청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두 나라의 협력관계나 교역관계는 미약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1991년 대한수입은 56만 달러였으며, 대한수출도 5만 달러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이 보츠와나에 진출할 가능성은 많으며, 특히 광산업분야에서 적극적인 진출이 기대된다. 1989년 현재 보츠와나에 있는 교민은 94명으로 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