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호장룡을 보고 난 느낌을 한 단어로 말하라면 뭐라고 해야할까? 나는 허무함 혹은 허망함이라 말하고 싶다. 와호장룡은 한마디로 허무한 영화다. 와호장룡은 무협영화지만 그 진정한 모습은 무협을 가장한 사랑 이야기이다.
리무바이와 수련 그리고 용과 호의 사랑이야기가 영화 와호장룡의 두 큰 축이 된다. 이 두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진 채로 시작된다. 수련은 약혼자가 단명하여 홀로 남게된 가련한 여인이다. 리무바이, 수련 그리고 그녀의 약혼자 모두 사부 강남학 밑에서 무술을 연마하며 의형제처럼 지낸 사이다. 하지만 리무바이와 고인이 된 수련의 약혼자는 절친했던 친구사이였다. 리무바이와 수련의 사랑은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 그런 사랑이었다. 용과 호는 어떤가. 용은 중국 조정의 고위관료인 명문가의 딸이고 호는 서역에서 말을 타며 도적질을 일삼던 마적단 두목이다. 결국 공주와 거지가 만난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런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어려운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리무바이와 수련은 오랜 기간 함께 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힘이 되어주는 사랑을 한다. 그들의 사랑은 중국차의 은은한 향기와 같다. 용이 아버지를 따라 서역으로 가다 우연히 만난 용과 호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미래를 기약한다. 이들의 사랑에서는 짜릿한 탄산음료의 맛이 난다.
두 사랑의 이야기는 같은 곳에서 출발하여 다른 경로를 그리지만 그 종말은 역시 같게된다.같은 스승을 사사하던 리무바이와 수련의 은근하고 오랜 사랑은 리무바이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결국 깨어지며 용과 호의 정열적인 사랑의 꽃 역시 활짝 피어나지 못한 채 용의 자살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들이 죽음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지는 것은 철없는 용의 어설픈 장난이 강호를 떠나려는 리무바이를 다시 무림의 세계로 불려들이고 이는 더 나아가 용의 스승인 파란여우 그리고 용을 아끼던 리무바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 아닐까.
이 이루지 못한 두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광활하고 웅장한 중국의 자연미와 중국 전통무술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대비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청명검은 이 영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제재가 된다. 청명이란 밝고 깨끗한 것을 말한다. 검의 이름부터가 그러니 정말 범상치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들이 펼치는 대결(싸움)의 치열함과 비정함 마저 자연과 무술의 아름다움에 가리워 진다. 즉 그림으로 말하자면, 배경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우나 전경은 우울하고 슬픈 그래서 더욱 허무하고 허망하게 느껴지는 그런 그림이다.
臥虎藏龍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웅크린 호랑이, 누워있는 용'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이 한자성어의 속뜻은 "영웅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이라고 한다. 무림 최고수인 리무바이는 사부의 원수인 파란여우와의 결투에서 그녀를 죽이고 사부의 원수를 갚게 되지만 파란여우가 쏜 독침에 어이없이 운명을 마감한다. 리무바이가 제자로 삼아 다듬고 싶어했던 미완의 대기인 용은 수련과 리무바이의 도움으로 호와 다시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듯 했지만 끝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그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렇듯 영웅들은 소리 없이, 어느 누구의 관심도 이끌지 못한 채 살아져 간다. 역시 우리의 세속적인 역사는 소리 없이 살아져간 인생의 진정한 영웅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와호장룡은 동양철학의 여러 단면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많은 헐리우드나 유럽 영화에서는 남-녀-남 혹은 녀-남-녀로 이루어지는 삼각구도를 주로 사용하고 우리 역시 이러한 구성에 쉽게 감동하고 이에 익숙해 있는데, 와호장룡은 남-녀, 녀-남의 구도를 사용한다. 이것을 확대 해석하면 대다수의 서양영화가 삼각관계를 기초로 하여 우리의 무의식을
밑바닥부터 흔들면서 그 내용을 전개하는데 비하여 와호장룡은 동양철학을 대표하는 음양 혹은 태극 사상을 기초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듯 하다. 또한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생사를 결정하는 무사들의 비정한 대결 가운데서 무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철없는 아이의 장난이 영웅을 죽음에 이르게 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동양철학의 핵심 사항 중 하나인 모순과 역설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와호장룡은 은근한 동양의 미와 정신을 한껏 살린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