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선, 어디로 가는 배를 타도 좋으리라.
신안군은 827개의 섬으로만 이루어진 군이고,
그 중에 사람이 사는 섬만도 73개에 달하니 배는 어딜 향하든 사람에게 가 닿을 것이었다.
지도를 펼치면 바다 위 점 점 섬들의 이름이
마치 이제나저제나 날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의 이름 같았다.
압해도, 임자도, 자은도, 팔금도, 하의도, 신의도, 안좌도, 암태도, 증도, 흑산도, 홍도, 가거도, 태도….
그들에게 모두 인사하고 싶었다.
사실은, 내가 그들과 만나기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것이었으므로.
오래도록 보내지 못해 귀퉁이가 닳은 편지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듯 지도를 접는다.
바람을 타고 비금도와 도초도로 간다. 거기에서 바람과 안면을 트고 나면 바람은 가르쳐줄 것이다.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그러면 그리움의 편지는 부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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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숨 놓으려는 늙은 바람이 있다.
그래서 바람은 제가 태어났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한다.
제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죽는 여우처럼. 비
금도로 가는 배가 출항하자 바람은 얕은 숨을 가릉대며 뱃머리에 몸을 뉘었다.
비금도에서 태어난 바람이었던 것이다.
늙은 바람의 아내는 햇살에 부옇게 부서지는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여타의 말도 눈물도 없었다.
비금도에 닿을 때까지 바람의 숨이 붙어 있어주기만을 기도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뭍이 아닌 바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배는 속도를 붙였다. 함께 승선했던 우리는 모두 노인이 비금도까지 무사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제 땅 제 집에서 제 숨을 놓아 평안하기를.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누울 곳은 어디이며
자신이 마지막으로 갈 곳은 어디인지 알고 가는 바람처럼.
제 근본을 잊지 않고 허공에서 사라지는 바람처럼,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섬으로 가는 발길을 묶을까 걱정이었다.
그랬다면 바람은 아침 내내 낮은 울음으로 항구를 맴돌았을까.
요행하게도 배는 노인을 비금도에 내려놓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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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그리워하는 자들을 보면, 추억보다도 제 근본을 그리워하는 자들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을 명징하게 바라보고 사는 일이 그토록 힘겹다. 작은 섬에 들 때마다 불쑥 깨닫게 된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에 대하여. 나 서 있는 땅의 넓이와 내 위치가 한눈에 가늠되며 찾아오는 존재에 대한 현실감, 그것이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나 홀로 오롯이 내가 되는, 섬.
그래서 섬에 들면 낯선 곳에서 떠돌다가 찾아 든 내 집 같다. 발 들여놓으면 밥 냄새나는 저녁처럼 마음이 뜨끈하면서도 눅지근해진다. 이제 마지막 길을 가려는 노인은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섬을 찾아 들었다. 그 형상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를 닮았다는 비금도(飛禽島). 내려서자마자 하누넘으로 향한다. 하늘 너머라는 뜻일까, 하누넘 해변은 마을에서 산을 하나 넘어야 닿는 저 반대편에 있으니. 산 정상에 서서 처음 하누넘을 내려다보았을 때, 정말 하늘 너머를 보게 된 듯 놀라웠으니. 정상에 서자 발 아래로 구부러지는 산길과 자그마한 해변이 내려다보인다. 해수욕장이라지만 상점 하나, 불빛 한 점 없는, 사람 발길 닿지 않은 듯 아름다운 해변.
하늘 너머의 그런 곳이니 언제든 그립고 그리워지는 곳이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내려가자 고운 모래가 펼쳐진 작은 해변에 닿는다. 그 안에 들어서자 차가운 바람도 성난 파도도 성깔을 내려놓는다. 아늑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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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비금도는 온통 푸르다. 바다도 푸르지만 땅도 푸르다. 겨울부터 봄에 이르기까지 온통 초록의 향연이다. 논밭에 시금치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도 어딜 둘러봐도 시금치뿐이다. 논에도 밭에도 언덕에도 집집 마당에도 상점에도 식당에도 그리고 아이들 점심 도시락 반찬통에도. 비금도 시금치는 섬초라고 부른다. 바닷바람에 몸을 낮춘 시금치들이 웅크리고 섬의 바람 맛을 다 품기 때문이다. 눈이 내려도 그 추위를 견디며 살아낸 안간힘의 맛을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금도 섬초는 그 크기가 아주 작고 그만큼 다디달다. 게다가 모래가 섞인 토양이 시금치를 더 맛있게 만든다. 그만큼 값도 비싸다. 그래서 섬초는 겨우내 비금도 사람들의 등을 따숩게 해주는 값진 특산품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촌과는 달리 비금도 사람들은 겨울에도 쉴 틈이 없다.
볕이 가지런한 오후, 비금도 사람들이 모두 논밭에 주저앉아 섬초를 거두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바다 위의 점 점 섬들처럼 고요하고 나른하다. 오래도록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땅에 몸 붙이고 자라는 섬초들이 마치 초록 바람들 같다. 저기 멀리서 섬 하나가 벌떡 일어나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을 한다. 가져가서 먹으라며 섬초 한 보따리 내미는 아주머니. 초록 바람 한 보따리가 싱싱하게 내게로 건너온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cjstory.com%2Fdata%2F200603%2Fimages%2Flife_13_3.jpg) 늦은 오후가 되어 내월리 월포마을에 들자 집집마다 섬초를 물에 씻어 바구니에 담고 있다. 비금도 섬초는 다듬고 씻는 수고를 거쳐 도회지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돌담이 이어지는 마을, 거기 창호지 문 아래에도 반지레한 마루 위에도 섬초 바구니가 가지런하다. 돌담길을 걷다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가보니 마을의 큰 비닐하우스 안에서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 섬초를 다듬고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작업 중이던 동네 사람들. 그들이 내게 또 초록 바람 한 보따리를 쥐어준다. 식당에서 점심 내내 섬초만 몇 그릇을 비우며 몸이 새파래진 것만 같았는데, 그들 앞에서 마음까지도 파랗게 물들어 버렸다. 지금의 이 푸르른 비금도 땅은 되레 여름엔 새하얗게 빛난다. 소금꽃 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염전이 바로 이곳이다. 그 이전에는 가마솥에 바닷물을 넣고 끓여서 소금을 얻어냈으나 1946년에 이곳에서 처음으로 천일염을 얻어냈다.
그래서 예전부터 비금도 소금을 제일로 쳤다. 한때는 소금 값이 하도 비싸서 섬에 돈이 날아다닌다고 해서 비금도(飛金島)라고도 했고, 개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였다는 너스레가 전해지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돈주머니가 두둑한 섬이다.
해가 진다. 텅 빈 염전이 붉게 물든다. 아직 소금을 낼 때가 아닌 염전은 조용히 해를 받아 안는다. 지난 여름 집채처럼 쌓여 있던 소금 자루도, 뙤약볕 아래에서 바닷물을 밀던 사내들도 없다. 그러나 곧 날이 풀리면 섬초밭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소금밭으로 자리를 옮겨 앉을 것이다. 섬초를 운반하던 이들도 이제 곧 소금을 운반할 터이고 바람은 하얗게 불어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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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바람도 볼 붉어져 돌아다닌다. 다시 빗방울이 날린다.
바람은 제 몸이 젖는 줄도 모르고 허공을 가르며 바다 한가운데로 달아난다.
항구에 매어진 배 위에서 어부들을 만났다. 갑판에서 저녁을 해 먹는 거친 손의 사내들.
추워서 아직은 고기 잡으러 나가지 않는단다.
다음 달이나 되어야 다시 일을 시작할 거라면서도 그들은 배에서 지내고 있었다.
배에서 밥을 해 먹는 바다 사내들,
그들은 흔들리는 배 위가 더 편했을까 아니면 바람처럼 정착할 수 없는 삶이었을까.
머무는 것이 곧 죽음인 바람들처럼 말이다.
밥을 떠 넣는 입 안에서 하얗게 입김이 날린다.
바람이 그 공허를 싣고 간다.
갑판에 알전구가 하나 켜졌다.
그러자 비금도와 도초도를 잇는 서남문대교에 세워진 가로등에 차례로 불이 들어온다.
다리를 건너면 도초도에 닿는다. 937미터의 이 다리는
하늘에 아치형으로 뻗어 있어 마치 우아하게 팔을 뻗은 듯한 모습이다.
그 위에 서면 바다 한가운데, 하늘 안에 안겨 있는 것만 같다.
늦은 밤, 다리 위에 선다. 어둠뿐이어서 거리도 가늠되지 않는 저 멀고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맛이란….
밤새 바다 위에서 바람을 꿀떡꿀떡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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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뿌옇게 낀 아침. 어제의 바람은 가고 없다. 비금도 가산항에서 아침 일찍 배가 나간다. 섬초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배에 실려 뭍으로 간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비금도 읍내에서 꽃다발을 들고 가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교복을 입고 길을 건너는 아이들은 날이 추운데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펄펄 날아다닌다. 오늘이 졸업식이라며 헤벌쭉 웃는 비금중학교 아이들. 39명의 졸업생들은 모두 함께 비금고등학교에 입학한단다. 친구와 이별하지 않아도 되니 아이들은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이다. 헤어짐이 아닌 새로운 시작과도 같은 졸업식 날, 아이들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어디론가 신나게 뛰어갔다.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짱짱하다. 나는 이제 다리를 건너 도초도(都草島)로 간다.
섬인데도 도초도에는 풀이 많고 밭과 밭, 길과 길 사이로 수로가 나 있다. 그 물줄기를 따라 다소곳한 집들이 오종종 모여 앉아 있다. 수로에서는 오리들이 놀고 낚시꾼들은 붕어를 잡는다. 그 풍경이 꿈인 듯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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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리 마을로 간다. 고란리의 들판은 신안군의 섬들 중에서 가장 넓다. 그래서 섬마을인데도 불구하고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멀리 마늘 밭에서 허리 굽혀 일하는 부부의 모습이 푸르다. 마을 입구엔 돌장승이 하나 서 있다.
마을의 재앙을 막아주고 마을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장승인데, 그 모습은 익살스럽기만 하다. 모자를 쓰고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는 모습이나 소맷자락 아래로 드러난 가지런한 손 모양이 가까운 이웃처럼 친근하다. 마을로 들어서니 백발의 노인 둘이 볕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더 늙어 보이는 노인이 더 젊어 보이는 노인에게 형님이라 한다. 두 노인이 이를 가지런히 내놓고 웃는 모습이 마치 돌장승 같다. 서로를 지켜주며 평생 한 마을에서 친구처럼 살아왔을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북돋워주는 장승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아침에 만났던 그 아이들도 서로의 어깨에 머리 기대며 어른이 되어 가겠지. 우리의 수호신은 결코 멀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의 소중한 이들을 믿고 사랑하기에도 시간은 늘 부족하다.
고란리에는 옛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간간이 흙벽의 초가들도 눈에 띈다. 햇살이 고르게 내려앉은 길로 들어선다. 멀리서 보면 자잘한 돌담이 마치 고른 치열 같다. 그 길을 따라가며 집집 대문 안을 들여다본다.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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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한 살림살이들이 그 집 주인의 품성을 말해준다. 말간 세숫대야와 손수 만든 지게와 눈비와 바람을 막기 위해 억새로 엮어 만들어 집을 둘러치는 뜸, 텃밭의 갖가지 채소들. 할머니 한 분이 창호지가 말끔히 붙여진 쪽문을 툭 열고는 내다본다. 방을 드나들 때는 보통의 큰 문으로 다니지만 밖을 내다보기 위해서 문 옆에 작은 쪽문을 달아놓은 것이다. 이제는 모두 노인들만이 살아가는 이 마을에서 나는 문득 옛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나보다 앞서 살아간 이들의 지혜로움을 대할 때마다 함부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나를 반성한다. 섬 마을의 돌담들이 그렇다. 사나운 해풍을 구멍마다 빠져나가게 하여 담이 무너지지 않게 한 삶의 지혜. 그래서 지금도 그 옛날의 돌담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들이야 조금씩 보수를 했다지만 담장을 갈아 치운 이는 아무도 없다. 제 환경에 맞춰 살림살이들을 만드는 지혜 앞에서 나는 고개 숙인다.
비금도의 내월리에서도 또 하나의 삶의 지혜를 보았다. 김풍자 할머니네 초가의 앉은뱅이 굴뚝이다. 굴뚝은 되도록 위로 높이 올려 연기가 잘 빠져나가게 해야 하는 것, 그렇지만 이 집의 굴뚝은 땅바닥에 붙어 있다. 땅에 난 구멍이 굴뚝이란다. 흙 마당이다 보니 해충이 기어들기 때문이란다. 할머니가 아궁이에 밥을 할 때마다 나는 연기는 마당에 가득 고이게 되는데 그 연기가 벌레들을 쫓는다는 것이다. 초가지붕 서까래 아래엔 가훈이 걸려 있다. ‘오늘의 성실 내일 성공’이라고. 지혜로움은 성실함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cjstory.com%2Fdata%2F200603%2Fimages%2Flife_13_8.jpg)
섬 끝으로 달려갔다. 감나무가 많아서 시목이라 이름 붙여진 해수욕장이 있다. 여름이면 갯메꽃과 해당화가 붉게 모래밭을 메우는 곳. 잔잔한 물살이 고요히 노니는 곳이다. 이제 섬의 반대편에 있는 도초도 선착장 앞마을로 간다.
선착장에서 ‘도초 약방’을 끼고 돌면 좁다란 골목이 하나 나온다. 먼저 ‘광명 이발관’이 보인다. 그러고 나면, 오래된 ‘종합 화장품점’이 보이고 낡은 ‘도초 세탁소’ 앞을 지나게 된다.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면 천장 가득 걸려 있는 두꺼운 옷들과 그 아래에서 다림질을 하고 있는 붉은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오래된 시계들이지만 시간은 다 정확하게 맞는 시계들이 진열된 ‘광명당 시계점’ 앞을 지나게 된다. 그러다가 동네 어른들이 ‘도초 명물’이라고 부르는 볼 붉은 사내 녀석과 부딪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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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cjstory.com%2Fdata%2F200603%2Fimages%2Flife_13_9.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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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부리나케 뛰어가다가 멈춰 ‘도초 양조장’ 앞에서 머뭇대고 있는 내게 뭘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 마을은 그런 곳이다. 골목 하나가 전부인데 그 골목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연극 세트 속으로 걸어든 것만 같은. 꿈속에서 자주 본 것만 같은.
‘도초 양조장’ 안으로 들어서니 주인이 혼자서 술을 만들고 있다. 만드는 동안 취기가 얼굴에 스며들었는지 이미 볼이 붉다. 맛을 봐도 되냐는 물음에 적어도 다섯 시간은 발효를 시켜야 한다며 웃는다. 푸른빛의 양조장에서 나오면 다시, 말끔한 샷시문이 이발사의 청결함을 대변해 주는 ‘제일 이발관’을 지나게 되고, 기름때가 어두컴컴한 ‘광명 방앗간’을 지나 마당이 어여쁜 ‘금성장’ 앞에 서게 된다. 오늘은 이만 여기서 묵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몸 낮춘 이층 건물들만이 늘어서 있는 골목 위에 달이 떠오르자 도초도의 밤은 바람과 함께 꿈속으로 걸어든다.
다음날 아침, 창문을 여니 바람에게서 꽃내가 났다. 밤새 여관집 마당에 있던 천리향이 꽃을 피워 올렸던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기 바람은 맑은 햇살 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다가는 제 근본을 깨닫고는 바다 한가운데로 내달음질쳐 갔다. 나는 배를 타고 떠나간 바람의 자리를 더듬었다. 바다에게서도 단 꽃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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