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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 키나발루 3박5일
12. 10. 수
가족이라는 이름의 여행은 새벽 차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차 안에서부터 즐겁고 나는 잠들어 있다. 이제는 익숙한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항공을 타면 처음으로 외국비행기를 경험한다. 목적지가 한국인에게 익숙한 곳이라 여승무원들도 한국인이고 동승자들 상당수가 한국인 단체관광객이다. 지도를 보면 중국의 북경과 경도가 비슷하여 1시간 시차가 있다. 오후 늦게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내려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다. 아담한 공항이다. 열대의 습하고 더운 공기가 익숙하다. 공항에서 10분 거리인 호텔로 이동한다. 인프라가 약한 거리의 건물모습은 익숙한 것이고, 호텔만 거리와 단절된 채 우뚝 서 있고 철조망도 처져 있다. 해변이라 도심면적이 부족하여 매립지 위에서 세워진 호텔이다. 해변을 절단하여 전속부지로 만들었다. 절대면적은 골프장이고, 해변에서 15분 거리들인 섬들을 연결하는 전속항구가 있다. 부자들의 요트들이 즐비하다. 공장이 없다는 코타키나발루의 해안은 더없이 깨끗하고, 해변을 오가는 관광객이 버린 오물만 돋보인다. 호텔 옆 항구에도 선명한 열대바다 속의 물고기가 투명하다. 인구 35만의 도시도 아직 바다를 삼키지 못한 모양이다.
호텔 저녁을 먹고 일행과 맥주를 마시고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를 마감한다.
12. 11. 목
아침 산책 삼아 어제 본 호텔 주변의 수상가옥촌으로 걸어갔다. 처음 본 수상가옥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1900년대 이 곳을 담은 사진을 보면 작은 항구에 수상가옥이 전형적인 인상으로 잡혀 있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본 이 곳의 풍경은 수상가옥을 배경으로 키나발루산이 구름이 가려 정상만 내어 주고 항구에 서양식 기선이 연기를 내품거나 요트가 바람을 가르는 것이다. 여기는 16세기 이래 서양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그런데 멀리서 본 낭만적인 풍경과 달리 수상기옥촌 안으로 들어가니 비닐을 비롯한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있어 가히 충격적이다. 인프라가 미치지 않는 것이다. 도심의 빌딩군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는 사람들도, 도심으로 출근하는 사람도 보이고, 집에서 노는 남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나무다리를 엉성하게 이었으나 오래된 개량의 결과 지금까지 버티고 있을 것이다. 나무다리는 길이 되고, 골목이 되고, 집 입구가 되고, 마을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 도시의 해안가 상당 부분이 이와 같은 수상가옥인데, 인프라가 공급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개발 전의 목가적인 수상가옥이 근대화의 와중에 심한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닐까. 전 지구적 슬럼화가 도시로의 인구집중의 결과라면 이곳 수상가옥은 근대화의 습격을 받은 것이 아닐까. 맹수를 피하고 물고기잡이 생활과 연결되고, 무엇보다 열대의 더위와 습기를 피할 수 있는 최적이 입지조건을 가진 수상가옥이 에어컨이 달린 근대가옥이라는 맹수에 물린 것은 아닐까. 수상가옥은 그 옆블록의 2층식 근대주택과 병존하고 있고,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란 설명이다.
수상가옥은 지금은 함석지붕으로 대체되었지만, 야자수 지붕의 수상기옥이 가능했던 전통어로를 기본으로 하는 생활양식이 보존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근대의 속도는 전통의 파괴를 수반하고 말았다.
호텔 아침을 먹고 보트를 타고 가까운 섬으로 가서 스노쿨링을 하는 상품의 소비가 이 날 일정이다. 제트보트가 바람을 가르며 15분을 달린다. 물이 깨끗하다. 한국의 연안바다와 다르다. 사티라는 작은 섬이 도착한다. 여기는 다국적 사람들의 휴양지. 백인, 흑인, 동남아인, 한국인, 혼혈인이 모두 수영복을 입고 있어 신체구조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히잡의 여인들은 옷을 벗지 않는다. 그늘에 낮아 쉴 뿐. 둘째 아이를 반기는 히잡여인들에게 아이를 건넨다. 아이는 국제언어이다. 구슈에서 서양여인에게 사진을 찍힌 적이 있는 그 아이는 편하게 안겨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신나는 일은 친구들과 같이 물놀이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나올 줄 모르고 태양과 물을 벗삼아 지칠 줄 모른다. 첫 날 내 큰 아이는 그래도 물이 두렵다. 다음 날 공포에서 벗어나 웃음을 되찾았다. 바닷가 간이식당에서 마련한 요깃거리로 점심을 먹는다. 어른들은 스노쿨링으로 열대어를 만끽한다. 물이 선명하니 형형색색 물고기가 손이 잡힐 듯하다. 10분 거리 마누깐섬으로 이동하여 물고기밥으로 물고기를 모으는 놀이를 하다가 호텔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바로 풀장을 직행한다. 바다에 몸을 적응한 아이들에게 호텔풀장은 천국이다. 웃음이 전파되고 어른들은 즐겁다.
아이들 물놀이 도중 말레이인 호텔 직원들과 배구시합을 하였다. 한국과 말레이시아인의 국제전이다. 유일하게 말레이인들을 만난 기회였다. 반응이 뜨겁다. 내일 다시 배구시합을 하잔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들은 바 말레이인들의 낙천성과 순박함,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가 좋아 자신도 현지인과 결혼하고 눌러앉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후 말레인들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생겨 버렸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호텔 저녁 중 현지음식에 적응하기 위하여 열대 향신료가 들어 있는 음식을 먹었지만 쉽지 않다. 과일도 느끼한 것이 있어 아니다 싶다. 호텔 방도 아이들 놀이터로 변한 후 하루 종일 몸이 사용한 아이들이 잠들고, 이슬람 국가의 몇 안되는 밤문화가 있는 편의점에서 라면과 맥주를 사서 택시로 돌아온다. 열대 향신료가 든 라면은 시식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열대의 밤바다 바람을 들으며 하루를 내려놓는다. 여기는 밤공기가 달콤한 열대지만 우리는 에어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나이트 마켓을 가보고 싶지만 잠든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다.
12. 12. 금
아침 일찍 혼자 일어나 재래시장이 있는 시내를 목표로 2시간을 걸었다. 시내는 해변과 배후 산 사이 좁은 터에 자리 잡은 단순한 구조이고, 매립은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매립도시 배후에 수상가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가지는 매립의 역사이다. 도로를 비롯한 인프라가 열악하고, 동남아 중국식 2층 콘크리트 건물군과 중간중간 우뚝 솟은 고층빌딩이 있고, 곡선지붕에서 전통을 느낀다. 아침 일찍 자동차로 출근하는 시민들이 있고, 보행자 공간은 절대 부족하다. 시내공간은 걸어서 다니는 길이 아니다. 아침의 열대태양도 피부를 자극한다. 이윽고 중앙시장에 이르고 여기는 아침을 깨우는 재래시장. 열대과일과 야채가게 한 곳이고, 생선시장이 한 곳이다. 사람으로 붐빈다. 마늘,생강,파는 한국과 비슷하다. 이름 모를 야채가 가득하다. 망고,바나나,파파야,파인애플,수박은 알겠고, 나머지는 이름을 알 수 없다. 아는 단어가 스위트 밖에 없다. 스위트한 망고와 바나나를 사고, 육교를 건너 어시장으로 간다. 대형 참치와 이름을 알 수 없는 큰 물고기가 눈길을 끈다. 작은 물고기도 지천이다. 여기는 회문화는 없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회문화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한지 모르겠다. 상권은 중국인이 쥐고 있다는데, 가게 상점 운영은 말레이인들이다. 식당에서 얇게 구운 밀가루빵으로 아침을 해결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오늘은 다시 마누깐 섬으로 가서 스노쿨링을 하는 상품이다. 마누깐섬은 사티섬 보다는 좀 더 시설이 훌륭하다. 식사도 정성이 더 들어 있다. 식사 도중 말레이 전통악기 연주가 실로폰 소리와 비슷하나, 웬지 명상의 느낌을 준다. 식당 옆에서 본 2차대전 당시의 녹슨 포탄을 보았다. 여기는 영국,일본,미국의 전쟁터였다. “2차세계대전사”란 책에서 확인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오후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퀘속보트 안에서 맞는 강한 바닷바람이 즐거운지 둘째아이가 웃는다. 그는 마린보이 레테르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 호텔로 돌아와 아이들은 다시 물놀이를 하고 어제 배구시합을 한 말레인 친구들은 다시 배구를 하잔다. 한층 가까운 사이가 된다. 약간의 스킨쉽이 친구를 만든다.
저녁 호텔은 말레이시아 교육장관의 영접으로 소란하다. 그 행사 도중 말레인 전통노래와 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들 일정에 볼 수가 없다. 우리의 관광상품에는 현지문화 체험이 없다. 그러니 밤에는 지친 아이들 옆 침대에서 맥주를 마실 수 밖에 없다. 사이판과는 다르다.
12. 13. 토
오늘은 마지막 날이고 해발 4,100여미터 동남아 제일 높은 산 키나발루 산으로 가는 일정이다. 왕복 10여 시간이 걸리고 자정에는 5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힘든 일정이 하필 마지막에 잡혀 있다. 프로그램은 누가 만드는가.
처음에 가이드는 아이들을 동반하는 힘든 일정이니 프로그램 자체를 포기하도록 권유까지 하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키나발루산을 넘어 동서를 사바주를 횡단하는 유일한 도로는 산실로 이어진다. 가고 오는 도중 아이,어른들이 차례로 멀미를 한다.
시내를 벗어나자 인구 35만의 외곽주택가가 쾌적한 입지를 잡고 있다. 영국의 영향으로 일렬로 늘어선 테라스하우스이다. 산중턱에도 단독주택이 여기저기 있다. 열대더위를 피하여 시원한 잠을 자는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다. 집 간격이 여유가 있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해변을 달려 신도심에 우뚝 솟은 빌딩과 시내의 금칠을 한 모스크가 눈길을 끈다. 이윽고 산길을 접어들면 여기는 북보르네오 웅장한 산맥과 열대우림 지대이다. 산길 내내 작은 전통가옥과 급경사를 깍아 만든 논밭이 보인다. 주식은 2모작의 쌀이고, 아침시장에서 본 야채와 과일이 재배되고 있을 것이다. 목축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닭들이 집에 키워지고 있다. 이슬람은 양고기와 닭고기를 주로 소비할 것이다. 해발 4,100여미터 키나발루 정상 부근은 항상 구름이 가려 있으나 오늘을 맑은 날씨라 정상의 큰 바위군이 한 눈이 들어온다. 도로 주변이 작은 마을들이 있고 포장이 안된 산길로 연결된 작은 마을들이 산 중턱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한 몇 년 자리잡고 들어가 인류학적 필드를 하고 싶은 곳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해안과 달리 산악부족은 다른 부족으로 주로 논밭농사를 지어 해변의 어물과 교환하고, 어릴 때부터 마약을 한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정부의 계도로 조기마약은 거의 줄어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키가 작고 날씬하다. 식물은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 그러나 유아사망율이 높다. 한국의 백일잔치와 달리 여기서는 생후 1달에 잔치를 한다. 목가적인 농촌에 히잡을 한 여인들과 반소매 셔츠의 청년들이 오고간다. 여기서도 도로율이 적어 차로 이동한다. 사바주 지도를 보면 대도시는 비행기로 연결되고 주간선도로는 하나뿐이다. 이동이 적었던 옛날과 근대화의 오늘이 그런 모습을 만들었을 것이다.
키나발루 국립공원은 최근 한국인 트래킹으로 붐빈다고 한다. 매년 산악마라톤이 열리고 열대 식물군과 동물군, 광물군의 종다양성 보존으로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사바주는 “숲에 사는 사람”이란 의미의 오랑우탕의 본고장이다. 식충식물인 라플레시아가 식물 아이콘이다. 열대우림을 잠깐 보고 소나무가 자라는 식당에서 샤브샤브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이 일대 산악지대는 기온이 서늘하여 코타키나발루 사람들의 주말휴식처이기도 하여 주말 현지인들로 붐빈다.
점심을 먹고 열대노천온천 지대를 지나 열대우림을 짧게 보는 시간이다. 대나무는 한국과 달리 두께와 높이를 압도하고, 한국의 지정 보호수보다 몇 배가 되는 나무들이 늘려 있는 여기는 북보르네오. 한국의 합판회사가 남벌했던 곳이지만 사바주에서는 그런 흔적을 보지 못했다. 큰 나무를 연결한 흔들다리를 몇 개 건너는 체험에서는 다리에서 본 땅이 아찔하다. 아이들은 웃으며 건넌다. 두려움은 식자의 것이다.
지금부터 차로 3시간을 달려 코타키나발루 시내로 돌아가야 한다. 도중 열대과일 노변가게에 들렀다. 하나뿐인 간선도로 상에 있는 가게여서 사람들로 붐빈다. 익숙하지 않은 과일은 여전히 힘들다. 호기심이 익숙한 맛을 이길 수 없다. 가는 도중 열대의 습한 구름을 만나고 주변을 전혀 볼 수 없다. 시내는 스콜이 내린 모양인데, 심할 경우 차량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그 스콜을 체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최근 한국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를 타고 현지인들이 많아 찾는다고 한다.
천연고무 가게는 생략하고, 토산품 가게가 마지막 일정이다. 말레이 전통악기,가면,옷,주석잔,석청,전통주,커피,말린 망고 등이 진열되어 있다. 사바주의 그림옆서를 사고 싶었지만 없다. 대신 전통그림이 그려진 잔바침을 하나 샀다.
12. 14. 일
공항으로 돌아와 항공편을 보니 말레이시아 각 곳을 연결하는 국내편이 대종이다. 자정을 넘긴 비행기 이륙하고 다행히 한 살배기가 잘 참아주어 밤샘을 면했다. 다른 아이들은 울고 있다. 피곤해도 즐거운 여행이다. 아침 인천공항은 얼어 있다. 옷을 갈아입고 정오에 대전에 도착했다.
낮잠을 자고 저녁에 인터넷으로 말레이시아,코타키나발루를 검색한다. 말레이인 60%, 중국인 20%, 인도인 7% 기타 소수민족과 외국인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는 경제와 정치에서 비롯된 갈등과 타협의 현대사를 보여 준다. 종교적 관용과 말레이인의 국가적 정체성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간섭이 시작되는 말래카 해협의 중개무역의 패권의 역사, 영국과 네덜란드의 보르네오 분할에서 비롯되는 사라와크,브루네이,사바주의 역사가 있다. 개방경제를 택한 말레이시아의 IMF위기시 IMF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문득 마하티르 수상의 아시아 정체성과 유교자본주의 언설, 수니파 이슬람국의 관련이 생각난다. 이와나미 아시아 시리즈 중 말레이시아를 언급한 부분은 많지 않다.
지금 쿠알라품푸르에는 동생네 가족이 살고 있다. 영어,중국어,말레이어가 공용되는 어학학습지로 한국의 교육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다.
결
동남아시아학회를 이끌고 있는 인류학과 선배들을 만나면 물어볼 말이 많아졌다. 베트남,사이판에 이어 세 번째 방문한 동남아시아 코타키나발루 1910년대 해변을 찍은 현지박물관 소장의 한 장의 사진은 식민의 과거를 응시하고 있다. 전통과 근대의 갈등은 어느 곳에나 있다. 산촌에서 본 오래된 미래를 더 확인하고 싶다. 한 달 휴가를 내는 유럽인들은 보르네오 전체를 볼 수 있도록 가이딩하고 있다. “말레이지아”라는 제목의 유럽인 인류학자이 쓴 책부터 볼 일이다. 지로를 보면 내가 본 것은 사바주 코타키나발루 시내와 키나발루산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일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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