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동기들과 예천에 사는 친구도 볼 겸해서 예천의 문화유산 몇 군데를 탐방했습니다. 이른바 <변방의 북소리>. 지방에 사는 동창들이 서울로 올라오기 어려우니 사는 지역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계획했던 곳을 모두 가보진 못했지만 경상북도 북부내륙지역의 별서와 원림을 잘 구경했습니다. 언제 또 이런 시골에 와보겠나 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사진 설명
(1) 내성천이 휘돌아가는 곳에 회룡포(回龍浦)마을이 있습니다. 강물이 마치 용이 휘감은 듯한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죠. 장안사에 오르면 이런 멋진 전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성천을 건너는 뿅뿅다리가 두 개 있는데 지난 여름 수해를 입어 다리 하나가 끊어졌네요.
(2) 지난 겨울 눈오던 날 뿅뿅다리 모습은 이랬더랬습니다.
(3,4) 초간정(草澗亭). 조선 중기 때 관료이자 학자였던 초간 권문해가 50세이던 1582년 낙향하여 세운 별서입니다. 드라마 <미스터션사인>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물이 돌아가는 작은 강가 절벽 위에 소박하나 아름다운 조선건축미를 뽐내며 자리잡고 있습니다. 권문해는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하였는데, 총 20권 20책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운에 맞추어 (ㄱ ㄴ ㄷ 같은 색인별로) 단군조선부터 선조까지의 역사와 동식물, 음식, 풍속 등등을 총망라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며 그 초판 목판본이 예천권문 종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권문해의 조부 권오상은 5형제 중 막내였는데 형 중에 권오복은 김종직의 문하생으로서 기묘사화 때 참수당하고 형제들은 유배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런 집안 내력 때문인지 권문해는 50세에 낙향하여 이런 별서를 짓고 같은 퇴계 선생 문하인 류성룡, 김성일 등과 교유하였다고 합니다.
(5,6) 금당실 마을과 병암정(屛巖亭). 1898년 옥소정(玉蕭亭. 1920년에 예천권문에서 사들여 병암정으로 개명함)을 짓고 떵떵거리며 살았던 이유인과 그 아들 예천군수 이소영이 살던 마을입니다. 이유인은 명성황후가 총애하던 무당 진령군에 붙어서 온갖 국정농단과 사술을 부렸던 자인데,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자 진령군은 역사에서 사라졌으나 이 자는 용케도 살아남아서 대한제국 법부대신까지 지내며 뮈텔 주교를 고종황제에게 소개하여 대한제국이라는 국호와 광무라는 연호를 제정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금당실마을엔 '반(半)서울로'라는 이름의 길이 있는데요, 서울만은 못하지만 그 위세가 서울의 반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그만큼 이유인이 등쳐먹은 나랏돈과 받아쳐먹은 뇌물이 상당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1899년 아들이 예천군수로 임명된 것도 연고지를 회피하는 국법을 어긴 것이니 그 위세가 등등했겠지요.
금당실마을은 현재 한옥 숙박체험 마을로 인기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가 권원하의 활동무대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글 대광31.동산 김인철
사진 홍보 박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