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산악회 외씨버선길 종주 팀 계획에 따라 13구간인 마루금길 '상운사 → 늦은목이 입구 → 선달산 → 회암봉 → 회암령 → 어래산(1,064m) → 어은동 갈림길 → 곱돌령 → 954고지 → 곰봉 삼거리 → 김삿갓 문학관'의 18.71km, 7시간 30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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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달산[先達山]
높이: 1,236m
위치: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선달산은 강원도 영월군과 경북 봉화군, 영주시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미묘하고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 있으며 각종 나무가 아름답게 줄을 서 있어 산세도 우아하다.
영월군 하동면 내리 지동마을에서부터 시작되는 내리천 계곡은 초입에서부터 울창한 수림과 풍부한 수량이 마치 원시의 비경을 연상케 한다. 계곡을 거슬러 오를수록 점입가경의 계곡미가 펼쳐지는데 한가지 흠이라면 이곳의 상류가 석회암 지대인지라 계곡 바닥이 온통 석회석으로 덮여 물을 마실 수가 없다.
그러나 늪다리에 이르러 칠룡동 계곡으로 들어서면 계곡물은 옥같이 맑고 폭포, 소 등이 연이어 그야말로 심산유곡이 펼쳐진다. 내리천으로 선달산을 등산하려면 산중에서 1박을 하든지 아니면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해야 봉화 쪽으로 넘어올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어래산[御來山]
높이: 1,064m
위치: 충북 단양군
어래산이 있는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는 남한강의 옥동천 지류인 남대천 상류에 자리해 있으며 `정감록'을 믿고 찾아 들어온 조상 후예들의 터전으로 한때 외진 곳을 전전하는 도박꾼들의 집합장소로 악명 높았던 곳이다.
분지를 이룬 의풍리를 두고 동쪽에는 어래산이, 서쪽으로는 형제봉이 솟아 있어 남쪽에서 흘러내려 온 남대천이 북쪽의 옥동천으로 빠지고 있다. 그래서 물이 흘러나가는 북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지에서 이곳으로 들어서려면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 때문에 일단 어래산 산행에 앞서 마을 진입 자체가 문제인 데다 산행코스 역시 만만치 않다. 이처럼 접근이 어렵다는 것은 사람들의 손때를 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산 곳곳에 혼을 빼앗길 만큼 청정한 계곡이 흐르고 광활한 낙엽송 조림지대가 있어 수월치 않은 산행의 피로를 씻어 주었지만, 지금은 길이 잘 뚫려있어 접근하기가 쉽다.
이 산은 한자를 뜻풀이하면 임금님이 다녀갔다는 의미가 되지만, 충북, 경북, 강원도 3도의 접경을 이루고 있어 주민들은 '삼도봉' 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이 산 아래 강원도 와석리 노루목과 경북 남대리 진때배기, 충북 의풍리 용담 등 세 마을이 '삼도마을'을 이루고 있다. 행정구역이 세 곳으로 나뉘어 있는 삼도마을에는 1978년까지만 해도 340여 가구 1,200여 명의 주민이 살았었다.
이때만 해도 경북 영주에서 백두대간 고치령을 넘어 의풍리까지 노선버스가 운행되었다. 그러나 세월 따라 도회지로 떠나는 주민들이 늘어 1990년을 넘기면서 50여 가구 200여 명만 남으면서 91년 이 버스 노선도 폐쇄되고 말았다.
92년부터는 충북 영춘에서 의풍으로 이어지는 베틀재 고갯길이 확장 포장되자 영춘에서 하루 2회 버스가 넘나들었으나 10여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주민 숫자가 더욱 줄어 30여 가구 100여 명에 불과하다.
의풍리는 단양에서 44km, 영춘에서 20km 떨어져 있는 데다 형제봉(1,178m)에서 마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넘는 해발 640m인 베틀재 고개를 넘는 노선버스가 겨우 하루 2차례뿐이어서 아직도 오지로 남아 있다. 의풍리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십승지의 한 곳으로 일명 '영춘 십승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의풍에는 정감록을 믿고 들어와 살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많이 살았었다.
지금은 이런 오지마을도 전과는 다르다. 담배 연기보다 더 지독한 매연을 품는 차를 가지고 산 말랭이까지 올라다니는 산족들이 아무리 오지라 해도 거침없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 한국의 산하
9월 첫째 주 정기 산행은 토요일인 3일 벼르고 별렀던 단양의 어래산에 오를 예정이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왕이 다녀간 산이라는 뜻의 어래산(御來山)은 여기저기 좀 있으나,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는 단양의 어래산이 유일하다. 해서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는 다 오르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상 어래산 또한 올라야 하는데, 초기에는 제천 하설산 옆의 어래산과 혼동해 하설산행 때 어래산도 같이 오르면 '일거양득',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산행 계획을 세우며 조사한 결과, 하설산 옆 제천 어래산은 해발이 816m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하설산행 계획에서 제외했다. 정확히는 시간이 있으면 가고, 아니면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산행기].
이후 해발 1,000m가 넘는 어래산이 단양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오를 방법을 연구했다. 물론 처음에는 각 안내산악회를 찾아다니며, 산행 계획이 있는지, 과거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곳에서는 과거 산행 기록도 확인했다. 그 결과 현재는 계획이 없고, 과거에도 각 안내산악회는 올랐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해서 '한북정맥 5구간'과 같이 공지하는 지맥 산행은 그 구간에 속한 봉우리나 산을 명기하지 않아, 검색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혹시 대간이나 맥 산행을 하는 팀이 오르지 않았을까 하고 어래산이 속한 정맥이나 지맥을 찾아봤다. 그런데 백두대간 선달산에서 뻗어 나와 바로 옥동천으로 사라지는 능선이라 그런지 이름을 가진 지맥에 속하지도 않아, 지맥 산행 팀에게는 관심 봉우리가 아니었다. 결국 등산객이 찾지 않는 산이라, 안내산악회에는 기대할 게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산행 요청 게시판에 글을 남겼으나, 반응이 없었다.
안내산악회가 아니면,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이 대안인데, 대중교통은 서울에서 당일 산행은 불가능이고, 자가용은 주차한 곳까지 포장도로 10리 이상을 걸어야 해서,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안내산악회로 돌아왔다. 오르고자 하는 산 부근으로 가는 안내산악회 팀과 같이 버스로 들머리로 이동하고, 목표 산행 후 대중교통으로 귀가하는, 불가피할 때 사용하는 솔루션을 어래산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먼저 개울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까만 소 인증처인 마대산으로 가는 팀과 들머리로 같이 간 후, 마대산을 버리고 반대편 어래산에 오르는 방법, 다음은 백두대간 '늦은목이~도래기재' 구간을 종주 팀과 같이 달리다가 선달산에서 좌회전해 어래산으로 가는 방법 중 하나를 상황에 따라 선택하기로 했다.
지도상으로는 마대산 들머리에서 어래산으로 가는 코스가 짧아 보여, 두 방법 중 마대산 쪽으로 무게 중심이 약간 기운 상태였다. 하지만, 까마 소 인증처 중 하나라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언제든 갈 수 있어, 천고지임에도 차일피일 미룬 마대산에 먼저 올라 맞은편 어래산 능선을 보고, 어느 방법이 더 좋을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론짓고 우선순위에 따라 산행을 진행하다가, 확인할 게 있어, 천고지 옥석산, 선달산 연계 산행기를 보다가 놀라운 사진을 발견했다. 2021년 2월 20일 흥수와 둘이 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팀을 따라 산행할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찍었던 사진에 선달산에서 어래산으로 가는 지도와 안내문이 찍혀 있었다. 선달산에서 어래산으로 가는 코스야 이미 알고 있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놀라운 건 사진에서 발견한 "외씨버선길"이라는 타이틀이다!
외씨버선길? 많이 들어 봤는데? 안내산악회 산행계획에서도 본 거 같은데? 외씨버선길이라는 타이틀을 발견하자마자 ‘유레카’를 외치고, 대간이나 맥 종주를 기수까지 정해 진행하는 안내산악회 게시판에 들어가 '외씨버선길'로 검색했다. 그 결과 3기가 종주 중이고, 6월 말 현재, 7월 2일 진행 ‘9구간 봉화연결길'과 2주 후인 7월 16일 진행인 ‘10구간 보부상길' 산행을 신청 받는 중이라는 걸 확인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으로, 먼저 구글에서 외씨버선길 찾아보니, 총 13구간에 어래산은 '11구간 마루금길'에 속해 있었다. 공식 11구간 마루금길 소개에는 '1. 거리: 16.6km, 2. 소요 시간: 9~12시간, 3. 난이도: 최상'이다. 그런데 산행 신청을 위해 산악회의 계획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식 구간과 안내 산악회 구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외씨버선길 공식 운영 주체는 '영양연결길'과 '봉화연결길'을 인정하지 않은, 총 13구간으로 운영하나, 종주가 목적인 산악회는 그 두 구간을 포함 15구간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공식 구간이 아닌 봉화연결길이 안내산악회는 9번째 구간, 공식 11번째 구간인 마루금길은 13번째 구간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내산악회 기준 13구간인 마루금길에 대한 산행계획은 6월 말 현재는 아직 공지 전이었다. 그래도 대부분 종주 산행은 격주로 진행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구간을 이어가는 산행을 하는 만큼, 7월 2일 진행하는 안내 산악회 기준 9구간부터, 13구간까지 날짜를 계산해 보니, 9월 3일 토요일이 어래산이 속한 13번째 구간 마루금길 산행 일이다. 해서 거의 매일 산행을 확인하다가, 7월 12일, 예상대로 9월 3일 자 외씨버선길 13구간 마루금길 산행이 공지되자마자 바로 신청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자리로! 해서 가장 어려울 거로 생각했던 천고지 단양 어래산행을 온갖 잔머리와 정보를 동원해 가장 쉬운 방법으로 9월 첫 주 토요일 오른다.
다만, 외씨버선길 공식 자료에 의하면 이 구간 난이도가 최상이라는데, 그건 외씨버선길 대부분이 둘레길 개념인데, 공식 11번째 구간만 상원사에서 늦은목이로 백두대간에 올라선 다음 대간을 따라 해발 1,236m인 선달산까지 간 후 좌회전해, 천고지 능선을 따라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고로 늦은목이부터 곰봉 삼거리까지는 능선길이다. 그래서 '마루금길'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거고! 당연히 둘레길은 차량으로 이동하는 방문자를 고려해 소요 시간을 9시간 이상으로 책정했다. 그런데 안내산악회는 같은 구간에 7시간 30분이다. 대간 종주팀의 능력을 익히 아는 바라 이해가 되나, 과연 둘레길을 돌던 종주자들이 이 구간을 7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와중에 산악회 기준 거리는 공식 거리보다 2.1km가량 더 먼, 18.71km다! 공식과 산악회의 차이는, 공식은 도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계산하나, 산악회는 버스 주차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산악회 거리가 더 정확하다.
선달산에서 좌회전하는 순간부터 미지의 세계이나, 어래산에 가기 위해 늦은목이는 세 번째, 선달산은 두 번째 오른다. 그런데, 외씨버선길 종주자뿐만 아니라, 나도 주어진 시간 내에 갈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다. 두 번이나 늦은목이에서 오전리로 내려와 봐서 거꾸로 올라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늦은목이에서 선달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지도의 등고선을 보면, 선달산에서 곰봉삼거리에 이르는 11.2km의 능선은 비록 기복은 많으나, 표고차가 심하지 않아, 많은 체력을 요구할 거 같지는 않다. 물론 가봐야 알겠지만. 그리고 당일 일기예보를 보며 구름 낀 흐린 날이라, 조망은 어떨지 몰라도, 산행에는 최적이라 보여, 산행 준비도 평소와 같으나, 물은 한여름보다 조금 적게 가져갈 예정이다. 이 모든 걸 고려해 산악회가 책정한 시간보다 1시간 빠른 6시간 30분 내로 산행을 마감하고, 외씨버선길 사무국에서 소개한 식당에서 하산주를 마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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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과음해 정신없이 잠이 들어 새벽 알람에 놀라 일어나보니, 5시다. 평소라면, 중간에 몇 번 깨 시계를 확인했을 텐데, 역시 술이 좋다. 어쨌든 바로 기상해, 하루를 시작하는 볼일을 본 후 누룽지가 끓는 동안 등산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들어 있던 디팩을 꺼내 배낭에 넣고, 끓인 누룽지로 아침을 먹는 거로 산행 준비를 마쳤다. 이후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불광역으로 향하는 마을버스 시간에 맞춰 5시 45분에 집을 나서, 6시 40분경 양재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역 구내 청과물 가게에서 먹으며 달릴 수 있는 야채김밥을 하나 사서 들고 12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까지 200여 미터를 걸었다.
양재역에서 국립외교원 앞까지 걸어오며, 지나치는 마을버스 정류장이 한가한 것에 약간 놀랐다. 안내산악회 중 꽤 규모가 있는 두 산악회가 버스 경유지로 사용할 때는 각처로 떠나는 등산객으로 통과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한 산악회가 건너로 이사한 이후 등산객이 반으로 준 거야 당연한데, 좀 이른 시간이기는 하나, 열 명이 채 안 되는 규모다. 코로나 시대에도 나름 잘 나가던 산악회인데, 최근에 유가 상승에 따라 산악회비를 올리며, 등산객이 많이 준 듯하다. 와중에 까만 소 인증처가 아니면 모객이 안 돼, 아예 산행계획도 세우지 않으니, 당연한가? 어쨌든 중소규모 안내산악회가 꽤 힘든 거 같다. 그럴수록 등산객이나, 산꾼의 선택지가 좁아진다.
중소규모 안내산악회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며,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해 보니, 위의 마을버스 정류장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원래 휴일은 당연하고 평일에도 등산객으로 붐비는 곳이나, 갈수록 인원이 늘어, 안내산악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200m에 불과한 구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양재역 12번 출구다. 와중에 아예 생각지도 못한 그룹에 뭐지 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내가 이용하는 안내산악회에도 둘레길 개념의 산행이 있고, 오늘 가는 외씨버선 11길의 마루금길 또한 그에 속하나,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는 등산객? 관광객? 의 복장은 아무리 봐도 둘레길 복장이 아니다. 뭐 초보야 그럴 수도 있는데, 와중에 치마를 입은 여성도 몇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서초주차장 석축의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주차장 쪽으로 더 올라가, 계단에 앉아서 정체가 뭘까 추측하며 그들을 관찰했다.
혹시 안내산악회에 내가 모르는 관광코스가 있는지 산악회 게시판을 다 뒤져봤는데, 역시 없다. 일단 안내산악회와는 관련이 없고, 어딘가로 출발하는 관광버스 경유지가 우연히 겹친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양재가 고속도로 들어서기 가장 좋은 위치라는 건 분명하다. 물론 시간이 가자 그들 일행도 늘어나 앉아 있는 계단 주변까지 범위가 확장되어 그들을 관찰하기 좋았다. 그래봐야, 둘레길을 돌 만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결론이지만. 그러는 중에 6시 50분발 남도로 출발하는 안내산악회 버스가 도착하는 걸 보고, 7시 발 버스도 멀지 않다는 생각에 계단에서 일어나 버스가 정차하는 곳으로 가는 동안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관광버스가 도착했다. 첫 차는 도착하자마자 승객을 태우고 출발하는 바람에 목적지를 보지 못했고, 두 번째 버스의 앞창에는 목적지는 없고, "우리 땅 걷기"라고만 적혀있었다. 우리 땅 걷기? 어쨌든 궁금증은 해결했다.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를 걷던 우리 땅 아닌가?
6시 50분발 남도행 버스가 떠나고 7시발 버스가 속속 도착하는 가운데, 타야 할 버스는 출발 시각인 7시가 지났으나 보이지 않는다. 몇 개월 전 버스 앞창 LED의 목적지 해석 오류 때문에 그냥 보냈던 아픈 기억이 있어, 승객을 기다리는 버스 행렬 제일 앞으로 가 앞창의 LED 또는 목적지를 프린트한 종이를 유심히 살피며 내려왔으나, 역시 없고, 버스 행렬 끝, 신호 대기 중인 빨간 버스가 보인다. 예상대로 내가 타야 할 버스도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승객이 불참했다. 하긴 늦는 승객은 기다려 달라고 전화한다. 승객이 도착하지 않아도 정시에 출발하는 게 규정이나, 안내산악회 인솔 대장으로서는 그런 게 아니라, 한 5분 정도 기다렸다가 떠나는 바람에 늦었다. 비록 환급받지는 못해도, 불참한다는 통보 정도는 하는 게 예의 아닌가? 얘기를 들어보니, 외씨버선길 시작부터 같이한 사람인데. 어쨌든 출발 시각보다 2분 늦은 7시 2분에 버스가 도착해 배낭을 짐칸에 넣고, 갈아입을 옷과 버스에서 사용할 물건이 든 파우치를 들고 탔다.
무슨 이유든 푹 잠을 잔 이후라 그런지 책을 읽는데도 졸리지 않아, 음악 감상하며 책을 보며 가다가, 실내등이 들어오고 버스가 속도를 줄이는 순간 휴게소로 들어간다는 걸 알았다. 뭐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나, 스트레칭과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 버스에서 내려 휴게소 명을 확인했다. 울고 넘는 박달재로 유명한 '천등산 휴게소'다. 몇 번 와 본 거 같은데, 떠오르는 특징이 없다. 해서 이 휴게소의 특징은 뭔가 궁금해 휴게소 오른쪽에 있는 소공원으로 가다가 깜짝 놀랐다. 고구려 철갑기병과 중원고구려비, 삼족오다! 충주 휴게소에 있는 거 아니었나? 머릿속이 뒤죽박죽 일대 혼란이다. 그리고 산행기를 뒤져보니, 충주에 있는 천등산 휴게소다! 그걸 충주 휴게소, 천등산 휴게소로 구분해 기억하고 있었다. 8월 호우주의보 가운데 고치령에서 늦은목이까지 달린 산행기에는 충주 휴게소로 적었다[산행기]. 너무 많이 돌아다녀, 메모리가 뒤죽박죽이다. 와중에 치매 증상까지. 공식 이름은 천등산 휴게소다!
버스로 돌아와, 패드를 들고 책을 읽고 있는데, 인솔 대장이 인원 확인 후 버스를 출발시키고,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역시 인솔 대장도 7시간 30분 만에 모두 완주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었다. 대장의 말에 의하면 외씨버선 13길 중 가장 힘든 구간인데, 마지막 13길 '관풍헌가는길'이 더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고 해서 바로 산악회 산행계획에서 찾아보니, 23.6km 거리에 8시간을 책정했다. 그걸 보자마자 욕부터 나왔다. 코스를 만든 건 산악회가 아니라, 그 길목에 있는 시군이니, 그들이 먹을 욕이고. 어쨌든 공식 도상 24.6km니, 실거리는 30km에 가깝다. 뭐, 나야 갈 일이 없으니, 신경 끄고 대장의 말을 경청했는데, 들머리에 몇 시에 도착하든 마감은 18시로 하겠다고 했다. 7시간 30분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나름 시간을 추가한 계획이나, 버스가 생각보다 늦어 실제 추가시간은 7분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17시 즉 오후 5시가 넘어 '곰봉 삼거리'를 통과할 때는 꼭 자기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종주하고 정말 못 견디겠으면, 회암령에서 탈출하라고.
버스 실내등이 꺼지고 다시 취침 분위기로 바뀌었으나, 잠이 오지 않아 계속 책을 읽다가,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좁은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책을 접고 창밖을 봤다. 익숙한 지역이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자, 저수지를 따라 교행이 거의 불가능한 도로를 달린다. 3번째 방문이나, 앞선 두 번은 위에서 내려왔고, 위로 올라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모든 게 생소했고, 앞선 두 번 버스로 내려올 때 왜 이 도로가 좁다는 생각을 못 했는지 신기했다. 아마, 피곤해서 주변을 관찰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산행 전에는 버스가, 앞선 두 번과는 달리 공식 마루금길 시작점인 상원사까지 올라가기를 기대했는데, 이 도로를 보고 감히 기대할 수 없는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로, 저수지부터 선달산까지 아주 힘겨운 등산이 기다리고 있어 한숨을 쉬는 동안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 시각이 10시 23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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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버스가 저수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등산화로 갈아신고, 미니 스패츠를 착용하는 등 모든 산행 준비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목적으로 보이는 몇 사람만 산행 준비를 하고 나머지는 관심이 없어 보여, 예상은 했으나,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어쨌든 버스가 주차장에 자리를 잡자, 서둘러 모두 내렸다. 나도 버스에서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미리 벗어들고 있던 바람막이를 넣은 후 둘러메고 153번째 천고지인 어래산을 향해 출발했다. 물론 별 준비랄 게 없는 등산객은 이미 출발해 앞서가고 있었다.
늦은목이로 향하는 이 포장도로는 2021년 2월 20일 천고지 옥석봉과 선달산에 오른 후 처음 내려왔고[산행기], 14번째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 2022년 8월 11일 우중 고치령에서 늦은목이까지 달렸을 때 두 번째 내려왔다[산행기]. 두 번 다 내려오기만 했지, 오르지는 않아, 대략 고도를 얼마나 높여야 하나 궁금해 등산 앱으로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하니, 350m가 조금 넘는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높은 선달산의 고도가 1,236m로 표고차가 880m가량으로, 한국의 산 중에는 꽤 표고차가 있다. 말인즉 쉽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지난 8월 산행 때 늦은목이에서 확인한 해발 고도가 670m 정도였었는데, 그럼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늦은목이에서 선달산까지 600m에 가깝게 치고 올라가야 한다. 급경사란 얘기다. 인솔 대장도 코스 설명 때 늦은목이에서 선달산까지가 가장 힘든 구간이라고 했고.
가끔은 급경사의 포장도로를 따라 상원사 방향으로 올라가며 지난 8월과 다른 점을 찾아봤는데, 역시 도로 옆으로 흐르는 큰터골이 평화로운 게 가장 눈에 띈다. 우중 계곡은 위협적이나, 평소에는 편안함을 준다. 별거 없던 '사천왕 참배' 이정표를 지나, 10시 57분에 포장도로에서 본격적인 등산로의 시작인 갈림길에 도착했다. 포장도로를 따라 힘들게 올라온 상태라 고도를 얼마나 높였나 궁금해 확인해 보니, 400여 미터에 불과하다. 꽤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해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늦은목이의 해발 고도 670여 미터가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 기억이 틀리기를 바랐는데, 엄청난 실망이다.
갈림길에 들어서면 큰터골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역시 평온하기 그지없다. 지난 8월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다리를 구성하고 있는 다리가 보이지 않는 징검다리 역시, 편안한 시골 모습이다. 비록 지난 두 번은 내려오고 지금은 올라가는 중이지만, 세 번째 방문이다 보니, 모든 게 익숙하고 뭐 찍을 만한 것도 없을뿐더러, 가끔 만나는 급경사에 힘들어 그저 앞만 보고 올라가, 11시 17분에 늦은목이 바로 아래 데크 계단에 도착했다. 왼쪽에는 내성천 발원지인 "늦은목 옹달샘"이 있다. 8월에는 폭우와 샘물이 구분되지 않아, 맛을 보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배낭에 달고 다니는 컵을 꺼내 물맛을 봤다.
옹달샘에서 물맛도 보고, 동영상도 찍은 후 세 번째 늦은목이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20분이다. 도착해서 세 번째 주변의 표지를 기록으로 남긴 후 고도를 확인했다. 애초 숫자가 정확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고, 대략적인 숫자는 맞았다. 말인즉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힘겹게 올라왔으나, 해발 고도는 고작 300여 미터 올렸을 뿐이다. 고로 고도가 거의 500m가 넘어, 서울 근교 산보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이제부터 선달산까지는 그저 앞만 보고 가면 된다. 대한민국 산이 다 그렇듯이 울창한 숲에 가려 보이는 게 없으니, 볼 게 없다. 볼 게 없으니, 찍을 것도 없고. 백두대간 길은 둘이 대화를 나누며 나란히 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런데, 2021년 하산 때도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워낙 여기저기 많은 산을 다녀 기억이 혼재한 것도 있고.
11시 46분에 늦은목이로부터 0.9km, 선달산 정상으로부터 0.9km인 정확히 정 중앙에 도착했다. 물론 이정표를 보고 하는 얘기고, 실제 그런지는 모른다. 다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이정표의 오차가 생각보다 크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그때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남은 900m가 올라온 900m보다 표고차가 더 커서다. 이제 산행을 시작한 거라 대간이나 지맥 산행 팀이라면, 울창한 숲에 모든 것이 가려 앞 대간꾼의 뒤꿈치만 보며 가야 하는 산행인데, 둘레길 팀이라, 앞서거니뒤서거니 할 동료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늦은목이까지 같이했던 부부도 뒤로 쳐져, 그저 앞만 보고 가, 12시 14분에 선달산 정상 20여 미터 아래에 있는 천고지 어래산 갈림길에 도착했다. 2021년 외씨버선길 지도와 소개 사진을 찍었던 삼거리다. 당시만 해도 어래산 갈림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천고지 어래산은 하설산 옆에 있는 거로 알고 있어 무시했었다.
비록 인솔 대장에게 산행에 대한 책임은 없으나, 경험이나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코스 설명이 생각보다 유익하다는 걸 안내산악회를 따라다니면 알게 되는데, 이번 마루금길 또한 예외가 아닌 게, 버스 안에서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어래산 갈림길에서 선달산 정상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겠지만, 갈림길에서 정상까지 20여 미터라는 말을 들은 이상 정상으로 향하는 게 당연하다. 물론 한번 달렸던 길이고, 정상이라 연결만이 목적이라면 갈 필요가 없지만! 아주 당연히 편도 100m 내라면 다녀와야 한다. 물론 배낭은 갈림길에 두고, 카메라만 들고 정상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 도착해 카메라를 돌 위에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해서 사진이 엉망이다.
인증을 남기고 정상을 떠나려는데, 부부가 도착했다. 그리고 남편이 날 보더니, 사진을 찍어줄까 묻는데, 마침 그때 돌 위에 있던 카메라를 주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실망한 목소리로 "아, 자동으로 찍으셨군요!" 한다. 그 말을 무시하고 그냥 가면 인간이 아니라, "네, 저는 찍었습니다만, 찍어드릴까요?"하고 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그 부부의 인증을 찍어준 후 갈림길로 돌아와 늦은 기온에 얼음이 녹지 않아, 물보다 얼음이 더 많은 물통을 꺼내 차가운 물을 마신 후 배낭을 둘러메고 갈림길에서 초행의 어래산 방향으로 우회전했다. 그런데 갈림길을 떠나며 시계를 보니, 12시 19분으로 점심시간이다. 배도 고프고. 해서 디팩에서 아침에 양재역에서 산 김밥을 꺼내, 먹으며 갔다. 김밥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무게 잡고 앉아 점심 먹을 생각이었으면, 김밥이 아니라, 버너와 코펠을 챙겨 와 라면을 끓였을 거다!
외씨버선 11길인 마루금길도 능선을 달리는 거라, 대간이나 지맥 산행과 다름없다. 즉 암릉이 아니면 울창한 숲에 가려 볼 것도 없어 그저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거의 1km당 하나나 둘이 있는 기복을 만나, 깔딱을 오를 때 허비한 시간을 쉬운 코스에서 만회하는 전술을 구사해야 그나마 목표한 시간 내에 도착한다. 이번 산행은 마감인 18시, 한 시간 반 전인 16시 30분까지 김삿갓 문학관 도착을 목표로 했다. 물론 씻고 하산주할 시간을 위해! 가끔 정체 모를 열매가 널려있는 곳을 지나면, 이게 어디서 떨어진 건지 고개를 들어, 나무를 훑어보는 게 유일한 낙인 곳을 앞만 보고 달려, 1시 8분에 우리의 "준.희"가 "그곳에 오르고 싶은 山, 1,136.9m"라고 쓴 팻말이 달린 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지맥 또는 기맥, 무명의 봉우리 등 중요한 지점이라는 얘기라, 혹시 다른 정보가 있나, 주위를 세심히 살폈으나 없다. 어느 지도에도 없으나, 산악회에서 희암봉이라 부르는 봉우리라 멋대로 결론짓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높이만 놓고 보면 해발 1,064m에 불과한 어래산보다 높다!
희암봉이라 생각한 곳을 떠나 희암령을 향해가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커다란 바위가 길을 막고 있거나, 너덜에 가까운 길이라, 안전 밧줄이 설치된 곳도 있었다. 이 또한 인솔 대장이 희망봉 주변만 암봉이고 나머지는 흙산이라는 설명과 부합한다. 그래도 내가 생각한 희암봉에 대한 자신이 없어,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희암봉이 아닐까 유심히 주변을 살피며 갔다. 그렇게 달려 1시 35분에 인솔 대장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했던 희암령에 도착했다. 희암령에는 여기까지 오며 처음 본 쉼터가 있고, 그 의자에 간식을 먹고 있는 등산객이 한 명 보였다. 그런데, 외씨버선길 소개문과 지도가 있는 건 다른 곳과 다름없는데, 반쯤 묻힌 항아리가 있어 처음에는 뱀이나, 지네를 잡기 위한 건 줄 알았다.
항아리 뒤의 글을 보니, "양심 장독대"로 식수가 들어 있으니, 물이 부족한 사람은 양심껏 한 병만 들고 가란다. 도대체 몇 병이나 들어 있길래 한 병만 들고 가라고 하는지, 혹시 뱀이 튀어나올지도 몰라 조심스럽게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역시 예상대로 하나도 없다! 이걸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매주 20병 이상 채워놓아야 할 거 같다. 그럼 매주 500mL 생수 기준 10kg를 짊어지고 와야 하는데, 누가? 장사가 잘되면 더 무거울 거고! 마루금길을 달리는 등산객이 한 병씩 들고 가는 게 아니라, 두고 가는 거라면 매주 생수 들고 올라오는 일은 없을 거 같기는 하다. 그럼 열심히 홍보하든가! 마중물이 되겠다는 기분으로, 내가 한 병 두고 가고 싶지만, 남은 거리가 지금까지 온 거리보다 먼 9.1km인데, 지금 마시고 있는 물통 외에 500mL 생수 한 병이라 남을 배려할 처지가 못 된다. 미안하지만 그냥 어래산으로 출발했다.
회암령을 지나자 길이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다. 좀 거칠다고 할까? 말하자면, 사람이 많이 안 다닌 길이다. 외씨버선 11길 마루금길에 도전했다가 대부분 회암령에서 탈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외씨버선길도 도보 종주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 거 같고. 표고차가 심한 기복은 아니나, 자잘한 기복이 심해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해 2시 18분에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거로 보이는 헬기장에 도착했다. 반대쪽에는 정상석? 작은 비석이 보인다. 153번째 천고지인 어래산 정상이다. 역시 예상대로 그 비석은 정상석이고 그 옆 나뭇가지에는 누군가 매단 팻말이 걸려있었다. 혼산이나 다름없는 산행이라, 누군가에게 사진을 부탁할 수 없어 늘 그랬듯이 돌이 보이지 않아 배낭을 깔고 그 위에 카메라를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2시 21분에 어래산을 떠나고 난 후 시루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없었다는 게 떠올랐다. 분명 지도에는 어래산 정상에서 시루봉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지나쳤으나, 분명 갈림길을 본 기억이 없어 정상으로 돌아가 찾아볼까 하다가, 귀찮고 피곤해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200여 미터를 가자 '안동청학산악회'에서 설치한 '삼도봉' 팻말이 서 있는 봉우리가 나왔다. 어래산 소개에 보면 이 지역 주민은 삼도봉이라 부른다고 했는데, 정상석과 팻말을 보면, 어래산 정상과 삼도봉은 다른 봉우리다. 그럼 시루봉으로 가는 길도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가 아니라, 삼도봉일 확률이 높아 갈림길이 있는지 찾아봤으나, 없는 건지, 못 찾은 건지, 어쨌든 삼도봉에는 없다!
혹시나 정 갈만한 산이 없어, 영월 시루봉에 오르게 될 때 고민하기로 하고, 목표한 어래산에 오른 만큼 이제는 목표한 시간 내에 날머리에 도착이 중요하다. 숲에 가려 볼 것도 없지만, 더욱더 앞만 보고 달려, 2시 29분에 김삿갓문학관에서 6.1km 거리의 '어은동 갈림길'을 통과하고, 2시 59분에 5.4km 거리의 ‘곱돌령’에 도착했다. 이정표에 의하면 30분 동안 700m를 달렸다는 얘기다. 이건 달린 게 아니라 기었다. 등산 앱이 알려주는 것과는 차이가 커 이정표를 유심히 보니, 처음 이정표를 얼마나 개판으로 만들었으면, 지도에는 새로 거리를 적어 붙여 놓았다. 그 새로운 거리에 의하면 1.6km다! 그럼 달렸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될 듯하다. 그리고 3시 36분에 4.6km 거리의 ‘954고지’에 도착했다. 곱돌령으로부터는 1.8km의 거리로, 이정표가 바르면 목표인 4시 30분까지 날머리 도착은 무리다.
무리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고, 달려 3시 51분에 2.5km 거리의 '곰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2.5km를 30분 만에 달리면 된다. 평지라면 안 될 것도 없는데, 명색이 산이라, 힘들지만 그래도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린다. 그런데, 지도 한편에 서 있는 코스 소개 글에는 2.4km에 한 시간 거리란다. 또 다른 곳에 서 있는 이정표는 '김삿갓묘역'까지 3.1km다. 묘와 문학관이 같이 있지는 않을 거니, 이해된다.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배가 고프다. 해서 비상용으로 가져온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달려 4시 10분에 문학관으로부터 900m 거리의 '곡골 삼거리'에 도착했다. 19분 동안 1.6km를 달렸다. 그럼 20분 동안 900m는 기어가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기록을 보면, 이정표가 개판이라는 얘기다. 반면 코스 설명은 정확한 게 대한민국 천고지 하산길답게 거칠기 그지없다.
900m 거리로는 너무 길어 짜증을 내며 내려가는 중에 간간이 떨어지던 빗방울이 쏟아져 내린다. 그냥 맞고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강력한 태풍이 접근하고 있는 게 금방 그칠 거 같지 않고, 날머리가 멀지 않아 다 왔는데, 그 짧은 거리에 비를 뒤집어쓰면 여러모로 불편할 거 같아, 배낭에서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우의 겸 자리를 꺼내, 목에 둘렀다. 모자도 꺼내 쓰고. 의외로 효과가 좋은데, 우의가 아닌 우산을 산에서 쓰는 이유는 더워서인데, 앞이 트였음에도 이것도 우의라고 조금 지나자 한증막이다. 그래도 참고 가다가, 비가 그치는 거 같아, 벗어서 손에 들었다. 한 손에는 물통, 다른 손에는 우의를 들고 내려가는데 저 아래로 파란 기와집이 보인다. 김삿갓문학관이 있는 마을로 그 시각이 4시 34분이다.
900m를 내려오는데, 24분이 걸렸다. 목표에는 4분 초과! 그런데, 이 마루금길이 식당으로 보이는 집의 뒤로 이어지고 있었다. 와중에 '국유임산물 불법채취∙밀반출금지' 플래카드를 계단 위에 설치한 건 좋은데, 높이가 낮아 허리를 구부리고 통과해야 했다. 이정표부터 뭐 하나 마음에 들게 하는 일이 없는 친구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달리느라 피곤한데, 허리까지 구부리고 통과해 투덜거리며 식당 뒷마당을 지나, 앞으로 나오자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빨간 버스가 보인다. 산악회 버스다. 그리고 희암봉 직전의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에서 갈 곳을 몰라 서성이다가, 나를 보자 길을 물었던 여성 등산객이 씻기 위해 계곡으로 가고 있었다. 당시 날렵한 준마를 보는 듯한 그 여성의 몸매를 보고 감탄했다. 해서 내가 앞장서 가봐야 길을 막기만 할 뿐이라는 걸 재빨리 깨닫고, 길을 양보했다. 날머리인 김삿갓문학관 주차장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그 여성이 1착, 내가 2착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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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가며 일단 김삿갓문학관의 전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시 올 일이 없으면 당연히 문학관 내부를 둘러봤을 거지만, 조만간 천고지 마대산에 오르기 위해 여기 다시 와야 해서 문학관 내부 관람은 마대산에 양보하기로 했다. 사실 피곤해서 거기까지 갈 힘이 없었다. 문학관 전경을 기록으로 남기고 버스에 타서 내부를 둘러보니, 내 예측대로 현재까지 도착한 사람은 그 여성과 나 뿐으로 보였다. 일단 자리에 앉아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은 후 버스에서 쓸 일이 없는 것들은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수건을 들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물론 배낭은 버스 짐칸에 넣고. 주차장 주변에 간단한 간식류와 토산품을 파는 포장마차는 몇 있었으나, 자리 잡고 앉아 하산주를 마실만한 곳은 마루금길이 집 뒷마당과 이어졌던 그 식당이 유일한 거 같아 그 집으로 갔다.
매점 겸 식당이었는데, 아직 오지 않은 태풍 때문인지 파리 날리고 있었다. 해서 먼저 하산주에 어울리는 메뉴를 살펴봤으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시골 모 두부'와 '이슬이'를 주문했다. 그리고 대부분 유원지 시스템에 따라 주인장에게 '외씨버선길 영월
객주' 옆에 있는 화장실에서 씻으면 되냐고 물었다. 마대산과 사이에 훌륭한 계곡이 있지만, 물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놀라는 눈으로 나를 보며 왜 화장실까지 가냐며 옆 수도를 가리킨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경이다. 이미 오두막에 자리를 잡아, 그 테이블에 웃통을 벗어 올려놓고, 수돗가로 가 냉수마찰을 하고 식탁으로 돌아오자, 안주와 이슬이가 나왔다. 학창 시절 우리가 먹던 생두부와의 차이는 따뜻하게 데웠다는 거. 85년 '탈'에선 500원, 2022년 마루금길 종점 김삿갓문학관 '해선식당'은 10,000원! 탈의 빨갱이는 500원, 해선식당 이슬이는 4,000원! 당시 셋이서 2,000원이면 생두부에 소주 각 1병을 마셨는데…
이슬이에 두부를 곁들여 마시다 보니, 만족도가 떨어지는 술자리라 이걸 만회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는데 "라면"이라는 계시를 어래산신에게 받고, 바로 식당으로 가 차림표를 살펴봤다. 식당에 처음 왔을 때부터 찾았던 메뉴라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혹시나 하고 다시 본 거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雲峰이 아니라, '말 잘하면 절간에서'인가, '눈치 빠르면 절간에서'인가, 뭐든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는 정신으로 빈 이슬이 병을 들고 식당으로 가, 심심해서 미치는 주인장(의 아들?)에게 '라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컵라면', '그럼, 물은?', '정수기'에서 대화를 끝내고 빈 병을 보여 주고, 새 병 하나를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와, 산악회 버스 주변 상황을 관찰하고 있는데, 컵라면을 얘기했던 친구가 막 끓인 라면을 들고 왔다.
역시 평소 산신에게 온갖 뇌물을 갖다 바친 효과가 있다. 갓 끓인 이슬이에 라면과 두부, 김치를 안주로 즐기며, 언제 버스로 가야 하는지 계속 그쪽을 주시하다가, 마감 시간이 가까워 인솔 대장에게 지금 식당에 있는데, 언제까지 가면 되는지 전화할까 하다가 말았다. 체력이 약간 부족해 조금 늦는다고, 조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인간 말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해서, 라면 포함 모든 안주를 위장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깨끗이 비우고, 산행 마감 11분 전인 5시 49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방향으로 가는 중에 보이는 건 비록 늦었으나, 목표를 달성하고 오는 사람, 그 반대편에는 중간에서 탈출한 사람, 그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씻으러 가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다. 와중에 마감 시간임에도 이제 막 도착한 사람이 버스가 아니라 '영월객주'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건물로 들어간다. 짜증 포함 쓴웃음을 짓고, 뭐 하는 곳인지 궁금했던 차라 따라 들어갔다.
직원이 없는 객주 내부에는 지도를 포함 온갖 광고의 작은 책자만 반겨주고 있다. 벽에는 외씨버선길 사진 등이 걸려있는데, 그중에 사진이 아니라, 글이 있어, 당연히 김삿갓, 김병연의 시라 생각하고 무슨 시를 걸었나, 봤는데, '조지훈'의 '승무'다! 처음 그 시를 보고, 김삿갓과 조지훈의 승무가 무슨 관련이 있지? 뭐 이런 놈들이 있나 욕이 나왔는데, 그래도 혹시나 해 구글링 해봤다. 그리고 의외의 결과에 놀랐다. 외씨버선길의 명칭이 승무의 '외씨 보선.에서 따온 거다. 애초 의도적으로 만들었든, 만든 결과가 그랬든 버선과 닮았다는 건 산행 전부터 인정하고 있었던 바다. 그래서 그 이름을 조지훈의 승무 중 '외씨 보선'에서 따왔다니, 영월객주에 승무가 걸려있는 게 이상할 게 없었다. 역시 떠들기 전에 주변을 살펴야 실수를 안 한다!
5시 58분에 객주에서 나와 버스로 향했을 때, 마감까지는 2분밖에 안 남았으나, 20여 미터 앞에 보이는 산악회 버스 풍경은 마감 시각이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에 타봐야 멍 때리는 거 외에 할 일이 없어, 계곡 쪽에 있는 정자에 가장 편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앉아 버스 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관찰했다. 와중에 뇌물을 쓴 효과를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듯 어래산신이 무지개를 하늘에 띄우는 바람에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생쇼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루금길을 마치고 다리를 절며 버스로 향하는 노인장에게는 감탄을 넘어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대간꾼이 늦었다면, 씩씩대고 있었겠지만,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대간꾼의 능력을 요구했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산행 전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이라, 완주하려 애쓰는 모습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예상보다는 이른 시각이 6시 21분경 상황이 종료되는 모습을 보여 정자에서 일어나, 버스로 가 패드를 들고 내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분 후 버스는 서울로 향했다. 계획보다 늦기는 했으나, 기대 이상이다. 물론 서울에서 생달리까지 3시간 30분이 걸렸다는 걸 고려하면, 양재역에 10시에 도착하는 거라 계획했던 일정이 흐트러지는 거라 약간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애초 예상했던 거라, 포기하고 책을 봤는데, 어는 순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어딘가 기억에 없는 휴게소에 들린 것도 기억이 난다. 당시 시계를 보고 아니 이렇게 빨리라고 놀랐던 것도.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양재역이다. 9시 5분! 새벽에 내려갈 때보다 1시간 정도 빠르게 올라왔다. 이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이다. 덕분에 양재역에 도착할 거라 예상한 시각에 집에 도착한 거로 153번째 천고지 어래산행을 마쳤다.
외씨버선길 종주 팀 계획대로 13구간인 마루금길 '상운사 → 늦은목이 → 선달산 → 회암봉 → 회암령 → 어래산(1,064m) → 어은동 갈림길 → 곱돌령 → 954고지 → 곰봉 삼거리 → 김삿갓 문학관'의 20.18km(트랭글) 코스를 6시간 32분 동안 달렸다. 이동 6시간 28분, 휴식 4분!
2022년 9월 3일 현재까지 파악한 171 천고지 중 153번째로 어래산을 다녀왔다. 고로 남은 천고지는 18!
암봉이 없는 대간, 지맥 또는 능선 산행과 같아, 울창한 숲에 가려 조망이 없다는 것도 같았다.
외씨버선 11길, 마루금길 20km(트랭글)를 7시간 30분 만에 달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겐 무리다!
첫댓글 생소한 이름에 비해 고도가 높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인데, 해발은 1,000m가 넘어, 온갖 방법을 다 찾아 간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