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싸워 봅시다2. 信天함석헌
민중이 주체가 된 통일
이젠 시간 다 갔으니까 간단하게 내가 하려고 했던 것만 지적을 하고 가렵니다. 통일은 되어야겠는데, 첫째 중요한 건 민중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존의 두 정권은 생각에 두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둘 두고 안 됩니다. 그건 분명히 알아야 돼. 통일 생각 안한다면 몰라도 통일을 생각한다면. 그러니까 이번에도 오면서 북에 갔다 왔냐 안 갔다 왔냐, 김일성을 찬양하냐 안하냐, 이런 것 때문에 문제야. 도대체 기존 세력에 무얼 가 붙겠다고 그래? 그건 아주 얕은 생각입니다. 얕을 뿐만 아니라 남의 힘을 이용해서 나는 이득이나 먹자는 생각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그저 뭘 떠받들고 싶어 해요. 떠받들자는 건 사실은 나도 모르게 하나님 떠받들자는 건데요. 이 세상에 처음에는 뭣이 크게 뵈는고 하니 큰 바윗돌이야. 그래서 바위가 하나님이라고 거기다 절했어. 또 큰 나무 보면 어마어마하니까 나무보고 절했지. 조금 더 있다가 사람 중에서 크게 힘쓰는 삼손 같은 것 보면 하나님이 내려 보낸 사람이다 해서 그것이 또 뭘 해줄 줄 알았어.
당초에 본체는 잊어버리고 심볼만 자꾸 보기 때문에 잘못이야. 그러게 이 세상의 일이 우상 숭배 아닌 것이 없어요. 우상 중에 제일 큰 우상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사람이야. 어느 때 가서 반드시 그건 부서져야 돼요. 민주주의란 그걸 부수자는 거예요. 누구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개인이 지금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사람이 잘못 생겨서 그러면 그 사람의 옷을 빨리 벗겨 줘야 돼. “불쌍하다, 너 왜 그 옷 입었나? 잘못 입었는데.”
우리 어렸을 때 성탄절에 연극하느라 동무 하나가 남의 종 역할을 하게 됐어. 집에 갔더니 부모들이 “너는 뭘 할 게 없어 종살이 역할을 하느냐?”고 해. 부모님 생각에 그랬는데, 이 세상에 나왔으면 대통령 자리에 있거나 청소부 자리에 있거나 간에 그것은 그 노릇을 하는 거고, 그 사람의 본질은 그걸로 변하는 게 아니에요. 밤나무나 뽕나무를 가져다가 아버지라 그러지만 무슨 그 나무의 질이 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도둑놈의 위패를 모셨다고 그냥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요컨대 거기 붙어서 다니는 거란 말이에요. 그걸 벗기는 건 그 사람을 죽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옷을 벗겨 주는 거예요. 너도 사람이 되라고.
예수님이 유다보고 뭐라 그랬지요? “이 사람 불쌍하다. 이 세상에 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느라고 그렇게 됐다.” 그러는 것은 유다를 자기의 대적으로 냈지만 그 사람을 어디까지나 인간으로 대접하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슬그머니 배신해서 은 삼십을 받고 자기를 팔았다는 걸 두고 화가 나서, “이 자식아, 내가 너를 열 둘 중에 하나로 뽑았는데 배신한단 말이냐?” 하고 책망을 한다든지 했다면 예수님 됐을 리가 없지. 죄는 죄고, 재앙이 그놈을 덮쳐서 그랬지, 본래 있는 유다가 그럴 리가 없는 건데, 저놈의 노릇을 벗겨 줘야 하는데, 죄는 밉고 사람은 건져야 하고 하니까 마지막까지 사랑하지 않았어요? 늘 하던 대로 빵을 주며 이렇게나 하면 감심(感心)이 될까 그렇게도 해봐. 그 다음에 “어서 너 할 것을 해라” 그래도 봤고. 그래도 이놈의 마음이 굳어져서 안 열려. 그랬지만 마지막에 자기를 잡으려고 평상시 하던 인사를 해도 “저 양반 내 친구요” 하고 받아 주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그 죄와 그 사람과는 구별했어. 그 죄에서 이 사람을 벗겨 놓은 것이 기라는 생각은 변치 않으시고.
구 년 전 1970년에 여기 퀘이커의 기관인 펜들 힐에 와 있었는데, 눈이 더퍽더퍽 내리는 11월 어떤 날 나 아주 이상한 체험을 했어. 어쩌면 나무 밑에 유다가 와 있나? 그 생각이 나서 생각하다 깨달은 겁니다만, “예수님이 지옥 밑바닥에 내려가서 유다 손을 잡고 올라오시는 날이 되어야 이 세상이 옳게 되는 날이다” 그렇게 한번 표시를 해봤어. 나는 본 것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그건 물론 종교적인 말로 된 겁니다만 하여간 이제 말씀했듯이 통일이 되려면 기존 정권―그거 가짜예요. 참이 아니에요. 의지하려고 하지 말아요! 정권을 가진 그 사람들은 정권에 달라붙은 사람들이니까 죽어도 안 놓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해야 한다, 민중이나 씨알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래. 내가 당해 봐서 알아. 몇 해 전입니다마는 우리 나라 정부에서 말도 하기 전에 ‘통일은 어떻게 하지?’ 생각할 때 '씨알의 소리'란 잡지에 썼어요. 첫째 민중이 주체니까 두 기존 세력에 의지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두 정부를 어떻게든지 움직여서 첫째 서로 불가침 조약, 싸우지 말자는 조약을 맺도록 하고, 그 다음 서로 무기 경쟁하지 말자는 협정을 만들고, 그 다음에 민간 교통을 하기로 하면 처음에 편지 거래부터 열어 놔서 차차 하다가 그 다음은 장사 교통도 있을 수 있고, 이 국민들, 씨알들이 왔다갔다 이러노라면 자연히 남에서 북을 알고 북에서 남을 알게 돼.
요새는 어떻게 북에 들어가서 실제로 보고 와. 남에 와서 보고. 그렇게 봐 가지고는 안 돼. 그건 스파이질이지. 거기서 돈을 먹고 와서 여기 와 무슨 요동할까, 쓸데없는 생각이야. 공명정대하게, 정정당당하게 “편지 거래하자”, 아무 때 가도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고는 통일이 안 될 겁니다. 편지 거래하다가 친척을 만나 볼 수도 있고, 편지를 통해서, 서로 장사 거래를 통해서, 친척이 방문해서 왔다갔다하는 걸 통해서 알게 돼. 스파이를 보내 북에서는 요렇게 살고 남에서는 이러더라 하는 건 정권 가진 사람들이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하는 건데 천만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아주 그렇게 확신하는 사람이오.
그때도 그런 말을 했어요. 그걸 보고 그랬는지 딴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며칠 있다가 “민간에서 통일 문제에 관해서는 무책임한 말 하지 마라”고 해요. 이번에 남북 회담 있다고 하니 북에서는 무슨 당국이란 말 안하고 “국민들 대화만 하자”고 하는데, 말은 그럴 듯하지만 김일성이가 정말 국민이 자유롭게 나와서 보는 걸 원해 그랬겠나? 그걸 그대로 믿을 사람이 더러 있습니까? 아마 믿을 사람 없을 줄로 알아. 그러니 그런 방식으론 통일이 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것 하나 꽉 믿으시오.
세계 평화 기구 만들어라
내가 여러분한테 하는 말 다르고 외국 사람보고 하는 말이 다릅니다. 여러분보고는 우리 할 것을 말하면 되지만, 외국 사람은 또 외국 사람의 의무를 말해줘야 돼요. 외국 사람이 “너희들 통일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냐? 방안이 뭐냐?” 그럴 때는 참 답답합니다. 저 사람들 그거 누가 만들어 놓은 건데, 자기네가 만들어 놓은 건데 우리보고 묻고 있나 그런 마음이야. 요새도 기회 있는 대로 자꾸 하는 말이 그겁니다. “왜 우리에게 그런 말을 묻소? 한국 사람은 남북 갈라놓자는 의사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네들이 냉전이라 해 가지고, 국가들이 세력 경쟁하는 데서 분열이 생겨 서로 잡아당기다가 찢어진 것이, 이 금이 삼팔선이라는 거야.” 당신네 편에서 잡아 끄는데 여기 붙고 저기 붙어서 좀 얻어먹으려고 하는 것이 두 쪽 정권이니까, 책임이 당신에게 있으니까, 내가 책임을 미루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간에 세력 다툼으로 이렇게 된 거니까, 세계적으로 “이제는 싸움을 말자, 세계가 평화롭게 살지 않고는 너도 나도 살 수가 없다” 해서 평화 기구를 만들라는 거예요. 유엔(UN)이 지금 그 노릇을 못해요. 그러니까 있는 유엔을 강화해도 좋고, 그것이 부족하면 폐지하고라도 보다 힘있는 세계의 평화 기구를 만들어 놓기 전에는 한국 통일 절대 안 될 거다, 외국 사람보고는 그럽니다. 그걸 듣고 여러분이 “그러니까 거기서 해야지 우린 못 합니다” 해도 못써요. 모든 도덕의 교훈을 들을 때는 그렇게 알아들으셔야 돼요.
도덕에는 두 끝이 있습니다. 선생님보고는 제자가 무슨 잘못하는 것이 있어도 선생 노릇을 해야 하지 않나, 재주 있다고 이뻐하고 재주 없다고 미워하면 되겠나, 그렇게 말하지요. 그렇지만 제자보고는 또 “야, 선생님이 다소 잘못이 있더라도 너는 제자대로 너 할 것을 해야지” 하고 말을 해야 옳지 않아요? 그런데 선생과 제자를 한데 놓고 내가 설명을 하면 “그것 보시오. 선생은 제자가 아무리 잘못해도 선생 노릇 하라 그러잖아?”, “선생이 아무리 잘못해도 제자는 제자 노릇 하라잖아?” 서로 이럴 겁니다. 도덕 교훈이 이래서 잘못되는 겁니다. 이것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도에 따라 달라요. 그러니까 가정 문제를 얘기할 때는 여자 따로 남자 따로 모아 놓고 얘기해야지요. 그러잖으면 남의 집 가정에 싸움만 붙일 수 있어요. “이것 봐, 남자는 남자 노릇 하라 그러잖아? 여자는 여자 노릇 하라 그러잖아?”(웃음)
이 말씀을 왜 하는고 하니, 우리가 우리의 책임은 어쨌거나 간에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미국의 본래 잘못으로 소련이 잘못이 됐다, 그런 것을 기초 조건으로 놓고 여러분의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라 그 말이에요. 그런 건 생각 안하고 “누구 말이 옳은가? 김일성 말이 옳은가, 박정희 생각이 옳은가? 어느 쪽이 옳은가?” 하는 건 도무지 잘못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서 이 기회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민주주의나 남북 통일 멀게 생각해선 안 돼요. 만일에 한 집에서 부부끼리 싸움을 하다가 착 화합이 되는 그 진리를 알았다면, 그거 뭘로 되는지 알았다면, 그것을 남북에다 적용하면 됩니다.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서로 이론으로 따져서는 부부 싸움 안 해결됩니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지. 그러면 문제 해결이 저절로 되지 않아요?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끼리 사는 길도 그럴 거예요.
재목 기를 생각
이제는 한 가지 더 생각해 봅시다. 이 일에는 또 시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 시기 생각하면 잘하셔야 해요. 그저 막탕으로 되는 건 아닙니다. 평상시에 늘 그 마음으로 준비를 해도 시기가 와야 합니다. 그런 걸 보면, 이제 여기 오는 신문들 보도는 상당히 흥미를 일으킨다 그 말입니다. 어째서 맨스필드(당시 일본 주재 미국 대사―편집자)가 그런 발언을 할까? 전혀 될 것 같지 않았는데 어떻게 육십사 명이 결속해서 “우리 다 나간다!” 그랬을까? 이런 때는 잘 주의해서 이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뭣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일일수록 꼭 시기를 잡아야 돼. 간디는 운동을 일으킬 때에도 시기를 굉장히 주의해서 택했습니다.
나는 전문 정치가가 아니니까 모르지만, 하여간 다소의 움직임이 있을 것 같소. 아까 말한 대로 박 대통령을 면담할 때 카터 대통령이 상당히 말도 했다는데, 그런 말들도 들려 주고 그러는 것은 다 무엇을 말하는 것 아닐까? 이건 흘러흘러 나오는 말입니다만, 그 내용을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슬기로운 국민이란 그런 것을 보고 내 속으로 준비를 해서 어느 시기가 올 거예요. 이치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좋아서 우리를 가둬 놓은 거니까 또 제가 좋아서 풀어 놓을 때 올 겁니다. (책상을 치며) 틀림없이. 떼놓을 때가 있으면 맞붙이는 게 좋을 때 올 겁니다. 그건 내 힘대로 해야지 미국을 끌어 오고 소련을 끌어 올 수는 없지. 우린들 그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우리 할 준비는 지금도 어서 해야지요. 그러면 그 시간도 아마 쉽게 다가올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어쩐지 봐야 알 겁니다만.
그 동안에 또 문제도 있지 않아요? YH 사건이 났다,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이 났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것 같으니까, 모르신다면 내가 세세하게 보도를 하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있을 수 없는 사건들입니다. 이북에는 또 어떤 일이 있는지 몰라요. 내가 가 보지 않아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저 이렇게 보이는 정부라는 것이 아까도 한 말이지만 수천 년, 적어도 수백 년 사이에 우리의 역사적인 잘못이 쌓이고 쌓여서 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가볍게 보지 마시고, 그렇게 쉽게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뭐 이렇게 걱정하지 않을 거요.
그래 기회가 이른 것을 예의 주시해서 일이 필요하다 할 때에는 곧 활동을 하고, 그러려면 자연히 단합이 되어야 돼. 왜? 늘 말하는 씨알이─민중이라는 걸 내가 씨알이라고 그럽니다. 사실은 그 설명을 꼭 해야 되는데요. 하지만 그건 생략하고 그저 보통 말로 하면 민중이라, 국민이라 그 말인데,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해요.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얘기해도 스스로 하는 말이 “우리 나라 사람은 개인 플레이는 잘하는데 팀워크가 안 된다.” 난 미국 와서 들은 소립니다. 몇 해 전부터 올 때마다, “개인 플레이는 잘하는데 팀워크가 안 된다.” 그건 확실히 그래. 그럼 그거 어디서 왔겠나? 수백 년 잘못된 정치 밑에서 겪어 온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게 내가 이번에 겪은 것이 뭔고 하니 제일 내게 괴로움을 준 사람들이, 애국자가 사람을 못살게 굴어. 나라에 열심이 있다는 사람일수록 어렵다 그 말이에요. “그 사람이 오면 안 됩니다. 이 사람이라면 안 됩니다.” 내가 그럼 찢어지란 말이오, 어떻게 하란 말이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서 가는 데마다 “그런 말 하려거든 나 말 안하겠소.” 신문 기자도 어느 켠의 신문 기자인지 알 수가 없어. 이 사람 보면 이 신문 가짜라 그러고, “이 신문 정부에서 하는 겁니다. 이건 뭐 정보부에서 준 겁니다. 이건 뭐 이북에서 하는 겁니다” 그러고. 이루 다 내가 판단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아예 안 보기로 하고 “신문 기자들 회견 안하겠다. 개인 오는 거 안 보겠다. 이렇게 모여서 하나되어 오면 내 속에 있는 것 얘기하겠다” 했어요. 그래 여기서도 오늘 저녁에 이렇게 모였습니다마는 우리의 제일 약점이 거기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반드시 여러분한테 알려 드리고 싶은 건 우리가 이 대회를 하는데 어려운 것은 지금 사람으로서 똑같은 사람이지만, 마음은 꼭 같지만, 기능은 제각기라는 겁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귀히 여김을 받을 것과 가치에서 말해서 꼭 같지만 기능은, 사람은 뭘 하는 힘이 있는 건데 그건 꼭 같지 않아요. 귀한 점에서는 꼭 같은 거지만, 어떤 건 귀걸이 노릇, 어떤 건 팔찌 노릇, 어떤 건 시계 노릇을 하는 게 있지, 귀걸이가 시계 노릇 하겠다 하고 팔찌가 무슨 목걸이 노릇을 하겠다 하면 되겠어요? 그건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천분이 타고나기를 다른 것 있으니까. 그건 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좋아요. 그런데 ‘벼슬이 좋고 백성 노릇은 나쁜 거지’ 그게 잘못된 거예요. 잘못된 정치에서 받아 온 정치적인 찌꺼기예요. 이게 안 빠져나가서 이러는 거요.
노자(老子)더러 말한다면 저기 높은 자리에 앉았을수록 하찮은 거라. 밑바닥에 있는 것일수록 진귀하다는 거예요. 그러게 뭐라고 그런 줄 아시오? “대국자 하류천하지교”(大國者 下流天下之交), 천하의 쓰레기를 다 받아들이는 게 큰 나라다.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큰 나라 아니에요? 천하의 쓰레기 다 받지 않아요? 보니까 더러워요. 워싱턴은 비교적 낫습디다만 뉴욕은 정말 더러운데, 그 더러움이 어디서 나왔겠느냐? 구체적으로 말해 봅시다. 아마 돈 받고 잘사는 백인이 그러지 않았을 거요. 흑인이 그랬지, 푸에리토리코가 그랬지, 파키스탄이 그랬지, 한국 놈이 그랬지.(웃음) 이것들이 그랬을 거요. 그게 뭐예요? 저희 나라에서 찌꺼기된 것들 아니오. 돈을 가지고 왔거나 못 가지고 왔거나.
그게 소위 평화라는 거예요. 수백 년을 두고 그렇게 죽여 놨으니 큰 나무 남았겠습니까, 못 남았겠습니까? 인물은 큰 숲에서야 오지, 숲이 적은데 어디서 큰 나무 나와요? 답답한 사람들아, 수백 년을 그렇게 찍어 놨으니까 어디…… 마지막에는 인물이 말라지고 말라지고 “이 자식들, 군인이 칼을 들고야 말을 듣겠지” 해서 군인 보냈단 말이야.
우리가 이 이치를 알아서 해방 이후에 해방의 뜻을 알고, 하늘이 줘서 오는 이 기회라면 이렇게 해야지 하고 첫날에 가졌던 그 감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더라면 일이 이렇게 안 되는데, 된 놈 못된 놈, 나도 돼 볼래, 나도 해볼래 그러는 바람에 이렇게 되지 않았어요? 그적에 민중이 딱 버텨 가지고 “주권은 우리에게 있다!” 해서 따를 사람 따르고 안 따를 사람 안 따르고, 그걸 분명히 했어야 하는데…… 공화당이 어떻고 공산당이 어떻고 잘못은 그 사람들이 잘못이지만, 그 사람들의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씨알들의 잘못이라 그 말이에요. 이것도 또 욕심이 있어. 해먹겠다는 소리 안하는 게 씨알이야.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해먹겠다는 생각은 아예 안해야 주인 노릇이 돼. 거꾸로 됐지만, 우리 나라 사람 해먹겠다는 생각 지금도 안 가진 사람 없단 말이에요. 교육을 열심히 시킨다고 하지만 자식을 사람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한자리 해먹겠다는 순사라도 된다면 억지로라도 시키려고 해. 그러니까 그 다음에 들어간 놈이 그걸 가지고 트집을 잡을 거요.
인재가 얼마나 없으면 군사 정치를 해서야만 다스리려는 이 꼴이 됐겠냐,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내가 어버이다” “어버이 김일성” 그러는 놈의 세상이. 자식 노릇을 얼마나 할 줄 몰랐기에 세상이 이렇게 되어 가나? 어버이 노릇을 얼마나 잘못했으면 세상에 나서 이것을 수십 년이 되도록 고치질 못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시오, 부끄럽지 않은가? 그게 우리 사정이라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재목 기를 생각을 해야 돼요. 인물을. 자격은 같지만 능력을 갖추어서 사람들이 자기가 해먹을 생각보다 그 사람 말을 따르려고 하는 그런 사람을 잘 골라서 길러야 인물이 날 거예요.
칼로 못 꺾는 힘
왜 이렇게 기회가 오고 했는데 안 되느냐? 다른 것 없습니다. 사회에 중류층 계급이 건전하게 있었어야 되는데 안 그랬어요. 이 소리 들으면 뭐 구식 소리니 여러 가지 비판은 있을 줄 알아요. 나도 모르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글자 위에서 하는 토론말고 실질적으로 말을 하면, 일본은 이랬거나 저랬거나 전쟁에 패했다가 불과 이십 년 내에 다시 회복됐어요. 경제 동물(economic animal)이라는 소리 있지만 하여간 일본은 우리처럼 그렇게 수모는 안 당하잖아요. 왜? 나라의 터가 있어요. 나라의 터가 뭘로 됐어요? 도쿠가와 삼백 년 동안 평화 정치를 하는 동안에 민중의 수준이 꽉 박혔어. 우리 나라는 양반 등쌀에 긁어먹혔어. 긁어 가고 긁어 가고 긁어 가고, 염생이를 짜 먹을 대로 짜 먹어서 피가 날 지경으로 짜 먹었으니까 무슨 힘으로 혁명을 하겠나 그 말이에요. 그게 중산층 없다는 말이에요.
민중이 도대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힘이 박혔어야 혁명을 할 수 있었겠는데, 근대화할 수가 있었겠는데, 그렇게 못해 온 걸 이제 와서 억지로 근대화를 하려니까 그저 화단(禍端)이 잘못 나가는 게 뻔한 일이오. 제 실력이 있어야지. 옳게 되었다면 피폐된 농촌의 농민이 차차 제가 힘써서 되는 그런 식으로 했어야 하는데, 같은 빚을 져도 그 본위를 이렇게 했어야 하겠는데, 너무 잘못해서 돈, 돈, 돈, 돈 있어야 된다는 생각만…… 어리석은 일이오.
물론 돈 있어야 되지만, 어쩌면 어저께까지 우리를 타고 앉았던 그 일본에 가서 “내가 제이의 이완용이가 되어도 국교를 해야겠다”, 이따위 수작을 해서 일본 외교 시작하자 했는데, 왜 이렇게 광대 같은 소리를 하게 되었나? 나는 평상시에 정치에 흥미가 없어서 신문도 잘 안 보는 사람이오. 하지만 누구든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깨우치긴 깨우쳐야 하겠는데 하는 사람은 없지, 신문이란 신문은 5․16 나니까 “이제 나올 거 나왔다”고 정신 빠진 소리를 했지. 신문쟁이들이 왜 그따위 소리 했냐? 정부 나무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장면 씨가 당초 정치할 사람이 아닌 걸. 학자면 학자라든지 교육자면 교육자라든지 책상에 앉아 있는 게 자기 능력인데, 요새 들리는 소리지만 안하겠다고 굳이 사양하는 걸 옆에서 권한 사람이 있답디다. 그래 나왔다지만, 그렇게 잘못된 거요. 이래서 “칼로도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것이 5․16인데, 군인이니까, 그들은 배운 게 그거니까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해요.
군인이 잘못하더라도 지식인이 건재해서 민중이 그 말을 듣고 딱 반대해 “여보시오, 부패 정리해 보자는 말은 괜찮지만 당신 칼로는 정리 못하오” 그런 말을 했어야 하겠는데, 그 말은 못했어. 나는 그때부터 비웃었어요. “칼 가지고 어떻게 농어촌 고리채 정리하겠다고 하나? 안 된다!” 그런데 농어촌 고리채 정리하자는 건 옳은 말이에요. 나이 많은 분들은 기억할 거예요. 5․16 나고서 첫째 한 일이 “농어촌의 고리채 정리하자” 그랬단 말이에요. 그랬는데 그걸 강제로 하려고 하면 제법 빚은 없어지는 것 같지만 사회의 인간 관계가 온통 끊어져 버리고 말아. 왜? 그 돈이 뭔고 하니 며느리 집에서 얻어 왔던 거, 사촌한테서 얻어 왔던 거, 소 판 거 얻어 왔던 거요. 그걸 아예 주지 말라니까 사돈은 사돈끼리 원수되고, 사촌은 사촌끼리 원수되고. 그래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바로잡는다 그래?
또 거지가 있으니까 보기 싫다, 거지는 다 잡아서 대관령으로 가져간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거지가 없어지겠나?(웃음) 그 사람들을 내가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군인이니까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하는데, “보시오. 당신들은 그거 못한단 말이야. 이걸 할 줄 아는 사람한테 맡겨야 옳단 말이야”, 그렇게 국민이 권위를 가지고 말을 했어야 하겠는데, 그게 우리가 부족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적당한 사람을 적당한 자리에 둔다는 이런 식이 생기기 전에는 안 된다, 그러니 민중이, 씨알이 단단히 정신차려야 돼요.
십 년이 되면 되는 거고 오 년이 되면 되는 거고, 언제든지 나무는 자라요. 나무가 자라지도 않은 걸, 기둥감도 못 되는 걸 어떻게 가져다 쓰겠소. 인물도 못 되는 걸 정당이라고 조직해 가지고 인물 노릇을 하겠나 그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하버드 대학에 가서 날 청한 헨더슨 씨보고 그랬어요. “야, 하버드가 우리 나라 망치고 있다.” 그러니까 하하 웃고 그랬어. 왜? 다는 안 그렇지만, 하버드 졸업생 데려가서 고것들이 청와대 들어가 브레인 노릇을 하고 나쁜 정치를 도왔어. 그게 망치는 거 아니고 뭐냐?(박수)
그걸 고치는 건 우리에게 있지. 병은 밖에서 왔지만. 바람 불어서 감기 걸렸다, “바람아 멈춰라” 그러는 의사는 없지 않아요. 내가 잘못해 그랬지. 병은 밖에서 들어왔지만 고치긴 내가 드러누웠으니까 고쳐야지. 할 수 없지.
아까 이치가 “대국자 하류천하지교”(大國者 下流天下之交), 큰 나라는 천하의 쓰레기를 받아. 이민이란 이민은 다 받아 주는 거요. 타박도 하지만 미국이니까 받아들여요. 이민이라고 받아들이니까 그것들이 왔는데, 마음이 아직도 깨끗지 못하니까 쓰레기가 많은 거예요. 마음이 깨끗한 사람끼리 사는데 쓰레기가 왜 있겠소? 문화적으로 떨어졌으니까 쓰레기가 많이 나지 문화적으로 높은데 왜 나겠소?
그렇지만 그걸 받아 주는 데가 미국이야. 미국이 잘나서가 아니라, 이 천연 자원이 이만큼 있는 거니까, 그건 또 그러실 줄 알아야지. 그래도 이랬고 저랬고 간에 세계의 인간 쓰레기들을 처분해 받아 주니까 그 덕택에 미국의 세력이 이만한 거요. 만일 문을 꼭 닫고 우리 나라는 우리끼리 산다, 꼭 닫고 이민 하나도 안 받아 보시오. 이 미국이 서 갈 수 있겠나? 이 미국의 정치가 그렇게 안하는 데 조금 뭣이 있는 거예요.
그래 대인(大人)이 뭔고 하니 세계의 쓰레기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대인물이에요. 그 대표로 우리 나라 황희 정승. 집에 종 새끼들이 무릎에 올라앉아 수염을 끄들어도 웃었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정승감이에요. 조금만 잘못하면 팩 하고 “그놈의 자식 그냥 둔단 말이야? 없애 버려라!”(웃음) 그러니 어떻게 나라가 크게 되겠냐 그 말이에요.
이런 걸 정말 고쳐야 돼. 아마 하느님이 계시는 데도 그럴 거예요. 자격이 생겨야 그거 주지 않아요? 시기가 늦어지는 건 우리가 그 준비를 못해서 그래. 우리가 민주주의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인간으로 최선을 다해서 대접을 할 줄 알면 실력이 도리어 생겨요. 칼로도 못 꺾는 힘이 생겨요. 정신이 생긴다 그 말이에요.
내가 여기서 떠드는 건 뭐예요. “나이 들었는데 아주 기운이 좋습니다.” 어떻게 기운이 생긴지 아시오? 거저 된 것 아니오.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거 많이 안 먹고 입고 싶은 거 안 입고, 그런 것 더러 있으니까 그러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속에 기운 있는 줄 아시오? 기운은 길러야 생기는 거요.
어떤 때는 말이오, 저놈이 날 죽이려고 하는데 ‘일없지. 죽이려면 죽이라고 그러지’ 그러면 기운이 자라고, 기운이 자라면 나도 모르게 자연히 버틸 힘이 생겨요. 나는 신의주에서 소련 사람의 총칼에도 견뎌 봤소. 나는 멋도 모르고 나가서 당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평안해. 무서운 생각도 안 나고. ‘오늘 가나 보다’, 이왕 갈 때는 사람답게 가야지 시시하게 살려 주시오 뭐 어쩌고(웃음) 그러지 않았어. 나 혼자 이럭하고 있고 총은 여기 와 있고 말이야. ‘오늘 가나 보다, 어떡하나?’ 어떡하긴 뭘 어떡해? 사람답게 죽어야지. 나는 평상시에 하나님 믿었으니까 그러고 있었어. 그러고 있노라니까 저희끼리 또 그만두고 가. 그 다음 때려요. 매가 들어와. 아프지도 않아요. 여러분 걱정 마시오. 딱 버티고 섰으니 말이야, 터덕터덕 맞긴 맞지만 아프진 않아. 그거 그렇게 무서운 것 아니에요. 사람 그렇게 맞는다고 다 죽는 것 아니에요. 맞다가 넘어가요. 그 순간까지 나 알아요. 툭 넘어지고 또 깨어나지요. 그거 뭐 어려운 줄 아시오. 안 어려워. 그것 또 그렇게 쉬운 줄 아시오. 안 쉬워.(폭소)
서울 사람은 최창학이란 이름 다 알지요. 돈만 아는 사람인데, 돈 달라고 칼 가지고 가서 찌르려는데 “찔러 봐!” 하니까 못 찌르고 가더라는 거야. 그것도 일종의 기운이에요. 그러면 알지 않아요. 최창학이 그걸 했다면 말이야, 글자라도 배우고 학자라는 사람들이 원고료 암만 많이 주겠다 해도 내가 하버드인데 돈 준대도 안 간다 그랬으면 됐지 ‘안 간다고 그러다가 정보부에 가면 어떡해?’, 그래 나라 일도 잘못되고 자기도 잘못된 것 아니오?
‘대포알’로 폭발하라
마지막으로 얘기 하나. 여기 여러분들보고 다 ‘대포알’이라 그래. 대포의 의미는 어디 있어요? 튀어야 돼. 폭발을 해야 돼. 대포알이 뭘로 된 줄 아시오? 껍데기는 쇠예요. 껍데기 있고 속에는 화약이 있고, 그 다음에 뇌관이 있는데, 제일 중요한 건 뇌관이에요. 뇌관을 때리기만 하면 불이 나요. 불이 나면 화약에 붙어요. 화약에 붙으면 이제 껍데기가 산산조각이 나서 터지는 바람에 적들을 죽인단 말이야. 요거 눈이 또릿또릿한 거, 요거 다 총알이에요. 대부분은 불발탄이 되고 말아요.(폭소)
참 크게 폭발한 건 누구냐? 크게 폭발한 건 예수님이야. 십자가라는 것은 짐이라 했는데, 예수에게 지워 때리고 해서 폭발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육신이 고난당했지만 많은 죄악을 부서뜨리고 해방을 시키지 않았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어떡하면 불발탄이 안 되느냐? 뇌관은 물이 들면 안 돼. 분명히 이건 여러분한테 하나님이 넣은 거예요. 하나님이 일이 있을 때 탁 치기만 하면 되는데, 사람의 혼인데, 다 가능성이 있는데 다만 뇌관에 물이 끼면 못 쓴다 그 말이에요. 물이 안 끼도록 해야 돼. 다른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깨끗하게 지켜야 돼. 내 양심만은 깨끗하게 지켜야 일단 일이 올 때에 큰일을 할 수가 있지 물기가 들어가면 못 써. 화약이 젖어 버리면 안 돼.
사람의 살림 속에 있는 뇌관과 화약을 보호하는 건 사람의 도덕성이에요. 도덕 생활을 엄격하게 하지 않고는 내 속에 뇌관 같은 것, 영혼이 폭발할 수 있는 힘이 없어. 사람의 지식, 마음의 자료가 다 그만 습기가 차서 폭발력을 잃어버려. 평상시에 딴딴하게 흠 없는 대포알이 돼 있어야 폭발을 해. 이게 갈라졌다든지 없어지면 작용을 못해. 그러니까 엄격한 도덕 생활을 해야 돼. 내가 내 양심적으로 생활해 가야 돼. 괴로운 것 같아도 지켜 가야 해요. 그걸 지켜 가는 사람이 아니고는 이 다음에 문제가 올 때 어려워. 속에 찬 것이 없어서.
미국 같으면 그게 나빠요. 미국 놈은 빤히 껍데기 벗겨져 이제 폭발 못하는 거 보세요. 그 중에 그렇지 않은 것이 있지만, 여기 길가에 나서서 엔조이(enjoy)만 하는 그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할 거요, 엔조이만 하는 동안에 이게 모두 다 녹아 버려서.(웃음) 그러니까 언제 무슨 말이나 설교를 들어도, 누구의 사회 부정이라도 폭발 안해. 그래서 미국 사람들 아주 무책임하다고 그래. 어째서 열 두 살, 열 세 살, 열 네 살 난 것들이 애기를 밴다는 거예요. 이놈들이 어떤 걸 자유라고 그냥 내버려두나. 자유도 썩어진 자유야. 그게 자유 아니오. 엔조이만 하는 거요. 애비 에미가 잘못된 엔조이만 하려고 하는 동안에 그렇게 되고 말아. 오소리티(authority)를 잃었어. 권위를 잃었어. 그러고 장래가 뭐 있겠나? 내가 유언할 수 있어.
이 따위에서 반성하지 않는 한은 장래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아직도 채 죽지 않는 그런 건 있어서 유지가 되어 가지요. 그러니까 덮어 놓고 그저 이러면서도 염려 없이 간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될 거요.
미국은 어쨌든지, 우리는 세계적인 평화 세력 밑에 서서 폭력 그 자체를 배격해야 됩니다. 전쟁 자체를, 그것 가지고는 인간이 구원 못 얻는다 하는 확실한 철학을, 철학만이 아니라 신념을 우리가 딱 굳히면 미국의 정책도 달라질 거예요. 다른 건 못해도 그건 우리가 할 수 있어요. 개인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죽을 결심을 하면 남을 움직이지 않아요?
YH에서 죽은 여자가 자살이라고도 하고 타살이라고도 합니다만,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 거기 들어갔겠어요? 그런 의미로 하면 자살이지. 또 타살이라는데, 아무리 죽을 각오를 했더라도 청중이 모였다는데 정부에서 탄압을 그렇게 안했다면 싱거워서도 그만뒀을 거예요. 그러니까 타살이란 말도 옳고 자살이란 말도 옳은데,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힘있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아니고, 자기가 한 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한다면 그건 폭발력이 상당히 있는 법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아무 일을 하는데 자기 밑천의 정신 안 들어가고 되는 법 없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의 아주 나쁜 점은, 자기는 뒤에 있어서 불 속의 밤알은 남더러 집어내라 그러고 먹기는 내가 먹으려고 해.(웃음) 고런 꾀가 있어. 그거 나쁜 생각이야. 그래 가지고는 폭발 못한다 그 말이에요. 바람은 좋은 바람이 불어.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모르겠습니다. 아직 모르지만 불 것 같아요. 그런다면 무슨 일이 있을는지 몰라도 막으로는 안 된단 말이야. 이게 한번 폭발하면, 폭발해도 좋다, 폭발하면 그것이 사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 될 수가 있지만 그러지 않고는 안 된다, 나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일어섭시다, 칼도 준비합시다, 폭탄 만듭시다, 죽입시다” 그런 소리는 안해. 그런 소리 하러 세상에 나온 그렇게 조그만 사람 아니에요.
너무 시간 끌어 미안합니다.
씨알의소리 1989. 10월 106호 1979년 10월 14일 미국 워싱톤 한인교회에서 하신 말씀
저작집30; 12- 167
전집20;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