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로 일한다는 것(33) - “이놈들아, 금강산에도 내 땅이 있어!”- 요양원에서 생활하다보면 별의별 어르신들을 다 만나게 된다. 어떤 분은 성격이 까다롭고 요구사항이 많아 귀찮고 짜증스럽기도 하고, 또 다른 어르신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금하는 음식을 달라고 하거나 당뇨가 심한데도 설탕이 든 커피를 요구해 난감할 때도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평소에는 그렇게 힘들고 성가시게 하던 분이 막상 병원에 입원하거나 며칠간 외박을 나갔을 때는 안부가 궁금하고 자주 생각나는 분들이 더러 있다. 이번 설 명절 연휴 기간에 우리 요양원의 입소한 어르신 30여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자녀들과 함께 외출을 나가셨다. 일부 어르신은 오후에 잠깐 보호자들과 외식을 한 뒤에 곧바로 요양원으로 돌아온 분들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2~3일에서 1주일까지 자녀나 친지들의 집에서 명절을 보냈었다. 이 때문에 일손이 가벼워진 직원들은 모처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는데, 단연 화제의 인물은 심한 치매 증세를 보이고 있는 하인식(가명) 할아버지. 올해 90세인 이 어르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담당 요양보호사가 침실로 가서 우주복 대신에 평상복으로 갈아입힌 뒤 휠체어에 태워 거실 소파에 눕혀 놓는다. 소파에 누운 자세로 낮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일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소파에 기댄 채 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만경창파에 배 띄워놓고~영웅호걸이 누구인가, 절대가인이 몇몇인가’ ‘만고강산 유람할 제~~한잔 먹세, 또 한잔 먹세~’ 이들 노래를 부르실 땐 신이 나서 덩더쿵덩더쿵 소리를 내며 어깨춤을 춘다. 그런가 하면 "하룻밤의 정을 못잊어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네~능라도 숲속에는 오늘도 봄비가 내리네 " 이 대목에 이르면 나는 어르신에게서 애잔한 슬픔이 느껴진다. 어떤 날은 하도 노래를 많이 불러서 목이 쉬는 때도 있다. 그러다가 심드렁해지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잠시 졸기도 하다가 젊은 시절에 살았던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 ‘가평군 수리재’ 를 들먹인다. 나중에 알아보니 포천이 출생지이고, 가평에서는 7~8년간 사셨단다. “이놈들아, 포천과 가평에서 내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니지 못해!” “포천에서 하인식이를 모르면 간첩이야, 간첩”이렇게 큰 소리로 떵떵거리다가 “군말마라, 금강산에도 내 땅이 있어!”라고 허풍을 떤다. 한참 뒤에 보호자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어르신은 광산업을 해서 떼돈을 벌었는데 부동산에 손을 댔다가 사기를 당해 한이 맺혀 그렇다고 한다.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쳐도 주위에서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이번엔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푸우!, 푸우! 하며 침을 내뱉는데, 이때 어르신의 입에 얼른 사탕을 물려야 된다. 심심하면 엄지손가락을 빨기도 하고 혓바닥을 손으로 잡아당긴다. 어쩐지 조용하다싶어 어르신을 살펴보면 어느 새 아랫도리에 손을 넣어 기저귀를 뜯고 있거나 상의 호주머니를 꽈배기처럼 배배 틀어쥐고 있어 성한 상의 옷이 없다. 비쩍 마른 몸매이지만 손아귀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무엇이든지 한번 움켜쥔 것은 절대 놓지 않으려 한다. 어느 주말의 한가한 오후에 서랍장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한 여성동료가 큰일 났다며 나에게 급히 달려왔다. 부리나케 어르신이 누워있는 거실 소파로 달려가보니 아랫도리에 손을 집어넣어 소변이 흠뻑 젖은 속기저귀 하나를 빼내 양손으로 쥐어짜고 있었다. 어찌나 손아귀 힘이 센지 여자 세명이 쩔쩔매고 있었다. 겨우 달래서 속기저귀는 넘겨받았지만 온몸에 소변냄새가 나서 목욕을 시켜야만 했다. 어르신의 두 눈은 거의 실명상태다. 녹내장, 백내장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이 무척 강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온순하지만 그렇지 않고 정서적으로 무언가 결핍되거나 불안감을 느낄 때는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처음에 나도 무심결에 기저귀를 갈다가 가슴팍을 몇 대 얻어맞았고 꼬집히기도 했다. 저녁에 기저귀를 뜯지 못하도록 우주복을 입힐 때는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주먹을 휘두르며 꼬집고 떼를 쓸 경우에는 남자 요양보호사 두 명이 진땀을 흘릴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어르신을 관심 있게 관찰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우선 기분이 좋을 때는 목소리의 톤이 무척 정겹다. 기저귀를 갈 때 “어르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고 하면 “그래그래, 많이 존경해라, 아프지 않게 살살해다오”라며 친절하고 쉽게 응해 주신다. 하루 종일 중얼거리고 떠들어서 그런지 식욕은 왕성한 편이다. 죽 세끼에다 오후에 간식을 먹여 드리는데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후딱 빨리 드신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죽을 떠서 첫술을 입에 넣어 드리면 반드시 ‘싱겁다, 짜다, 맵다, 맛있다’고 한마디 말을 던지신다. 어르신의 입만 표현이 하도 정확해서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주방에 전해준다. 입맛에 대한 감각뿐 아니라 이 분은 ‘춥다, 쌀쌀하다, 따뜻하다, 덥다’ 등 외부의 기온 변화에 대한 감각도 탁월하다. 흔히들 치매가 시작되면 당사자는 천국을 맛보지만 그와 반대로 가족이나 보호자들은 고생길로 들어선다고 한다. 그렇지만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치매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영 판단이 헷갈리고, 똑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되풀이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교회 권사 할머니 한분은 요양원의 노래방 기기를 틀면 노래도 곧잘 부르시고, 그림을 그리고 난 뒤에 여백에다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정확하게 쓰신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난 뒤에는 화장실용 슬리퍼를 벗고 나와야 되는 데 이것이 영 헷갈린다. 직원들이 계속해서 시범을 보이고 어르신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설명을 해도 그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전직 교사출신 할아버지는 이빨을 닦은 뒤에 양치물을 뱉는 게 그렇게 힘이 든다. 하루에 세 번씩 이빨을 닦은 양치물을 대부분 그냥 삼켜버리는데, 어쩌다 너무 세게 내뱉어 내 얼굴에 튈 때도 있다. 치매환자와 중풍환자 가운데 어느 분이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기 쉬울까? 언뜻 보면 중풍에 걸린 어르신의 케어가 더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중풍환자가 더 어렵다. 왜냐하면 중풍환자의 경우엔 인지기능이 그대로 살아있어 요구사항이 많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치매가 심한 할아버지와 왼쪽 편마비 중풍어르신을 동시에 섬기고 있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