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스프레소(Nespresso)
2010년 이전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통 카페라 하면 수퍼마켓이나 도매상에서 가공된 원두를 사다가, 각자의 방법으로 음료를 만들어 파는 곳을 말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브랜드마다 특색을 살려 직접 볶은 원두로 그 자리에서 음료를 만들어주는 소위 '스타벅스'식 카페가 커피 전문점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말하자면 커피업계에 '요리사가 앞마당에서 직접 기른 식재료로 요리해주는 식당'의 시대가 닥친 셈이다. 커피업계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면서 매출 기준 전 세계 1위의 식음료 기업 네슬레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때까지 네슬레는 향이나 특색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양이 많은 기본적인 커피용 원두, 원두를 따로 갈 필요 없이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마실 수 있는 동결 건조 커피, 공장에서 이미 병입을 마친 완제품 캔커피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달랐다. 대다수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기본적인 커피 대신 '나만의 커피'를 찾아 수퍼마켓 대신 동네 구석의 특이한 1인 카페를 찾거나 스스로 집에 커피머신을 들여놓고 '홈카페'를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 다양한 선택 위해 캡슐형 커피 출시
네슬레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캡슐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를 꺼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뉴욕의 소호, 런던의 리젠트 스트리트와 같은 주요국 최고급 상권에 네스프레소 브랜드 체험을 위한 대형 매장을 차렸다. 매장 외부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 매장 내부 벽면은 네스프레소 캡슐을 하나하나 모자이크처럼 박아서 꾸미고, 바닥은 고급스러운 대리석과 빨간색 카펫으로 장식했다. 매장을 찾는 소비자라면 네스프레소를 모르더라도 모두에게 커피 전문가가 눈앞에서 뽑은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제공했다. '주유소나 푸드 코트에서 파는 아저씨들의 커피'라는 기존 이미지를 씻어내고, 그 자리를 젊고 고급스러우면서도 유행을 즐길 줄 아는 유연한 소비자상으로 채워넣기 위해서였다.
밀레니얼 세대는 네슬레의 변화를 환영했다. 유럽 스타트업 업계에서 '네스프레소 캡슐 머신'은 창업 선물 1순위로 꼽혔다. 긍정적인 반응이 불기 시작하자 네슬레는 이미지와 동시에 맛에도 과감하게 손을 댔다. 많아야 3~4종류였던 수퍼마켓 원두와 차별화하기 위해 산지와 볶음 정도, 서로 다른 지역 원두를 얼마나 섞었는지 여부에 따라 캡슐을 22개 종류로 촘촘히 나눴다. 여기에 매년 분기마다 선보이는 한정판 원두를 합치면 종류는 더 늘어난다. 캡슐 겉면에는 '장미향'처럼 주관적이고 애매한 설명 대신 커피 농도를 기준 삼아 1부터 13까지 강도를 숫자로 표시했다.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타벅스에 열광하는 밀레니얼 세대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네스프레소는 스타벅스와 손잡고 올해 2월부터 스타벅스 매장에서 파는 간판 상품 '시그니처 블렌드'를 캡슐 커피로 내놨다.
◇ 룰루레몬(Lululemon)
밀레니얼 세대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을 차려입기를 싫어한다. 가벼운 레깅스 차림으로 바깥을 활보하는 젊은 층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자기 몸에 맞게 입자(body positivity)’는 철학에 따라 편안하고 기능성이 뛰어난 옷을 즐겨 입는다. 덕분에 기존 패션 시장이 전반적으로 퇴조하는데도 애슬레저 시장만큼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운동(athletic)과 레저(leisure)의 합성어인 애슬레저는 집에서 1마일(1.6km) 정도 범위 안에서 마치 잠옷처럼 편하게 입을 수 있다고 해서 ‘1마일 웨어(wear)’라 부르기도 한다. 1998년 캐나다에서 설립된 룰루레몬은 신생 브랜드의 격전지로 손꼽히는 1마일 웨어 시장에서 줄곧 압도적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내에서 룰루레몬은 브랜드 이름보다 ‘요가복의 샤넬’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경쟁사 제품보다 옷값이 평균 1.5~2배 정도 비싸기 때문이다. 얇은 요가용 여성 바지 한 벌이 100달러(약 12만원)를 웃돈다. 그럼에도 ‘비싼 값을 한다’는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다. 본진인 북미권은 물론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 덕에 2008년 3억5000만달러 수준이었던 매출은 2018년 32억8000만달러로 10년 사이 10배 가까이 뛰었다.
♧ 요가 옷 사면 요가 강좌는 덤
비결은 ‘1+1’에 있다. 물건 하나를 사면 다른 하나를 더 얹어주는 ‘1+1’이 아니다. 룰루레몬은 옷을 하나 사면 다른 옷을 무료로 주거나 할인해 주지 않는다. 대신 요가 수업을 무료로 제공한다. 제품만 팔지 않고 경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다. 운동하기로 결심하고 스포츠 용품 매장에서 옷과 신발을 고른 소비자들은 곧 ‘어디서, 어떻게’ 운동할지 고심한다. 혼자 하는 운동에 질려 얼마 안 가 운동하길 포기하거나, 잘못된 운동법으로 크고 작은 부상에 신음하는 경우도 많다.
룰루레몬은 지역마다 매장 주관으로 요가 관련 클래스를 열고, 자체 지역 행사를 기획하고 열 수 있도록 본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소비자는 시행착오를 반복할 필요 없이 운동을 즐기면 된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가 관심 있는 사안에 대해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는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면 참가자에게 제품과 수업에 관한 의견을 받는다. 신제품 개발이나 새 체험 수업을 여는 데 반영해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도 이런 의견을 반영해 요가복 판매와 전혀 관계없는 꽃꽂이, 선물 포장법, 건강한 식단 짜기 같은 수업이 추가로 열렸다. 룰루레몬 수업을 들은 밀레니얼 세대는 SNS에 ‘룰루헤드’라는 마니아 그룹을 형성하고, 선임 룰루헤드가 신입 룰루헤드를 위한 용어 사전도 만들 정도로 충성도가 높다. 단순한 제품 마케팅에 앞서 건강한 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알리고, 룰루레몬 경험자를 늘려 ‘팬’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