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채워주는 삶의 활력소
-최원현의 햇빛 마시기
이명진
'마신다'란 결핍을 채워 주는 행동이다. 햇빛을 마시는 일은 삶의 아이러니다. 또한 따스함을, 밝음을, 희망을, 품는 일이다. 오래 전, '좋은 수필은 어떤 것일까?' 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많은 이론서들이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수필의 개념을 정리해 놓고 있었다. 남이 쓴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는 행위가 좋은 수필을 쓰는 지름길이라고도 한다. 그 말을 찰떡처럼 믿고 쉼 없이 여러 수필 전문지에 발표되는 작품들을 읽어대던 때였다. 내 작은 두 눈을 번쩍 뜨게 만든 최원현의 <햇빛 마시기>는 제목부터 뇌신경을 자극해 왔다.
당황스러웠다. 어? 어떻게 햇빛을 마시지? 내 호기심을 자극시킨 서두는 단박에 본문을 읽어 내려가게 만들었다. 간결한 문체가 작가의 정신세계를 사색의 뜰로 안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산부인과 원장인 그녀는 빈 유리컵에 담긴 햇빛을 마셔 보라고 권한다. 자신이 이미 마셔서 한 컵이 되지 않을 거라는 햇빛의 량. 그 맛을 묻는 그녀의 행동은 맹랑하고 신선하다. 아무 맛도 없는 햇빛은 화자에게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서두의 시작은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뒷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증을 발동 시킨다. 글을 쓰기 위해 등장하는 여러 가지 소재들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 채 글쓴이를 지배한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 잡히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작가의 사유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조차 관심 갖고 보면 특별한 마음이 생겨날 수 있다. ‘햇빛 마시기’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수많은 경종을 울려주는 상징어로 보여 진다. 햇빛이 내포하고 있는 속성은 다양하다. 어둠도 밝혀 줄 수 있고, 엄청난 살균력도 지니고 있고, 생명체들이 살아가려면 필요한 충분조건의 요소들까지 반드시 필요하다. 늘 곁에 두고 있으면서 필요한 요소들을 보충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햇빛임에도 우린 간과하고 살아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은 그래서 더욱 가까이 있으면 귀한 줄 모른다는 이치와 같지 않은가. 한 편의 수필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울림은 그래서 더욱 피부 깊숙이 파고든다.
문학의 본질은 사물의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하는 행위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글감으로 등장하는 소재의 낯설기는 누구에게나 새로움에 대한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그러기에 수필을 쓰는 행위는 쉽고도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은 가공의 이야기를 실제 있는 일처럼 꾸며서 만들어내면 되고, 시는 대상을 통해 얻어낸 정서와 사상을 응축시켜 다듬어진 함축적 언어로 표현하면 된다. 하지만 수필은 말하고자 하는 화자가 직접적으로 체험한 사건을 토대로 진솔하게 표현하는 문학이다. <햇빛 마시기>에서의 소재의 역할은 다분히 낯설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귀로 들리지도 않고, 소리로 들을 수도 없고, 맛도 느껴지지 않고, 하물며 만질 수도 없는 햇빛마시기란 상상력은 자신의 인생관을 통찰하며 관조하게 만든다. <햇빛 마시기>에서는 긍정적 사고를 수긍하게 하는 요소들이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감동을 주고 있다.
수필 문학의 가치는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인생의 진리를 교시敎示 했을 때이다. 그러했을 때, 수필문학은 인생과 생명을 감동으로 해석하는 진정한 ‘인간학’이 될 수 있다. 모든 예술의 근간은 인생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수필은 ‘사랑’이란 자양분이 없다면 피어나지 못하는 꽃과 같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내 고향에 대한 사랑, 또는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빛과 온기만이 좋은 수필을 탄생 시킬 수 있다. <햇빛 마시기>는 사랑과 체온을 ‘내 안으로 햇빛 들여보내기다. 바깥세상을 안 세상으로 들여보내기다. 생각의 전환이다. 마실 수 있는 것의 영역 확대다. 새롭게 보기다.’라고 최원현은 정의 내렸다.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던 ‘아름답지 못하거나 바르지 못한 생각과 마음들’이 속으로 들여보내진 햇빛으로 하여 씻기고 닦이고 다듬어지는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순간, 한 편의 수필은 몸에서 모자란 부분인 결핍을 채워 주게 된다.
오감을 동원하지 않아도 미각, 후각, 촉각, 시각, 청각을 느낄 수 있게 만든 마술사 같은 최원현만의 수필 쓰기는 내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거름과도 같다. 좋은 토양과 부지런한 주인의 거름주기로 벌레 먹지 않는, 시들지 않는, 싱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잘 쓰여 진 한 편의 수필을 감상하면서 가슴을 비집고 나오는 생각은 인생의 환희이며, 희망이다.
그의 수필은 오늘도 낯선 공간에서 피어나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처럼 삶의 활력소로 독자들 곁을 지켜 줄 터다.
첫댓글 "좋은 수필을 잘 쓰려면?"
이 물음에 딱히' 이것이다' 라고
내놓을 수 없는 게 또한 수필이다.
그러니 어찌하랴!
"그저 이런 수필이 좋긴 하다"
라고 답할 수밖에-
*평생을 문학을 가르치면서 학동들과 나눈 가장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최원현의 <햇빛 마시기>와 이명진의 평론을 읽다 보면 또 어떤 답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올려보았습니다^^*
아, 햇빛 마시기, 참 그럴싸 합니다...ㅎㅎ
실제로 햇빛이 없으면 인간은 살지 못하지요.
오래 햇빛을 못보면 우울증도 걸리고
식물이 시들듯이 인간도 시들어 가니까요...
햇빛은 생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구요.
햇빛, 빛....정말 그 자체로도 너무나 멋진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한 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빛이 저는 너무나 좋거든요..
정말 멋진 수필입니다..
희망, 밝음, 따뜻함...
수필에는 정말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감정에 대한 넋두리보다는 울림을 주는 글들이 좋아요.
울림을 준다며 억지로 짜내는 그런 너무 작위적인 글들이 요즘 참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