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투자자가 티베트의 설산에 은둔하고 있는 고수를 찾아간다. “어떻게 하면 증시에서 돈을 벌까요?” 고수는 감았던 눈을 살포시 뜨더니 한마디 던진다. “블래시(BLASH).” 이 단어에 엄청난 비법이 담긴 줄 알았던 투자자는 설명을 듣고선 실망하고 만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Buy Low And Sell High)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식투자는 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주가가 실물경제 지표를 비웃듯 아래로만 향하는 장에서 투자자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증시는 미국과 달리 의미있는 반등을 일궈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증시 관계자들은 또 좋은 종목을 사서 기다리는 가치주 투자법은 장세와 상관없이 유효하다고 조언한다. <Economy21>은 주요 증권사 투자전략가 20명에게 설문조사를 해 장세와 무관하게 사둘 만한 가치주 49종목을 선정했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예비스타주로는 영업 시작 3년 만에 국내 지리정보시스템(GIS) 시장의 30%를 차지한 한통데이타, 독보적 냉매생산업체 화인텍, 세계 아연생산 1위인 고려아연 등 시장에서 지위가 확고한 기업이 꼽혔다. 이와 함께 농심, 동양제과, 제일제당, 타임, 신영와코루 등 인기 높은 브랜드를 둔 종목들이 선정됐다. 숨어 있는 가치주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투자전략가들은 삼성전자와 국민은행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두 종목은 각각 4명의 추천을 받았다. 3위 종목은 뜻밖이다. 3명이 시가총액 2600억원인 소형주 웅진코웨이를 짚었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강력한 유통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독과점적 지위를 누린다는 이유였다. KT, LG화학, SK가스, 농심, 호텔신라, 현대모비스는 각각 두명한테서 추천을 받았다. 그동안 외국인과 기관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종목들이다.
2002년 08월 02일
“강세장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를 먹고 자란다.” 약세장은 투자자 대부분이 ‘항복’할 때 임종을 맞이한다. 미국 증시는 상당 기간 오르기 힘들 전망이다. 분식회계 의구심이 걷히지 않으면서 부실이 더 드러나, 해당 업체의 파산과 해고, 그리고 은행 부실채권 증가와 신용경색이라는 악순환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경기가 약세장에 휘말려 다시 꺾인다는 ‘더블 딥’이 현실화한다고 하더라도, 아시아 증시는 독자적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수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고 내수와 수출이 균형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증시는 뉴욕 증시보다 먼저 상승세를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3분기 국내증시 전망 ‘우울’
급반등했던 주가가 이틀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국내 증시가 미국과 동조를 벗어난다는 이른바 ‘디커플링’ 기대는 일단 물거품이 됐다. 7월24일 종합주가지수는 721.41로 거래를 마감해, 이틀 전의 720.90 수준으로 회귀했다. 이날 도쿄 증시도 수출주 중심으로 곤두박질쳤다. 닛케이평균주가는 10000선을 깨며 267.91포인트 하락해 9947.72를 기록했다.
두 나라 증시 하락의 진앙지는 뉴욕이다. 미국 증시 약세가 경기회복을 지연시켜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에 타격을 주며 세계 증시를 동반 약세로 몰고간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올해 들어 뉴욕 주가는 7월23일까지 30% 이상 떨어졌다. 대형주 위주로 구성된 S&P500지수는 지난해 말 1148.08에서 797.70으로 31% 정도 급락했고, 나스닥지수는 1987.26에서 1129.05로 43% 넘게 폭락했다. 뉴욕 증시는 지난해 9월 테러사태로 나락에 빠졌다가 소비가 유지되는 가운데 재고가 소진됐다는 인식에 따라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가파르게 올랐다. 그러나 분식회계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3월 이후 다시 급강하했다.
일각에서는 뉴욕 증시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기준으로 89.2% 떨어진 1929~32년 대공황기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나스닥지수는 2000년 3월 기록한 사상최고치 5048.62에 비해 77.6% 미끄러졌다. 대공황기 이래 가장 큰 낙폭이다. 1차 오일쇼크 파장이 덮친 73~74년 나스닥지수의 낙폭은 59.9%로, 요즘처럼 크지 않았다.
국내외 증시 전문가들을 연달아 몸을 낮췄다. 리먼브러더스의 투자전략가 제프리 에플리게이트는 S&P500지수의 연말 전망치를 기존 1200에서 1075로 낮춰잡았다. 애초에 11500으로 봤던 다우존스지수는 10750으로 하향조정했다. 우리증권 이철순 투자전략팀장은 “미국 주가 급락으로 국내 주가는 3분기에 더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팀장은 3분기 주가는 640~820 범위에 갇힌 상태에서 오르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미 증시와 차별화 계속된다
대공황을 운운하는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소신껏 주식을 사들이는 투자자가 있을까? 하지만 한편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주식을 싸게 살 기회”라고 외치고 있다. 이들은 “다른 투자자와 반대로 가라”고 조언한다. 삼성증권은 “현 상황이 대공황 직전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지만, 당시에 비해 미국 금융부문은 상대적으로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증시 관계자들은 아시아 경기가 본격 상승 국면에 진입했기 때문에, 미국 실물경제가 위축되더라도 상승 속도가 둔화되는 정도의 충격만 받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하나경제연구소는 “아시아 경제에 미국 경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면서도 “경기 저점을 통과한 일본을 중심축으로 아시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우리 경제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과거 부실을 걷어냈으며, 정보기술(IT) 부문 과잉투자도 상당 부분 해소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아시아 증시는 미국과 기초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추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종합주가지수는 지난해 말 693.70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S&P500지수가 3분의 1 넘게 날아간 데 비추어 선방했다. 동양종금증권은 “아시아는 달러 약세로 수혜를 보는 중국과 침체터널을 지난 일본을 축으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대미 무역의존도를 줄이는 반면 아시아에 대한 무역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제자금 아시아행 공산 커
“과거 미국 주가가 급락하면 외국인들은 반사적으로 국내 증시에 넣어뒀던 투자자금을 회수했다. 이제는 한국을 미국의 대체시장으로 인식하는 추세다.” 수급 측면에서는 이같은 반사효과가 거론된다. 대한투자신탁증권 소재용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약세마저 겹쳐 투자 유인을 잃은 미국 증시에 대한 대안으로, 기초여건이 양호한 아시아로 국제투자자금이 유입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우리 증시는 대체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우선 대선을 앞두고 브레이크가 풀린 채 급락하는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또 미국에 비해 주가가 싸다. 삼성증권 임춘수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주식은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8~10배 수준으로, 이 비율이 35배인 미국보다 저렴하다”고 분석한다. 국내 주가는 과거와 비교해서도 가격 메리트가 있다. 동양종금증권 장창수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증시의 PER는 약세장이었던 92년보다 낮다”고 설명한다. 당시에 비해 자본조달비용이 낮아져 주식투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졌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가격 메리트는 더 커진다고 그는 덧붙인다.
아울러 우리 기업이 엔론과 같은 대규모 분식회계를 저질렀을 개연성도 적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국내에서는 미국 엔론과 월드컴처럼 도산 위기에 몰릴 만큼의 대규모 분식회계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대우그룹이 감춘 22조원의 부실이 드러난 이후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재를 강화한 덕분이다.
마침 해외 언론에서도 맞장구를 쳤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7월23일자에서 “미국이 감기에 걸렸는데, 아시아는 재채기조차 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전날 <블룸버그통신>은 “아시아 증시는 미국 주가 하락의 충격을 흡수하며 디커플링하리라고 기대하는 거래자와 펀드매니저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가치주 어떻게 골라야 하나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주식을 고를까? 그에 앞서 가치주는 어떤 종목을 말하나? 가치투자는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싸게 거래되는 주식을 샀다가 적정 가치에 도달하면 파는 것을 말한다. 가치투자자는 일정 시점에서 싼 주식을 골라 매도와 매수를 반복하는 대신 주인정신을 갖고 지속적으로 보유한다.
가치주는 성장주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경기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 실적을 내는 종목이다. 대개 PER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지를 기준으로 선별한다. 현대증권 박문광 팀장은 “3년 이상 꾸준히 매출과 이익률을 유지하는 기업을 찾으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부국증권 신성운 부장은 “매출이 납입자본금의 20배 이상이고, 최근 3년 연속 5천원 이상 주당순이익(EPS)을 거둔 기업을 찾으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갖고 있는지, 기술수준이 높은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투자전략가들은 조언했다.
서울증권 박승원 팀장은 99년에 태평양을 추천한 사례를 들어 가치투자의 기본자세를 강조했다. 태평양은 거침없는 상승장에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가 외국인의 관심을 받아 뒤늦게야 상승했다. 박 팀장은 “가치투자는 따라서 몇년 동안 은행에 예금해둔다는 요량으로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성공한다”고 말했다.
주가가 언제 바닥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대부분 바닥을 지났다고 얘기하는 때는 수확이 이미 끝난 뒤다. 증시 관계자들은 남보다 먼저 매수하라고 조언한다. 그래도 조심스럽다면 분할매수에 들어가면 된다. 매수는 물론 매도 시점도 각자의 몫이다. 또한 가치주 투자라고 해서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처럼 오래 들고 있어야만 한다고 권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장세에 휩쓸릴 게 아니라, 기업을 인수한다는 관점에서 투자하는 방법은 분명 고려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포브스'가 올해 발표한 세계 10대 부자 명단에 직업 투자가는 단 한명, 워런 버핏뿐이었다. 나머지 9명은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 회장, 독일 알디 슈퍼마켓 체인의 소유주 알브레히트 형제, 월마트를 상속한 월튼 가문 사람들이다. 워런 버핏은 세계적 대기업 사주들 틈에서 직업 투자가로선 유일하게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록 직업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의 투자 스타일은 같다. 자신이 잘 아는 기업에 투자하고, 오래 묻어둔다. 최고 갑부 빌 게이츠는 자산 528억달러 중 80%를 MS 주식으로 들고 있다. 나머지는 버핏의 충고에 따라 항공, 철도, 조선, 전력, 음료 등 실적이 탄탄한 제조업종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2위 갑부 워런 버핏은 일편단심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는 코카콜라, 질레트 등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우량주를 산 뒤 지겨울 정도로 보유한다. 100달러로 투자를 시작한 지 4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 투자법으로 330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갑부가 됐다. “돈은 머리로 버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번다”는 증권가 격언은 그한테 딱 어울린다.
알브레히트 형제, 월튼 가문 사람들도 넓은 의미의 가치투자가다. 이들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즉 자신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에 투자해서 잘 될 때까지 묻어놨다.
날고 뛰는 투자가, 펀드매니저들 역시 이들과 투자철학이 같다. 현대적 투자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 1929년부터 시작된 장기 침체장에서 큰 돈을 벌어들인 존 템플턴, 월가에서 가장 성공한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 피델리티 부회장, 가장 오랫동안 S&P500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매니저 빌 밀러…. 이들 모두 가치투자로 정평이 나 있다.
전략은 저마다 약간 차이가 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나 존 템플턴은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싸게 거래되는 주식을 산다. 버핏은 좋은 비즈니스를 가진 종목이라면 더 오를 것이라고 보고, 이미 많이 올랐어도 산다. 기본적인 전략은 같다. 이들은 피터 린치가 말했듯 “시장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산다”.
‘월가의 전설적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는 한창 때 구두를 두세달에 한 켤레씩 갈아치웠다고 한다. 주가를 보기 전에 기업을 봐야 한다며 뛰어다녔던 탓이다. 그는 1977년부터 90년의 약세장에서도 연 평균 29.2%라는 경이적 수익률을 냈다.
일반투자자가 생업을 내팽개치고 피터 린치처럼 구두굽이 닳도록 남의 기업들을 돌아다닐 수는 없을 터. 기업 분석과 시장 읽기가 직업인 투자전략가 20명이 구두굽 닳도록 뛰어 발굴한 가치주들을 설문조사를 통해 모았다. 미남, 미녀에도 유형이 있듯, 이들이 꼽은 가치주에도 몇가지 유형이 있었다.
시장 독과점형
가장 많은 스타일은 시장 독과점 기업 또는 점유율 1위 기업이다. 우뚝 솟은 콧날과 큼직한 눈이 현대 미인의 전형인 것처럼,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들은 어김없이 가치주 물망에 올랐다.
가치주 스타 3인방에 꼽힌 삼성전자, 국민은행, 웅진코웨이 모두 시장점유율 1위 업체다. 삼성전자는 D램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국내 최고의 소매금융 영업기반을 바탕으로 여신과 수신에서 독과점적 위치를 차지한 상태다. 웅진코웨이는 정수기와 공기청정기에서 시장점유율 1위, 이 분야 브랜드 파워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시장 독과점 기업은 가치주 후보 1순위다. 국내 최대 종합 유선통신 서비스 업체 KT, 국내 담배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담배인삼공사, 수입 LPG가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SK가스와 LG가스, 국내 최대의 무선통신 서비스 업체 SK텔레콤, 국내 철강시장의 60%를 점유한 포스코는 어김없이 가치주 목록에 들었다. 고려아연은 세계 아연 생산량 1위, 콘크리트와 시멘트를 생산하는 금강고려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화인텍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LNG저장탱크와 수송선의 초저온 보냉재를 생산한다.
독과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면, 그것도 ‘미인’ 반열에 든다.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기아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독보적 존재이니 당연히 거래처도 안정적이다. 더구나 99년 현대, 기아차로부터 알짜배기 사업인 AS부품 판매부문을 양도받아 수익성이 대폭 향상됐다.
99년 KT에서 사내벤처 1호로 분사한 한통데이타는 올해의 신규 코스닥 등록주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 이 업체는 전세계에서 5개뿐인 GIS(지리정보시스템) 엔진 보유업체 중 하나다. KT와 연고, 세계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통데이타는 영업 시작 3년 만에 국내 시장의 30%를 차지하게 됐다.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자인 태경산업, 대기업 모토로라와 장기적 제휴 관계를 맺은 팬택, 현대와 제너럴모터스(GM) 등 국내외 대형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라공조 역시 안정적 시장을 확보해둔 상태다.
파워 브랜드형
독과점 기업, 점유율 1위 기업이 가치주 1순위로 꼽히는 이유는 시장 지배력 때문이다. 한번 구축해놓은 독과점 체제는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고객들은 습관과 취향을 잘 바꾸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독과점 기업은 경쟁업체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수익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다. 독과점이 유지되는 동안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독과점 기업이란 이유로 욕 먹는 기업이 투자자한테는 사랑받을 만한 기업인 셈이다.
시장을 독과점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은 브랜드 파워가 높다. 시장 독점치고 브랜드 파워가 막강하지 않은 기업이 없을 정도다. 삼성전자 애니콜, SK텔레콤 TTL과 UTO, 농심 새우깡과 신라면, 웅진코웨이 코디, 동양제과 초코파이는 어느 경쟁사보다 막강한 브랜드 인지도를 자랑한다.
소비자가 상표만 보고 골라드는 브랜드들은 불특정 다수를 매출 기반으로 삼기 때문에 부품 등 납품업체처럼 변덕 많은 대기업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약간 값을 올리더라도 이미 인이 박힌 소비자는 소비행태를 바꾸지 않는다. 당연히 수익은 늘어난다.
따라서 파워 브랜드를 가진 기업은 투자가치가 높다. 국민 한 명당 한 해에 15병을 마신다는 드링크제 ‘박카스F’를 생산하는 동아제약, 여성속옷 브랜드 ‘비너스’를 둔 신영와코루, 여성복 ‘타임’과 ‘마인’을 보유한 타임아이엔씨는 브랜드 가치로 보나 기업 실적으로 보나 손색이 없다.
저PER·저PBR형
동아제약, 신영와코루, 타임아이엔씨의 주가도 아직 싼 편이다. 지난해 연말 결산 기준으로 동아제약, 신영와코루, 타임아이엔씨의 주가순익비율(PER)은 각각 5.3배, 5.06배, 8.45배다. 주가순익비율은 주가가 한 주당 순이익보다 몇배 큰가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10보다 작으면 통상 저평가 상태로 일컫는다. 세 기업 모두 수익에 비해 주가가 낮은 셈이다. 쏘렌토, 카렌스 등 신차 출시로 매출이 부쩍 는 기아차 역시 지난해 수익만으로 봐도 주가순익비율이 7.1 수준으로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
오뚜기, 두산, 호텔신라, 현대산업, INI스틸, LG마이크론은 수익보다는 자산가치나 매출액에 비해 주가가 낮은 종목이다. 특히 오뚜기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지난해 결산 기준으로 0.53배, 주가매출액비율(PSR)은 0.11배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지표가 1.5배 이하인 종목은 나중에라도 시장이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PBR만으로 보면 두산이 0.55, 호텔신라가 0.65, 현대산업이 0.59, INI스틸이 0.53, LG마이크론이 0.85다. 한편 수입 LPG 과점업체인 LG가스와 SK가스는 수익, 자산, 매출액 세가지 모두 저평가 상태다.
재무구조 우량형
자산 저평가주 중엔 우량 자산이 돋보이는 기업이 몇몇 있다. 코리안리, 디피아이, 동일방직이다.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1조원이 넘는 운영자산을 자랑한다. 코리안리는 여기서 안정적으로 투자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건축용 도료생산업체 디피아이는 부동산, 건물 등 5621억원에 이르는 자산과 16개 계열사를 통해 매출 이외의 가욋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면방적업체 동일방직의 주당순자산은 11만원에 달한다. 자산가치에 비해 주가는 매우 싸다. PBR가 0.27배밖에 되지 않는다. 이 회사는 안양공장 장기 임대로 임대소득을 올리는 한편 라꼬스테, 아놀드파마 같은 유명 브랜드를 가진 우수 계열사를 통해 142억원에 이르는 지분법 평가익을 얻고 있다. 이 정도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재무구조도 좋다. 동일방직의 차입금은 2000년 이래 꾸준히 줄어 올해 금융비용 부담률은 3%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보유자산을 처분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한 덕분이다.
두산, 대우종합기계, 율촌화학 또한 재무구조가 우량하다. 투자전략가들이 가장 모범적인 구조조정 기업으로 꼽는 두산은 지난해 과거의 부실을 거의 다 없앴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매출액영업이익률이 10%로 올라갈 전망이다. 율촌화학은 현금 흐름이 좋기로 손꼽힌다.
중장비와 정밀기계를 생산하는 대우종합기계는 대우중공업에서 분리돼 워크아웃을 거치면서 수익성이 크게 높아졌다. 주력시장인 중장비, 방위산업 시장도 호전됐다. 중장비, 정밀기계쪽은 올해 들어 내수를 비롯해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이 상당히 커졌다. 하반기부터는 방위산업쪽도 매출이 늘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내수 우량형
하반기에도 내수가 경제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내수 우량주는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다. LG화학은 석유화학 경기 호전의 최대 수혜주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잘 분산돼 있어 다른 유화업체에 비해 성장성과 안정성이 우수하다. 이 업체는 최근 꾸준히 주가가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자전략가들의 단골 추천 메뉴다.
그것은 LG홈쇼핑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순익에 비해 주가가 이미 23.73배나 올랐지만 투자전략가들은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홈쇼핑 가시청 가구 수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진율이 높은 상품을 많이 파는 현대백화점은 아직 저평가 상태가 크게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경기호전의 여파는 기성세대, 상류층에서 신세대, 중하류층으로 번져나간다. 푸부, 라피도 등 캐주얼 브랜드를 둔 제일모직은 젊은층의 소비 증가로 매출 비중의 43%를 차지하는 패션부문이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가전제품 포장재로 쓰이는 화학부문도 장기 성장의 한축으로 거론된다.
KTF는 가입자 중 10~20대 비중이 높다. 그래서 무선인터넷 등 데이터 서비스 사업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적개선 추이는 국내 통신 서비스 회사 가운데 가장 양호하다.
텔레메틱스 신규사업 진입에 성공한 알에프텍, 무선인터넷 솔루션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옴니텔, 이벤트성 보험시장의 증가로 재보험 수요가 늘어난 코리안리도 쑥쑥 크는 시장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가치주라도 아무 때나 사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행 주가가 6만4천원으로 급등했는데 언론과 증권사가 추천한다고 덥석 사서 들고 있는 것은 영리하지 못한 투자전략이다. '한국형 가치투자'의 지은이 최준철, 김민국씨는 “좋은 가치를 가진 기업을 발굴해 가치 이하로 거래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투자의 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그때 그때 싼 기업을 찾기보다는 탁월한 기업을 눈여겨봤다가 간단한 외부 악재가 터지길 기다려 사들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러시아 외환위기나 미국 뉴욕 테러사태가 그랬듯, 미국 기업의 회계부정 사태는 되레 한국의 가치투자자한테는 호재가 될 수 있다. 구두굽 갈며 뛰어다녀볼 만하지 않겠는가.
의외였다. 시가총액 2600억원짜리 중소형주 웅진코웨이는 여러 대형주, 우량주들을 물리치고 삼성전자, 국민은행과 함께 가치주 베스트 3에 올랐다.
가치주 추천 설문조사에서 투자전략가들은 웅진코웨이가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강력한 유통채널을 갖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웅진코웨이는 판매대수 기준으로 국내 정수기 시장의 53.6%를 차지하고 있다. 코웨이 정수기는 다른 회사 제품보다 약간 비싸 금액으로 치면 시장점유율은 55%까지 높아진다.
시장 전망도 좋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정수기 시장은 안정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정수기 시장은 2000년 1조500억원 규모에서 2001년 1조2800억원으로 21%나 성장했다. 올해엔 1조540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웅진코웨이는 정수기 시장이 앞으로도 2004년까지는 연 15% 이상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벌써 새로운 성장점도 찾았다. 공기청정기 시장이다. 투자전략가들은 웅진코웨이 공기청정기 사업이 기존 정수기 사업의 약점을 보강해줄 것이라고 평가한다. 공기청정기 렌털 사업을 시작한 지난해 말, 웅진코웨이 공기청정기 판매는 전년 대비 432% 증가한 39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7%로 늘었다.
삼성증권 정순호 연구원은 “공기청정기의 계절성이 정수기와 달라 수익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수기는 날씨가 더울 때 잘 팔리는 반면 공기청정기는 겨울과 봄에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최근 그는 이 회사 시장의 성장성이 높아지고 점유율도 좋아졌다면서 올해 주당순이익(EPS) 예상치를 종전보다 228원 많은 1198원으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웅진코웨이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각각 43%, 55% 증가해 매출액은 1110억원, 영업이익은 143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이다. 웅진코웨이는 “이런 추세라면 올해 목표로 정한 매출액 2200억원, 영업이익 385억원, 경상이익 244억원을 초과 달성할 것”이라고 자랑한다.
투자대상으로서 웅진코웨이의 또 다른 장점은 높은 배당수익률이다. 이 회사는 2000년에 22%, 2001년에 25%를 배당했다. 이 회사 배승엽 사장은 “사상 최대의 경영 실적을 기대하는 올해에도 높은 배당률을 통해 ‘이익의 주주 환원’을 실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웅진코웨이의 기반인 렌털 시장에 경쟁사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JM글로벌, 청호의 판매법인 등 다른 경쟁사들도 렌털 사업에 의욕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들엔 웅진코웨이 출신 경영진이 포진해 있어 맨파워로 승부하는 판매, 렌털 시장에 일대 격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웅진코웨이는 그다지 크게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다. 배 사장은 “우리는 경쟁사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우위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렌털 사업은 초기 구축비용이 많이 들어가므로, 사업을 유지하고 확장하려면 무엇보다 인프라와 조직 네트워크가 확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선 웅진코웨이가 판매법인인 웅진코웨이개발과 합병하면 고정비 절감, 판매 시너지 등 여러가지 효과를 내 주가상승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은근히 커진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배 사장은 “현재로서는 어떤 결정도 내린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합병 여부와 관계 없이 웅진코웨이는 그 자체로 이미 시장의 주목을 받는 가치주로 떠올랐다. 올해 4월 이후 웅진코웨이는 종합주가지수보다 적게는 150%, 많게는 200%나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가치 있는 기업은 상승 모멘텀을 내재하고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