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공경의 지혜
신5:16,잠10:1
성문교회 /문성준목사
[예화] 저수지를 끼고 지어진 그림 같은 집에 둥지를 튼 부부가 한 살 터울의 아들 형제
를 낳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원수같이 싸우는 겁니다. 처음
엔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아이들이니까 으레 그러려니' 했었답니다. 사실 형제간에는 어려
서 악이 받치며 싸웠던 만큼 커서는 오히려 더 정이 두터워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도가 지나도 한참 지나는 것입니다. 싸워도 상처가 심하게 남도록 싸워야 직성
들이 풀리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어리니까 그렇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다독이
며 키워왔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열 세 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두 녀석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녀오
다가 시비가 붙은 것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저수지 둑길을 접어들었습니다. 그런
데 아무래도 힘이 뒤지는 작은 녀석이 고집으로 달려들다가 도리어 형에게 밀려서 자전거가
중심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전거는 저수지로 곤두박질치고 아이는 나가 떨어져 다리
를 다친 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둑 위에는 불상사를 대비해 구명 튜브를 매단 밧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만 던져 주
면 동생은 무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녀석이 허우적대며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하는 동생과 그 밧줄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동생을 외면하고 그냥 자전거 페달을 밟은 것입
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나무를 패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의 둘째 아들이 저수
지에서 빠져 죽어가고 있어요. 아마 추측으론 지금쯤은 거반 죽었을 거예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쏜살같이 둑을 향해 달음질을 해서 물을 잔뜩 먹어 거반 죽은 아이를 건져내어 겨
우 살려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키우는 자식이 이랬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용서하고
들으십시오.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런 자식은 막 말로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자식'입니
다. 이건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묵과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의 말끝을 다시 들어 보십시오. 동생이 빠져 죽어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둘
째 아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빠의 아들은 돼도 내 동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아이가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알
아서 살리든지 죽이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꾸민 이야기이거나 드라마의 내용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
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전례로 봐서 뭐든지 미
국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우리에게로 곧 수입될 사실입니다.
옛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生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死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소멸하는 것과 같다.
뜬 구름이란 본래부터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니,
살고 죽는 것 역시 그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生'이라는 것, 곧 출생이란 사건은 부모로부터 일어나고 '
死'라고 하는 죽음의 사건도 보편적으로는 늙어 부모가 되어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
서 볼 때 우리 인생에서 부모님은 대단히 소중한 분들입니다.
여러분, 이 우주에는 각 존재의 질서를 위해 몇 가지 권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가 절대적인 권위입니다.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그분을
능가하는 권위는 없습니다. 모든 도덕적인 규범들도 그분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자연 법칙
도 하나님의 권위가 자연계에서 표현된 것일 뿐입니다.
둘째는 헌법의 통제를 받으며 민주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여론에서 비롯되는 권위가 있습니
다. 그걸 헌법상의 권위라고 합니다. 정부나 교육기관, 군(軍), 경찰과 소방당국,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공공기관 및 공무원과 대표자들이 권위를 갖게 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국민들이
그들의 손에 힘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위임된 권위는 더 큰 권위로부터 부여받은 권위를 말합니다. 경찰관이 범인을 체포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더 큰 힘을 가진 법과 권력자들로부터 그럴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입
니다. 신호등의 빨간 불 자체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빨간 불이 켜지면 멈추
어 서는 것은 그 신호가 우리 각자가 가진 권위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 대
해 부모가 가진 권위는 더욱 큰 권위, 우주의 최고 권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입
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어버이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부모 공경의 제 5계명이 사람에 대한 것이지만 모세가 받은 두 돌판에서는 첫째 판
에 속해 있어서 그것은 전체적으로 둘째 돌판에 기록된 사람에 대한 계명들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계명으로 인정받을 만큼 하나님의 대리자를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버이는 몇 가지의 이유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첫째로, 어버이는 자녀를 낳아 주신데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대리자를 말합니다. 동양사상 에도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하여 이를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어버이는 자녀를 길러주심에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의대리자로서 나타납니다. 부모는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모든 정성을 다 해서, 그리고 희생적으로 자녀를 기릅니다. 이 면에서는 순전히 본능으로만 사는 동물의 세계보다 현저히 드러나기에 그것이 창조주의 역사임을 알게 해 줍니다.
셋째로, 어버이는 자녀를 바로 기르기를 원하며 자녀가 잘못되면 저들을 징계하는데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리자가 됩니다. 사람이란 자신은 부족할지라도 자녀만은 완벽히 기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는 하나님의 삼권인 창조와 섭리와 심판의 권위를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그 러므로 사람은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배울 수 있고, 또 부모에게 효도함으로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한 마디로 '신앙'과 '효'는 상통하는 것입니다.
여러 부모님들, 오늘 모두 자녀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고 들어오셨는데요, 그 카네이션의 유래를 아십니까? 미국의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웹스터라는 곳에 '안나 자비스'라는 여인이 어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혼자가 된 그녀는 어머니 생존 시 좀 더 효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을 파티에 초대했을 때 그녀는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이 세상 사람들이 1년에 하루만이라도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면 좋겠다면서 10만 달러의 어머니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어머니날 제정을 국내외에 탄원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윌슨 대통령 취임 시, 미 의회에서 1914년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처음 정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사람들은 살아계신 어머니 가슴에는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 은덕을 기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서는 흰 카네이션을 자기 가슴에 달고 이 날을 기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두 꽃을 모두 달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녀로부터 받은 붉은 카
네이션과 저의 부모님을 생각해서 달아야 할 흰 카네이션을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효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여기 카네이션을 달고 부모님을 생
각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지만, 그러나 진정한 '효'는 살아 계신 부모님을 잘 모시고 공경해
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돌아가셨더라도 후회만 할 것이 아니라 깊이 뜻을 헤아리고
그분의 교훈을 마음에 두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
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우리는 자주 이걸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땅에서 복을 누리고 살려면 효도해야 한다'고 말
입니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게 '효'를 행하다 보면 그의 인격과 덕이 뛰어나
자연히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뜻이지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효'가 등장하는 것은 아닙
니다. 신앙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윤택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잘 믿는 다는 것보다 신앙
이 출중해지면 그로 인해 삶의 모든 면이 탁월해지므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
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물질로 봉양? 대화의 상대? 그 다
좋습니다. 분명히 '효'의 방법이긴 합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잠언서는 말씀합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
심이니라(잠 10:1)." 부모로 하여금 기쁨이 있고 근심이 없는 삶을 누리게 해드리는 것이 '
부모 공경'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뭡니까? 단 한 가지, 지혜입니다. 부모가 평생
을 살면서 깨우친 지혜입니다. 이걸 멸시하지 않고 지켜서 지혜로운 삶을 산다면 그처럼 '
효'가 없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이 스물한 살에 왕이 됩니다.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
에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절)"
이때 솔로몬은 그 유명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절)." 여기서 "지혜로운 마음"이란 원어 그대로 직역한
다면 '듣는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 아주 중요합니다. 그 '듣는 마음'이 지혜의 근본이요.
'듣는 마음'이 바로 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들어야 됩니다. '듣는 마음'이 있어야만 지
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 옳은 말이고 잘 되라고 하는 말이면 듣고 볼 일입니다. 하나
님 말씀은 물론이구요, 부모의 교훈도 그렇습니다. 부모가 누굽니까? 부모란 성서적으로 보
면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적어도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대표한 분입니다. 내 생명, 내
정신, 내 도덕성, 때로는 내 믿음의 뿌리가 다 그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로부터 물려받고 지
금 살아가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거역하는 죄가 가장 큰 죄요, 부모에게 효도하
는 것이 가장 큰 '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서 인간에게 향한 계명 중에 첫째가 부
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예화] 미국 필라델피아에 효심이 지극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의 가정은 매우 가난했
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가방에 물건을 가득 담아 상점에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소년은 어
머니의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종이쪽지로 가방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밑바닥이 네모난 '종이 쇼핑백'이 만들어졌습니다. 편리하고 가벼운 종이 쇼핑백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소년의 가족은 큰 부자가 됐습니다. 그때가 1887년, 그의 이름은 '찰스 스틸웰', 그는 '종이 쇼핑백'의 발명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다만 어머니를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 '효'의 마음으로 누리게 된 풍요입니다.
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아직도 나이가 많지 않은데 그만 술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아들 삼형제가 지켜 앉았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내 인생은 실패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너희들의 할아버지, 곧 내 아버지의 유언, 마지막 유언 한 마디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습니다. 그 유언이 뭐냐 하면, "술 먹지 말라!" 그겁니다. 그 할아버지가 술 먹다가 인생 망치면서 죽기 전에 딱 한마디, 아들에게 "술 먹지 말라!" 그랬는데 그 아들이 그 유언을 안 지켰단 말입니다. 부전자전으로 그도 술을 먹었습니다. 이제 죽어가면서 "나도 같은 유언을 하는데 너희들은 이 내 마지막 유언을 지켜다오." 딱 한 가지, "술 먹지 말라!" 그러고 돌아갔습니다.
아주 평범하고도 상식적인 얘기입니다마는, 이 한마디가 얼마나 값비싼 교훈입니까? 이제 나도 한 번 경험해 봐야겠다고 말하겠습 니까? 아니요. 경험과는 관계없습니다. 벌써 할아버지 아버지가 경험했고, 그리고 내게 주신 마지막 결론이요, 지혜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유언 하나만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라!"하는 것이요, 제가 겪어보니 공부는 할 때 해야 하는 것이더란 말입니다.
그때 하지 않으면 뭘 모르니까 세상에서 억울함을 당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살지 않으려면 "공부해라!" 그러는 것입니다. 이건 평생을 살아보고 하는
말이요, 지혜입니다.
"나는 잘 못 살았지만 너희는 복되게 살아야 한다." 이게 부모가 상습적으로 쉽게 내뱉는
말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섬겨라! 나는 하나님을 잘 못 섬겨서 힘든 연단의 생
을 살았지만 이제 너희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 그게 부모의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곧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어찌 그것이 듣기 싫겠습니까? "술 먹지 말라!", "공부하라!", "하나님
을 제일로 섬겨라!" 이건 그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요구되어도 불평할 것이 없는 가장 소중
한 교훈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컴퓨터의 도스와 윈도우를 아십니까? 어떤 분의 시???
도스는 검은 화면뿐이고 부모님도 늘 같은 차림이지만...
윈도는 멋진 배경화면을 쓸수 있고 난 최신 유행을 따른다.
도스는 한 번에 한 일 밖에 못하고 부모님도 한 번에 일 하나씩만 하라시지만...
윈도는 멀티테스킹이 가능하고 난 음악을 들으며 공부한다.
도스용 프로그램은 잘 나오지 않고 부모님도 변화를 잘 모르시지만...
윈도용 프로그램은 항상 업그레이드 되고 난 세상의 모든 변화를 즐기며 산다.
도스는 딱딱하고 사용하기 불편하고 부모님도 고집불통에 구식이지만...
윈도우는 마우스 하나로 다 쓸수 있고 난 개성이 있고 시대를 앞서간다.
모든가 윈도우 환경이며, 세상은 윈도우의 아름다움과 편리함을 찬양하지만.... 윈도우가 다
운되면 우리는 잊고 있었던 도스를 열고 다시 윈도우를 부팅시킨다. 그리고... 그 부팅이 끝
나면 도스는 다시 윈도우의 그늘 아래로 사라진다.
자녀 여러분, 자신이 화려한 윈도우라고 생각되십니까? 그러나 도스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윈도우 환경도 도스의 기반 위에서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뒤엔... 불
안정안 윈도우를 언제든 부팅해 줄 수 있는, 도와주고 나아가 살려줄 수 있는 도스가 또한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스가 없으면 윈도우도 끝납니다. 제 잘난 맛에 살고 있는
이 못난 자식들의 그 그늘에... 항상 어버이의 걱정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에 참 지혜
가 있습니다. 바로 그 '지혜'말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듣는 마음' 말입니다. 듣기 위해서는
부모를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잠언에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부모 여러분, 여러분 또한 여러분의 부모에게는 자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교훈과 지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러면 이제 자녀에게 무엇을 지혜로 교훈하시겠습니
까? 무엇보다도 여러분들부터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나서야
자녀들에게 "너희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효'입니다. 그것이 곧 '신앙'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효'와 '신앙'은 하
나입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