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1회 토론 도서는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이었습니다.
문학은 신의 부재를 섣불리 인간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또 대항할 수 없는 진리를 섣불리 세계라고 믿어 버리는 경우도 많으며, 눈물의 멎음일 뿐인 고요에서 사랑의 시작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수많은 과잉이 헤아릴 수 없는 문학 속에서 야기됩니다. 하여 저는 때때로 문학과 과잉을 분간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희의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카버를 만나기 전까지.
카버는 인간에 대해서만 쓰는 작가였습니다. 다만 그의 인간은 위의 언급된 과잉과 오해의 반대편에 자리합니다. 그는 단지 순수한 인간을 묘사할 뿐이죠. 상황 속의 인간도 아닌, 영웅으로써의 인간도 아닌, 괴로워하는 인간도 아닌, 그저 생물로써의 인간에 대해서 정밀하고 건조하게 피력할 뿐이었죠. 이렇게 배경이라는 지침이 사라진 인간에 대하여 토론을 하니 정말 다양한 논의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함의가 많은 책이기에 토론을 하면서 얘기들이 많이 분화되리란 예상은 있었습니다. 같은 뿌리를 공유하지만 다른 맛과 다른 모양을 지닌 과일 같은 의견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었죠. 그러나 토론에 진입하니 의견의 다양함은 제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땅을 공유할 뿐 모든 것이 제각기 다른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죠. 하여 제가 예상했던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제가 무심코 지나갔던 제재를 엄청난 함의를 가진 제재로 보신 분도 계셨습니다. 몇 번의 토론을 거치면서 토론 전의 제가 예상했던 경로를 벗어났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참으로 기분 좋은 황망함이었습니다.
이번 토론을 하며 제 정신의 한계가 넓어지는 것을 넘어서 한계 자체가 상실되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느낄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신 토론 맴버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신의 없음까지도 여러분을 지켜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