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얼른 나와봐, 미니가 사방팔방 토했어. 아, 어떡하지?”
이른 아침 먼저 거실로 나온 아빠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머나! 미니야, 속이 안 좋구나. 따뜻한 물 좀 마시고 병원 가보자. ” 민지 엄마가 놀라 나오니 미니는 미안하다는 듯이 맥없이 제 방에 엎드려 있다.
삼 년 전부터 토하기 시작해서 여러 가지 검사 끝에 췌장염 치료를 긴 시간 이어왔다. 몇 달마다 한 차례씩 고비를 넘기면서 약의 숫자는 늘어나고 몸은 조금씩 축나기 시작했다.
이즈음에는 밥맛이 없는지 죽으로 입에 떠넣어 줘도 식욕이 없다. 수많은 약을 먹기도 힘든 일이었을 거다. 가장 좋아하는 간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쉬를 하려고 제 방을 나오다 방석을 벗어나 옆으로 쓰러진다.
‘괜찮아, 그냥 쉬 해.’보는 민지 엄마는 너무 짠하다.
“강아지는 내가 다 키울거야. 응가도 다 치울거야.”
동생 낳아주면 자기가 다 키운다고 하는 아이들 말을 믿는 엄마들은 없다. 민지 동생 미니로 살면서 민지 엄마의 보살핌을 가장 많이 누리며 살고 있었다. 너무 가벼워졌다.
힘없이 한번 쳐다보고는 머리를 엄마 팔꿈치 안쪽으로 대고 뾰족한 턱을 기댄다. 약한 숨으로 가슴께가 간신히 들썩거린다.
명절이면 시골 큰집으로 친척, 식구들이 모인다. 둘째 큰아빠, 셋째 큰아빠, 작은아빠... 사촌 언니, 오빠, 당숙들... 서열도, 명칭도 혼란스럽고 잔치 손님들이 모인 듯하다. 애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어른들은 정치 얘기로 언성을 높이며 왁자하다.
“우리 민지, 유치원갈 때 되었지. 이건 큰엄마가 민지 이뻐서 주는 거야. ”하며 배춧잎 색깔을 주려한다.
“아이 형님 안돼요. 아직 어린데 좀...”민지 엄마가 말린다. 평소 돈으로 보상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엄마의 잔소리를 좀 알고 있던 민지가 엄마 뒤로 물러나서 다행이다 했다.
“어머 얘 좀 봐”영지 언니가 작게 소리친다.
민지는 엄마 뒤로 피하면서 손가락을 뻗친 채 팔을 내밀고 있는게 아닌가.
‘어머 얘가 벌써 돈을 좋아 하는구나. 걱정이네’
“큰엄마, 감사합니다 해야지.” 하며 민지 엄마는 민지 머리를 숙여 준다.
민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여름날 먼 지방에 사는 둘째 큰아빠네로 두루 인사차 여행 겸해서 들렀다. 둘째 큰아빠네는 여러 어린 강아지들이 마당에서 뛰놀며 자라고 있었다.
“ 엄마 나도 강아지 키우고 싶어. 너무 예쁘다.”
강아지에게 홀딱 반한 민지는 막무가내로 졸랐다.
“ 이쁘다고 키우는 거 아니야. 책임질 수 있어야 해.”민지 아빠가 나지막히 힘주어 말했다.
“ 아빠, 강아지 싫어해? 저렇게 예쁜데? ”
“ 냄새나고 지저분해. ”
“ 내가 다 키울거야. 청소도 하고.”
민지가 하도 울며불며 졸라 대니 보기에 딱했는지 둘째 큰아빠가 민지 아빠를 설득했다.
“애들 정서에도 좋으니 한번 키워봐. 정 힘들면 다시 데려오고.”
그렇게 꼬마 강아지 하나를 데려와 키웠다. 강아지들의 귀여움은 너무 치명적으로 예뻐서 한번 보면 떨쳐내기는 정말 힘들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집안에서 동물 키우는 것을 싫어하던 민지 아빠는 견디기 힘들어 했다.
“민지야, 아빠가 너무 힘들다. 온 집안에 냄새나고 털도 날리고, 여기저기 물어뜯고. 동물은 마당 있는 집에서 키워야 해. 다시 데려다주자. ”
“ 싫어. 훌쩍, 히잉 잉잉. ”민지는 큰 소리로 울었다.
“민지가 좀 더 크면 데려오자. 지금은 민지가 돌보기 힘들잖아.”
민지 엄마가 달래려고 말했지만 설득하진 못했다.
그렇게 얼마 후 다가온 명절에 둘째 큰아빠네로 다시 돌려보낸 강아지 일로 민지의 마음엔 큰 상처가 남았다.
생각해 보면 민지만큼이나 강아지의 상처도 있었으리라. 생명에 대한 무지에 엄마 아빠의 후회도 크다.
며칠 울면서 민지는 아빠가 미웠다.
‘내가 좋아하는 강아진데 아빠는 무조건 반대야. ’
둘째 큰 집은 멀기도 해서 명절에만 꼬마의 안부를 스치듯 나누었다.
바쁘게 시간은 흘러갔다.
‘사춘기라 그런가, 민지하고 얘기해 본지 뜸한 거 같네.’민지 아빠는 그런 생각이 든다.
터울이 큰 영지 언니는 학교 자율학습 등으로 늦게 귀가하고, 아이들과 민지 아빠의 대화는 더욱 뜸해졌다.
“민지야 아빠 오셨다.”
‘...’
제 방으로 쏙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른다. 어쩌다 아빠를 맞닥뜨리면 고개만 꾸벅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 애들 얼굴 보기 어렵네... ”
민지 방 쪽으로 쳐다보며 낙담한 민지 아빠의 말이다.
“그러게 맨날 야구만 보고, 낚시만 보니 애들이 거실에서 같이 볼 게 있어야지. ” 민지 엄마가 타박하듯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엄마도 민지 기분 맞추기 어렵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민지야, 통장이 왜 이래? 왜 이런 지출이 많은 거야?”
“이건 내 통장이에요. 내 돈이고.”
“물론 그렇지. 그래도 돈이란 함부로 쓰면 안되는거야.”
“내가 좋아하는 000 니까 쓸수 있죠.”민지는 000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그동안 군것질도 참으며 모은 용돈 통장에서 000을 지지하는 인기투표, 굿즈 등으로 많은 돈을 소비한 것이다.
“ 거 참 문제네, 언니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민지 아빠의 말이다.
“ 꼰대 같은 소리 말아요. 그런 비교 요즘 애들이 제일 싫어 하잖아.”민지 엄마가 항의한다.
언니 영지에 비해 몸도 약하고 터울도 커서, 많이 허용하고 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그것이 아닌 듯하다.
“ 민지가 어렸을 때 혼자서 얼마나 쓸쓸하게 컸어. 엄마, 아빠, 언니 다 늦게 오고. 지금도 사랑이 고픈 아이야.”
민지 엄마는 미안한 마음 안고 나지막히 말한다.
요즘 부쩍 뼈대가 커진 민지는 엄마가 껴안으려 하면 슬그머니 비틀어 빠져나간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다 잊은 것 같았다. 그러잖아도 나이 차이가 많은 고등학생 영지 언니는 공부하기 바쁘고, 엄마 아빠는 직장 생활로 바빠서 밤이나 되어야 민지를 볼 수가 있었다. 아니, 보기도 힘들었다. 제 방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애들이 돌봄이 필요한 어린 시절만 넘기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부모 대학도 필요해. ’ 민지 엄마의 고민만 깊어간다.
“여보, 둘째 형님네로 돌려보낸 미니를 다시 데려오면 어떨까”
“괜찮을까요? 좋아할 것 같기도 하지만. 판단이 어렵네.”
마음이 급한 민지 아빠는 작은 애를 위해서 피곤함을 무릎 쓰고 둘째 큰 아빠 네서 다른 강아지를 데려왔다. 많이 고민 했겠지만 순전히 민지 아빠 혼자의 결정이었다. 애들이 민지 동생이라 이름 지어준‘미니’는 지인에게 입양이 되어 가버렸다. 비슷한 다른 꼬마를 데려온 것이다.
“비슷하긴 한데 좀 달라. 눈이 순둥하니 좋지만 좀 덜 총총하고, 지난번 우리 미니는 둥근 코가 매력 포인트였는데.”
“무슨 소리야, 똑같잖아. 쌍둥이 같은데 뭘.”괜히 버럭한다.
“당신은 38도야? 왜 맨날 열내고 버럭버럭 해요!”민지 엄마도 덩달아 버럭한다.
“미니가 아니잖아. 이름도 내 동생으로 미니라고 했는데, 비기 싫어.”
학원 다녀온 민지가 싹둑 잘라 싫은 내색이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아이쿠야, 이를 어쩌나’
이 꼬마 강아지가 신통하게도 민지 아빠 오는 소리만 나면 제일 먼저 현관으로 달려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것이다.
“아, 야야, 오지마, 오지마.”그렇게 손사레치던 민지 아빠였다.
“미니가 아빠를 제일 반겨주네, 우리 미니! 너뿐이다. ”
시간이 갈수록 아빠를 반기는 강아지 미니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체온이 비슷한 아빠 품에 안겨 시간을 보내고, 달콤한 과일과 간식 등을 많이 얻어 비만이 되었다. 말려도 듣지 않는다.
저녁이면 미니는 아빠 무릎이 제 방석이다. TV를 보거나 무언가 도구들을 만지고 있는 아빠의 팔과 무릎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집안일을 하는 엄마의 움직임을 살핀다.
뒤늦게 민지네 엄마, 아빠는 사춘기 아이를 이해하려고 책도 읽고, 상담 공부도 하고 애썼다.
“아빠가 무슨 말이든 들을테니 하고 싶은 말 다 해봐. ”
‘...’
‘ 미니가 어디로 갔지?’민지 엄마가 여기저기 찾다가 민지 방문에 귀를 대보면 “오올치, 옳지”하고 작은 소리가 들린다. 짜근 언니가 방에 있는 기척을 어떻게 아는지 미니는 자꾸만 방문을 긁어대, 어느새 살그머니 열어준 문틈으로 민지 방에 들어간다. 민지는‘이제 그때랑은 다르다’는 듯 뚱한 듯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차츰 그렇게 미니와 시간을 보낸 것이다.
과한 간식으로 비만이던 미니가 병치레로 많이 수척해졌다.
“ 민지야, 미니 좀 봐 발레리노야! ” 어느 휴일날 뒷다리를 뒤로 들고 볼일을 보는 꼬마를 보고 영지가 박수치며 말했다.
“ 놀리지마, 언니.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렇잖아. 불쌍해.”
그때부터 미니는 발레리노가 되었다. 살포시 왼쪽 뒷다리를 뒤로 들어 올려 볼일을 해결했다. 호기로운 쩍벌남이, 기력이 빠지면서 발레 하듯이 뒤로 살그머니 들어 올리는 묘수를 쓰는 거다. 최근엔 급격히 병약하여 그것조차 할 수 없게 되자 조용히 서서 볼일을 해결했다. 그때 강아지 미니의 표정이 얼마나 난감해하는지 민지 엄마는 일부러 못 본 체하고는 했다.
“아 어떡할 거야? 사람 생각해야지! 병원비가 너무...”
“어떡하긴! 이쁠 때만 이뻐하면 안돼죠. ”
말은 그랬지만 사실 엄마의 비상금도 바닥이다.
민지 엄마 아빠의 옥신각신 다툼이 컸나?
모두들 나간 다음에 보니, 식탁 위에 민지의 통장과 쪽지가 놓여있다.
‘엄마, 이거 써요. 미니 치료비에 보태요.’
“어머 어머 얘가!”
어릴 때 만들어준 그 통장이다. 어릴 때 둘째 큰엄마가 준 용돈을 앞에선 거절하고 뒤로 손가락을 내밀고 받아서‘어린애가 돈을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하고 민지 엄마는 걱정을 했는데. 제법 큰 돈을 모은 통장이다.
“ 민지야, 트렁크도 있는데 아빠가 학교까지 태워 줄게. ”
“ 됐어요. ” 민지의 대답은 짧다.
“ 어여 출근하세요. 어른들 학교 오지 말랬대. 가까운데 뭐, 필요하면 내가.” 민지 엄마는 얼른 아빠의 등을 떠민다.
일주일 체험 학습하는 일본 홈스테이 프로그램이다. 지난 여름엔 일본 초등학생 어린이가 일주일 집에서 홈스테이하며 간단한 일본어로 대화하고 학교 생활, 관광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 민지야, 재밌게 잘 갔다와.”
민지 아빠가 민지 방 쪽으로 대고 크게 말한다. 엔화로 바꾼 용돈 봉투를 민지 방 쪽으로 가리키며 엄마에게 내민다. 민지 아빠는 눈을 끔뻑끔뻑하며 양쪽 입꼬리를 꾸욱 내린다. 밝은 목소리와 대조되는 표정이다. 이럴 때 민지 아빠는 다른 표현 방법이 어려워 용돈을 줄 뿐이다. 민지 엄마가 교육상 좋지 않다고 말려도 소용없다.
‘언제 화가 풀리려나... 휴우 ’엄마는 긴 한숨을 내 쉰다.
민지 아빠가 엄마 품에 안긴 미니의 머리를 쓰다듬고 현관문을 나서자 민지 엄마는 미니를 민지 방문 앞에 내려 놓는다. 미니는 민지 방문을 ‘사부작사부작’ 긁어댄다. 모른 척하고 민지 엄마는 부엌으로 간다. 잠시 후, 방 쪽을 보니 미니는 보이지 않는다.
‘둘이 송별식? 얼마나 다행이야, 미니가 있어서...’
민지가 나가는 인기척에 미니를 안고 따라 나간다.
“민지야 구경 많이 하고, 잘 갔다와.”
요즘 행동이 굼뜬 미니도 엄마 품에 안겨 엘리베이터 앞까지 갔다. 민지는
“불쌍해.”하면서 살그머니 미니의 머리만 쓰다듬는다.
저녁에 집에 온 민지 아빠는 핸드폰 문자 화면을 보여준다.
‘ 민지야, 일본 홈스테이 잘하고 와. 우리 집에 홈스테이한 일본 친구네 한테 안부도 전해주고, 사랑한다, 우리딸! ♡♡’
‘000’민지 답이 맹탕이다.
“민지한테 섭섭한 마음 참고 표현 해줘서 고마워요, 당신. ” 민지 엄마가 아빠를 달랜다.
“ 어떻게 할 수 없지. 우리 책임인데. ” 사실 민지 엄마는 나름대로 노력하는 민지 아빠가 고맙다.
‘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 아빠야. 아빠 마음 이해해라...’고 민지 엄마가 보낸 문자에
‘ 아빠는 어차피 답정너 ’라고 답 왔단 말은 하지 않았다.
기력이 떨어진 미니를 안고 민지 엄마는 옛날 생각을 한다.
‘아이들에게 이만큼도 못한 거 아닐까?’
미니 병치레를 하면서
‘어른신들 이렇게 간병 했으면 효부소리 들었겠네’?
미니도 제 방에서 잘 나오지 않고 집안이 적적하다. 일부러 잘 보지도 않는 TV 소리를 키워본다. 요즘 명퇴를 고민하는 민지 아빠는 시골살이 준비로 주말이면 먼 친척의 빈 집을 정리하고 텃밭에 여러 가지 꿈을 일군다.
‘띠디디딕’ 저녁 무렵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어머, 당신 내일 온다더니 빨리 왔네. 아까 통화할 때는 당분간 괜찮을 듯했어. 비틀거리며 쉬하다 쓰러지더니 입에 먹을 걸 대지를 않아, 기운이 없어. ”
“그러게 느낌이 안 좋아서. 오늘내일 어찌 될까 걱정이 돼서.”
아빠 도착 두어 시간 후, 미니는 기척이 없다. 가슴께가 천천히 약하게 움직인다. 아빠가 살며시 미니를 쓰다듬어 주었다.
“ 미니야 편히 가. 고맙다, 아빠 좋아해 줘서. 여보 우리 미니 이제 눈뜰 기운도 없나 봐, 숨이 약해. ”
아빠 목소리가 메인다.
“ 착한 미니, 좋은 곳에 갈 거야. 우리 나중에 만나자. ” 꼬마를 보듬어 안은 민지 엄마 눈에도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자율학습이 끝나지 않은 큰 애를 기다리기엔 너무 늦을 것 같다. 민지 엄마가 문자를 보냈다.
‘ 영지야, 우리 미니 조금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날씨도 생각보다 덥고, 너는 내일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 하니, 엄마 아빠만 장례를 치르고 오려 하는데... ’
‘어떡해! 엄마, 엄마, 늦게라도 같이 가요. 나 지금 준비하고 집에 갈게요. 민지도 없는데, 미니가 너무 슬프잖아.’
‘그래, 서두르지 마. 앞에 예약이 있어서 11시는 넘어야 한 대.’
사무실은 시내에 있지만 장례식장은 인근 도시 외곽에 있다. 제법 크고 아름다운 까페 같다. 한참 대기후 서류를 작성하고 장례지도사의 준비로 작은 추도식을 진행했다.
민지 엄마와 아빠는 자는 듯이 누운 미니를 쓰다듬으며
‘미니야, 아프지 말고 잘 지내. 나중에 같이 만나자’했다.
살이 빠져 케이지가 크다며 꼬마를 이불로 감싸 안고 온 영지는 콧물을 쿨쩍거린다.
추도식을 마치고 화장을 기다리는 복도에 무지개 다리가 떴다. 드넓은 들판에 많은 강아지들이 뛰어 다니고, 민지네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들과 무지개 다리를 올라가다가 식구들을 되돌아 보고 뛰어 오려고 한다.
‘ 미니야, 빨리 친구들하고 무지개다리 올라가야지. 왜 돌아오는 거야?’
‘ 엄마, 짜근 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짜근 언니 아직 안 왔어? ’
‘미안. 짜근 언니 지금 오는 중이야.’
커다랗게 벽면을 채운 그림 속의 강아지가 미니를 꼭 빼닮았다. 민지가 없는 이 자리가 엄마는 못내 아쉬움이 크다.
“아직 좀 더 있다가 말해요. 민지마음 아플텐데. ”
언니 영지가 민지를 걱정하는 말이다.
“ 그래 며칠 있다가 아빠가 문자 할게. 홈스테이 끝날 무렵에 해야지.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다.
“영지야, 어여 한숨 자고 학교 가야지. 방에 들어가.”
‘엄마 아빠, 민지가 보내온 선물 사진 보세요. 아빠 휴대용 면도기, 엄마는 도자기칼, 내 꺼는 예쁜 손지갑!’
이틀 후 언니가 늦은 밤 학교에서 보내온 사진이다.
아빠가 보낸 미니의 영정 사진과 안부 문자에 언니에게 답을 하다니.‘그래도 엄마 아빠 생각하면서 선물을 골랐을거야.’고 민지 엄마는 생각한다.
꼬마는 신음도 하지 않았다. 자는 듯이 편히 잘 갔는데, 풀지 못한 무언가로 민지 엄마의 마음은 텅 비어 허전하다. 병원 예약이 잡혀 있던 날 미니가 소리 없이 떠난 후 집안은 적막강산이다.
옛날 생각하며 엄마가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띠디디딕’ 현관 문소리가 나더니
“엄마 나 왔어.” 기운 없는 민지 목소리다. 일주일 예정의 학교 단체활동으로 일본 홈스테이를 마치고 돌아 왔다.
“민지야, 어서 와 고생했다. 힘들지. 우리 딸, 서재 방에 들어가서 미니 보자. ”
“나 혼자 볼래”
“그래 그래, 어여 들어가 봐”
‘미니야 미안해, 언니 늦게 와서. 같이 많이 못 놀아 줘서 미안해. 아 너무 불쌍해 흑흑...’
민지는 사진을 껴안고 조그마한 함을 쓰다듬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솟구친다.
민지는 오늘 밤 꼬마의 사진틀을 들고 언니 방으로 들어갔다.
도란도란 아이들의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지막하고 편안하다. 민지 방 온도를 체크 하고 나오던 아빠는 영지 방 앞을 지나오면서 새어 나오는 아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민지야, 너 아빠한테 너무 오래 삐져 있는 거 아냐?” 영지가 말했다.
“아, 몰라. 내 동생이라고 이름도 미니라고 했는데, 아빠가 너무 미웠어. 언니는 내가 갑자기 없어져도 괜찮아?” 민지가 말했다.
“ 말도 안돼지. 우리집 막둥이를. 네 맘 알 거 같아.”
민지 아빠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민지 어깨를 다독였다.
“민지야, 아빠가 정말 사과한다. 그때는 아빠가 동물에 대해서 너무 무식했어. 미니 덕분에 아빠도 많이 배웠어. 그리고 미니도 아빠 엄청 좋아했어.”
“아빠 미안해요, 흑. 미니 한테도 미안해요.”
“아니야, 아빠가 항상 미안했다. 아빠가 성격도 너무 급해서. 그리고 미니는 민지 네가 해준 옷 입고 편안하게 떠났어.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우리 마중 나온다잖아.”
“아 즘말, 또 눈물나. 이제 그만 뚝!”영지가 아빠와 민지 어깨를 껴안고 웃으며 콧물 쿨적 거린다.
민지 엄마와 아빠는 베란다에 나가 서로 기대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차가와진 바람결이 귓가에 느껴진다. 아스라하게 하늘 먼 저쪽에 별똥별이 지는 궤적을 함께 눈으로 따라간다.
‘ 미니가 큰 선물을 주고 갔구나. 우리 모두 나중에 함께 만나자.’
긴 간병에 지쳐 갈 즈음에 강아지 미니는 떠났다. 새털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자는 듯 숨이 잦아들더니 한순간 세상을 놓았다.
“ 여보 샤워실 문 좀 열어놔야지 왜 자꾸 닫아요. 습기 차게.”
“ 그러게 자꾸 깜빡하네, 미니가 들어 갈까봐. ”
“ 미니는 떠났어요. 멀리멀리... ”
아직까지도 투명망토를 입은 강아지 미니가 거실 여기저기를 스케이팅하듯 스치고 다닌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면 눈에 잡히진 않고 보일 듯 말 듯 많은 곡선을 겹쳐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