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이전의 글 "CCM의 끝은 어디인가?"에 대하여 바른믿음 모바일 홈페이지에 어떤 분이 남기신 질문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CCM이라는 단어에서 'Contemporary'라고 말한 것은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앙가주망'(engagement)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존주의적 앙가주망(engagement)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1) 이번 글에서 'Contemporary'를 말할 때에 중점을 둔 것은 '음란성'입니다. '현대적이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은 '그 현대적인 것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보아야 합니다.
'Contemporary', 곧 '동시대적'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그 시대의 '멘탈리티'가 있습니다. 또한 그 시대마다 가지는 특이한 '멘탈리티'가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자율성'을 지향합니다. 그 인본주의가 가지는 '멘탈리티'의 핵심키워드는,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이렇게 5가지입니다. 물론 저도 '의미와 통일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과 언약 안에 있는 '의미와 통일성' 입니다.
Shake It Up-Egyptian Dance. https://www.youtube.com/watch?v=AqNccQVd37w)
우리가 찬송을 한다고 할 때에,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이 5가지 핵심 키워드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필자가 이 번 글을 통해서 올린 자료들을 잘 보셔서 아시겠지만, 미국의 그 유명한 교회들이 행하고 있는 '할렘 쉐이크'(halem shake)는 '이집션 쉐이크'(egyptian shake)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음란성'이 있습니다. 기사 자료 하나를 참고해 보겠습니다
“18일(현지시각), 잉글랜드 프로축구 2부리그 챔피언십의 크리스탈 팰리스 FC 소속 치어리더들의 '무아지경 댄스'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 속 치어리더들은 섹시한 유니폼과 비키니 등을 입고 춤에 흠뻑 빠져있다. 치어리더들이 추는 춤은 '강남스타일'을 이어 유튜브를 강타한 '할렘 셰이크'라는 춤이다.
영상 속에서 단 한명을 제외한 치어리더들은 15초 동안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고치는 등 각자의 일에 집중한다. 그러나 15초 후, 열 두 명의 치어리더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아지경의 댄스삼매경에 빠진다. 15초 이후 이른바 '막춤 타임'에서 치어리더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섞어 놓은 듯한 춤을 춘다. 게다가 치어리더들이 입은 유니폼이 소녀시대의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의 무대의상과 비슷해 더욱 눈길을 끈다. 영상 속에서 치어리더들은 섹시한 차림으로 힘있게 팔을 흔들고, 말 춤을 추며 영상을 가로지른다. 치어리더들의 섹시하고 늘씬한 몸매가 더욱 돋보이는 장면이다.
영상에 등장한 '할렘 셰이크'는 한 명이 15초 동안 홀로 단순한 춤을 반복하다가 15초를 기점으로 모든 사람들이 무아지경의 '막춤'을 추는 춤이다 ...(중략) 1981년 뉴욕 할렘가에서 시작된 이 춤의 창시자는 미국 가수 알비(Al B. Sure!·45)다. 이 춤은 초창기에는 창시자의 이름을 딴 '알비'(Albee)라고 불렸으나 시간이 흐르며 '할렘 셰이크'란 이름으로 정착했다. '할렘 셰이크'를 추는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처럼 정신없이 몸을 흔든다. 춤의 창시자인 알비가 "알콜중독자의 춤"이라고 말했을 정도다.”2)
이 기사자료는 알비가 '이집션 쉐이크'에서 만들어 낸 '할렘 셰이크'가 실제로 음란한 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음란성'이 종교성과 관련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집션 쉐이크'(egyptian shake)가 무엇일까요? '이집션 쉐이크'는 단순한 춤(dance)이 아닙니다. 아래의 유투브 동영상을 보면, '이집션 쉐이크'는 이집트 종교 행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영상자료를 보면, 피라미드가 열리고 관에서 미이라가 나와서 부활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영생불사를 염원하는 이집트의 종교행사를 재현한 것입니다. 그 종교행사에 '이집션 쉐이크'가 중요한 '종교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형태의 '이집션 쉐이크'(egyptian shake)를 철저하게 금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출 34:15)
이 말씀에서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라고 했을 때, 이 음란은 가나안의 바알과 아세라 우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가나안의 바알과 아세라 종교에 왜 음란성이 등장할까요?
“가나안 및 수리아에서 섬겼던 남성 신으로 '주'(lord) 혹은 '소유자'라는 뜻이다. 땅의 생산력과 가축의 번식력을 주관하는 신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초기부터 바알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BC 14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라스 샴라(Ras Shamra)에서 발견된 문서는 '바알 사이클'(baal cycle)로 알려진 가나안의 신들에 대한 여러 개의 신화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가나안의 주된 신인 엘(el)이 바알로 점차 대치되는 것을 보여준다. 비와 풍요의 신으로서 바알은 팔레스타인의 농경적인 환경에서 배우 중요한 신이었다 ... (중략) 신화에서 바알은 피를 좋아하고 매우 성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바알숭배에서 성애는 바알의 아내(성경 시대에서는 아세라 또는 아스다롯으로 불려졌던)와 결합하는 신을 자극하기 위해서 행해졌고, 또한 그것을 통해 땅에 비와 풍요를 가져온다고 여겼다. 성경은 바알 종교의 타락된 요소로 의식적인 매춘행위를 들고 있다(삿 2:17; 암 2:7-8).”3)
이와 같은 바알과 아세라 종교는 근본적으로 종교적 열심으로 신을 조작하여 인간의 풍요를 누리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 된 욕망을 실현하려는 의도가 외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알과 아세라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가나안의 종교나 이집트의 종교의 멘탈리티는 여호와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고 죄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언약의 백성된 우리도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런 멘탈리티에 혼합이 되고 지배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거룩성이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왜 하나님께서는 거룩을 요구하실까요? 그것은 우리의 열심을 바쳐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욕망을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룩성은 언약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책임지시고 저 마지막 영광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시는 분이시므로 생명을 바쳐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은 다만 종교성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합하는 예배와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본성적으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 앞에 나아가는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옛 언약 하에서는 여호와 앞에 나아갈 때 자기 죄를 대신하여 속제죄를 드린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구속받아 그의 의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새 언약의 성도들은 더욱 거룩하게 나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Contemporary'에 침몰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더욱 거룩하게 예배하기 위하여 더 많이 기도하며 하나님께 합당한 찬송을 올려드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일에 헌신하는 신실한 음악가들이 더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 각주 ---
1) 네이버 지식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앙가주망 [engagement]: 원래 계약 ·구속의 뜻인데, 정치나 사회문제에 자진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내가 어떤 목적을 향한 구체적 투기(投企)에 있어 나의 자기성(自己性)을 살[生] 때의 존재방식이 앙가주망이며, 이 경우 내가 대자존재(對自存在)이기 때문에, ‘자기구속’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근원적으로 자유인 인간은 그가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온갖 어려움에 부딪치고 주위로부터 저항을 받거니와, 이러한 저항에 의해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출현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항하는 세계 속에서 구속된 것으로서 밖에는 자유로운 대자(對自)는 존재하지 않고, 이 구속을 별도로 하고서는 자유의 관념은 그 의미를 잃는다는 역설에서야말로 앙가주망의 존재방식을 엿볼 수 있다. 앙가주망이 ‘주관―나’가 아니라 ‘대상―나’, 즉 ‘보는 나’가 아니라 ‘보이는 나’에 적용될 때 자기구속은 하락하여 구속상태, 꼼짝달싹 못할 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를테면 ‘빚을 져서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다’라는 표현처럼, 앙가주망이 ‘사회참여’라는 뜻으로 쓰일 경우에는 인간이 미래를 향하여 자기를 구속하는 상태를 말한다. 2) http://news.tf.co.kr/read/life/1145014.htm/ 할렘 셰이크도 강남스타일?(2013.02.21) 3) http://bible.c3tv.com/bible/dic/dic_view.asp? Page=1&Word01=%B9%D9%BE%CB&Word02=&OrAnd=and&GWord=&MenuCd=4&BiDicCd=4202 바알(baal)
정태홍 목사는 가조제일교회에서 시무하고 있으며 RPTMINISTRIES의 대표이다. 성경적 상담학을 연구하며 가르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성경적 치유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저서로는「내적치유의 허구성」,「내적치유와 내면아이」,「내적치유와 구상화」,「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상·하」,「'시내산 약과 도약」,「성경적 치유」」(교재)가 있다. 자신의 신학사상을 전파하는 웹싸이트(http://www.esesang91.com)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언제나 성경적 상담과 치유 사역을 위해 힘쓰는 목회자이다. 최근 출간한「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상·하」는 인문학과 현대 멘탈리티를 분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는 웨민 소교리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매우 효과적으로 변증하는 크게 쓰여지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