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위)1961년 캠퍼스 사진. 왼쪽 아래 T자 건물이 과학관이며 그 앞에 목조로 지은 3개의 이학부 실험실이 보인다. 오른쪽부터 생물학과, 물리학과, 화학과 실험실이었다. (오른쪽 가운데)대학원 시절 실험실에서 연구 중인 김우갑 교수. (오른쪽 아래)실험실 앞에 선 생물학과 교수와 학생들. 목조교사의 처마와 창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14] 김우갑
모교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1953년은 모교 자연계 학문 연구와 교육이 시작된 해다. 이 해에 수물학과, 화학과, 생물학과 3개 학과를 신설해 문과대학을 문리과대학으로 개편했으며, 농학과와 임학과 2개 학과의 농림대학을 설립했다. 수물학과는 1954년 수학과와 물리학과로 분리했다.
김우갑(생물53) 생명과학부 명예교수는 생물학과 1회 입학생이다. 1957년 졸업과 함께 대학원에 들어가 1959년 생물학과 대학원 1회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가톨릭의대 교수를 거쳐 1964년 모교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1973년 모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본관 임시 채집실서 뱀 탈출하기도
“고려대 대구 임시교사 시절 입학했어요. 당시 유진오 총장은 미국에 있고 이종우 부총장이 학교 일을 맡았어요. 교토대학 철학과 출신인 이종우 선생은 종합대학이 되려면 문리대 체제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생물과는 의과대 설립을 위해서도 필요했지요.”
김우갑 명예교수는 이종우 부총장이 문리대 체제를 만들면서 모교에서 자연과학 연구가 시작되고 종합대학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교양과목을 주로 들었던 대구 시절엔 군복을 입은 교수와 학생도 많았다. 그해 8월 서울로 돌아왔지만 안암동 교사는 미 공군이 주둔해 계동 중앙중고에서 수업을 들었다.
“중앙중고 강당을 송판으로 나눠 수업을 했어요. 옆 강의실 소리가 섞여 수업이 제대로 안 됐어요.”
고려대 건물이 보고 싶어 친구와 함께 산성을 따라 올라갔다가 군인의 의심을 받아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1954년 마침내 안암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물학과 학생 전원은 교수들과 함께 광릉 등으로 채집을 다녔다.
“본관 꼭대기, 추녀 밑에 다락방이 있는 거 모르죠? 거길 채집물 표본실로 썼어요. 임시로 채집통을 만들어 보관했는데 한번은 뱀이 탈출해 1층 총장실까지 가는 소동이 있었지요.”
1955년 김상협 사무처장과 조복성 이학부장이 이학부 실험실을 만들었다. 현재 민주광장 자리에 생물학과, 물리학과, 화학과의 실험실 3개가 목조로 만들어졌다. 그 앞엔 연못도 있었다. 지금 보면 열악한 환경이지만 김 교수는 이 공간에서 연구자로 성장했다. 특히 그는 현미경을 잘 다뤘다고 한다. 1960년 과학관(현 교양관)이 세워졌다. 1층 물리학과, 2층 화학과, 3층을 생물학과와 수학과가 사용했다. 1964년 모교 교수로 부임한 김 교수의 첫 연구실도 이 건물 3층이었다.
학생처장·이과대학장·부총장 역임
과학관에 있던 4개 학과는 1968년 애기능캠퍼스 이공대건물로 이전한다. 1957년 당초 의과대 설립을 목표로 착공한 이 건물은 1964년 5월 완공 후 교양학부와 공학부가 사용했다. 1968년 이후 본격적으로 애기능은 자연계캠퍼스로서 제 역할을 하게 된다. 김우갑 교수는 1983년 과학도서관 초대 관장, 1989년 이과대학장, 1992년 기초과학지원센터 서울분소가 모교에 설치될 때 초대 소장을 맡았다. 1980년엔 자연계 교수로는 처음 학생처장을 맡았으며, 1986년 교무처장, 1994년 부총장을 역임했다. 1999년 정년퇴임했다. 그가 들려주는 개인사 곳곳에 학교 역사 이야기가 들어있다.
가톨릭의대 전임강사 시절, 그곳 책상과 비품에 ‘고대’라고 쓴 창호지가 붙어있는 걸 봤다. 모교와 가톨릭의대가 합병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흔적이었다고. 신군부의 5공화국 집권기에 학생처장을 맡았다. 4.18기념일을 맞아 학생들이 수유리까지 행진을 할 때 경찰 에스코트를 요청했다가 정보부에서 찾는다는 소식에 한동안 피신을 했다. 1965년 개교 60주년 기념으로 교우회가 세운 정문이 부총장 시절인 1995년 세종캠퍼스로 옮겨가는 것도 봤다.
“어떻게 옮길지 회의를 하는데 내가 헬리콥터로 들어 옮기면 안 되냐고 했어요. 나중에 관리처 직원이 와서 화학약품으로 시멘트를 녹여 해체해서 옮기면 된다고 하더군요.”
부총장 시절 또 하나의 기억은 1994년 이용익, 손병희 선생 흉상을 건물 밖으로 내놓은 일이다. 1959년 인촌 동상과 함께 만든 두 분의 흉상은 그때까지 각각 대학원도서관과 서관 안에 있었다. 홍일식(국문55) 총장은 취임 직후 두 분의 흉상을 모두가 볼 수 있게 건물 외부로 옮겼다.
“이용익, 손병희 선생 흉상을 건물 밖으로 내놓기로 한 날, 그 이야기를 듣고 당시 김상협 명예총장이 오셔서 서관 현관 기둥에서 직접 당신 발로 몇 걸음 재서 손병희 선생 흉상이 놓일 위치를 정하셨어요.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용익 선생 흉상을 대학원도서관 앞으로 옮겨 놓았어요.”
김우갑 교수는 이학부실험실 사진 등을 모교 박물관에 기증했다.
전용호(국문86) 모교 박물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