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신앙
김정대
어느 신학자가 말했다: “신학은 사람들의 신앙하는 삶의 방식과 태도에 영향을 준다.”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완전하지 못한 이 세상의 모든 사고체계가 그러하듯이 이런 전제에도 항상 예외라는 것은 존재함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얼마전 어느 글에서 재림교인들의 부류를 다음과 같이 나눈 것을 보았다 – 역사적 재림교인들, 보주주의 재림교인들, 진보적 재림교인들, 자유주의적 재림교인들.
비교적 어느정도 공감이 가는 (신학적인 입장에 기준한) 포괄적 분류이기는 하나, 그런데 나에게는 이 그룹들 어디에도 편안하게 귀속될 수가 없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한 때는 내가 어느 그룹에 속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여러가지로 경험을 하며 생각이란걸 한번 심각하게 해본 후에는 이런 레벨은 나에게나 어느 누구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학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인위적 소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학생들에게 교육하여 신학도를 양성하고 그들에게 학위를 수여하며, 인간이 또 이 신학도들에게 목사나 대학의 교수 직위를 주어 거기서 다른 신학도들을 가르치고 양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태어 말하자면 신학이 신앙에 영향을 주기는 하나, 신학이 신앙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와 남을 살리는 구원받는 신앙(믿음)은 신학과 항상 같이 동행하지는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오래전 나와 신학적 입장이 다른 한 목회자가 그로 인해 나와 관계가 걸끄러워 질까 염려하기에, 신학은 구원과 상관없는 것이란 의도를 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이 재림교회라는 요상한 무리에 들어 온 후에 처음부터 접하게 된 것은 교회의 주류가 내가 전에는 잘 알지도 못했던 삼육출신이란 그룹이고, 그 후 삼육교육이란건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내 정체성은 어디 가든지 삼육출신인 “(내 아내 이름) 남편”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자기는 몇대째 재림교인이라는 “자랑”들을 자주 듣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목사들 사이에서도 비삼육출신들은 겉으로 나돌림을 당하는 듯한 현상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래전 부터 이 게시판에서 교리를 부정하고 실없는 소리들을 하고 비윤리적인 태도를 노출하는 사람들은,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이 몇대째 교인이라는 목사와 교사, 행정자들의 자녀들이었다. 이 좁은 바닥에서도 기득권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일 터인데, 이들이 무슨 계시를 받았는지 내가 힘들게 깨닫고 들어온 진리를 개쓰레기 취급을 하더라.
사실 따지고 보면, 교회에는 첫세대 교인밖에 없어야 한다. 내가 깨닫고 거듭나서 교인되는 것이지 부모, 조부모때문에 교인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진짜 그리스도 신앙은 집안이나 조상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내 구주요 주인으로 모시는 내 마음의 동기요 결정이고 그에 따른 지속되게 성장하는 삶이지 않겠는가?
따라서 속된 말로 내가 분류하고 싶은 재림교인들의 구분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데 (순종하는데) 진정성이 있는 넘인가 아닌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