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자봉 산행의 들머리였던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에 있는
망끝 전망대
망끝 전망대에 있는
보길도 관광 안내도
망끝 전망대에 있는
조망 경관 안내도
[망끝 전망대~망월봉] 구간
등산로 도중의
전망바위에서
뾰족산을 배경으로
이성수
[망끝 전망대~망월봉] 구간
등산로 도중의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뾰족산
[망끝 전망대~망월봉] 구간
등산로 도중의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망월봉
[망끝 전망대~망월봉] 구간
등산로 도중의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뾰족산
[망끝 전망대~망월봉] 구간
등산로 도중의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망월봉(좌)과 뾰족산(우)
[망끝 전망대~망월봉] 구간
산행로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갈도, 멍도, 넙도
망월봉(364m, 망뫼봉) 정상에서
뾰족산을 배경으로
이성수
망월봉(364m, 망뫼봉) 정상에서 바라본
뾰족산
망월봉(364m, 망뫼봉) 정상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갈도, 멍도, 넙도
망월봉(364m, 망뫼봉) 정상에서 바라본
뽀래기재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
망월봉(364m, 망뫼봉) 정상에서 바라본
보길도 최고봉인
격자봉(格紫峰, 433m)
[망월봉~뽀래기재] 구간
산행로에서 바라본
보길도 최고봉인
격자봉(格紫峰, 433m)
[망월봉~뽀래기재] 구간
산행로에서 바라본
격자봉의 남향 능선
[망월봉~뽀래기재] 구간
산행로에서 바라본
뾰족산
[망월봉~뽀래기재] 구간
산행로 주변의
버섯
뽀래기재에 있는
이정표
[뽀래기재~누룩바위] 구간
산행로 주변의
비비추 꽃
누룩바위에서
이성수
누룩바위
누룩바위에서 바라본
[누룩바위~망월봉] 연결 능선
누룩바위
보길도 최고봉인
격자봉(格紫峰, 433m)에서
이성수
보길도 최고봉인
격자봉(格紫峰, 433m)에 있는
이정표
보길도 최고봉인
격자봉(格紫峰, 433m)에 있는
전망대
[격자봉~수리봉] 구간
산행로에서 바라본
당사도
[격자봉~수리봉] 구간
산행로 주변의
콩짜개
수리봉(407m)에 있는
이정표
수리봉(407m)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소안도, 예작도, 당사도
[수리봉~큰길재] 구간
산행로에서 바라본
부용동
[수리봉~큰길재] 구간
산행로에서 바라본
부용동(좌)과 광대봉(우)
[수리봉~큰길재] 구간
산행로에서 바라본
광대봉(311m)과
그 우측에 보이는
소안도의 가학산
큰길재에 있는
이정표
큰길재에 있는
산행로 안내도
고산 윤선도 선생이 강의를 했던
서재와 그 앞의 일삼교
고산 윤선도 선생이 강의를 했던
서재에 관한
안내문
서재 앞의
일삼교에 관한
안내문
곡수당과
그 앞의 상연지
상연지에 관한
안내문
고산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거주했던 집인
곡수당
곡수당에 관한
안내문
하연지
하연지에 관한
안내문
하연지 근방의
코스모스
낙서재의 동쪽에 있는
동와
동와에 관한
안내문
전사청(좌)과 사당(우)
사당에 관한
안내문
전사청
전사청에 관한
안내문
고산 윤선도가 주거했던 집인
낙서재
낙서재에 관한
안내문
[반갑다! 문화재] (15)신선의 풍류런가...윤선도의 보길도
더리포트 기사 입력일 : 2022.05.09.
기자 신정일
서양에서는 사람들이 정원을 거닐지만, 중국에서는 정원이 사람 속을 거닌다고 보았다. 그런 연유로 옛날에 어떤 사람은 “꽃을 보러 정원으로 나가지 말라. 그럴 필요는 없다. 그대 몸 안에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라는 말을 남겼을 것이다. 우리 선현들 중 많은 사람이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정원을 만들고자 하였다. 화담 서경덕의 화담, 율곡 이이가 조성한 석담구곡 등인데, 나라 안에 조성된 대표적 정원이 완도군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가 조성한 세연정이다.
고산 윤선도가 완도의 보길도에 자리를 잡은 것은 병자호란 이후 임금이 청나라에 항복하자 세상이 환멸을 느껴서 제주도로 가는 길에 보길도를 발견하고 지은 정원으로 이곳에서 윤선도는 글을 쓰면서 풍류를 즐겼다.
부용동은 중국의 부용성이며/옛날 꿈꾸던 바 그곳 전경 얻었네./세인들은 신선이 산다는 선도 알지 못하고/다만 기화와 요초만을 찾고 있네.
<고산유고> 에 실린 시 한편인데, 그가 이 곳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았는 가를 알 수 있는 글들이 여러 편이 남아 전한다.
“고산은 낙서재에서 아침이면 닭울음 소리에 일어나 몸을 단정히 한 후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 후 네 바퀴 달린 수레를 타고 악공들을 거느리고 석실이나 세연정에 나가 자연과 벗하며 놀았다.”
세연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된 보길도는 조선 중기의 문장가이자 정치가인 윤선도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윤선도는 1587년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후사가 없었던 윤씨 종가에 입양된 윤선도는 특별한 스승 없이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웠다. 경사백가經史百家를 두루 읽었고 의약, 복서卜筮, 지리까지 광범위하게 공부한 그는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30세가 되던 해에 이이첨, 박승종, 유희분 등 당시 집권 세력의 죄상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반대파의 반격을 받아 함경도 경천으로 유배 길을 떠났으며, 1년 뒤에는 귀양지를 기장으로 옮겼다. 인조반정 이후 윤선도는 송시열과 함께 봉림대군, 인평대군의 사부로 임명되었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병자호란이 끝나면서부터였다. 해남에 있던 윤선도는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왕손을 비롯한 왕가 사람들은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는 소식에 배를 타고 강화도로 갔는데, 그때는 이미 강화도마저 함락된 뒤였다. 할 수 없이 배를 돌려 귀향하는 길에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실의에 찬 그에게 서인들로부터 ‘남한산성에서 임금이 고생하고 있을 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비난까지 빗발치듯 들려왔다. 그는 세상을 다시 보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제주도를 향해 떠났다.
그러나 풍랑이 거칠어 보길도에 오게 된 윤선도는 이 섬의 아름다운 경치와 아늑한 분위기에 매혹되어 제주행을 포기하고 기암절벽과 동백나무가 어우러진 보길도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정착한 곳 일대를 부용동芙蓉洞이라 하고, 정치 싸움에서 찌들고 멍든 마음을 이곳에서 풍류로써 달랬던 듯하다. 바위틈에서 솟는 물을 막아 연못(세연지)을 만들고 가운데에는 섬을 조성해 큰 바위와 소나무들을 옮겨놓았으며, 그 둘레에 정자를 세우고 세연정洗然亭이라 이름 지었다.
윤선도의 5대 손인 윤위가 보길도를 방문한 뒤 쓴 <보길도지>에 윤선도가 보길도의 세연정에서 지냈던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일기가 청화(淸和)하면 반드시 세연정으로 향하였다. 학관(고산의 서자)의 어머니는 오찬을 갖추어 그 뒤를 따랐다. 정자에 당도하면 자제들은 시립(侍立)하고 기희(妓姬)들이 모시는 가운데 못 중앙에 작은 배를 띄웠다. 그리고 남자아이에게 채색 옷을 입혀 배를 일렁이며 돌게 하고, 공이 지은 <어부사시사>등의 가사로 완만한 음절에 따라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당 위에서는 관현악을 연주하게 하였으며, 여러 명에게 동·서대에서 춤을 추게 하고, 또는 옥소암(玉簫岩)에서 춤을 추게도 하였다. 이렇게 너울너울 춤추는 것은 음절에 맞았거니와, 그 몸놀림을 못 속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서도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칠암(七岩, 세연지에 잠긴 바위들)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기도 하고, 동·서도(양쪽 연못 안에 있는 섬)에서 연밥을 따기도 하다가, 해가 저물어서야 무민당에 돌아왔다. 그 후에는 촛불을 밝히고 밤놀이를 하였다. 이러한 일과는 고산이 아프거나 걱정할 일이 없으면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하루도 음악이 없으면 성정을 수양하며 세간의 걱정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일지라도 감히 꿈꿀 수조차 없는 초호화 생활을 하며 지은 그의 작품에는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과 같은 민중의 애환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의 후손 중의 한 사람이 남긴 <가장유사家藏遺事>를 읽어보자.
고산은 낙서재에서 아침이면 닭 울음소리에 일어나 몸을 단정히 한 후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 후 네 바퀴 달린 수레를 타고 악공들을 거느리고 석실이나 세연정에 나가 자연과 벗하며 놀았다. 술과 안주를 충분히 싣고 고산은 그 뒤를 따르는 것이 관례였다. 세연정에 이르면 연못에 조그만 배를 띄워 아름다운 미희들을 줄지어 앉혀놓고 자신이 지은 <어부사시사>를 감상하였다. 때로는 정자 위로 악공들을 불러과 풍악을 울리게 하였다.
그는 낙서재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 기슭에 있는 동천석실을 자주 찾았는데, 이곳에 오르면 부용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수레엔 소동파의 시요./집에는 주문공의 글이다./어찌 육중문이 있으리오마는/뜰에는 샘이요. 대와 못이 갖춰 있네
<고산의 석실>이란 시를 남긴 윤선도는 주변의 산자락이 낙서재 터를 연꽃잎이 피어나듯 둘러서 있어 부용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천석실은 신선이 사는 곳을 동천복지라고 부르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다. 동천석실 근처의 반석에서 차를 달이면서 세월을 보낸 윤선도의 당시 풍경을 한 편 더 살펴보자.
공은 이곳을 몹시 사랑하여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하고서 그 위에 집을 짓고 수시로 찾아와 놀았다. 이곳에 앉으면 온 골짜기가 내려다보이고 격자봉과는 나란히 마주하게 되며, 낙서재 건물이 환하게 펼쳐진다. 대체로 사건이 있으면 무민당과 기(旗)를 들어 서로 호응하기도 하였다.
공은 때때로 암석을 더위잡고 산행하기도 했는데, 발걸음이 매우 경쾌하여 나이가 젊은 건각들도 따라가지 못하였다.
다도해의 한 가운데에 있는 부용동 정원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가 정원의 정취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이곳에서 윤선도는 <오우가>, <어부사시사>등 빼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그 후 몇 차례 벼슬자리에 나간 적이 있으나 금세 당파 싸움에 휘말려 그때마다 해남과 보길도에 와서 숨어 지냈는데, 그 기간이 19년이나 되었다. 그를 아끼던 효종이 죽자 윤선도는 효종의 무덤을 쓰는 문제와 조대비의 복상 문제를 두고 서인의 송시열 등과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함경남도 북쪽에 있는 삼수로 귀양을 갔다. 당시로는 유례가 없는 85세의 장수를 누렸던 윤선도였지만, 세 차례의 유배 기간이 20년을 넘었으니 그의 삶이 순탄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지만 지금도 그의 문학은 남아 후세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낙서재~주차장]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동천석실
[낙서재~주차장] 구간
탐방로에서
줌으로 확대촬영한
동천석실
[낙서재~주차장]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동천석실
[낙서재~주차장] 구간
탐방로에서 바라본
곡수당
부용동 원림(園林)에서 윤선도 발자취 느껴볼까
주간동아 기사 입력일 : 2012.07.02.
글·사진 양영훈
보길도는 넓이가 33km2, 해안선 길이가 41km쯤 된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완도 제일의 관광섬으로 손꼽혔다. 풍광이 빼어난 데다 고산 윤선도(1587~1671년)의 자취가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성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도 보길도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한 것도 그래서다.
고산은 51세 때인 조선 인조 15년(1637년)에 제주로 향하다 우연히 들른 보길도에 정착했다. 그는 85세를 일기로 부용동 낙서재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보길도의 부용동 일대에 세연정, 동천석실, 곡수당, 무민당, 정성암 등 모두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지었다. 고산이 죽은 뒤 윤선도 원림(園林)을 그의 서자와 후손들이 관리했으나 점차 황폐해졌다. 300여 년 동안이나 폐허처럼 방치했다가 1993년부터 세연정, 동천석실, 곡수당, 낙서재 등을 하나씩 복원했다. 현재 보길도의 윤선도 원림은 명승 제34호로 지정돼 있다.
보길도에서 하룻밤 묵기에는 예송리가 제격이다. 보길도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예송리는 울창한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40호)과 자잘한 깻돌해변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상록수림이 울창한 이 해변에 앉아 파도와 깻돌이 자아내는 해조음을 듣노라면 그 옛날 고산의 풍류가 부럽지 않다. 이곳 해변은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고, 겨울철에는 완도팔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만큼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여름철 피서지로 해송숲과 모래해변을 거느린 통리해수욕장과 중리해수욕장을 권할 만하다. 교통, 민박, 편의시설 등 여러 조건을 잘 갖춰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고 야영지로도 적합하다. 중리해수욕장을 지나 보길도 동쪽 끝까지 걸어가면, 제주로 귀양 가던 우암 송시열이 잠시 쉬면서 시 한 수를 지어 새겼다는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 다다른다. 말년에 떠나는 귀양길의 설움이 묻어나는 시도, 그 시가 새겨진 바위 앞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퍽 인상적이다.
예송리 정반대편에 위치한 보옥리 보족산 아래에도 아름다운 갯돌밭이 있다. 갯돌이 마치 공룡 알처럼 거대해 ‘공룡알 갯돌밭’이라고 부른다. 보옥리 가는 길에는 해질녘 온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감상하기에 좋은 망끝전망대가 있다.
1 세연정
고산이 조성한 윤선도 원림의 중심 건물이다. 고산은 여기서 ‘어부사시사’ ‘오우가’등의 작품을 남겼다. 현재 건물은 1992년 12월 복원한 것이다.
2 예송리해수욕장
예송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40호)에 둘러싸인 깻돌해변.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안성맞춤이며, 겨울철에는 완도팔경 중 하나인 만큼 해돋이 명소로 유명하다.
3 중리해수욕장
백사장 길이 1km, 너비 130m의 해변이다. ‘보길도해수욕장’이라고도 부른다. 바다로 200m쯤 들어가도 키가 넘지 않을 만큼 수심이 얕다.
4 통리해수욕장
백사장 길이가 700m, 평균 수심이 1.5m쯤 되는 해변이다. 백사장 뒤에는 울창한 곰솔숲과 야영장이 있다. 썰물 때는 앞바다에 자리한 목섬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다.
5 동천석실
고산이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칭송했던 곳으로 낙서재 건너편 산중턱에 있다. 커다란 바위들에 둘러싸인 손바닥만한 터에 한 칸짜리 작은 정자 두 채가 있다.
6 곡수당
고산이 기거했던 낙서재 아래의 ‘낭음계’라는 작은 시냇가에 자리한 건물이다. 무민당이 마주하며, 두 건물 옆에는 넓고 네모진 연못이 있다. 근래에 복원했다.
7 망끝전망대
보옥리와 정자리 사이 해안도로변에 있다. 보길도 서쪽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 감상 포인트다. 쾌청한 날에는 제주 추자도가 지척에 보인다.
8 송시열 글씐바위
보길도 동쪽 끝 해안절벽에 있다. 제주 유배길에 오른 송시열이 ‘여든 살의 늙은 몸이 거친 만 리 길을 가노라’로 시작하는 한시를 새겨놓았다고 한다.
9 공룡알해변
보길도 서남쪽 보옥리 바닷가에 위치한 몽돌해변. 크고 둥글둥글한 갯돌이 마치 공룡 알처럼 거대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여/행/정/보
맛집 : 청별선착장에 보길도의아침(해물된장찌개, 061-553-6722), 보리떡다섯개와물고기두마리(비빔밥·닭볶음탕, 061-552-9770), 바위섬횟집(전복죽, 061-555-5613), 청명회관(전복회, 061-552-8506), 쉼터가든(가오리탕, 061-553-6419), 현경참전복고기나라(전복갈비찜, 061-552-6866), 세연정횟집모텔(생선회, 061-553-6782) 등의 식당이 있다.
숙박 : 부용동정원 인근에 백록당민박(061-553-6321), 청기와민박(061-553-6303), 어부사시사민박(061-553-5019)이 있다. 중리해수욕장에서는 해그림펜션(061-553-6254), 솔밭펜션(061-552-2990) 등이 비교적 괜찮은 숙박업소다. 예송리에는 황토한옥펜션(061-553-6370), 선아네민박(061-553-6417), 별장민박(061-553-2747), 파도소리민박(061-553-6418)이 있다.
교/통/정/보
여객선 ●완도↔노화도 보길도 청별선착장으로 직접 가는 배는 없다. 완도(화흥포항)에서는 노화도의 동천항 가는 카페리호를 타야 한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소안농협(061-553-8188)의 청해진카페리1·3·5호가 일일 12회 왕복 운항한다. 동천항까지 35분 소요. 동천항과 보길도 청별선착장 사이는 배 시간에 맞춰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해남↔노화도 해남 땅끝선착장과 노화도의 산양항 사이에도 해광운수(061-533-4269)의 뉴장보고호와 해광훼리2호, 노화농협(땅끝매표소 061-535-4268)의 노화카훼리1·2호가 일일 14회 왕복 운항하며, 노화카훼리1·2호의 경우 섬주민 외 외지 관광객은 하계 피서철에만 이용 가능하다. 30분 소요. 보길도로 가는 셔틀버스는 없다.
●섬 내 교통 보길버스(061-553-7077) 2대가 보길도 해안도로 전역을 일일 5회 운행한다. 그리고 보길택시(061-553-8876) 소속의 영업용과 개인택시(061-553-6353, 6262) 등 택시 총 7대가 있다.
보길도 격자봉 산행지도
2022년08월26일(금요일) 심야 출발 2022년08월28일(일요일) 귀경
1무박3일 완도군 [보길도&노화도&소안도] 여행기
2022년08월26일(금요일)~ 2022년08월27일(토요일) 여행기
* 2022년08월26일(금요일) 24:00시~ 2022년08월27일(토요일) 04:43시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지하철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완도읍 가용리 1017-2 번지에 있는
완도항 방파제등대로 이동 (414km) [4시간43분 소요]
04:43~05:10 완도항 방파제등대 탐방 [27분 소요]
05:10~05:30 “좋은사람들“ 버스로 완도항 방파제등대를 출발하여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830-1 번지에 있는 화흥포항으로 이동
(10km) [20분 소요]
05:30~06:10 화흥포항에 있는 산들바람 휴게소에서
김밥 2개와 라면 1개로 아침식사 [식사 비용 : 9천원]
[2022년08월27일(토요일) 완도군 일출시각 : 6시2분]
06:10~06:46 화흥포항에서 노화도로 가는 여객선 승선 대기 (신분증 준비)
06:46~07:31 여객선을 타고 완도 화흥포항을 출발하여 노화도 동천항으로 이동
[여객선 운임 : 5,200원] [45분 소요]
07:31~07:32 “좋은사람들“에 승차
07:32~08:10 “좋은사람들“ 버스로
노화도 동천항에서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에 있는 보길도 망끝 전망대로 이동
[동천항~망끝 전망대 : 21km] [38분 소요)]
[노화도와 보길도는 보길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망끝 전망대는 낙조로 유명한 조망처다. 전망대 앞으로 갈도, 옥매도, 미역섬, 상도 등 작은 섬들이 떠 있다. 전망대의 남쪽에는 뾰족산이라고도 불리는 '보죽산'이 위치하고 있다.]
산 : 완도군 보길도 [ 망월봉 & 격자봉 & 수리봉 ]
산행코스 : [ 망끝 전망대-(1.1km)-망월봉(망뫼봉)-(1.3km)-뽀래기재-(2.5km)-누룩바위-
격자봉-수리봉-큰길재-곡수당- 낙서재- 낙서재 주차장 ] (약8km)
산행일 : 2022년08월27일(토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3시간43분 소요)
08:10~09:01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에 있는 망끝 전망대에서 탐방 출발하여
망월봉(364m, 망뫼봉)으로 이동
[망끝 전망대는 보옥리에서 북쪽으로 1.5km 지점, 해안도로가 지나는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지도상에서 보면 보길도의 서쪽 끝점이다. 갈도, 옥매도, 미역섬, 상도 등의 무인도가 지척에 있고 남쪽으로는 횡간도와 추자도가 또렷하게 조망된다. 이곳에는 파도를 상징하는 벤치 위에 영문으로 ‘BOGIL’을 조합한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일몰을 배경으로 벤치에 앉아 단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멋진 포토존이다.]
09:01~09:06 사진촬영
09:06~09:37 뽀래기재로 이동
09:37~10:10 누룩바위로 이동
10:10~10:14 사진촬영
10:14~10:21 보길도 최고봉인 격자봉(格紫峰, 430.3m) 정상으로 이동
10:21~10:25 물을 마시면서 휴식
10:25~10:45 수리봉(407m)으로 이동
10:45~11:14 큰길재로 이동
11:14~11:17 물을 마시면서 휴식
11:17~11:35 곡수당(曲水堂)으로 이동
[곡수당은 고산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거주했던 집이다.]
11:35~11:39 사진촬영
11:39~11:44 낙서재(樂書齋)로 이동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주거했던 집이다.]
11:44~11:47 사진촬영
11:47~11:53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411 번지에 있는 낙서재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산행 완료
11:53~12:30 휴식
12:30~12:35 “좋은사람들“ 버스로 낙서재 주차장을 출발하여
완도군 보길면 부황길 57 번지에 있는 세연정으로 이동 [5분 소요]
12:35~13:07 세연정 탐방 [입장요금 : 3천원] [32분 소요]
13:07~13:13 “좋은사람들“ 버스로 세연정을 출발하여
보길면 청별길 26 번지에 있는 “나무숲” 식당으로 이동 (1.5km)[6분 소요]
13:13~14:00 “나무숲” 식당에서 전복 해초 비빔밥으로 점심식사
[식사 비용 : 15,000원]
14:00~14:18 “좋은사람들“ 버스로
보길면 청별길 26 번지에 있는 “나무숲” 식당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보길면 중통리에 있는 보길도 송시열 글씐바위 입구로 이동
(7.5km) [18분 소요]
14:18~14:58 송시열 글씐바위 탐방 [40분 소요]
[보길도의 동쪽 끝 해안 절벽에는 송시열이 썼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윤선도가 스스로 보길도에 정착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면, 송시열은 제주도로 향하는 유배길에 풍랑을 만나 이곳에 머물렀다. 현재 글씨는 많이 훼손되어 형태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주변 백도리의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길도 여행에서 꼭 다녀와야 할 명소로 손꼽힌다.]
14:58~15:16 “좋은사람들“ 버스로 보길도 송시열 글씐바위 입구를 출발하여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으로 이동
(8.3km) [18분 소요]
15:16~15:40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샤워 후 짐 정리
탐방지 : 보길도 어부사시사 명상길 [ 예송리 해수욕장 & 예작도와 당사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
탐방코스 : [ 해돋이 펜션 ~ 예송리 해수욕장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호) ~
어부사시사 명상길 ~ 예작도와 당사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어부사시사 명상길 ~ 해돋이 펜션 ] (총 거리 : 7km)
탐방일 : 2022년08월27일(토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 소요시간 2시간15분 소요)
15:40~15:45 전남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에서
탐방 출발하여
예송리 해수욕장에 있는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호)으로 이동
[둥글납작한 갯돌이 1.4km나 펼쳐져 있는 예송리 갯돌해변은 오래 전부터 보길도 최고의 명소로 꼽혔다. 해변 둘레에는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겨울에는 방풍림 역할을 하는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호)이 펼쳐져 있어 더욱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예송리해변에서 불과 400m 건너편에는 예작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의 감탕나무 또한 수령 300년을 자랑하는 천연기념물이다. 추후 예송리와 예작도는 해상진입로로 이어질 예정이다.]
15:45~15:50 사진촬영
15:50~16:43 어부사시사 명상길을 따라서
예작도와 당사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이동
16:43~16:52 사진촬영 후 휴식
16:52~17:55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으로 원점회귀하여
탐방 완료
17:55~18:30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샤워 후 휴식
18:30~18:38 “좋은사람들“ 버스로 예송리 해수욕장 주차장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보길면 청별길 20 번지에 있는 “우리식당”으로 이동
(4.4km) [8분 소요]
18:38~20:00 전남 완도군 보길면 청별길 20 번지에 있는 “우리식당”에서
제육볶음(1인당 12,000원)을 안주로 하여 잎새주 2병(8,000원)을 음주
[식사 비용 : 20,000원]
20:00~20:08 사전에 Call한 택시로
완도군 보길면 청별길 20 번지에 있는 “우리식당”을 출발하여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으로 이동
(4.4km) [8분 소요] [택시 이용요금 : 10,000원]
20:08~22:00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샤워 후 룸메이트들과 담소
22:00~ 예송리 해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취침
2022년08월28일(일요일) 여행기
04:20~05:00 예송리 해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기상하여 샤워 후 짐 정리
05:00~05:39 해돋이 펜션에서 전복죽으로 아침식사
05:39~06:05 “좋은사람들“ 버스로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노화읍 노화로 16 번지에 있는 노화도 동천항으로 이동
(15km) [26분 소요]
[2022년08월28일(일요일) 완도군 일출시각 : 6시3분]
06:05~07:22 노화도 동천항에서 소안도로 가는 여객선 승선 준비
07:22~07:42 여객선을 타고 노화도 동천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소안면 이월리에 있는 소안도 소안항으로 이동
(3.2km) [20분 소요]
07:42~07:45 미리 대절한 마을 버스에 승차 [승차요금 : 1인당 1,500원]
07:45~07:58 미리 대절한 마을 버스를 타고 소안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소안면 진산리 산 358-8 번지에 있는 물치기미 쉼터로 이동
(7.1km) [13분 소요] [소안도에는 마을버스가 1대, 택시가 4대 있다.]
산 : 완도군 소안도 [ 가학산(駕鶴山) & 아부산(兒負山) ]
[소안도에서 가장 높은 가학산(駕鶴山·359m)은 학이 가마를 타는 듯한 형세라고 하여 이름 지어졌다.
가학산 정상은 일망무제, 동서남북 사방으로 막힘 없는 조망이 일품이다. 인근 보길도의 격자봉보다 풍광이 뛰어나다. 발아래 다도해는 장판을 깐 것처럼 고요하다. 그 위에 양식장 시설물들이 장판 무늬처럼 박혀 있다. 쳥명한 날에는 수평선 너머 제주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높이 135m의 아부산은 일출로 유명하다. 대봉산과 가학산 등반이 부담스럽다면 바다 전망이 뛰어나 소안 8경으로 꼽히는 아부산 탐방을 권한다. 아부산의 이름은 멀리서 바라보면 두 개의 바위가 아기를 업은 모습으로 겹쳐져 ‘아기 업은 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됐다.]
[소안도는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린다. 세 지역은 지속적이고 다양한 항일운동을 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안도에서는 평화적 시위와 무력 항쟁, 교육 운동과 노농 운동, 비밀결사와 법정투쟁, 섬 주민의 자발적인 학교 설립 등 일제강점기 내내 다양한 항일운동이 전개됐다.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을 비롯해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완도 본섬에서 한참 떨어진데다 인구가 6000여 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 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로도 항일운동의 성지가 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소안 항일운동기념관 전시관은 진(盡, 온 힘을 다하다) 인(人, 사람이 희망이다), 사(事, 행동하는 양심, 역사가 되다), 대(待, 힘을 모아 막아내다), 천(天, 하늘이 내린 천직을 받들다), 명(命, 힘을 보태 강해지다)을 테마로 항일운동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시관 중심에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된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의 디오라마가 있고, 천장은 다양한 태극기로 수놓았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 1920~1930년대 신문 지면을 장식한 소안도 기사, 독립운동가의 형사판결 원본 등 당시의 유물과 기록도 전시된다.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은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작점이다. 1909년 일본은 본국을 향해 먼 바다로 나가는 상선을 돕기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세웠다. 소안도 출신 동학군 이준화를 비롯한 5명은 일본 선박의 남해 항로를 방해하기 위해 거친 해안 절벽을 기어올라 일본인 등대원 4명을 죽이고, 등대를 파괴했다. 당사도등대가 생긴 지 불과 2개월 만이다. 당시 불빛을 밝히던 등명기를 파괴하려 했지만, 너무 단단해 바다에 빠뜨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등대 주변에는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항일전적비와 광복 후 파괴된 등대원추모비 일부가 역사의 증인처럼 오롯이 섰다.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도 같은 해 시작된다. 소안도는 왕실에 세금을 내는 궁납전이었는데, 1905년 친일 매국노 이기용이 토지를 사유화하자 소송을 벌였다. 일본과 조선 왕실을 상대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13년 법정투쟁 끝에 승리를 거뒀다. 소송 승리의 기쁨은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소안도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여 1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했다. 당시 소 한 마리 값이 70원인 점을 생각하면 꽤 큰 액수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립’을 강조하는 이유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 세웠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사립소안학교에는 일장기가 없었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항일 정신을 가르쳤다. 노화도를 비롯한 주변 섬뿐 아니라 해남과 제주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산행코스: [ 물치기미 쉼터-맹선재-해도정-가학산-학운정-잔디쉼터-해안도로-거북바위-
아부산 정상-소안 미라 펜션 ] (8km)
일시 : 2022년08월28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3시간35분 소요)
07:58~08:21 전남 완도군 소안면 진산리 산 358-8 번지에 있는 물치기미 쉼터에서 탐방 출발하여 맹선재로 이동
08:21~08:43 해도정으로 이동
08:43~09:30 소안도의 최고봉인 가학산(359m, 駕鶴山) 정상으로 이동
[학이 가마를 타는 듯한 형세라고 하여 駕鶴山으로 불리게 된
가학산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의 조망을 감상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소안도의 금성산과 그 너머로 완도 상왕봉(646m)이,
북동쪽으로는 소안도의 대봉산과 그 뒤로 완도군의 대모도와
그 너머로 완도군의 신지도가,
동쪽으로는 완도군의 청산도가, 동남쪽으로는 완도군의 여서도가,
남쪽으로는 제주시 추자면의 사수도와 그 너머로 제주도의 한라산이,
남서쪽으로는 제주시 추자면의 추자도가, 서쪽으로는 완도군의 보길도가,
북서쪽으로는 완도군의 노화도가 조망된다.]
[학령귀운(鶴嶺歸雲, 가학산 봉우리를 휘감아 도는 구름)은 소안팔경(所安八景) 중 제5경이다.]
<소안팔경(所安八景)>
1. 금성명월(錦城明月): 금성산에 뜨는 밝은 달.
2. 내동장천(內洞長川): 비자리 동네를 굽이쳐 흐르는 시내.
3. 귀하파성(龜河波聲): 과목 바닷가에 부딪혀 흩날리는 파도소리.
4. 이령목적(梨嶺牧笛): 배난골 고개의 목동이 부는 피리 소리.
5. 학령귀운(鶴嶺歸雲): 가학산 봉우리를 휘감아 도는 구름.
6. 미포어화(美浦漁火): 미라리 포구에서 보는 멸치잡이 배의 불.
7. 은곡창송(隱谷蒼松): 소진리와 부상리 깊은 골의 푸른 소나무 숲.
8. 백포귀범(白浦歸帆): 석양을 뒤로 하고 백도와 맹선 사이로 돌아오는 돛단배.
09:30~09:36 사진촬영
09:36~09:47 학운정으로 이동
09:47~10:42 아부산(兒負山) 거북바위로 이동
10:42~10:48 사진촬영
10:48~11:02 아부산(兒負山, 135m) 정상으로 이동
11:02~11:07 사진촬영
11:07~11:33 전남 완도군 소안면 소안로 567 번지에 있는 소안 미라 펜션으로
이동하여 소안도 탐방 완료
[미라 펜션은 2020년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소안도편에 멤버들의 숙소로 등장했던 펜션이다. 과거 미라리 학산 초등학교가 폐교된 자리에 세워졌다. 마을 기업에서 운영하는 미라 펜션은 원룸 7개와 투룸 3개로 이뤄져 있고 세미나실, 식당, 운동장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운동장을 벗어나면 바로 미라리 해수욕장과 연결되는 등 자연 입지가 뛰어나다.]
[미라리 해수욕장은 동글동글한 몽돌로 이뤄진 해변으로 길이가 약 1㎞에 달한다. 미라 8경 가운데 하나인 완도 미라리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339)에는 20여 종의 상록수가 뿌리를 내렸고, 앞 바다는 바다 낚시터로 인기가 높다. 상록수림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면 피로가 금새 달아난다. 소위 멍 때리며 힐링하기 좋은 장소다.]
<미라팔경(美羅八景)>
1. 학산귀운(鶴山歸雲): 봄비가 내린 뒤 가학산을 감싼 구름.
2. 대동장천(大洞長川): 가학산으로부터 마을로 흐르는 큰 시냇물.
3. 미포귀범(美浦歸帆): 미라리 포구로 만선의 깃발을 올리고 들어오는 돛단배.
4. 부아망월(負兒望月): 아부산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완상하는 것.
5. 전방가림(前坊嘉林): 미라리 마을 앞 상록수의 아름다운 숲.
6. 용담괴혈(龍潭怪穴): 아부산 절벽 이래 용이 머물던 동굴.
7. 강빈어화(綱濱漁火): 조강마루에서 바라보는 어선의 불빛.
8. 오산낙조(烏山落照): 오산의 저녁노을.
11:33~11:55 휴식
11:55~12:02 미리 대절한 마을 버스를 타고
전남 완도군 소안면 소안로 567 번지에 있는 소안 미라 펜션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소안면 비자2길 23번지에 있는 “청포도 식당”으로 이동
(3.8km) [7분 소요]
[마을버스 요금 : 1인당 1,500원]
12:02~12:52 “청포도 식당”에서
민어탕 정식(1인당 12,000원)에 잎새주 1병(4천원)을 반주로 하여 점심식사
[식사 비용 : 16,000원]
12:52~13:01 휴식
탐방지 : 완도군 소안도 [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 & 사립 소안학교 작은도서관 & 바다 위에 떠 있는 태극기 ]
탐방코스 : [ 청포도 식당 ~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 ~ 사립 소안학교 작은도서관 ~
바다 위에 떠 있는 태극기 ~ 소안항 ] (총 거리 : 6km)
탐방일 : 2022년08월28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 소요시간 1시간41분 소요)
13:01~13:16 전남 완도군 소안면 비자2길 23번지에 있는 “청포도 식당”에서
탐방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소안면 가학리 263 번지에 있는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으로 이동
[소안 항일운동기념관은 소안도 출신의 애국선열들과 항일 투쟁의 역사를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2003년에 건립됐다. 일제강점기 독립 유공자들의 얼굴 조각을 전시해 추모하고 있으며, 항일 운동 관련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소안도는 독립유공자 19명을 비롯하여 57명의 애국지사를 배출한 항일운동의 섬이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 신문 기사 등 당시의 유물도 전시돼 있다.]
13:16~13:31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과 사립 소안학교 작은도서관을 관람
[독립운동가 20명을 포함해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완도 소안도는 항일의 땅, 해방의 섬이다. 소안도가 항일의 땅이라 불리게 된 본격적인 투쟁은 토지반환소송에서 시작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일제는 조선 왕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소안면민들이 경작해오던 토지를 사도세자 5대손인 이기용에게 자작(子爵)이란 작위와 함께 소유권을 이전한다. 당시 이기용은 수조권만 갖고 있었고, 경작권은 주민에게 있었다. 소안도 토지의 소유권 이전은, 주민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에, 소안도 면민들은 최성태 등 4명의 면민 대표를 뽑아 토지소유권 반환 소송을 벌인다. 13년간의 법정 투쟁 결과 1921년 2월, 소안도 6천여 면민이 승소한다. 당시 조선일보는 5월 17일자에 "소안은 집요한 토지계쟁사건에 귀가 익은 곳이다. 13년 동안 다투어 얻은 토지는 이미 민유지로 해결됐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소송에서 이긴 주민들은 이 일을 기념하여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운다. 소안도에는 1913년 설립된 소안 중화학원이 있었다. 소안도 면민들은 토지를 지켜내자 그 기념으로 중화학원을 정식 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한 자금 1만 454원을 모금하였는데, 지금 가치로는 1억이 훨씬 넘는 금액이다. 따라서 사립 소안학교에는 '배움만이 살길이고, 항일의 길'이라는 소안면민들의 열망이 묻어 있다. 사립 소안학교가 다른 사립학교와는 다른 특별한 이유다.
사립 소안학교는 일제의 통제하에 있는 공립학교와는 달리 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위해, 한국의 역사와 국어를 중심으로 독립군가, 독립가, 청년가 등의 노래를 가르쳤다. 일제의 축제일에 휴교하지 않고 일본 국기도 게양하지 않았으며 일본의 국상(國喪) 기간에도 상장(喪章)을 붙이지 않았다. 사립 소안학교는 일제에게 눈엣가시였다. 이에 일제는 1927년 5월 사립 소안학교를 강제 폐쇄했다.
이에 소안면민은 거세게 항거했다. 당시 중외일보는 '군수와 시장이 출동하여 돌연 학교 폐쇄(중외일보 5월 16일자)', '호별 방문하여 의견 청취 결과 소안교 폐지 반대 절대다수(중외일보 6월 15일자)'. '사립 소안학교 복교동맹 조직, 동맹원 700여 명(중외일보 7월 6일자)' 등의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그러나 1927년 11월 배달청년회 사건으로 소안도의 민족운동가들이 대량 구속되면서, 사립 소안학교 복교 운동은 좌절되고 만다.
지금의 사립소안학교(항일의 정신적 산실이며 현재는 도서관으로 활용 중이다)는 2005년 주민들의 기금으로 복원한 것이다.]
13:31~13:57 왔던 길을 걸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태극기”로 이동
13:57~14:06 사진촬영 후 휴식
14:06~14:42 방파제로 형성된 호수 위에 지은 정자를 방문한 후 소안항으로 이동
14:42~15:00 소안도에서 화흥포항으로 가는 여객선 승선 준비 (신분증 준비)
15:00~16:01 여객선을 타고 소안도 소안항에서 완도 화흥포항으로 이동
(16km) [여객선 운임 : 6,200원] [1시간1분 소요]
16:01~16:09 “좋은사람들“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 대기
16:09~16:15 “좋은사람들“ 버스로 완도 화흥포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구계등길 48 번지에 있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정도리 탐방지원센터로 이동 (3.9km) [6분 소요]
16:15~16:23 국립공원 스탬프투어 인증
16:23~22:00 “좋은사람들“ 버스로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구계등길 48번지에 있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정도리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귀경 (434km) [5시간37분 소요]
[노화도&보길도&소안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