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암각시문
탐방로 입구에 있는
이정표
송시열 암각시문
탐방로 입구에 있는
보길도 관광 안내도
송시열 암각시문을
재현해 놓은
시비
송시열 암각시문에 관한
안내문
송시열 암각시문
[천지매거진] 고산 윤선도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
천지일보 기사 승인일 : 2013-01-04
김지윤 기자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Ⅰ ‘보길도 송시열 글씐바위’
‘어부사시사’ ‘오우가’로 이름을 떨친 고산 윤선도. 하지만 그는 우암 송시열과 함께 당대 최고의 정치가였다. 남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는 선비의 절개를 올곧이 지키며 정치적 신념을 잃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3차례 20여 년간 귀양살이를 하게 되는데…. 동시에 실학사상이 대두되기 전부터 그는 실용학문을 익히고 직접 현실세계에 접목하면서 혁신가로서의 면모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전남 완도 보길도와 진도 굴포마을의 간척지다. 이제 우리는 문학인 고산 윤선도가 아닌 정치가이자 혁신가인 고산 윤선도의 정신세계에 들어가 보자.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보길도엔 세연정, 세연지, 낙서재 등 고산 윤선도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았다. 그런데 고산과 숙명적으로 대립관계였던 서인의 영수 우암 송시열의 손길이 남아있어 방문객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알고 보았더니 1689년 여든을 넘긴 우암은 제주도로 귀양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머물렀단다. 이곳에 머물며 임금에 대한 서운함과 늙은이의 처지를 한탄하는 마음을 시로 바위에 새겨놓았단다. 지금은 그 글씨들이 점점 세월에 묻혀 눈에 잘 띄진 않지만, 탁본의 흔적으로 그 위치를 알 수 있다.
꼭 우암의 마음을 대변하듯, 바닷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그래도 편편한 바위에 올라선 노구는 한편으론 든든하지 않았을까 한다. 비록 보길도가 영원한 라이벌 고산의 영역이지만, 대가는 대가를 알아보듯 우암은 고산을, 고산은 우암을 서로 신뢰했다. 내로라하는 의원들도 우암의 병을 고치지 못했을 때 고산의 약을 먹고 나았던 우암. 그래서인지 글씐바위엔 고산을 뜻하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八十三歲翁滄波萬里中 팔십삼세옹창파만리중
一言胡大罪三黜亦云窮 일언호대죄삼출역운궁
北構空瞻日南溟但信風 북구골첨일남명단신풍
貂裘舊恩在感激泣孤衷 초구구은재감격읍고충
여든 셋 늙은 몸이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구나
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 세 번이나 쫓겨난 이도 또한 힘들었을 것인데
대궐에 계신 님을 부질없이 우러르며 다만 남녘 바다의 훈풍만 믿을 수밖에
담비 갖옷 내리신 옛 은혜에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남인 윤선도-서인 송시열, 생사 넘나든 '악연과 필연'
전남일보 기사 게재일 : 2017-06-28
박재완 <남도마실길 대표>
남도 마실길 나들이 - 윤선도의 발자취 보길도
고산-우암, 대표적인 성리학자
박해ㆍ견제 속 치열한 정권 쟁탈
전남도 '남도명품 100선 탐방'
지난 17일 전남 명품 100선 탐방 남도 마실길 나들이가 완도 보길도를 찾았다. '남도마실길' 세번째 주제인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 완도 보길도를 찾아서'라는 행사였다.
이른 아침부터 광주에서 서둘러 완도로 재촉했다. 보길도를 가기 위해선 예정된 뱃시간 전에 도착해 차량 탑승 순서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서둘러 출발했어도 예정된 뱃시간을 놓쳐버렸다. 탐방단 인원이 60 여명이나 되서 탑승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보길도를 가고 싶다는 서울과 대전에서 연락을 준 이들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타 시도 탐방객을 위한 우선 좌석배정을 고민해야 할 숙제가 생긴다. 이번 행사로 운송수단도 더불어 추가 되면서, 늘어난 경비 걱정이 앞선다. 이런저런 걱정 속에 프로그램을 진행해줄 이대석 선생이 화흥 포구에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줬다.
완도 보길도로 가는 길은 2곳에서 배편이 있다. 완도읍 정도리 화흥포와 해남 땅끝에서 가는 방법이다.
"보길도"하면 우선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가 떠오른다, 학창시절에 교과서에 삽입 되여 시험문제로 단골 문제로 몇 번은 고민 대목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보길도 여행에서 악연과 필연의 존재를 동시에 만났다.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와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살아생전에는 주거니 받거니 악연 속에 남인이 정권을 잡으면 서인이 박해를, 또 어느 때는 왕이 견제 세력으로 이용하기도 하며, 서인이 정권을 잡으면 남인이 핍박을 당하면서, 고산은 무려 3번 귀양으로 19년을 살아가며, 그의 나이 81세까지 귀양살이를 한다.
그들은 남인과 서인에 거두이며 대표적인 성리학자들이다. 그 시대에 80이 넘도록 건강하게 천수를 하였으나 고산은 85세에, 우암은 제주 귀양살이 하다가 한양으로 국문을 받기 위해 불려가는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는데 그때가 83세였다,
고산과 우암을 보길도가 태풍의 힘을 빌려, 그들을 인연의 자락으로 끌어 드렸다.
1636년(인조14년) 50세 되던 해 12월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해남에서 변란 소식을 듣고 고산은 고향사람들과 집안의 젊은이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하고 배 한 척을 마련하여 급히 강화도로 향한다.
그러나 이미 강화도는 함락된 뒤였다. 고산에게는 아무런 힘없는 선비에 불과해, 피난하는 백성과 선비들이 말하기를 "임금의 수레가 적의 포위를 뚫고 동쪽으로 나와서 영남으로 향하고 있다." 하여, 고산은 남으로 돌아가면 조정과 연통하는 곳이 있을 것 같아 뱃머리를 남쪽으로 향한다.
배가 해남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고산은 연통을 받는다. 왕이 삼전도에서 청나라에게 치욕적인 화의를 맺고 한양으로 되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산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평생을 숨어 살기로 작정하고 제주도로 향하는데 항해 중 심한 풍랑으로 제주를 가지 못하고 보길도(甫吉島) 대풍(待風)구미에서 머무르게 됐다. 산수가 수려하고 천석이 절승함에 감탄하고 정착해 이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명명하고 격자봉 곁에 집을 지어 낙서재(樂書齊)라는 편액을 걸고 경서(經書)를 강의하며 후진을 가르치면서 자연에 몰입하는 운둔생활을 시작한 것이 인연의 시작 이였다.
우암 송시열 역시 병자호란으로 왕이 치욕을 당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잡혀가자, 좌절감 속에서 낙향하여 10여 년 간 일체의 벼슬을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만 몰두하였으나 임금의 부름에 관직을 맞는다.
그러나 효종(1659)이 급서하자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 문제를 둘러싸고, 제1차 예송(禮訟)의 소용돌이 당파싸움에 그에 시련의 시발점이 되었다가, 그도 결국은 1689년 1월 숙의 장씨가 아들(후일의 경종)을 낳자 원자(元子)의 호칭 문제로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축출될 때, 그는 세자 책봉에 반대 상소를 올린다. 이것이 숙종의 미움을 받게 되고, 우암은 제주도 유배 길에 태풍을 만나 잠시 보길도 머문다,
이것이 자연이 엮은 인연이었으나, 그는 이미 18년 전에 죽고 없는 고산의 흔적을 찾지 않는다.
윤선도는 조선중기에 호남이 낳은 문신ㆍ시조 작가이며, 경사서 제자백가(經史書 諸子百家)에 통달하여 천문, 지리, 의약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 금서(禁書)였던 '소학(小學)'을 보고 감명을 받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18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20세에 승보시(陞補試)에 1등 했으며 향시와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했다.
그에 강직한 성격은 29살에 당시 최고의 실세인 이이첨ㆍ박승종ㆍ유희분 등을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규탄하는 '병진소(丙辰疏)'를 올려,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시작으로 그에 파란 만장한 삶의 시작이었다.
50살에 보길도의 자연에 반하여 어부사시가 등의 주옥같은 글을 쓰며 세연정과 동천석실을 짓고 살다가 85세에 천수를 다하며 낙서재에서 눈을 감는다.
고산의 사후 2년 후부터 보길도에서 그에 흔적이 점점 사라진다, 당파의 후속타 일까? 아니면 자연 재해로 사라진 것 일까, 필자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서
이성수
송시열 글씐바위
[ 위 사진부터 이어지는 7장의 사진은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
360도 파노라마 조망하면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보길도, 노화도, 구도대교, 구도, 소안도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서 바라본
소안도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서 바라본
소안도의 최고봉인
가학산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소안도, 당사도, 보길도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당사도, 보길도, 송시열 글씐바위
송시열 글씐바위
[ 이상으로 파노라마 조망 끝 ! ]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서
줌으로 확대촬영한
노화도와 구도를 연결하는
구도대교(좌)와
완도의 상왕봉(우)
송시열 글씐바위 앞에서 줌으로 확대촬영한
구도대교와
그 뒤로 보이는 해남의 두륜산
2022년08월26일(금요일) 심야 출발 2022년08월28일(일요일) 귀경
1무박3일 완도군 [보길도&노화도&소안도] 여행기
2022년08월26일(금요일)~ 2022년08월27일(토요일) 여행기
* 2022년08월26일(금요일) 24:00시~ 2022년08월27일(토요일) 04:43시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지하철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완도읍 가용리 1017-2 번지에 있는
완도항 방파제등대로 이동 (414km) [4시간43분 소요]
04:43~05:10 완도항 방파제등대 탐방 [27분 소요]
05:10~05:30 “좋은사람들“ 버스로 완도항 방파제등대를 출발하여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830-1 번지에 있는 화흥포항으로 이동
(10km) [20분 소요]
05:30~06:10 화흥포항에 있는 산들바람 휴게소에서
김밥 2개와 라면 1개로 아침식사 [식사 비용 : 9천원]
[2022년08월27일(토요일) 완도군 일출시각 : 6시2분]
06:10~06:46 화흥포항에서 노화도로 가는 여객선 승선 대기 (신분증 준비)
06:46~07:31 여객선을 타고 완도 화흥포항을 출발하여 노화도 동천항으로 이동
[여객선 운임 : 5,200원] [45분 소요]
07:31~07:32 “좋은사람들“에 승차
07:32~08:10 “좋은사람들“ 버스로
노화도 동천항에서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에 있는 보길도 망끝 전망대로 이동
[동천항~망끝 전망대 : 21km] [38분 소요)]
[노화도와 보길도는 보길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망끝 전망대는 낙조로 유명한 조망처다. 전망대 앞으로 갈도, 옥매도, 미역섬, 상도 등 작은 섬들이 떠 있다. 전망대의 남쪽에는 뾰족산이라고도 불리는 '보죽산'이 위치하고 있다.]
산 : 완도군 보길도 [ 망월봉 & 격자봉 & 수리봉 ]
산행코스 : [ 망끝 전망대-(1.1km)-망월봉(망뫼봉)-(1.3km)-뽀래기재-(2.5km)-누룩바위-
격자봉-수리봉-큰길재-곡수당- 낙서재- 낙서재 주차장 ] (약8km)
산행일 : 2022년08월27일(토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3시간43분 소요)
08:10~09:01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에 있는 망끝 전망대에서 탐방 출발하여
망월봉(364m, 망뫼봉)으로 이동
[망끝 전망대는 보옥리에서 북쪽으로 1.5km 지점, 해안도로가 지나는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지도상에서 보면 보길도의 서쪽 끝점이다. 갈도, 옥매도, 미역섬, 상도 등의 무인도가 지척에 있고 남쪽으로는 횡간도와 추자도가 또렷하게 조망된다. 이곳에는 파도를 상징하는 벤치 위에 영문으로 ‘BOGIL’을 조합한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일몰을 배경으로 벤치에 앉아 단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멋진 포토존이다.]
09:01~09:06 사진촬영
09:06~09:37 뽀래기재로 이동
09:37~10:10 누룩바위로 이동
10:10~10:14 사진촬영
10:14~10:21 보길도 최고봉인 격자봉(格紫峰, 430.3m) 정상으로 이동
10:21~10:25 물을 마시면서 휴식
10:25~10:45 수리봉(407m)으로 이동
10:45~11:14 큰길재로 이동
11:14~11:17 물을 마시면서 휴식
11:17~11:35 곡수당(曲水堂)으로 이동
[곡수당은 고산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거주했던 집이다.]
11:35~11:39 사진촬영
11:39~11:44 낙서재(樂書齋)로 이동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주거했던 집이다.]
11:44~11:47 사진촬영
11:47~11:53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411 번지에 있는 낙서재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산행 완료
11:53~12:30 휴식
12:30~12:35 “좋은사람들“ 버스로 낙서재 주차장을 출발하여
완도군 보길면 부황길 57 번지에 있는 세연정으로 이동 [5분 소요]
12:35~13:07 세연정 탐방 [입장요금 : 3천원] [32분 소요]
13:07~13:13 “좋은사람들“ 버스로 세연정을 출발하여
보길면 청별길 26 번지에 있는 “나무숲” 식당으로 이동 (1.5km)[6분 소요]
13:13~14:00 “나무숲” 식당에서 전복 해초 비빔밥으로 점심식사
[식사 비용 : 15,000원]
14:00~14:18 “좋은사람들“ 버스로
보길면 청별길 26 번지에 있는 “나무숲” 식당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보길면 중통리에 있는 보길도 송시열 글씐바위 입구로 이동
(7.5km) [18분 소요]
14:18~14:58 송시열 글씐바위 탐방 [40분 소요]
[보길도의 동쪽 끝 해안 절벽에는 송시열이 썼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윤선도가 스스로 보길도에 정착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면, 송시열은 제주도로 향하는 유배길에 풍랑을 만나 이곳에 머물렀다. 현재 글씨는 많이 훼손되어 형태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주변 백도리의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길도 여행에서 꼭 다녀와야 할 명소로 손꼽힌다.]
14:58~15:16 “좋은사람들“ 버스로 보길도 송시열 글씐바위 입구를 출발하여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으로 이동
(8.3km) [18분 소요]
15:16~15:40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샤워 후 짐 정리
탐방지 : 보길도 어부사시사 명상길 [ 예송리 해수욕장 & 예작도와 당사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
탐방코스 : [ 해돋이 펜션 ~ 예송리 해수욕장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호) ~
어부사시사 명상길 ~ 예작도와 당사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어부사시사 명상길 ~ 해돋이 펜션 ] (총 거리 : 7km)
탐방일 : 2022년08월27일(토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 소요시간 2시간15분 소요)
15:40~15:45 전남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에서
탐방 출발하여
예송리 해수욕장에 있는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호)으로 이동
[둥글납작한 갯돌이 1.4km나 펼쳐져 있는 예송리 갯돌해변은 오래 전부터 보길도 최고의 명소로 꼽혔다. 해변 둘레에는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겨울에는 방풍림 역할을 하는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호)이 펼쳐져 있어 더욱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예송리해변에서 불과 400m 건너편에는 예작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의 감탕나무 또한 수령 300년을 자랑하는 천연기념물이다. 추후 예송리와 예작도는 해상진입로로 이어질 예정이다.]
15:45~15:50 사진촬영
15:50~16:43 어부사시사 명상길을 따라서
예작도와 당사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이동
16:43~16:52 사진촬영 후 휴식
16:52~17:55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으로 원점회귀하여
탐방 완료
17:55~18:30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샤워 후 휴식
18:30~18:38 “좋은사람들“ 버스로 예송리 해수욕장 주차장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보길면 청별길 20 번지에 있는 “우리식당”으로 이동
(4.4km) [8분 소요]
18:38~20:00 전남 완도군 보길면 청별길 20 번지에 있는 “우리식당”에서
제육볶음(1인당 12,000원)을 안주로 하여 잎새주 2병(8,000원)을 음주
[식사 비용 : 20,000원]
20:00~20:08 사전에 Call한 택시로
완도군 보길면 청별길 20 번지에 있는 “우리식당”을 출발하여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으로 이동
(4.4km) [8분 소요] [택시 이용요금 : 10,000원]
20:08~22:00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샤워 후 룸메이트들과 담소
22:00~ 예송리 해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취침
2022년08월28일(일요일) 여행기
04:20~05:00 예송리 해변에 있는 해돋이 펜션 102호실에서 기상하여 샤워 후 짐 정리
05:00~05:39 해돋이 펜션에서 전복죽으로 아침식사
05:39~06:05 “좋은사람들“ 버스로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258 번지에 있는 해돋이 펜션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노화읍 노화로 16 번지에 있는 노화도 동천항으로 이동
(15km) [26분 소요]
[2022년08월28일(일요일) 완도군 일출시각 : 6시3분]
06:05~07:22 노화도 동천항에서 소안도로 가는 여객선 승선 준비
07:22~07:42 여객선을 타고 노화도 동천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소안면 이월리에 있는 소안도 소안항으로 이동
(3.2km) [20분 소요]
07:42~07:45 미리 대절한 마을 버스에 승차 [승차요금 : 1인당 1,500원]
07:45~07:58 미리 대절한 마을 버스를 타고 소안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소안면 진산리 산 358-8 번지에 있는 물치기미 쉼터로 이동
(7.1km) [13분 소요] [소안도에는 마을버스가 1대, 택시가 4대 있다.]
산 : 완도군 소안도 [ 가학산(駕鶴山) & 아부산(兒負山) ]
[소안도에서 가장 높은 가학산(駕鶴山·359m)은 학이 가마를 타는 듯한 형세라고 하여 이름 지어졌다.
가학산 정상은 일망무제, 동서남북 사방으로 막힘 없는 조망이 일품이다. 인근 보길도의 격자봉보다 풍광이 뛰어나다. 발아래 다도해는 장판을 깐 것처럼 고요하다. 그 위에 양식장 시설물들이 장판 무늬처럼 박혀 있다. 쳥명한 날에는 수평선 너머 제주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높이 135m의 아부산은 일출로 유명하다. 대봉산과 가학산 등반이 부담스럽다면 바다 전망이 뛰어나 소안 8경으로 꼽히는 아부산 탐방을 권한다. 아부산의 이름은 멀리서 바라보면 두 개의 바위가 아기를 업은 모습으로 겹쳐져 ‘아기 업은 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됐다.]
[소안도는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린다. 세 지역은 지속적이고 다양한 항일운동을 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안도에서는 평화적 시위와 무력 항쟁, 교육 운동과 노농 운동, 비밀결사와 법정투쟁, 섬 주민의 자발적인 학교 설립 등 일제강점기 내내 다양한 항일운동이 전개됐다.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을 비롯해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완도 본섬에서 한참 떨어진데다 인구가 6000여 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 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로도 항일운동의 성지가 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소안 항일운동기념관 전시관은 진(盡, 온 힘을 다하다) 인(人, 사람이 희망이다), 사(事, 행동하는 양심, 역사가 되다), 대(待, 힘을 모아 막아내다), 천(天, 하늘이 내린 천직을 받들다), 명(命, 힘을 보태 강해지다)을 테마로 항일운동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시관 중심에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된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의 디오라마가 있고, 천장은 다양한 태극기로 수놓았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 1920~1930년대 신문 지면을 장식한 소안도 기사, 독립운동가의 형사판결 원본 등 당시의 유물과 기록도 전시된다.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은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작점이다. 1909년 일본은 본국을 향해 먼 바다로 나가는 상선을 돕기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세웠다. 소안도 출신 동학군 이준화를 비롯한 5명은 일본 선박의 남해 항로를 방해하기 위해 거친 해안 절벽을 기어올라 일본인 등대원 4명을 죽이고, 등대를 파괴했다. 당사도등대가 생긴 지 불과 2개월 만이다. 당시 불빛을 밝히던 등명기를 파괴하려 했지만, 너무 단단해 바다에 빠뜨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등대 주변에는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항일전적비와 광복 후 파괴된 등대원추모비 일부가 역사의 증인처럼 오롯이 섰다.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도 같은 해 시작된다. 소안도는 왕실에 세금을 내는 궁납전이었는데, 1905년 친일 매국노 이기용이 토지를 사유화하자 소송을 벌였다. 일본과 조선 왕실을 상대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13년 법정투쟁 끝에 승리를 거뒀다. 소송 승리의 기쁨은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소안도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여 1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했다. 당시 소 한 마리 값이 70원인 점을 생각하면 꽤 큰 액수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립’을 강조하는 이유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 세웠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사립소안학교에는 일장기가 없었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항일 정신을 가르쳤다. 노화도를 비롯한 주변 섬뿐 아니라 해남과 제주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산행코스: [ 물치기미 쉼터-맹선재-해도정-가학산-학운정-잔디쉼터-해안도로-거북바위-
아부산 정상-소안 미라 펜션 ] (8km)
일시 : 2022년08월28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3시간35분 소요)
07:58~08:21 전남 완도군 소안면 진산리 산 358-8 번지에 있는 물치기미 쉼터에서 탐방 출발하여 맹선재로 이동
08:21~08:43 해도정으로 이동
08:43~09:30 소안도의 최고봉인 가학산(359m, 駕鶴山) 정상으로 이동
[학이 가마를 타는 듯한 형세라고 하여 駕鶴山으로 불리게 된
가학산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의 조망을 감상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소안도의 금성산과 그 너머로 완도 상왕봉(646m)이,
북동쪽으로는 소안도의 대봉산과 그 뒤로 완도군의 대모도와
그 너머로 완도군의 신지도가,
동쪽으로는 완도군의 청산도가, 동남쪽으로는 완도군의 여서도가,
남쪽으로는 제주시 추자면의 사수도와 그 너머로 제주도의 한라산이,
남서쪽으로는 제주시 추자면의 추자도가, 서쪽으로는 완도군의 보길도가,
북서쪽으로는 완도군의 노화도가 조망된다.]
[학령귀운(鶴嶺歸雲, 가학산 봉우리를 휘감아 도는 구름)은 소안팔경(所安八景) 중 제5경이다.]
<소안팔경(所安八景)>
1. 금성명월(錦城明月): 금성산에 뜨는 밝은 달.
2. 내동장천(內洞長川): 비자리 동네를 굽이쳐 흐르는 시내.
3. 귀하파성(龜河波聲): 과목 바닷가에 부딪혀 흩날리는 파도소리.
4. 이령목적(梨嶺牧笛): 배난골 고개의 목동이 부는 피리 소리.
5. 학령귀운(鶴嶺歸雲): 가학산 봉우리를 휘감아 도는 구름.
6. 미포어화(美浦漁火): 미라리 포구에서 보는 멸치잡이 배의 불.
7. 은곡창송(隱谷蒼松): 소진리와 부상리 깊은 골의 푸른 소나무 숲.
8. 백포귀범(白浦歸帆): 석양을 뒤로 하고 백도와 맹선 사이로 돌아오는 돛단배.
09:30~09:36 사진촬영
09:36~09:47 학운정으로 이동
09:47~10:42 아부산(兒負山) 거북바위로 이동
10:42~10:48 사진촬영
10:48~11:02 아부산(兒負山, 135m) 정상으로 이동
11:02~11:07 사진촬영
11:07~11:33 전남 완도군 소안면 소안로 567 번지에 있는 소안 미라 펜션으로
이동하여 소안도 탐방 완료
[미라 펜션은 2020년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소안도편에 멤버들의 숙소로 등장했던 펜션이다. 과거 미라리 학산 초등학교가 폐교된 자리에 세워졌다. 마을 기업에서 운영하는 미라 펜션은 원룸 7개와 투룸 3개로 이뤄져 있고 세미나실, 식당, 운동장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운동장을 벗어나면 바로 미라리 해수욕장과 연결되는 등 자연 입지가 뛰어나다.]
[미라리 해수욕장은 동글동글한 몽돌로 이뤄진 해변으로 길이가 약 1㎞에 달한다. 미라 8경 가운데 하나인 완도 미라리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339)에는 20여 종의 상록수가 뿌리를 내렸고, 앞 바다는 바다 낚시터로 인기가 높다. 상록수림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면 피로가 금새 달아난다. 소위 멍 때리며 힐링하기 좋은 장소다.]
<미라팔경(美羅八景)>
1. 학산귀운(鶴山歸雲): 봄비가 내린 뒤 가학산을 감싼 구름.
2. 대동장천(大洞長川): 가학산으로부터 마을로 흐르는 큰 시냇물.
3. 미포귀범(美浦歸帆): 미라리 포구로 만선의 깃발을 올리고 들어오는 돛단배.
4. 부아망월(負兒望月): 아부산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완상하는 것.
5. 전방가림(前坊嘉林): 미라리 마을 앞 상록수의 아름다운 숲.
6. 용담괴혈(龍潭怪穴): 아부산 절벽 이래 용이 머물던 동굴.
7. 강빈어화(綱濱漁火): 조강마루에서 바라보는 어선의 불빛.
8. 오산낙조(烏山落照): 오산의 저녁노을.
11:33~11:55 휴식
11:55~12:02 미리 대절한 마을 버스를 타고
전남 완도군 소안면 소안로 567 번지에 있는 소안 미라 펜션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소안면 비자2길 23번지에 있는 “청포도 식당”으로 이동
(3.8km) [7분 소요]
[마을버스 요금 : 1인당 1,500원]
12:02~12:52 “청포도 식당”에서
민어탕 정식(1인당 12,000원)에 잎새주 1병(4천원)을 반주로 하여 점심식사
[식사 비용 : 16,000원]
12:52~13:01 휴식
탐방지 : 완도군 소안도 [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 & 사립 소안학교 작은도서관 & 바다 위에 떠 있는 태극기 ]
탐방코스 : [ 청포도 식당 ~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 ~ 사립 소안학교 작은도서관 ~
바다 위에 떠 있는 태극기 ~ 소안항 ] (총 거리 : 6km)
탐방일 : 2022년08월28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 소요시간 1시간41분 소요)
13:01~13:16 전남 완도군 소안면 비자2길 23번지에 있는 “청포도 식당”에서
탐방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소안면 가학리 263 번지에 있는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으로 이동
[소안 항일운동기념관은 소안도 출신의 애국선열들과 항일 투쟁의 역사를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2003년에 건립됐다. 일제강점기 독립 유공자들의 얼굴 조각을 전시해 추모하고 있으며, 항일 운동 관련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소안도는 독립유공자 19명을 비롯하여 57명의 애국지사를 배출한 항일운동의 섬이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 신문 기사 등 당시의 유물도 전시돼 있다.]
13:16~13:31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과 사립 소안학교 작은도서관을 관람
[독립운동가 20명을 포함해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완도 소안도는 항일의 땅, 해방의 섬이다. 소안도가 항일의 땅이라 불리게 된 본격적인 투쟁은 토지반환소송에서 시작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일제는 조선 왕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소안면민들이 경작해오던 토지를 사도세자 5대손인 이기용에게 자작(子爵)이란 작위와 함께 소유권을 이전한다. 당시 이기용은 수조권만 갖고 있었고, 경작권은 주민에게 있었다. 소안도 토지의 소유권 이전은, 주민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에, 소안도 면민들은 최성태 등 4명의 면민 대표를 뽑아 토지소유권 반환 소송을 벌인다. 13년간의 법정 투쟁 결과 1921년 2월, 소안도 6천여 면민이 승소한다. 당시 조선일보는 5월 17일자에 "소안은 집요한 토지계쟁사건에 귀가 익은 곳이다. 13년 동안 다투어 얻은 토지는 이미 민유지로 해결됐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소송에서 이긴 주민들은 이 일을 기념하여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운다. 소안도에는 1913년 설립된 소안 중화학원이 있었다. 소안도 면민들은 토지를 지켜내자 그 기념으로 중화학원을 정식 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한 자금 1만 454원을 모금하였는데, 지금 가치로는 1억이 훨씬 넘는 금액이다. 따라서 사립 소안학교에는 '배움만이 살길이고, 항일의 길'이라는 소안면민들의 열망이 묻어 있다. 사립 소안학교가 다른 사립학교와는 다른 특별한 이유다.
사립 소안학교는 일제의 통제하에 있는 공립학교와는 달리 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위해, 한국의 역사와 국어를 중심으로 독립군가, 독립가, 청년가 등의 노래를 가르쳤다. 일제의 축제일에 휴교하지 않고 일본 국기도 게양하지 않았으며 일본의 국상(國喪) 기간에도 상장(喪章)을 붙이지 않았다. 사립 소안학교는 일제에게 눈엣가시였다. 이에 일제는 1927년 5월 사립 소안학교를 강제 폐쇄했다.
이에 소안면민은 거세게 항거했다. 당시 중외일보는 '군수와 시장이 출동하여 돌연 학교 폐쇄(중외일보 5월 16일자)', '호별 방문하여 의견 청취 결과 소안교 폐지 반대 절대다수(중외일보 6월 15일자)'. '사립 소안학교 복교동맹 조직, 동맹원 700여 명(중외일보 7월 6일자)' 등의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그러나 1927년 11월 배달청년회 사건으로 소안도의 민족운동가들이 대량 구속되면서, 사립 소안학교 복교 운동은 좌절되고 만다.
지금의 사립소안학교(항일의 정신적 산실이며 현재는 도서관으로 활용 중이다)는 2005년 주민들의 기금으로 복원한 것이다.]
13:31~13:57 왔던 길을 걸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태극기”로 이동
13:57~14:06 사진촬영 후 휴식
14:06~14:42 방파제로 형성된 호수 위에 지은 정자를 방문한 후 소안항으로 이동
14:42~15:00 소안도에서 화흥포항으로 가는 여객선 승선 준비 (신분증 준비)
15:00~16:01 여객선을 타고 소안도 소안항에서 완도 화흥포항으로 이동
(16km) [여객선 운임 : 6,200원] [1시간1분 소요]
16:01~16:09 “좋은사람들“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 대기
16:09~16:15 “좋은사람들“ 버스로 완도 화흥포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구계등길 48 번지에 있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정도리 탐방지원센터로 이동 (3.9km) [6분 소요]
16:15~16:23 국립공원 스탬프투어 인증
16:23~22:00 “좋은사람들“ 버스로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구계등길 48번지에 있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정도리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귀경 (434km) [5시간37분 소요]
[노화도&보길도&소안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