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7월 29일은 가시돋친 세파와 폭염의 한복판이었지. 전교조 참교육운동 했다는 이유로, 사흘 전 둘 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채였네. 근무하던 학교의 교장·교감 선생님 호의로, 학교강당을 결혼식장으로 청첩장까지 돌렸지만 일주일 전 금지령이 내렸네.그 기막힌 상황 이겨내느라 교감 선생님과 여기저기 다니다 가까스로 선정릉, 졸지에 왕릉에서 야외결혼식을 올렸네. 내심 한켠 바라던 일이었다 여겼지. 그 날 아침, 시련처럼 비까지 내려 장인·장모님, 어머니 수심 깊었을망정, 예식 시간 전 뚝 그치고 하객들 몰려 축복의 결혼식 되었네.
명동성당에서는 징계를 앞둔 선생님들이 단식투쟁 중, 우리는 다른 데 못 가고 그 뜻깊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갔네. 하룻밤 팔베개로 새우고 나니 소문이 나고, 이니셜로라도 굳이 <조선일보>가 보도를 해서 ‘조사 보고령’ 받은 교감 선생님이 현장으로 오셨지. ‘못 본 것으로 보고 할테니 이제라도 여행을 떠나라’ 당부에, 동지들도 권하여 비로소 우린 설악산으로 향했네.
그렇게 저렇게 긴 세월 사나운 시련 이겨 온 결혼생활. 32돌 오늘은 둘이 손잡고 마스크로 무장한 채 소백산 죽계구곡, 부석사 다녀왔네.가는 길 오는 길 감탄 찬탄을 부르는 산천은 모든 삶에 평등한 신의 축복. 계곡 산행은 고행이련만 귀를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얼음물에 발 담그고 몸 담그니 극락이 따로 없구나. 부석사 오르는 길은 또 하나의 수련. 오르고 올라도 언덕길 그 끝 봉황산 중턱에 떠있는 돌, 부석, 천삼백여년 된 도량 무량수전, 의상대사의 조사당, 기적같은 선비화 푸르네.돌아와 동네 호프집에서 전개된 천생연분 사연, 딸 아들, 부실한 살림살이 이야기부터 우리 결혼의 한 모델이었으되 너무나 멀어진 ‘샤르트르와 보봐르 계약결혼론’, 소크라테스·예수·석가·공맹… 천상을 떠돌다 '세 여자의 결혼 이야기', 김대중과 이희호, 안병무와 박영숙, 홍근수와 김영 목사까지, 결론은 '정영훈과 김정미' 부부였네.우리 작은 정든 집 이르러 잠시의 세찬 샤워로 하루종일 절은 땀, 마스크로 데워진 얼굴, 먼 길 시련의 찌든 시름 말끔히 씻어낸다.서울/정영훈·김정미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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