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극본 김인강 황은경·연출 권이상)가 오는 29일 1,088회 '박수할 때 떠나려 해도' 편 방송을 끝으로 22년2개월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기록될 <전원일기>는 농촌드라마이자 3대가 함께 모여서 이물감없이 볼 수 있었던 홈드라마였다.
종영을 오래전부터 예고해왔던 <전원일기>의 마지막 녹화가 지난 16일 오후 2시 MBC 여의도 스튜디오에서 있었다. 최불암을 비롯, 김혜자 김수미 김용건 고두심 등 모든 출연진이 모여 있음에도 녹화장은 주고받는 농담도 없이 슬픔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분위기였다.
응삼 역을 맡았던 박윤배가 "전원일기라는 단어를 꽃상여에 태워 보내게 됐다"고 한 말에 30여명의 출연자 모두 공감하는 듯했다.
김회장 역의 최불암은 "월요일마다 있었던 녹화가 일상이 됐는데 이제 월요일이면 너무 허전할 것 같다. 시골의 동네 사람들, 개 한마리까지 그리워질 거다"며 아쉬워했다. 부인 역의 김혜자 역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것을 남겨준 소중한 그 무엇과 헤어지는 느낌이다"며 "요즘은 드라마 주제가만 들어도 가슴이 찌릿할 정도"라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큰아들 역의 김용건이 "이제 우리도 마지막이네. 이혼이네, 이혼"이라고 농을 건네자 고두심은 "22년 같이 살다가 이혼하니 위자료도 많이 받아야겠네"라며 역시 농담으로 받아 녹화장 분위기를 잠시 띄웠다.
'영원한 일룡엄니'로 남을 김수미는 "실감이 안 난다. 마지막 녹화 마치고 가발 벗어야 실감이 날지 모른다"며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실제 나이 38세일 때인 100회에서 김수미는 극중 환갑을 맞았는데 할머니 시청자들이 내복과 옷가지 등을 50여벌이나 보내주었다. 당시 작가는 그 옷을 드라마상에서 입을 수 있도록 한동안 마실 가는 장면을 꼬박꼬박 넣어주었으며, 김수미는 아직까지 그 옷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말 극중 결혼식을 올린 응삼 역의 박윤배는 "남들 시집 장가 갈 때마다 정말로 약이 올랐다"고 회고하며 "이 드라마는 내 생업이나 마찬가지였다. 통장에 찍힌 입금 내역이 전부 <전원일기> 출연료일 정도다. 앞으로 어떤 생활이 이어질지 나도 궁금하다"며 차마 정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들 출연진에게 <전원일기>는 드라마라기보다 실생활이었다. 최불암은 "둘째에게 농사일을 물려준 게 가장 가슴 아프다. 공부를 더 시켰어야 했는데…. 지금도 둘째를 보면 눈물이 핑 돌곤 한다"고 회고했다. 이에 둘째 역을 연기했던 유인촌은 "농사지은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오히려 도시로 떠났으면 내가 더 가슴 아팠을 것이다"고 답해 마치 진짜 부자지간의 대화를 듣는 것 같았다.
금동이 역을 맡았던 아역 탤런트가 실제로 가출했을 때 최불암을 비롯한 <전원일기> 가족들이 직접 금동이를 찾으러 나서기도 했다. 지난 2일 영남, 수남, 복길의 아역배우들이 녹화장을 찾아왔을 때도 수소문해봤지만 결국 못 찾아 출연진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날 마지막 녹화가 끝난 뒤 오후 7시 여의도 63빌딩 르네상스홀에서는 여의도클럽과 한국프로듀서연합회가 공동선정한 '2002 방송인상' 수상자로 <전원일기> 역대 연출자 13명과 작가 2명, 출연자 최불암·김혜자가 뽑혀 대미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