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정점에서 펼친…마지막 불국사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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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기자
입력 : 2021-08-10 17:05:14 수정 : 2021-08-10 17:06:41
한국화 대가 박대성 개인전 `靜觀自得`
1996년 기적같이 설경 포착
유연하고 포용력 큰 작품펼쳐
내년 미국 순회 전시 앞두고
`불국 설경` 등 70점 선보여
유년 시절 왼손 잃었지만
"불편을 극복하는 노력이
오늘날 나를 만들었다"
한때 이건희 회장 전속화가
"큰 언덕 덕분에 비바람 피해"
사진 확대
박대성 '불국 설경'. [사진 제공 = 가나아트센터]
이 무더위에 설경을 보니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흰 눈이 소복소복 내려앉은 경주 불국사와 소나무들이 이룬 절경이 가로 4.4m에 세로 1.99m 대형 화면 '불국 설경'에 펼쳐져 있었다. 서울 인사아트센터 개인전 '靜觀自得(정관자득·사물이나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다)'에서 한국화 대가 박대성(76)의 필력과 화면 크기에 압도됐다. 박 화백은 "마지막으로 불국사 설경을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그렸다"며 "이런 대작을 하기에 힘든 나이가 됐고, 화가 인생 정점에서 최대한 공을 들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불국사 설경은 1996년 '기적'처럼 처음 그리게 됐다. 불국사에서 1년 머물던 시절에 눈을 기원하며 잠든 다음날 새벽에 극적으로 눈이 와서 스케치북에 담을 수 있었으며, 그 후로 설경을 보지 못했다. 박 화백은 "하늘이 도우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1995년 현대미술을 공부하러 미국 뉴욕에 갔다가 '진정한 현대미술은 한국 고전과 내 안에 있다'고 깨달은 직후 불국사로 향했다.
"중국과 인도를 가봤지만 불국사만큼 아름다운 사찰을 보지 못했어요. 석가모니가 용(龍)등에 올라타고 동해로 가는 형국을 건축으로 풀어낸 명품이죠. 동서로 길게 놓인 석축이 굉장히 직선적이고 모던해요. 이것이 진정한 현대미술이라고 생각해요. 네모난 돌을 연결한 모습이 마치 한국 추상화 거장 김환기 전면 점화 같습니다."
마지막 '불국 설경'이지만 판매용으로 내놨다. 2015년 그의 대표작 830점을 경주 솔거미술관에 기증했기에 더 간직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박 화백은 "죽어서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이번 개인전에 비매품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