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1-17
마태복음 1:1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표현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구절에서 ‘계보’라는 표현은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인데1) 여기 ‘비블로스’(βίβλος)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는 ‘책’ 혹은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기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2) 또한 이 구절에 나타나고 있는 ‘출생’, ‘기원’ 혹은 ‘세대’(generation)라는 다양한 뜻이 있는 ‘게네시스’(γένεσις)라는 단어는 소유격(γενέσεως)으로 사용되면서 그 앞에 나오는 ‘비블로스’(β́ίβλος)를 수식하고 있다. 따라서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출생의 기록’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를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3)
족보를 기록한 목적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복음서 초두에 기록한 목적은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왕족 혈통을 받은
메시야 언약의 상속자로
모든 민족을 향해
구원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1절 초두에 나타나고 있는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라는 표현은 1:1-17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출생의 기록’의 표제어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동시에 2절부터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출생의 기록’에 관한 ‘서론’의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출생의 기록’은 헨드릭슨(W. Hendriksen)이 지적하는 대로 “마태복음의 단지 부록이 아니며 1장 전체와 내용과 연결되어 있고, 더 나아가 마태복음 전체의 내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은 분명하다.5) 그렇지만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라는 표현이 1-2장까지, 혹은 1:1에서 4:16까지 더 나아가 마태복음 전체의 표제어가 된다고 하는 견해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이라는 표현과 함께 시작하고 있다.6) 그러나 마태는 마가와는 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그의 복음서 초두에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의 기록’을 기록하면서 시작하는 것이다.7) 마태가 복음서를 이처럼 ‘출생의 기록’으로 시작하는 것에 대해 모리스(L. Morris)는 “그 어떤 복음서 기자들도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8) 건드리(R. Gundry)는 “마태의 ‘출생의 기록’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마가의 ‘복음의 시작’을 대치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이것은 구약의 어법을 반영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9)
그렇다면 마태가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므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마태복음을 읽어가면서 제일 싫증이 나는 부분이 ‘낳고, 낳고, 낳고’로 계속 이어지는 예수님의 족보에 관한 기록일 수 있다. 2절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라는 표현은 역대상의 기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10) 이 구절에서 ‘낳다’라는 동사(γεννάω)는 역대상 1-3장에서 단 한 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마태는 이 동사를 1장에서 반복하여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건드리(R. Gundry)는 마태의 ‘평행법’적 표현 방법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11) 마태가 이러한 방법으로 ‘낳고, 낳고, 낳고’로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의 기록’를 그의 복음서 초두에 기록하는 것은 깊은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카슨(D. Carson)은 “예수님이 다윗의 왕족 혈통을 받은 메시야로서 언약의 상속자이며 모든 민족을 향하여 하나님의 복을 가져오는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했다.12)
족보의 세 부분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세 부분으로 나누게 된 기준은
예수님의 ‘출생의 기록’을 통해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의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제시하려는 것이다.
마태는 이런 목적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의 기록’을 유대의 역사에 나타났던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배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2-6a, 6b-11, 12-16). 13) 그는 세 번째 부분에 13명의 이름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는 첫째와 둘째 부분에서는 각기 14명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14)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서 세 그룹의 이름을 배열할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을 처음과 나중에 두고 있다. 따라서 마태는 첫째 그룹에서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까지 열거하고 있으며, 두 번째 그룹에서는 ‘다윗으로 시작하여 요시야’에 이르고 있으며(마지막으로 자유를 누린 왕), 마지막 그룹에서는 ‘여고냐(처음으로 포로가 된 왕)로 시작하여 예수님까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15)
이처럼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는 것과 관련하여 건드리(R. Gundry)는 “족보의 첫 부분은 ‘왕적인 권세와 함께 끝이 나고 있으며(6절에서 다윗을 왕으로 호칭함), 두 번째 부분은 왕적인 권세의 상실과 함께 시작하며(바벨론 포로), 세 번째 부분은 예수님 안에서 왕적인 권세의 회복을 보여주면서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6) 예수님의 족보의 세 부분에 관하여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첫 번째 부분에서는 다윗 가문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으며, 두 번째 부분에서는 다윗 왕조의 흥기와 퇴조를 다루고 있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 왕조의 몰락을 다루고 있지만 완전한 몰락이나 소멸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훨씬 더 영광스러운 의미로 회복되었다”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17)
이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마운스(R. Mounce)는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세 부분으로 나누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유대 역사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사건 혹은 인물을 기준으로 족보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첫째 부분은 ‘하나님의 백성의 시작과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왕 다윗’으로 끝이 나고 있으며, 둘째 부분은 ‘유대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라는 사건으로 끝이 나고, 세 번째 부분은 유대가 멸망했지만 메시야의 오심으로 인한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이 이루어지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18) 이러한 주장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나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의 기록’을 세 부분으로 구분한 진정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의 기록’을 세 부분으로 구분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목적은 무엇인가?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족보의 중심에 두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태가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Ἰησοῦς Χριστός)로 족보를 시작하면서 1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Ἰησοῦς Χριστός)로 족보를 마무리를 짓고 있는 것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의 기록’을 통해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의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제시하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18절에서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문장 초두에 기록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건드리(R. Gundry)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고 마감하는 1:1-17과 연결하며 ‘예수’라는 이름과 ‘그리스도’ 즉 다윗의 후손의 관점에서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19)
주(註)
1)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라는 표현은 70인역(LXX)에서는 창세기 2:4, 5:1의 헬라어 번역에 사용되고 있다. cf. 6:9, 10:1, 11:10, 27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2) ‘비블로스’(βίβλος)라는 단어는 ‘책’이나 ‘기록’, 혹은 이집트의 '파피러스'(papyrus)를 뜻한다(cf. 빌 4:3, 계 3:5). ‘바이블’(Bible)이라는 영어 단어는 이 단어로부터 유래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3)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라는 표현이 ‘무엇을 언급하고 있는지’에 대해 해그너(D. Hagner)는 네 가지 관점을 소개하고 있다. (1) “마태복음 전체를 언급하고 있다.” (2) “1:1-4:16까지의 기록을 언급하고 있다.” (3) “1장-2장까지의 기록을 언급하고 있다.” (4) “1:1-17절의 기록을 언급하고 있다”라는 등의 관점이다(Donald A. Hagner, op. cit., 5).
4) R. T. France, op. cit., 73.
5) W. Hendriksen, New Testament Commentary, Exposition pf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5, 107
6) 막 1:1.
7) 누가도 4:23-38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다루고 있지만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출생 기사를 기록하므로 시작되고 있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마태가 기록한 족보와 누가가 기록한 족보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마 1:1-17에 나오는 족보는 ‘내려오는’(descending) 족보이지만, 눅 3:23-28에 나오는 족보는 ‘거슬러 올라가는’(ascending) 족보라”고 하였다(W. Hendriksen, op. cit., 106).
8) Leon Morris, op. cit., 18.
9) Robert H. Gundry, Matthew: A Commentary on His Literary and Theological Art, (Grand Rapids: Eerdmans), 1982, 13. cf. 창 2:4, 5:1
10) 역상 1:34.
11) Robert H. Gundry, op. cit., 14.
12) D. A. Carson, Matthew,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Vol. 8, (Grand Rapids: Zondervan), 1984, 63.
13) David Hill, op. cit., 1981, 74. 해그너(D. Hagner)는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족보의 역대상과 룻기에 나오는 족보와 연관성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첫 그룹(2-6a)은 역상 1:28, 34, 2:1-15, 룻기 4:18-22에 나오는 족보와 일치하고 있으며, 두 번째 그룹(6b-11)도 세 사람의 왕의 이름을 삭제한 것을 빼면 일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Donald A. Hagner, op. cit., 7). 마운스(R. Mounce)는 여기서 세 사람의 왕(요하스, 아마샤, 아사랴)을 족보에서 제거한 이유에 대해 “마태가 정확한 족보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유대 역사의 세 가지 중요한 단계와 일치하는 열네 명의 이름을 배열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Robert H. Mounce, op. cit., 8).
14) 리더보스(H. Ridderbos)는 ‘14’라는 숫자에 대해 “상징적이며 무엇을 뜻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고”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해 “많은 설명이 주어졌지만 14는 완전을 뜻하는 거룩한 숫자 7의 제곱이라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라고 하였다(H. N. Ridderbos, op. cit., 22-23) 따라서 이러한 숫자는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하나님의 준비가 끝났고 완성되었음을 뜻하고 있다”라 하면서 더 나아가 마지막에 14라는 숫자가 아니라 13이라는 숫자가 언급된 것에 대해서는 “메시야의 오심은 7번째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Ibid. 23). 헨드릭슨(W. Hendriksen) 역시 ‘14’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언급하면서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이 정하신 완전성을 의미하고 있으며 ‘14’이라는 숫자 역시 ‘7’이라는 숫자의 제곱으로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라는 것을 주장하였다(William Hendriksen, op. cit., 110).
15) Robert H. Mounce, op. cit., 8.
16) Robert H. Gundry, op. cit., 19.
17) William Hendriksen, op. cit., 109.
18) Robert H. Mounce, op. cit.,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