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봉에서 엄정한 군기확립에 나선 사격장 李 少尉
-. 내게 맡겨진 학과 시간을 제외하고 특히 중식시간에
나무몽둥이 빳따를 들고 A, B, C 지구의 중간쯤이 되는 통신학교와 제2연병장 부근에 가 있으면
멀리 300~ 400m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단체, 개별 이동하는 보행, 구보 태도가 배운대로 이뤄지며 구령(口令)이 힘차게 들려 온다.
"떳~다 ! " 또는 내 별명인 "까스 ! " 하고 피교육생들 간에 작은 목소리로 연락이 취해지면
옷 매무새라든가 경례, 씩씩하게 양손을 흔들며 보행한다든지, 구보하는 태도가 확 바뀌어 진다.
-. 이문희, 윤여홍 신부의 경례
특수간부후보생 이문희(李文熙) 천주교 신부는 임관이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윤여홍(尹여弘) 신부도 임관 이후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들은 계급이 대위와 중위이다.
군기를 확립시키기 위해 도로상에 나가 있는 나를 보면 약 100m 전방에서부터
오토바이(자전거)에서 내려 걸어오다가
약 30~50m 전에서부터 오토바이(자전거)를 한손으로 끌고 오면서 오른손은 거수경례를 하면서 걸어 왔다.
이분들의 얘기는 다음기회에 할 기회가 또 있다.
-. 출퇴근 버스 내 군기 잡기
나는 예고없이 수시로 출퇴근 버스내 군기를 세우기위해 나갔다.
버스내의 군기는 상급자가 서있는데도 불구하고 하급자가 의자에 뻐젓이 앉아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정문을 통과하기 직전에 버스를 정지시켰다.
물론 정차된 버스의 뒤에는 따라오던 버스가 연달아 서있다.
나는 정차된 버스에 빠르게 승차하여
질서를 위반한 위관장교 또는 중. 상사를 지적하며 하차할 것을 명령했다.
다음 버스 역시 같은 방법으로 했다.
예의에 어긋나고 군질서를 위반한 이들은 대부분이 위관급 장교들로 선배 기수가 서있을때
잠을 자는척하고 눈을 감고 있는 후배 기수들이다.
위반자는 때에 따라 그 인원이 다르지만 15~30명 정도가 되었다.
그들은 나의 지시에 따라 본부 사령부(단 본부) 앞 작은 연병장까지 열과 오를 맞추어 도보로 이동시켰다.
나는 그곳 지휘대에 올라가 간단한 훈시(訓示)를 했다.
"오늘 아침 동쪽에서 해가 뜨고 저녁이면 서쪽으로 해가 넘어 가듯이 이 우주에는 크고 많은 질서가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사회의 군 조직에도 질서가 있다.
군은 계급사회이다.
정당한 명령에 따라 언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군의 생명은 명령에 따라 질서를 지키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예의이기도 하다."
"이를 어기는자는
파렴치한 군인으로 그 대가는 체벌로 바로 세워야 한다. " 라고 한후에
엎드려 부쳐 팔굽혀 펴기, 토끼 걸음 걷기와 뛰기로 기합(氣合)을 넣었다.
수십 차례 버스 내 군기확립을 위해 활약했지만,
내 앞에서 반대 의견을 갖고 항의 하는자는 한명도 없었다.
단지, 뒤에 들리는 얘기들은 "독한 놈 또는 공군에 악당(毒한 놈, 空軍에 惡黨)" 이다. 라고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요즘 싸가지 없는 놈들이 많은데 잘하는 일이다."
"누가 이렇게 군기를 잡는 위관급이 있다는 말인가 ? 정말 듣던대로 사격장 李 少尉 훌륭하다 " 라고들 했다.
♥. 시내 군기 장교 파견
-. 그 당시에는 순서에 따라
영관급, 위관급, 중.상사 등으로 조(반)를 편성하여 1주일에 한번씩
토. 일요일에 기지헌병대 소속인 역전 파견대에 군기 확립을 위해 나갔다.
백차(白車, 헌병대 덮게가 없는 찦차)에 타고 시내 일원을 순찰하며
외출, 휴가, 업무차 영외에 나온 장. 사병들이 군인답지 못한 행위로 위반시에
군기 확립을 위해 역파 또는 기지 헌병대로 동행했다.
신분증, 영외에 나온 목적의 증빙서 지참 여부, 복장 위반, 경례를 하지 않은 군인,
음식집에서 민간인과 다툰 군인..., 등등의 위반 군인들 중에는 공군외에도 육군, 해군, 해병대 등 타군도 있었다.
나는 찦차를 타고 순찰 할 때도 있었고, 단속 요원들(조원= 반원)과 직접 도보로 시내를 순찰하며
위와 같이 위반한 군인들을 지적하여 연행하였다.
또한 각군 기지헌병대 소속 역전파견대 근무자들로부터 위반사항에 대하여 지적을 받고 연행되어 온이들도 있다.
-. 나는 매번 단속 요원(조원, 동료 장교와 영외 하사관)들과 함께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사항을 위반한 이들을 대전역전 광장 또는 목척교까지 데리고 와서
그곳에서 군인으로서 잘못된 부분에 대한 기합을 당연히 받아야 된다. 라는 훈시(訓示)를 간단하게 하고
기본적인 경례 자세 훈련과 제식훈련(制式訓鍊)을 약 20 ~30분간 실시했다.
신사라고들 하는 공군 초급 장교가 공군 역사이래 처음으로
시내 한복판에서 군기를 세우는 일을 감행하는 것을 보고
사령부내의 장.사병은 물론 전국 공군기지마다 사격장 이소위의 군기확립 행위가 알려졌고,
-. 이와 같은 소문을 전달 보고받은
사령관과 모든 고급 장교들이 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라고 전해 들었다.
일반적으로 군기를 세우기 위해 조(반)별로 명령받아 편성된 요원들이
당연히 맡은바의 소임을 헌병대 소속 역전 파견대에 일임하고 형식적으로 참여했다. 라고 하는 근거만 남겼지
실제로 맡겨진 책임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경우는 없었다.
2012. 9. 1(토). 청록실에서 붕촌 이 명 종
![](https://t1.daumcdn.net/cfile/cafe/150E18485041A2D32D)
위 사진 설명 :
-. 1969. 6. .
멸공(전투)훈련장에서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피교육자들의 요구로 기념사진 촬영에 응한 사진입니다.
-. 좌측으로부터
김선동(훗날 아래 동서가 됨), 두번째가 중위 이명종입니다.
-. 왼쪽 팔뚝에 군기 감찰 완장을 차고 오른손에 나무몽둥이 빳다를 들고 있는 중위 이명종의 모습이
위 본문의 글 내용을 실천에 옮기고 있을때 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398D445041A58130)
위 사진 설명 :
-. 1969. 2. .
멸공(전투)훈련장 은폐물 옆에서 학과중 휴식시간에 교관들이 잠깐 촬영한 사진입니다.
-. 좌측으로부터
소위 박영수(59기), 소위 최종치(57기), 소위 이용찬(57기), 소위 이명종(56기), 중위 이?(53기)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488A41504C356A31)
위 사진 설명 :
-. 1970. 2. .
공군교육사령부 멸공(전투)훈련장에서 잠깐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피교육자와 함께한 사진입니다.
-. 앉은이 맨 좌측에 검은 안경에 잠바차림이 교관 신현채(55기)이고,
서 있는이 좌측에서 두번째는 조교 ? 하사이며,
서 있는이 맨 좌측에 검은 안경과 잠바차림이 교관 이명종입니다.
첫댓글 선배님. 올려주신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대전 항공병학교 시절 교육받던 추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저는 최근 대전에서 1년반 근무했는데 교육사령부는 흔적도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74기구요 특기는 요격관제(17)입니다.
필봉산 님 !
반갑습니다.
지난 4월 한수인의 축제에서 만난
한수초 48회 이영훈님이 아니신지요 ?
서울대를 졸업하셨다. 라고 그림자님이 옆에서 알려주었고,
제가 공군 초급장교들이 전역후 많이들 진출한 조직이 아니냐 ? 라고 물었지요....,
74기이시고,
17 특기면 공군 중에 공군의 역할을 하셨네요.
제가 알기로는 한수면 출신으로 공군 장교가 되신분은
역리 석영철 전 행안부 차관 선배님의 형님이 계셨고,
서창리 한수초 32회
공사 11기의 이기형 선배님이 계시며,
그리고 저와
제 동생이 64기 헌병특기 중령 전역 이석종(오클랜드 거주 18년)이 있지요.
자주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선배님 지난번 동창회 때 잠깐 인사드렸는데 기억하고 계시네요. 앞으로 카페에 자주 들러 인사드리겠습니다.
선배님 말씀 들어보니 한수출신 공군장교 출신도 몇명 계시네요. 저는 산신령 특기로 팔공산, 망일산, 용문산, 의상봉 등에서 근무했습니다. 무려 50개월 근무했지요. 당시 저희 근무기간이 3개월 단축되어 53개월에서 50개월로 줄었습니다.
필봉산님 !
위에 소개한 역리출신 전 행안부차관을 역임하신
한수초 32회 석영철 선배의 형님 중에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셨던분은
내가 한수초 6년 ? 겨울 방학 아침 식사때로 기억 하고 있는데
당시 경남 사천 비행장에서 훈련중,
T-33 과정을 수료하면 왼쪽 가슴에 윙(Wing)을 달며
진짜 파이럿트가 되는데,
마지막 훈련을 마칠때 쯤(?)
고향 역리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이 보고싶어
사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역리 상공까지 와서
"어머니 ~! , 어머니 ~!...," 하고 외치며
지상으로부터 너무나 낮게 떠서 계속 돌다가
한천리 새터 뒷산에 충돌하여
본인은 물론
비행기가 산산조각이 난 사건으로 안타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