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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근(六根)의 공덕(功德)
❙ 원문
「阿難. 云何名為衆生世界? 世為遷流, 界為方位. 汝今當知. 東西南北 東南西南東北西北 上下為界, 過去未來現在為世. 方位有十, 流數有三. 一切衆生織妄相成, 身中貿遷, 世界相涉. 而此界性, 設雖十方定位可明, 世間秖目東西南北, 上下無位中無定方. 四數必明與世相涉, 三四四三宛轉十二, 流變三疊一十百千, 總括始終六根之中, 各各功德有千二百.」
「阿難. 汝復於中克定優劣. 如眼觀見後暗前明, 前方全明後方全暗, 左右傍觀三分之二, 統論所作功德不全, 三分言功一分無德, 當知眼唯八百功德. 如耳周聽十方無遺, 動若邇遙靜無邊際, 當知耳根圓滿一千二百功德. 如鼻嗅聞通出入息, 有出有入而闕中交, 驗於鼻根三分闕一, 當知鼻唯八百功德. 如舌宣揚盡諸世間出世間智, 言有方分理無窮盡, 當知舌根圓滿一千二百功德. 如身覺觸識於違順, 合時能覺離中不知, 離一合雙, 驗於身根三分闕一, 當知身唯八百功德. 意默容十方三世一切世間出世間法, 唯聖與凡無不苞容盡其涯際, 當知意根圓滿一千二百功德.」
「阿難. 汝今欲逆生死欲流, 返窮流根至不生滅, 當驗此等六受用根, 誰合? 誰離? 誰深? 誰淺? 誰為圓通? 誰不圓滿? 若能於此悟圓通根, 逆彼無始織妄業流, 得循圓通, 與不圓根日劫相倍. 我今備顯六湛圓明, 本所功德數量如是, 隨汝詳擇其可入者, 吾當發明令汝增進. 十方如來於十八界, 一一修行皆得圓滿無上菩提, 於其中間亦無優劣. 但汝下劣未能於中圓自在慧, 故我宣揚, 令汝但於一門深入, 入一無妄, 彼六知根一時清淨.」
阿難白佛言: 「世尊. 云何逆流深入一門, 能令六根一時清淨?」
佛告阿難: 「汝今已得須陀洹果, 已滅三界衆生世間見所斷惑, 然猶未知根中積生無始虛習. 彼習要因修所斷得, 何況此中生住異滅分劑頭數?」
「아난. 운하명위중생세계? 세위천류, 계위방위. 여금당지. 동서남북 동남서남동북서북 상하위계, 과거현재미래위세. 방위유십, 유수유삼. 일체중생직망상성, 신중무천, 세계상섭. 이차계성, 설수시방정위가명, 세간지목동서남북, 상하무위중무정방. 사수필명여세상섭, 삼사사삼완전십이, 유변삼첩일십백천, 총괄시종육근지중, 각각공덕유천이백.」
「아난. 여부어중극정우열. 여안관견후암전명, 전방전명후방전암, 좌우방관삼분지이, 통론소작공덕부전, 삼분언공일분무덕, 당지안유팔백공덕. 여이주청시방무유, 동약이요정무변제, 당지이근원만일천이백공덕. 여비후문통출입식, 유출유입이궐중교, 험어비근삼분궐일, 당지비유팔백공덕. 여설선양진제세간출세간지, 언유방분이무궁진, 당지설근원만일천이백공덕. 여신각촉식어위순, 합시능각이중부지, 이일합쌍, 험어신근삼분궐일, 당지신유팔백공덕. 여의묵용시방삼세일체세간출세간법, 유성여범무불포용진기애제, 당지의근원만일천이백공덕.」
「아난. 여금욕역생사욕류, 반궁류근지불생멸, 당험차등육수용근, 수합? 수리? 수심? 수천? 수위원통? 수불원만? 약능어차오원통근, 역피무시직망업류, 득순원통, 여불원근일겁상배. 아금비현육담원명, 본소공덕수량여시, 수여상택기가입자, 오당발명영여증진. 시방여래어십팔계, 일일수행개득원만무상보리, 어기중간역무우열. 단여하열미능어중원자재혜, 고아선양, 영여단어일문심입, 입일무망, 피육지근일시청정.」
아난백불언: 「세존. 운하역류심입일문, 능령육근일시청정?」
불고아난: 「여금이득수다원과, 이멸삼계중생세간견소단혹, 연유미지근중적생무시허습. 피습요인수소단득, 하황차중생주이멸분제두수?」
❙ 해설
「아난아. 무엇을 중생세계라고 하느냐? 세(世)는 흘러가는 시간을 말하고 계(界)는 방위를 말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라. 시방(十方)인 동서남북 동남 서남 동북 서북 상하는 계가 되고, 삼세(三世)인 과거 미래 현재는 세가 되는 것이니, 방위의 수는 열개이고 시간의 수는 셋이다. 일체중생이 세계 속에서 허망하게 짜여서 서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육신 중에서 옮기고 바뀌어 세와 계가 서로 교섭하고 있다. 이 계(界)의 성품이 비록 시방(十方)으로 설정되지만, 정해진 위치가 분명한 것은 세상에서 다만 동서남북만을 일컫고, 상하는 정해진 위치가 없고 중앙은 정해진 방위가 없다. 사방의 숫자가 틀림없이 분명하여 삼세와 더불어 서로 관계하는데, 3과 4 또는 4와 3이 완전히 12가 되고, 흘러 변해 세 번 쌓여서 일 십 백 천 자리로 변화하니, 육근의 처음과 끝을 한데 모아서 묶으면 육근에는 각각 천이백 공덕(功德)이 있다.」
「아난아. 네가 다시 육근 중에서 우열을 정하여 보아라. 눈[眼根]은 사물을 보는데 뒤는 안보이고 앞은 보이므로 전방은 완전히 밝고 후방은 완전히 어두우며 좌우는 곁눈으로 보는 것이니, 삼분의 이만 보이는 것이므로, 안근이 작용하는 것을 통틀어 말하자면 공덕이 완전하지 못하여, 삼분(三分)으로 공덕을 말할 경우 일분(一分)은 공덕이 없으므로 안근은 다만 팔백 공덕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耳根]는 시방의 소리를 남김없이 두루 듣는데 움직일 때는 가깝고 먼 것이 있는듯하지만 고요할 때는 끝이 없는 것이니, 이근은 천이백 공덕이 원만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鼻根]는 들숨과 날숨을 통하여 냄새를 맡는데 숨이 들어오고 나오는 중간에 교체되는 동안에는 냄새 맡는 작용이 끊어지는 것이니, 비근을 살펴보면 삼분에서 일분이 없어지므로, 비근은 다만 팔백 공덕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舌根]는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모두 다 드러내어 말하는데, 말에는 순서[方分]가 있지만 이치는 다함이 없으므로, 설근은 천이백 공덕이 원만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身根]은 접촉을 느껴서 불쾌감[違]과 쾌감[順]을 인식하는데, 몸에 합할 때만 감각을 알 수 있고 몸에서 떨어지면 알지 못하고, 떨어지면 하나이고 합하면 한 쌍이니, 신근을 살펴보면 삼분에서 일분이 없어지므로, 신근은 다만 팔백 공덕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意根]은 시방삼세의 모든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묵묵하게 포용하는데, 성인과 범부를 포용하는데 있어서 그 한계가 없으므로, 의근은 천이백 공덕이 원만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난아. 네가 지금 생사하는 욕망의 흐름을 거슬러서 그 흐름의 근원을 완전히 돌이켜 불생멸(不生滅)에 이르고자 한다면, 이러한 여섯 가지 수용근(受用根)에서 어느 것이 합[合]하고 어느 것이 떠나며[離], 어느 것이 깊고[深] 어느 것이 얕으며[淺], 어느 것이 원통(圓通)하고 어느 것이 원통하지 않는가[不圓通]를 마땅히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육근 중에서 원통한 근을 알아서 저 처음이 없는 때로부터 허망하게 조직된 업의 흐름을 거슬러 원통을 얻어서 따른다면, 원통하지 못한 근으로 수행하는 것보다 갑절이나 빨리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육근의 맑고 원만하고 밝으며 본래부터 갖춘 공덕의 수량을 이와 같이 준비하여 밝혔으니, 그 중에서 들어갈 수 있는 근을 네 마음이 가는대로 자세하게 선택하면, 내가 마땅히 잘 설명하여 너로 하여금 공부에 증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시방의 여래께서는 십팔계(十八界)에 대하여 낱낱이 수행하시어 모두 원만하고 위없는 보리를 얻었으므로 육근 가운데에는 또한 우열이 없다. 그러나 너는 근기가 낮아 그 중에서 자재한 지혜를 원만하게 얻지 못하므로, 내가 너에게 다만 하나의 근을 선택하여 일문(一門)으로 깊이 들어가기를 권하는 것이니, 일문으로 깊이 들어가 하나의 근에 허망이 없어지면 저 육근이 일시에 청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욕망의 흐름을 거슬러서 도를 닦아야 일문으로 깊이 들어가 육근을 일시에 청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이미 수다원과를 얻어서 삼계의 중생들이 견도위(見道位)에서 남아있는 의혹[見惑]은 벌써 없앴으나, 아직 육근 가운데에 쌓여서 생긴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의 허망한 번뇌[思惑]는 알지 못하고 있구나. 저 허망한 번뇌는 반드시 수도위(修道位)에 가서야 끊을 수 있는데, 하물며 이 육근 가운데서 생주이멸하는 번뇌들을 어찌 알겠느냐?」
❙ 보충
수행을 통한 인식의 전환과정은, 아유(我有)→아공(我空)→법유(法有)→법공(法空)→구공(具空) 으로 이어진다. ①나는 있다 ②나는 없다 ③세상은 있다 ④세상은 없다 ⑤나와 세상은 없다. 이것은 여섯 가지 인식기관인 육근(六根)과 관련이 있다. 원래 주객(主客) 또는 아법(我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분명하게 있다고 여기고는, 이에 집착하여 희로애락의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보이고 들리는 세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육근과 관련된 법문을 말씀하신 것이다.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도 멈추어질 것이고,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이 멈추어지면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짐이 멈추어질 것이고,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짐이 멈추어지면 삶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시공이 없는 세계로서 바로 열반이다. 불생불멸인 것이다. 이 상태를 체험한 후 이 세상을 다시 볼 때 이 세상은 그 자체로서 똑같이 생멸이 없는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중생세계에서 살더라도 대상에 대한 집착이 없이 활발발하게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육근을 자세히 알고 수행하여야 한다.
육근(六根)의 능력은 각각 다르다
육근의 공덕(능력)은 각각 다르다. 진심을 이론적으로 알고 난 후 진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삼매(三昧)를 닦아야 한다. 몸[有根身]이 되는 과정에 육근이 생기는데 육근의 공덕(능력)은 각각 다르다. ①눈[眼根]은 800공덕(1200×2/3)이다. 1/3은 안 보인다. ②귀[耳根]는 1200공덕이다. 귀로는 다 들린다. 따라서 안근보다 이근의 기능이 좋다. ③코[鼻根]는 800공덕이다. 들숨날숨의 중간에는 냄새 맡는 작용이 멈춘다. ④혀[舌根]는 1200공덕이다. 입으로는 쉼 없이 말할 수 있다. ⑤몸[身根]은 800공덕이다. 서로 합할 때만 촉감을 알 수 있다. ⑥뜻[意根]은 1200공덕이다. 온갖 생각을 할 수 있다. 삼매를 닦는데 공덕이 원만한 [이근. 설근. 의근] 중에 선택하여 공부하면 된다.
중생세계는 도적이 활동하는 무대이다
중생세계는 시간[世]과 공간[界] 속에 있으며, 이 두 요소가 서로 짜여서 마치 그물망처럼 엮여져 있는 상태이다. 세(世)는 흘러가는 시간[時.宙]을 가리키고, 계(界)는 방위[空.宇]를 말하는 것이다. 세계(世界)는 시공(時空) 우주(宇宙), 공간과 시간을 말한다. 본래 시공(時空)이 없는 것인데 회매위공(晦昧爲空)하여 시공이 생겼다. 말하기 전에는 좋은 말 또는 나쁜 말이라는 것이 없는데, 말을 하고나면 그 속에는 좋은 말도 있고 나쁜 말도 있다. 시공도 또한 이와 같이 벌어졌다.
세와 계가 서로 허망하게 조직이 되어 떠나질 못한다[織妄相成]. 허망하게 조직되었지만 허망한 것이 강한 힘을 가져서 떠나질 않는다[世界相涉]. 육근(六根)의 결박[根結]도 이와 같다. 육근의 결박도 하나의 세계 속에 있는 작은 세계와 같다. 육근의 결박이나 외부적인 시공의 형성이나 둘이 아니고 같다.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시간(사주팔자)이 정해지고(時),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날 때 몸이라는 공간이 정해졌다(空). 따라서 몸[身]도 하나의 세계이다. 즉, 몸의 방위는 공간이고(머리 발 앞 뒤), 몸의 출생은 시간이다. 이곳에서 육근(六根)의 결박을 푸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세계(世界)를 말씀하셨다. 이러한 세계는 도적놈이 활동하는 무대이다.
상하(上下)의 경우 사방(동서남북)의 상하를 말하는 것일 뿐이므로 상하는 정해진 위치가 따로 없다. 중간[中]의 경우 별도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며 중앙은 일정한 방위가 없다. 예를 들어 동쪽에서 서쪽까지라고 할 때는 중앙을 정할 수 있겠지만, 동쪽에서 동쪽까지는 중앙을 정할 수가 없다. 따라서 비록 시방이라고 하지만 세상에서 밝히는 방위는 사방(四方)이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의 공덕(功德)은 다르다
육근의 공덕(능력)은 다음과 같다. ①눈[眼根]은 전방1분 후방1분 좌우1분으로 볼때 2/3만 볼 수 있다. 따라서 안근은 800공덕[전체1200공덕×2/3]으로서 완전하지 못하다. ②귀[眼根]는 시방의 소리를 남김없이 듣는다. 소리가 날[動] 때는 먼 곳의 소리는 못 듣고 가까운 곳의 소리는 잘 듣는다. 그러나 고요한[靜] 상태에서는 가깝고 멀고 와는 관계없이 고요한 소리를 듣는 데는 한계가 없다. 고요를 듣는다. 따라서 이근은 1200공덕이 원만하다. ③코[鼻根]는 들숨과 날숨이 교체되는 중간에는 냄새 맡는 작용이 빠진다. 따라서 1/3분이 빠지므로 비근은 800공덕으로서 완전하지 못하다. ④혀[舌根]는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모두 다 말한다. 말로는 다한다. 하늘에 있는 별도 딸 수 있다. 말에는 순서[方分]가 있지만 이치는 끝이 없이 말할 수 있다. 이 말을 하고 나서 저 말을 할 수 있다. 앞의 말을 마친 후에 뒤의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치[理]는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설근은 1200공덕이 원만하다. ⑤몸[身根]은 접촉을 느껴서 불쾌감과 쾌감을 안다. 몸에 합할[合.2개] 때는 느낌을 알 수 있고 몸에서 서로 떨어지면[離.1개] 느낌을 모른다. 따라서 신근은 1/3이 빠지므로 800공덕으로서 완전하지 못하다. ⑥뜻[意根]은 성인과 범부에 관계없이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의근은 1200공덕이 원만하다.
이근(眼根)이 가장 원통(圓通)하다
생사를 끊기 위해서는 가장 원통한 근을 찾아서 수행하여야 한다. 육근의 특징인 합리(合離) 심천(深淺) 원통(圓通) 불원통(不圓通) 중에서 합(合) 천(淺) 불원통(不圓通) 은 원만하지 않으므로 제외하고, 이(離) 심(深) 원통(圓通)한 것 중에서 선택하여 수행하여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완전하게 갖춘 것은 이근뿐이다. 설근과 의근은 이(離)와 심(深)은 되지만 원통(圓通)이 아니다.
업이 육근과 얽혀서 중생의 생사를 거듭하는데 이를 끊으려면(윤회에서 벗어나려면) 원통한 근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원통하지 못한 근으로 닦는 것보다 갑절이나 빨리[日劫] 성취할 수 있다[日劫相倍]. 하루는 24시간 짧은 시간이고 겁은 수백만년의 세월이니까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호미로 땅을 파는 것보다 포크레인으로 파는 것이 빠르다.
(참고) 육근의 공덕
육근의 능력인 합리(合離) 심천(深淺) 원결(圓缺) 중 이(離)+심(深)+원통(圓通)한 근을 찾아야 한다. 육근 중에서 이 세 가지를 다 갖춘 것은 귀[耳根] 뿐이다. 귀는 1200공덕이니 원통이 되고, 귀는 내 몸을 떠나서 소리를 듣고, 귀는 고요한 것도 듣고 안다. 따라서 귀는 세 가지를 다 갖추었으니 가장 원통하다.
이지(離知)가 합지(合知)보다 원통하다. 능엄경에서 혀는 1200공덕으로 설명한다. 입으로는 쉼 없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맛을 다 볼 때는 변(變)이 되고 맛을 보지 않고 혀가 가만히 있을 때는 담(淡)이므로 원통하지 못하다. 눈 코 혀 몸 네 가지는 천성(淺性)이므로 불원통이다. 귀와 뜻 두 가지는 깊지만[深性], 뜻[意根]은 이합(離合)을 겸하였기 때문에 순수한 이지(離知)는 아니다. 순수한 이지(離知)는 눈과 귀 뿐이다. 눈과 귀는 몸을 떠난 경계를 안다. 의근은 합지(合知)까지 겸하였으므로 원통하지 못하다. 따라서 귀[耳根]가 가장 원통하다.
일문(一門)인 이근(耳根)으로 수행하라
육근의 공덕을 분명하게 밝혔으니 어느 근을 사용하여 도를 닦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위에서 밝힌 육근의 공덕 수량은 중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설명한 것일 뿐이다. 부처님은 도를 닦을 때 십팔계에 대하여 모두다 수행을 하셨다. 따라서 부처님 입장에서는 십팔계 중에서 좋고 나쁜 것이 없다. 그러나 중생은 십팔계를 전부다 닦을 수는 없으니까(25원통=십팔계+칠대), 이심원통(離深圓通)을 갖춘 이근(耳根)을 선택하여 수행하는 것이 좋다. 일문으로 들어가서 허망이 없어지면 육근이 일시에 청정하게 된다. 그래서 전등록(傳燈錄)에서는 망심무처즉보리(妄心無處卽菩提)라 했다. 망심이 없어진 곳이 곧 보리다. 따라서 하나에 들어가서 허망이 없어지면 육근이 동시에 다 청정해진다. 하나를 잘 선택해서 마음을 닦아야 한다.
수행이 필요하다
아난이 도를 닦는[逆流] 방법을 묻는다. ①순류문(順流門)은 본각에서 삼세육추로 나와서 중생이 되는 것이고 ②역류문(逆流門)은 삼세육추를 끊고 본각진여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중생의 번뇌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견혹(見惑)은 잘못된 견해에 따른 번뇌로서 속칭 '안다병' 에 해당되며, 이치를 바르게 이해하면 제거할 수 있는 의혹이다. 견혹은 수다원과인 견도위(見道位)에서 끊을 수 있는 번뇌이다. 견도위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깨달은 상태이다. 관(觀, vipasyana)을 통하여 번뇌를 끊는다. ②수혹(修惑) 또는 사혹(思惑)은 애욕과 같은 습관적 또는 감성적 번뇌로서 좀처럼 고치기가 어렵다. 비록 아공과 법공을 깨달았지만 아직 마음 한 구석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수행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다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되지만, 눈에 보이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천년 묵은 우물의 때를 닦는 것처럼 선정을 통해서 오랫동안 닦아야 버려진다. 수혹은 사다함 이상의 수도위(修道位)에서만 끊을 수 있다. 지(止, samatha)를 통하여 번뇌를 끊는다.
아난은 아직 수다원과에 머물러 있으므로 육근 가운데서 생주이멸하는 번뇌들은 처리할 수가 없다. 육근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번뇌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알 수가 없다. 마음은 생주이멸하고, 세계는 성주괴공하고, 사람은 생로병사를 한다. 분제두수(分劑頭數)란 여러 가지 번뇌의 수를 말한다. 분제(分劑)는 약(藥)의 숫자이고 두수(頭數)는 동물의 숫자로서 수가 많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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