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산악회 윤지미산행 계획에 따라 '지기재 → 신의터재 → 무지개산 → 윤지미산 → 화령재'의 16.22km를 6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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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터재
높이: 280m
위치: 경북 상주시 화동면
신의터재는 해발 280m의 고개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개머리재에서 화령 구간은 개머리재를 시작으로 지기재, 신의터재, 윤지미산,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에 위치한 화령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신의터재는 임진왜란 이전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렸던 고개로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장이었던 김준신이 의병을 모아 큰 공을 세우고 임진년 순절한 후부터 신의터재로 불렸으면, '지방의 관리나 귀양 중인 옛 벼슬아치들이 나라님(御)으로부터 승진, 또는 복직 등 좋은 소식(義信)이 오기를 기다리는 고개'였다는 사연이 전해지는 고개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민족정기를 말살한다고 '어신재'로 개명되었으나,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이름은 되찾은 사연 많은 고개이다. - 산림청, 상주시
윤지미산
높이: 538m
위치: 경북 상주시 화동면
경북 상주에 위치한 해발 538m의 산
백두대간 중 경북 상주 화서면과 내서면 경계를 지나는 백두대간 능선에 높낮이가 거의 없는 산이다.
30번 고속도로 화서 2터널 동편 끝 바로 우측으로 보이는 윤지미산은 신의터재~무지개산 갈림길~438봉~윤지미재~화령재 백두대간 코스 중 하나인 산이다. - 정상의 소개문
화령[火嶺]
높이: 320m
위치: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령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에 있는 고개로 원래 이름은 화령(化寧)이었으나, 지금은 화령(化寧)이 화령(火嶺)으로 바뀌었다. 이는 시대의 가치관이 변한 탓으로 보인다.
이 지역이 삼국시대부터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많이 일어난 국경 지역이고, 신라의 김유신이나 후백제의 견훤이 중요시했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6·25 때에도 이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라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탓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해서 '불 화(火)'자를 붙인 탓에 평안한 땅 화령(化寧)이 불길이 끊이지 않는 봉우리인 화령(火嶺)이 된 듯하다. 그러나 화령에 설치된 비석에는 화령을 고려 때 이곳 일대를 관할하던 화령현(化寧縣)의 지명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에서 인지 옆에는 화령재라 표기된 비석이 세워져 있다. - 산림청, 상주시
9월 3주 차 정기산행은 18번째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 지기재에서 화령재까지 달릴 예정이다. 지기재는 백두대간 연결 산행을 시작하고 3번째인 2022년 3월 29일 같은 산악회를 따라 지기재에서 큰재까지 달릴 때 들머리였다[산행기]. 그리고 화령재는 2022년 3월 5일 백두대간 종주를 알리는 산행으로 피앗재에서 화령재까지 구간의 날머리였다[산행기]. 그리고 보니, 대개 구간을 나눠 종주하는 산행은 날머리가 다음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데, 지기재는 두 번 다 들머리, 화령재는 날머리다. 백두대간 종주를 제대로 하는 대간꾼은 북진이든 남진이든 하나를 택해 달리지만, 어설픈 종주자라 북진, 남진 따지지 않고, 시간이 맞으면 따라나선 결과다!
1대간 9정맥 종주는 관심 없던 시절, 유명한 산과 높은 산을 거의 다 오른 후 더는 오를 산이 없어 그동안 다닌 산을 표기한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백두대간의 70% 이상을 달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이걸 연결하면 백두대간 종주다. 그래서 탄생한 산행 계획이 백두대간 연결이다. 그런데 이 연결 산행의 치명적인 단점이, 이미 대간 상에 있는 조망이 좋거나, 산행이 재밌는 구간은 과거에 이미 다 올라, 남은 구간은 조망도, 재미도 없는 산과 능선이다. 쉽게 말해 백두대간에서 가장 별 볼 일 없는 구간이다. 종주가 목적이 아니면 절대 찾지 않을 산과 능선! 그리고 이번 지기재, 화령재가 조망 없고 재미없는 구간을 대표할 만한 연결 코스다. 어떤 산악회는 16km가 넘는 코스를 4시간이 안 걸려 주파했다니, 말 다했다.
이 구간에는 무지개와 윤지미라 알려진 두 산이 있는데, 구글링으로 정보를 얻고자 했으나, 어디에도 소개가 없다. 추측건대 무지개라 칭하는 산은 봉우리에 무지개가 자주 걸려 붙인 이름인 거 같은데, 대간꾼이 윤지미라 부르는 산은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윤지미"라는 여성 대간꾼이 너무 힘들어, 정상에서 울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썰이 있다는 게 구글링 결과다. 믿거나 말거나! 사실이라면 가평의 유명산과 더불어 여성 산꾼의 이름이 붙여진 (내가 아는) 두 번째 산이다. 그래도 유명산은 마유산이라는 좋은 이름을 산악회 산꾼이 동행한 여성의 이름으로 바꾼 거지만(마유산이라는 좋은 이름이 있는 걸 모르고, 무명의 산이라 생각하고 붙였다는 게 정설), 윤지미산은 애초 이름이 뭐였는지 알 수 없다. 그 주변 동네 사람이 부르는 이름이 있겠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질 만한 산이 아니라, 산꾼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말인즉 별 볼 일 없는 두 산이라는 얘기다.
볼 것도 재미도 없는 산에 거리는 보통 15km~20km에 이르고, 시속 2.5km~3km로 달려야, 버림받지 않고 산악회 버스를 타고 무사히 서울로 돌아갈 수 있고, 날머리에는 씻을 곳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 많아, 그동안 등산방 친구들에게 같이 가자는 소리를 안 했다. 그런데, 혼자만 즐긴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친구도 있고, 그와는 별개로 일요일이 아니면 산에 갈 수 없는 친구가 있어, 사정이 어떻다는 걸 구구절절이 알려주고 그래도 갈 생각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등산방에 산행 계획을 알렸다. 그 결과 여성 산꾼과 일요일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친구가 손을 들어 셋이서 이 구간을 같이 달린다. 산행 당일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현재는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예보라 최악의 코스에 비까지 뒤집어쓰면 감당이 안 되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습도가 높고, 체감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건 문제지만!
날머리인 화령재는 식당도 개울도 없는 2차선 국도가 통과하는 허허벌판이다. 고로 쉬운 코스라고 달려봐야 허허벌판에서 다른 대간꾼이 도착하기를 멍청히 기다려야 한다. 다른 친구는 모르겠지만, 나는 최대한 대간 구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공식 마감 30분 전에 날머리인 화령재에 도착하는 산행을 할 예정이다. 점심은 양재역 청과물 가게표 김밥! 아니면 두 친구와 얘기해서 주차장에서 삼겹을 굽거나, 라면을 끓여? 그러려면 두 친구가 16km를 3.2km/h 달려, 5시간 이내에 화령재에 도착해야 한다. 4시간이 안 걸린 산악회가 있는 걸 보면 어려운 건 아닌데, 문제는 장거리를 뛰어본 경험이 있느냐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나, 일단 얘기는 꺼내 보고.
산행 하루 전 두 친구와 얘기해,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화령재에서 술판을 벌이기로 했다. 최소 5시간 이내에 마감한다는 전제하에. 해서 내가 버너와 코펠, 라면과 김치, 소주 등을 준비하고 여성 동무가 안주로 홍어 무침을 준비하기로 한다. 그리고 라면 끓일 물은 다른 친구가. 이렇게 배분하고 배낭을 싸고 보니, 평소 들고 다니던 디팩에 버너와 코펠, 라면 두 개가 든 디팩 하나, 라면 하나와 햇반, 소주, 냉장용 얼린 500mL 생수병이 든 검정 봉지에, 버스 내에서 사용할 물건이 든 파우치, 와중에 테이블과 버너용 바람막이까지. 해서 평소 메고 다니던 작은 배낭에는 다 안 들어가는 불상사가 생겼다. 옆자리가 비어, 산행에 불필요한 물건은 꺼내 놓고 달리지만, 자체 무게가 만만치 않은 큰 배낭은 달리는데 부담이라, 배낭을 바꾸기보다는 포장을 다시 해 작은 배낭에 쑤셔 넣는 데 성공했다. 물론 무게는 평소의 3배 이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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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기상해 늘 그렇듯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은 후 미리 준비해 둔, 평소의 3배가 넘는 배낭을 둘러메고, 불광역행 마을버스 시간에 맞춰 5시 45분에 집을 나서, 6시 40분경 등산객의 성지 양재역에 도착했다. 비록 산행 후 하산주 자리를 만들기로 했으나, 인간의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지라, 지하 청과물 시장에서 김밥 한 줄 사서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고, 12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 앞으로 갔다. 그리고 서초구청 주차장 석축을 보니, 이미 다른 등산객이 차지하고 있어,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데크 계단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아, 청과물 가게에서 산 김밥을 디팩에 제대로 넣고, 왼쪽으로는 버스 도착을 오른쪽으로는 양재에서 같이 타는 친구 도착을 주시했다.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서 7시에 출발 예정인 안내산악회 버스가 6시 59분 선운산행을 선두로 속속 도착했다. 늘 그렇듯이 위에서부터 사열하듯이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찾으며 끝까지 내려갔는데, 없었다. 양재에서 같이 타야 할 친구도 도착 전이고. 선입선출이라고 이미 도착한 버스가 승객을 태우고 떠난 빈자리를 막 도착한 버스가 채우는 시스템이라, 위로 올라가 다시 사열하며 내려오려는데, 친구에게서 역에서 나와 내려오는 중인데, 버스가 떠나지 않았느냐고 전화가 왔다. 아직 버스 도착 전이라고 알려주고, 양재역 방향으로 올라가며 보니, 친구가 내려오는 게 보인다. 그 친구와 만나, 다시 우리 버스를 찾아 사열하듯이 내려가며 보니, 앞창 LED에 “윤지미산”이라고 빛나는 우리 차가 끝에 있었다.
산행 하루 전 오전까지만 해도 옆자리가 비어 있어, 버스에 타서 자리를 잡은 후 차에 둘 것과 산행 중 필요한 걸 분리할 예정 있었다. 문제는 그사이에 승객이 그 자리를 신청하는 바람에 그게 불가능해졌다는 거. 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계단에 앉아서 짐을 분리한 후 배낭은 짐칸에 넣을까 했는데, 그러기에는 손에 들고 탈 짐이 너무 많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사당에서 타고 오는 친구의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럼 배낭을 그 친구 옆자리에 뒀다가, 휴게소에서 짐을 분리하면 된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일단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에 탔다. 그리고 사당에서 타고 온 친구와 인사 후 그 옆자리에 배낭을 두고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예정인 7시보다 5분 늦게 국립외교원 앞을 떠난 버스는 죽전 간이 버스정류장에서 남은 승객을 태운 후, 일요일이라 그런지 막힘없이 고속도로를 달려, 8시 25분에 ‘문의 청남대 휴게소’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 깨어보니, 휴게소다. 그런데 ‘문의 청남대’는 초면인 거 같은데, 정확한 건 아니다. 아침 식사 또는 볼일, 그 밖의 목적으로 거의 모든 승객이 내렸으나, 잠에 취한 두 승객과 휴게소에서 짐을 분리해야 하는 나만 버스에 남았다. 내릴 승객이 다 내린 걸 확인 후 뒷자리에 있는 친구 자리로 가 배낭에서 버스에 둬야 할 것들 꺼내 빈자리에 두고 운행 중 떨어지지 않게 안전띠로 묶어 놓았다. 그리고 산행 중 필요한 것만 든 배낭을 들고나와 짐칸에 넣었다. 지기재에 도착했을 때 대간꾼들이 버스에서 내리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뒤로 가 배낭을 들고 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서다.
딱히 볼일 급한 건 아니나, 이왕 버스에서 내렸으나, 화장실에 들른 후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주차장을 보니, "가족 산악회"라고 쓴 관광버스 두 대가 보인다. 휴게소에서 흔히 관광버스이나, 내 눈길을 끈 이유는 승객의 분위기로 봐서는 등산이 아니라 관광이 목적인 산악회? 같고, 긴 줄이 늘어서 있어 뭔가? 가 보니, 아침을 배식 중이다. 이런 분위기의 산악회는 선거철에 많이 볼 수 있는데, 어느 지역에 선거가 있나?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어, 그러려니 하고 버스로 돌아가 자리를 잡고 앉아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승객이 탑승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한다. 백두대간 중 가장 쉬운 코스에 속하고, 대개 5시간 정도에 마감하고, 별도의 주의 사항도 없어, 지도를 인쇄하지 않았다며 얘기를 끝낸다.
대장의 설명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라 새삼스럽지 않은데,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걸 깨닫게 했다. 대간 종주 팀이 계획한 산행은 아니나, 대간의 한 구간이라 참석한 대부분이 백두대간 종주자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대간꾼에게 산행 1시간 단축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인즉 모두가 1시간을 단축한다면, 주위에 시간을 보낼 식당이나, 계곡이 없는 한 1시간 일찍 서울로 출발한다는 얘기다. 대장도 분명히 언급했고. 고로 하산주라도 한잔하려면, 1시간이 아니라, 최소 1시간 반 가까이 단축해야 한다. 라면 끓이려면 2시간! 계획보다 30분 빠른 9시 29분에 이번 윤지미산행의 들머리이자, 백두대간 연결 지점 중 하나인 지기재에 도착했다. 이미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순간 등산 준비를 마친 상태라, 바로 버스에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낸 후 주변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두 친구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술판을 벌이려면 1시간이 아니라, 최소 1시간 30분의 단축이 필요함을 주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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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일단 산행 마감인 3시 30분, 2시간 전인 1시 30분까지 날머리인 화령(火嶺)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하자고, 얘기 후 지난 3월 29일 큰재까지 3번째 백두대간 연결 산행을 시작했던 곳으로 가 다시 지기재 소개문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지난번과는 반대 방향으로 화령을 향해 출발했다. 몇몇 지도에는 화령재로 나오지만, 역전앞이 前과 앞이, 초가집이 家와 집이 동어반복이듯이, 嶺과 재가 동어반복이다. 고로 화령이라 부르는 게 맞다. 비록 지도와 이정표에는 화령재라고 표기된 곳이 많으나, 표지석과 그 옆의 소개문에는 불의 재, 火嶺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화령 소개문을 주의 깊게 읽다가,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과거에는 화령(化寧)재라 불렸다고. 령이 재 령(嶺)이 아니라 편안할 녕(寧)이다. 그럼 ‘화령재’라 부르는 게 맞는데?! 전쟁을 좋아하는 왜놈의 영향으로 '화령(火嶺)’으로 부르는 거 같은데, 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옛 지명인 화령(化寧)재라 부르겠지!
지금도 사용하는 거로 보이는 대간 상에 만들어진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해, 300여 미터가량 올라가자, 임도 갈림길이 나타났고, 대간은 좌로 꺾이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임도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가다가 선두에서 가던 등산객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자리를 양보한다. 해서 나도 멈춰, 같이 양보했다. 그 상황을 잘 모르는 여성 동무가 왜 양보하냐고 물어, 밤새 내린 이슬을 뒤집어쓰기 싫어서라고 얘기해줬다. 큰 소리로 얘기했으니, 주위의 모두가 들었고, 그걸 감수할 만큼 희생정신이 투철한 대간꾼이 앞장섰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데, 앞서가던 기영이 놀란 목소리로 이게 뭐지 하고 소리친다. 당연히 뱀이라고 생각하고 뱀을 찾기 위해 그쪽을 봤는데, 두꺼비다. 산에서 두꺼비를 보는 건 10년이 넘은 거 같다. 해서 서둘러 카메라를 꺼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안 들어 제대로 된 사진은 찍지 못하고, 간신히 구별이 잘 안되는 사진 몇 장만 찍을 수 있었다.
구 임도를 가로지르는, 오랜만에 만난 두꺼비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해프닝을 벌이는 동안 선두에서 중간으로 뒤처졌다. 두꺼비가 숲으로 완전히 들어가 더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태라 동영상을 남기겠다는 희망을 포기하고 대간꾼을 따라, 작은 언덕을 올라간 후 능선을 따라가며 아래를 보니,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란히 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등산객이 보인다는 거. 그들이 우리 일행은 아닐 거라고, 자위하며 계속 전진하는데, 대간은 그 포장도로를 향해 내려간다. 역시 예상대로 반대로 갔던 등산객은 앞서가는 대간꾼이었다. 그리고 왔던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다. 도로 때문에 등산로가 변한 듯하나, 사유지일지도 모를 대간에 길을 낼 용기가 없어 그들을 따라 포장도로로 갔다. 백두대간 연결 산행을 하는 동안, 고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는 게 비일비재하다.
포장도로를 따라 200여 미터를 위로 가자, 다시 등산로는 산으로 들어가는데, 상식적으로 포장도로와 나란히 달린 능선이 대간일 텐데, 왜 포장도로를 따라가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대편의 능선을 살펴보니, 수풀 사이로 농로로 보이는 길과 밭이 보인다. 예상대로 사유지다. 왜 도로 옆으로 능선이 있건만, 포장도로를 달려야 하는지 상황 파악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등산로로 접어든 시각이 9시 43분이다. 이제부터는 정말 찍을 것도 쓸 것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묵묵히 북진할 뿐이다. 가끔 보이는 이정표의 남은 거리와 등산 앱이 알려주는 현재 속도를 비교해 화령재 도착 시각을 추측하면서. 와중에 가끔 임도나, 농로를 만나, 따라가기도 하고 가로지르기도 하며 4.3km/h로 달려, 10시 33분에 거대한 비석 뒷모습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덕유산에서부터 조령산까지의 주요 지점을 표기한 신의터재 표지석의 뒷면이다. 대간을 달리기 시작해 1시간 5분 만에 이 구간 주요 고개 중 하나인 신의터재에 도착했다. 들머리인 지기재에서 4.4km의 거리다. 표지석의 뒷면을 사진으로 찍은 후 앞으로 돌아와 정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신의터재 소개문과 주변 표지를 사진으로 남기고, 다른 대간꾼이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우리는 다음 목표인 윤지미산을 향해 바로 출발했다. 역시 볼 거라고는 가끔 보이는 이정표가 다인 대간 위의 등사로이나, 지금까지와 다른 게 있다면 가끔 밤나무 숲을 통과할 때는 주인이 털어가고 남은 밤을 줍는 대간꾼이 보인다는 거다.
고도가 낮은 지역답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거로 보이는 임도인지 농도인지를 따라가기도 하며 달려, 11시 28분에 '노간주나무 군락지'를 지나는데, 배가 고프다, 목표한 시간 안에 화령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중요해, 선제적으로 에너지를 보충할 필요가 있음을 느껴 양재역에서 산 김밥을 꺼냈다. 이미 각자의 체력에 맞게 화령재를 향해 흩어져 달리고 있어, 친구들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해서 다른 대간 산행 때와 같이 김밥을 먹으며 계속 달렸다. 그런데, 김밥을 꺼낸 위치가 좋지 않았다. 봉우리 오르막을 숨이 가쁘게 오르며, 김밥을 먹자니 죽을 맛이다. 그렇다고 물이 충분한 것도 아니어서, 김밥을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으나, 체력을 보충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봉우리에 올랐다. 물도 일기예보를 보고 충분한 양이라 생각하고 들고 왔는데, 흐릴 거라는 예보와 달리 햇살이 내리쬐는 날씨라, 부족했다.
김밥을 먹어 매이는 목을 한 모금의 물로 달래고, 나름 높아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해 보니, 무지개산 갈림길이다. 산행 전 지도를 보며 무지개산은 백두대간 위에 있는 게 아닌데, 코스에는 무지개산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대간은 지도와는 다른 형세인가 궁금했는데, 역시 예상대로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있다. 말인즉 대간 종주가 목적인 대간꾼에게는 굳이 가보지 않아도 되는 산이라는 얘기다. 그때 시각이 11시 44분이고, 이정표에 의하면 최종 목표인 화령재까지 거리는 7.4km, 소요 시간은 2시간 40분이다. 그리고 무지개산 왕복에 400m! 이정표의 정보만 놓고 보면, 화령재 도착 시각은 14시 24분이다. 즉 마감 3시 30분, 1시간 6분 전인 2시 24분이다. 최소 한 시간은 단축한다는 거다. 그건 이정표 얘기고, 지금까지 달린 속도를 계산해 보면, 7.4km에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해 두 시간 이상 단축할 수 있다. 물론 북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진다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왕복 400m에 불과한 무지개산 왕복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거고!
배낭을 벗어 한쪽 구석에 두고 카메라와 핸드폰만 들고 무지개산으로 향해 가다가, 무지개산을 다녀오는 두 명의 등산객을 만났다. 그 둘과 교차해 무지개산을 향해 가며 보니, 정상에는 점심을 먹고 있는 등산객이 있어, 방해되지 않게 조심해서 정상석 대신 '대전원진사람들'이 나무에 매단 명패를 사진으로 남겼는데, 그 시각이 11시 51분이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으나, 딱히 볼 만한 것도 없어, 바로 정상을 떠나, 갈림길로 돌아가는데, 앞에서 두 친구가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무지개산에 가자!'와 '뭐 하러 가냐?'로 논쟁하는 소리로, 여성 동무는 다녀오는 걸, 남성 동무를 갈림길에서 기다리는 걸 선택했다. 그리고 무지개산으로 올라오는 친구가 보이는 순간, 가봐야 시간만 아까운 산이라, 돌아가라고 손짓했다.
갈림길에 놓아두었던 배낭을 짊어지고 다시 화령재를 향해 달려, 12시 53분에 지도에 이정표라 표기된 곳에 도착했다. 처음 지도에서 이정표라는 걸 보고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나무에 매단 백두대간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다. 보기에는 백두대간이 직진하다가, 좌회전하는 곳에 있는데, 처음에는 그걸 보고, 이거 없었으면, 큰 낭패 볼 뻔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좌회전해 능선에 올라서자 그 생각이 바뀌었다. 직진하는 길도 빙 돌아서 능선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고로 직진보다 거리가 조금 짧을 뿐, 소위 얘기하는 알바할 일은 없었다. 어쨌든 그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두 사람이 보여, 반대편에서 출발한 대간꾼이라 생각했는데, 복장과 들고 있는 무기를 보니, 약초를 깨러 온 식당 하는 부부로 보였다. 송이를 채취하러 온 게 아닐까?
이정표가 있는 능선에 올라서자, 계속되는 오르막길이다. 이 구간에서 제일 높은 윤지미산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생각보다 경사가 급한 봉우리를 몇 개 넘는 동안, 무지개산을 다녀올 때 만났던 두 등산객을 추월했다. 먼저, 남성을 추월하고, 작은 봉우리에서 쉬고 있는 여성 등산객을 추월해 어쩌다 보니, 내가 이번 산행 선두가 됐다. 다 주님의 유혹 덕이다. 비록 해발 고도는 538m에 불과하나, 마지막 깔딱은 쉽지 않아 중간중간 쉬기를 반복하며 올라 1시 14분에 윤지미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배경으로 바로 따라온 남성 등산객과 상부상조로 인증을 남겼다. 힘겹게 윤지미산에 올라왔는데, 정상이 이 모양이냐고, 투덜거리는 등산객을 보니 대간꾼이 아니라, 윤지미산이 목적인 등산객이 맞다는 걸 인정하고, 그를 뒤로하고 2.7km 거리의 화령재로 출발했다.
2.7km 거리의 화령재로 출발한 시각이 1시 15분으로 목표인 1시 30분까지 도착은 틀렸다. 역시 우려대로 북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고, 기복이 심해 쉽지 않은 산행이다. 백두대간 산행을 해본 경험에 따르면 남은 2.7km도 만만치 않을 거라, 목표 단축 시간을 2시간이 아닌 1시간 30분으로 변경했다. 그럼 45분 만에 2.7km를 가면 되니,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역시 예상대로 윤지미산을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비가 만든 물길에 중간중간 통나무 계단을 놓긴 했으나, 관리가 되지 않아, 오히려 더 위험했다. 그나마 안전시설로 밧줄이 있는 게 다행. 힘겹게 급경사를 조심조심 내려가자 눈이 번쩍 뜨이는 묘가 보인다. 묘 아래로는 임도인지, 묘까지 차량을 들어올 수 있게 만든 것인지 모를 도로도 보이고.
1시 36분에 화령재에서 1.8km 거리의 이정표에 도착했으니, 윤지미산에서 900m를 내려오는데, 21분이 걸렸다. 남은 구간이 지금과 비슷하다면, 42분이 걸린다는 얘기라, 목표한 2시 도착도 틀렸다. 무언가 이상하지만, 워낙 정비되지 않은 급경사라 이해한다. 어쨌든 바꾼 목표를 달성하려면, 24분 만에 1.8km를 가면 되는데 등산로 조건에 달리기는 했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라, 일단 달려보기로 했다. 이정표를 지나자 저 앞으로 차량이 보인다. 벌써 도로? 해서 내려가 보니, 임도에 서 있는 심마니의 차다. 그리고 한두 대가 아니다. 아까 본 심마니가 동네에서 식당을 하는 부부라는 예측이 맞을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시각 1시 48분 화령재까지 남은 거리는 1km다. 800m를 오는데, 12분이 걸렸다. 역시 백두대간은 끝까지 안심할 수 없다. 다만, 이정표마다 거리가 제멋대로라,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임도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윤지미산까지 1.7km가 아니라, 1.9km다!
고속도로 터널을 통과하는 각종 차량의 소음과 내리쬐는 햇살에 짜증이 난 상태로 이런저런 생각 하며 임도를 따라가다, 커다란 농원 앞에서 우회전하자, 터널 위에 만들어진 도로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능선이 보인다. 상식적으로 저 능선 위에 등산로가 있어야 맞다. 해서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그런데, 능선과 도로가 비록 표고차는 있을망정 대단히 가까운 거리라, 명확하지 않다. 해서 터널을 지나, 조금 더 가서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예상대로다. 등산로는 능선을 따라간다. 짜증 나는 주변 환경과 잡생각에 임도 갈림길을 지나쳤다. 심마니 차량이 주차해 있는 곳에 갈림길이 있었을 거 같은데, 차에 가려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돌아가는 건 내 성격상 용납이 안 된다. 지도를 잘 보니, 계속 임도를 따라가다가 앞에서 우회전하면 화령재로 갈 수 있다.
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 우회전해서 들어가 보니, 사유지 가옥이다. 그리고 막아놨다. 개활지라면 사유지라도 넘어가겠지만,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으나, 남의 집으로 들어가는 아무리 법 없이 사는 무법자라도 할 일이 아니다. 해서 오면서 본 개활지로 능선으로 올라가기로 했다(위 지도의 빨간 선). 수풀이 우거진 개활지(경작하지 않는 밭인 거 같은데)를 통과해 백두대간에 도착한 시각이 2시 5분으로 이미 목표 시간을 초과했다. 제대로 갔어도 제시간에 도착했을까 의심스러운 마당에 길까지 만들며 갔으니, 늦는 거야 당연하고. 어쨌든 다시 만난 대간을 따라 600여 미터는 정도를 가자 저 아래로 빨간 버스가 보인다. 화령재다. 현재 시각 2시 12분, 변경한 목표보다도 12분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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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재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알바를 하는 사이에 추월했던 두 명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날이 뜨거워서 그런지 예상보다, 다른 대간꾼이든 등산객이든 많이 늦는 분위기라, 라면을 끓여도 문제없을 거 같아, 먼저 화령재 소개문과 표지석을 사진으로 남긴 후 버스에 탔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술과 안주, 라면을 끓이는데 필요한 디팩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화령재에 있는 정자인 화령정(火嶺亭)으로 올라갔다. 땀을 말리기 위해 웃통을 벗어 정자 난간에 걸쳐 놓은 후 두 친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데, 중간에서 부상으로 백두대간 이정표에서 만났던 부부 심마니와 같이 마을로 하산한 기영이 택시를 타고 도착한 직후 미옥도 도착했다. 대단한 친구다. 모두 도착한 걸 확인하고 먼저 라면을 끓였다.
라면이 끓는 동안, 테이블을 설치하고 미옥이 가져온 홍어 무침을 안주로 맥주와 소주를 마셨다. 물론 술을 마시며 버스가 있는 쪽의 동향을 놓치지 않고 확인했다. 우리 때문에 늦게 출발한다는 오명을 쓰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모두 도착한 거로 보이면 재빨리 버스로 달려가기 위해서다. 와중에 정자 바닥에 누워 지친 다리를 풀어주기도 하며, 라면과 홍어 무침을 안주로 술을 마셔, 모두가 도착한 거로 보이는 순간 미리 마감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채 1분이 걸리지 않아, 술자리를 마감하고 우리가 있었다는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공식 마감보다 10분 빨리 버스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번 코스가 생각보다 힘들었는지, 마감 3시 30분의 5분 전에야 모두 도착했다. 역시 산악회가 소요 시간을 아무 개념 없이 책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마감 시각 전에 도착해, 3시 30분이 되기 전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해, 3시 44분에 속리산 휴게소로 들어갔다. 날머리인 화령재에 씻을 만한 곳이 없어, 대간 산행 중 흘린 땀을 씻기 위함이다. 씻을 사람 씻고, 볼일 볼 사람 볼일 본 후 속리산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는 1차로 죽전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예상보다 빠른 5시 38분에 양재역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안내산악회 윤지미산행 계획대로 '지기재 → 신의터재 → 무지개산 왕복 → 윤지미산 → 화령'의 17.78km(트랭글)를 4시간 46분 동안 달렸다. 모든 알바가 그렇듯이 생각지도 못한 알바로 거리와 시간이 조금 늘었다. 이동 4시간 46분, 기록상으로 휴식이 없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기온이 높고 햇살이 강해 쉽지 않은 산행이었다.
예상대로 볼 것도 즐기는 것도 없는 구간으로 백두대간 연결이 목표가 아니라면 절대 가지 않을 산이다. 속리산 휴게소에서 보이는 구병산이 장관이다!
지기재에서 화령재를 연결해, 속리산 구간만 연결하면 추풍령에서 버리미기재까지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