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발라는 포르쉐를 튜닝하던 초기부터 지금까지 약 30년 이상 동안 가장 성공적인 포르쉐 튜닝 전문업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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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발라는 세계적인 튜닝 브랜드 중에서도 고급/고성능 튜닝 브랜드 그룹에서 단연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겜발라는 극한을 지향하는 퍼포먼스에서 나오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공하는 최고성능과 세련되면서도 과격한 디자인은 최고를 지향하는 모든이들을 만족시켜 주고 있다. 때문에 전세계 튜닝산업의 수준을 가장 앞서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6년에는 레온버그로 그 규모를 확장한 겜발라는 여러 설비를 늘렸으며, 이로인해 자동차 애호가의 궁극적인 요구사항까지 충분하게 대응할 수 있으며, 단순한 즐기기 수준부터 스포츠 드라이빙을 거쳐 고성능 레이싱 수준까지 완벽하게 맞출 수 있다. 약 5,000평방미터의 확장된 부지에 설립된 겜발라 본사에는 쇼룸, 상담실, 정비 및 수리 웍샵, 튜닝 작업장, 연구개발실, 부품창고 그리고 사무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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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발라의 컨버전 및 부품 프로그램은 모두 현재 제공되는 포르쉐 전체 모델을 대상으로 하며, 기술적, 시각적 모든 측면에서 포르쉐 튜닝업계는 물론 다른 브랜드를 포함한 업계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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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1년 8월 22일 기록된 뉴르브르그링크 노드쉘레이프 구간의 겜발라 911 포르쉐 모델 주파기록은 오늘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겜발라 GTR 600은 당시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 흔들었던 7분 32.5초라는 기록을 수립하였고, 2004년 튜너 그랑프리 호켄하임 써킷에서 GTR 650 EVO-R이 일반 공도용 차량으로 1분 7초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하여 모든 자동차 관련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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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겜발라는 2006년 10월 이후 겜발라코리아를 통해 한국에 공식 수입을 독점적으로 하고 있으며, 추후 포르쉐의 슈퍼카 카레라 GT(605마력)를 베이스로 한 1000마력 성능의 겜발라 미라지 GT를 겜발라 본사에서 준비중에 있으며, 2008년 중으로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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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RUF)
1939년 알로이스 루프 1세(Alois Ruf Sr)에 의해 일반 서비스샵인 ‘아우토 루프(Auto Ruf)’로 시작한 `루프`는 1963년 포르쉐 356을 베이스로 독자적인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1974년 알로이스 루프 2세가 대표가 된 후 기술혁신을 거듭했는데, 그는 극한의 퍼포먼스보다는 밸런스를 중시했고, 일반 도로용으로는 물론 출퇴근용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지향하며, 포르쉐 911 고유의 다이내믹한 특성을 살리는데 회사의 방향을 집중시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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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처음으로 911은 `루프`로 재탄생 되었는데, 2년 후 3.3리터로 배기량을 높인 터보 엔진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루프`는 그 당시 포르쉐 터보에 탑재된 4단 변속기의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1981년 5단 변속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등 자동차 공학에 있어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발전을 거듭한 루프는 1981년 독일 정부로부터 완성차 제조업자 인증을 받기에 이르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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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생한 자동차 제조사 `루프`의 첫 모델인 BTR은 1982년 출시되었는데, 배기량 3.4리터 터보 엔진(374hp)에 5단 변속기가 장착된 모델이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이 `루프`의 자동차 제작 역사가 시작됨을 알렸다. 1987년에 선보인 CTR은 3.4리터 469마력 트윈터보 쿠페로, 이 차의 최고 속도는 342km/h에 달해 당시 세계 최고 속도의 자동차로 명성을 떨쳤다. 90년대에는 엔진의 출력을 높여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인 `루프`는 이러한 고성능 모델을 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까다로운 미국의 배기가스 기준을 통과해 수많은 언론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카본 브레이크 디스크와 19인치 단조 마그네슘 휠을 일반 도로용 차량으로는 처음으로 장착한 `루프`는 레이싱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타입의 통합 롤케이지를 장착하여 안전도를 강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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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서는 각종 언론으로부터 슈퍼카 부문에서 페라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등을 제치고 가장 역동적인 자동차로 선정되는 등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루프는 다이내믹한 드라이빙의 묘미와 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제공하며, 다양한 선택사양 품목으로 고객의 취향을 살린 특별한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다. 현재 독일 바이에른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루프`는 국내에 `디렌모터스`를 통해 공식 수입/판매되고 있어 국내에서도 매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복스홀 (Vaux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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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생산되는 복스홀(Vauxhall) 자동차는 독일 오펠(Opel)이 영국의 구매층을 갖고자 하여 설립한 브랜드다.
복스홀은 Fulk Breant라는 유명한 용병의 문장을 본딴 신화속 동물 그리핀을 심볼로 사용한다.
GM은 유럽공략을 위해 1925년에 영국의 복스홀을, 1929년에는 독일의 오펠을 인수하였는데 이 업체는 다른 디비전처럼 각자의 브랜드를 그대로 내걸고 지금까지 차를 생산하고 있다.
복스홀에서 판매되는 차량 역시 원래 오펠에서 제작된 차량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똑같지만 운전석 등을 영국 실정에 맞게 제작하였으며, 모델명 또한 영국에 맞게 바꾸었다.
이처럼 미국의 GM(제너럴 모터스)에 합병되었기 때문에 복스홀 또한 GM 산하의 기업으로 자동차 메이커 보다는 판매용 브랜드에 가까우며, 현재에도 영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수출과 판매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설린 (Saleen)
1983년 당시 레이싱 드라이버로 활약하던 `스티브 설린(Steve Saleen)`은 자신의 이름을 딴 설린(SALEEN)이라는 튜닝전문 업체를 세우고 이듬해인 1984년부터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레이싱을 기반으로 한 설린은 제작뿐만 아니라 레이싱에서의 활약을 통해 자사에서 생산된 제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으며, 레이싱에서 얻게된 노하우를 통해 기술력과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1987년 SCCA 월드챌린지 챔피언쉽에 참가한 설린은 드라이버, 팀, 매뉴팩처러즈, 타이어 분야의 4개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었고, 1988년에도 이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1995년에는 미국의 연예인인 `스티브 앨런`과 손을 잡아 설린/앨런 스피드랩 레이스 팀을 결성한 설린은 1996~1999년 SCCA 챔피언쉽에서 우승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성능을 바탕으로 한 각종 레이싱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설린의 모델로는 포드의 머스탱을 베이스로 한 S281과 351, SR, 익스플로러를 개조한 XP8 등이 있으며, 머스탱의 세대교체에 맞추어 매번 컴플리트카를 만들어왔습니다. 유명 튜닝업체인 Porsche의 Gemballa나 RUF, TechArt 처럼 퍼포먼스와 익스테리어를 손봐서 완성된 차량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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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레이스 활동과 튜닝카 제작경험을 가지고 수퍼카 메이커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던 설린은 영국의 유명 레이싱카 제작사 레이멀록(RML)으로부터 많은 기술적 지원을 받아 자체생산된 고유모델이자 미국 슈퍼카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S7`을 출시해 독립된 자동차 제조회사로써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S7은 미국 포브스(Forbes)지가 선정한 가장 비싼 자동차에도 선정된 바 있습니다.
이렇듯 미국의 튜닝전문 업체이자 슈퍼카 메이커인 설린(SALEEN)은 국내에 크게 알려져 있진 않지만, 포드 머스탱 튜너로 선을 보인 바 있으며 최근 설린 S7을 업그레이드한 설린 S7 Turbo 모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제너럴 모터스 (General Motors Corp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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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Corporation)`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최대의 자동차생산 다국적기업으로 1908년 `윌리엄 듀런트(William Crapo Durant, 1861~1947)`에 의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1904년 당시 디트로이트에서 마차를 제조하던 `윌리엄 듀런트`는 마차를 대신할 교통수단으로 자동차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것을 사업의 수단으로 삼기위해 당시 경영이 악화되어 사정이 열악하던 `뷰익(Buick)`을 인수하였습니다. 뷰익을 인수한 듀런트는 생산체제와 다양한 분야의 개선을 통해 28대에 불과하던 뷰익의 연간 생산량을 9,000대 까지 끌어 올려 포드의 생산량을 앞질렀으며, 이러한 성공을 계기로 `올즈모빌(Oldsmobile)`을 인수하면서 1908년 `제너럴 모터즈 컴퍼니`로 사명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1910년 뷰익이 포드의 `T형` 모델에 밀려 판매부진에 빠지게 되었고, 이것 때문에 은행의 융자를 받는 조건으로 잠시 경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잠시 GM에서 물러난 듀런트는 시보레를 인수해 또 한번의 사업성공을 거두었는데, 규모가 커진 시보레의 주식과 GM의 주식을 맞바꾸어 다시금 제너럴 모터스의 경영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윌리엄 듀런트`는 캐딜락(Cadillac), 오클랜드(Oakland, `폰티악`의 전신) 등의 자동차 제조회사와 부품회사를 인수/합병하여 자동차 산업의 확대를 꾀하였으나, 1920년 사업확장과 경기불황으로 경영은 어려워지게 되었고 결국 경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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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의 진출을 위해 1925년에는 영국의 복스홀을, 1930년에는 독일 오펠을 인수한 제너럴 모터스는 이뿐만 아니라 1960년대에는 유럽의 소형차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 최초의 컴팩트카인 시보레 코르베어(Chevy Corvair)를 출시하였으며, 그것 또한 성공을 거두어 스포츠카 시장에 진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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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일본자동차의 견제로 인해 침체기를 겪은 제너럴 모터스는 외국의 회사와 합작을 통해 부품을 공유하는 월드카를 생산하여 이러한 침체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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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는 항공우주산업과 첨단공학 분야에도 진출하여 다양한 사업을 도전한 제너럴 모터스는 이후 흑인 중역의 기용, 일시해고자 10만 명에 대한 크리스마스보너스 지급 등 사원들의 복지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가장 모범적인 회사로써 앞서갔으며, 고객의 소득수준에 알맞는 차종의 다양화, 스타일링의 중시, 새로운 모델의 계속된 출시, 할부판매 등 판매의 혁신과 다양화를 통해 계속 진보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자 미국의 최대기업이 되었습니다. 뷰익, 캐딜락, 시보레, GMC, 올즈모빌, 폰티악, 새턴, 지오 등 8개의 사업부문을 통해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고 있으며, 호주 홀덴과 독일 오펠, 영국 복스홀, 스웨덴 사브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제너럴 모터스는 (자동차 부분만 해당) 국내 최초로 들어온 순종의 차(캐딜락)로 시작되어, 1972년 신진자동차와 기술제휴로 시보레(CHEVROLET 1700), 레코드(Record 1900)를 생산하면서 한국에 진출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대우자동차를 인수해 `GM대우`를 세워 보다 한국적인 기업으로 다가와 우리에게도 친숙한 메이커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
마이바흐 (Maybach)
국내에는 대기업 S그룹 회장의 차량으로 널리 알려진 마이바흐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창업자 중 한명인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와 함께 일하던 엔지니어 빌헬름 마이바흐(Willhelm Maybach)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1901년 다임러사의 기술책임자였던 마이바흐는 메르세데스의 첫 모델을 설계하였으며 꾸준한 연구개발로 자동차 기술발달에 큰 영향을 준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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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바흐는 1907년, 마이바흐 모토렌바우라(Maybach Motorenbau)라는 독립적인 회사를 설립하였고 뛰어난 기술력으로 아들인 칼 마이바흐와 함께 체펠린(Zeppelin) 비행선의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1919년부터는 당대 최고의 기술력과 고급스러움을 가진 자동차를 목표로 개발을 시작했으며 2년후, 체펠린 DS8이 완성되었습니다. 마이바흐에서 개발한 V12 엔진을 탑재한 최고급 승용차 체펠린 DS8은 1920년~1930년대 독일에서 가장 우수한 고급차로 인정받았지만 1941년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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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제네바모터쇼에서는 마이바흐의 생산이 중단된지 60여년 만에 전통과 현대적인 조화를 가진 최고급 승용차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빌헴름 마이바흐를 추모하는 의미이자 마이바흐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의미로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마이바흐의 상표권을 획득해 벤츠의 최고급 승용차 브랜드로 부활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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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탄생된 마이바흐는 전담 매니저(Personal Liason Manager) 및 엔지니어들과 개별 상담으로 고객의 취향을 반영해 만들어지며 마이바흐만을 위한 숙련된 엔지니어들에 의해 하루 5대 정도, 한 해를 기준으로 약 1천대 정도만 주문 생산하는 아주 특별한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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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자동차 (Shanghai Automotive Industry Corporation)
중국의 국영 자동차 그룹으로인 `상하이자동차(SAIC : Shanghai Automotive Industry Corporation)`의 공식 명칭은 `상하이기차공업총공사`로 중국 자동차 공업의 대표적인 대형 자동차 그룹입니다. 1915년 `상하이 바오창자동차`로 설립된 뒤, 1958년 시험 승용차 제작에 성공하였습니다. 1982년 독일 `폭스바겐`과 합작계약을 체결하였고, 1985년 `상하이 폭스바겐`을 설립하였습니다. 이것은 중국 개혁개방 이후의 첫 승용차 합작회사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활발한 합작활동을 통해 1997년에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각각 50%씩 출자하여 `상하이 GM`을 설립한데 이어, 2004년 10월에는 쌍용차 채권단으로부터 지분 48.92%를 매입하여 쌍용차의 경영권을 인수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경쟁사를 제치고 중국 최대의 자동차회사로 부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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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중국 최고의 합작 메이커로 선정된 상하이 자동차는 한국의 `쌍용자동차`를 인수함으로써 중국 최대의 승용차 제조업체에서 중국 최대의 자동차 제조업체로 성장하였습니다. 2004년에는 미국의 격주간 종합 경제지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그룹 중 매출액 117억 달러로 46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최근 영국의 MG Rover를 인수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하였으나 중국 난징자동차가 인수하게 되자 난항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MG Rover의 일부 지적 재산권을 인수하게 되었고, 이를 자체개발 브랜드 프로젝트에 적용하게 될 계획에 있습니다.
상하이 자동차는 세계자동차 업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자체개발 모델과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까지 자체개발한 하이브리드 승용차를 소량 생산하여 `상하이-VW`의 하이브리드 승용차와 동시 출시할 계획이며, 하이브리드 버스 역시 소량 생산할 계획입니다. 또한, 2010년까지 하이브리드 승용차 및 버스의 대량 생산 실현과 연료전지 승용차의 소량 생산 및 시범 운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주요 생산 품목이 승용차, 버스, 화물차, 농업용 기기, 오토바이, 엔진 등인 상하이 자동차의 2005년 당시 종업원 수는 6만 4000명입니다. 자회사로는 상하이 GM, 상하이 폭스바겐 등 완성차 회사 7개, 자동차 부품 회사 32개, 서비스 회사 9개, 해외 현지법인 4개, R&D(연구개발) 센터 3개 등이 있고, 중국 내에 50여 개의 공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연간 자동차 생산 규모는 2003년 78만 대, 2004년 84만 대(이 중 승용차의 판매량은 61만 7천대)로 기록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으며, 최근 이렇게 급격한 규모의 증가로 인해 세계 10위권 자동차 메이커로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04년 그룹 총자산은 10조 5600억 원, 총 매출액은 26조 700억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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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자동차(FAW; First Autoworks)
폭스바겐, 도요타 등과 제휴 관계를 맺은 후 중국 자동차 시장을 석권한 `제일자동차(第一氣車, FAW, First Autoworks)`는 중국 최대의 자동차 제조사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이자, `훙치(紅旗)`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마오쩌둥의 의전차량을 만들기도 했던 제일자동차는 1953년 7월 15일 설립되었다. 50여 년간 중국 자동차산업 발전의 기반을 이뤄낸 제일자동차는 `제품 혁신` 및 `공장 개조`, `경차 및 승용차 개발` 등 세 번의 획기적인 발전단계를 거쳤다. 초기에는 트럭 생산이 전부였지만 점차 경차와 승용차도 생산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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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첫 중국산 자동차인 ‘제팡(解放)’ 중형 트럭을 생산한 제일자동차는 1958년 첫 중국산 승용차인 ‘둥펑(東風)’과 고급 승용차 ‘훙치(紅旗)’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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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는 독일 폭스바겐(Volkswagen)과 합자형식으로 연간 15만대 규모의 승용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설립한 제일자동차는 여기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를 70여개 국가로 수출하기도 했다. 2002년 `텐진자동차공업 유한회사`와 연합한 제일자동차는 같은 시기, 일본 도요타와 합작관계를 맺으면서 동북, 화북, 서남에 3대 생산기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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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동차 산업에서 선두적인 제품개발 능력을 갖춘 제일 자동차는 현재, 자산 총액 1,058억 위안, 약 13만 3,300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최대의 자동차 기업이다. 2006년 제일자동차의 매출액은 1,486억 6,500만 위안이었고, 세계 500대 기업 중 470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제일자동차는 중국의 자동차 메이커 중에서는 자체 브랜드의 비율이 비교적 높고, 2004년 업계에서 유일하게 판매대수 100만 대를 돌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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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1일에는 한국의 대우버스와 합작의향서를 체결한 제일자동차는 합작회사를 2008년 준공 및 가동할 예정이다. 이러한 제일자동차는 자체 브랜드 모델 육성을 위한 전략으로 B급 승용차를 자체 개발해 2009년 말까지 국제적으로 2류 이상의 수준에 도달할 계획에 있다. 트럭 생산에 대해서도 발전을 거듭해 반드시 세계 일류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제일자동차는2010년 이후에는 자체 브랜드에 의한 트럭 또는 미들 클래스 이하 승용차의 생산 시스템을 확립해 보다 큰 규모의 자동차 회사로 우뚝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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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 (McLaren)
1966년 쿠퍼 팀의 드라이버였던 영국의 `브루스 맥라렌`에 의해 설립된 `맥라렌(McLaren)은 설립자가 독립해 팀을 결성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 (Chrysler Corporation)
1909년 조나단 맥스웰(Jonathan Maxwell)과 벤자민 브리스코(Benjamin Briscoe)에 의해 설립된 크라이슬러는 설립 당시 U.S 모터 컴퍼니(United States Motor Company)라는 이름으로 불리웠습니다. 1913년 이후 조나단 맥스웰의 단독 경영으로 맥스웰 컴퍼니(Maxwell Company)로 변경되어 운영되었으며, 1922년 차머스모터카(Chalmers Motor Car)를 인수한 후 1925년 제너럴모터스(GM)의 초대 부사장인 월터 P. 크라이슬러(Walter P. Chrysler)가 사장에 오르며 회사명을 `크라이슬러`로 바꾸었습니다.
1928년 닷지 브라더스(Dodge Brothers)를 인수하여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로 규모를 키웠으며, 1950년대 이후 계속적인 합병과 인수로 그 규모를 더욱 커졌습니다. 1960년 머슬 카(Muscle Car)의 붐이 일어나 크라이슬러는 생산량과 판매가 급증하여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나 금융회사와 부동산회사를 설립하는 등 사업의 무분별한 확장과 오일 쇼크로 인한 경영악화로 1979년 프랑스 푸조를 매각하였고, 여러차례 부도위기를 겪었으나 리 A. 아이아코카(Lee A. Iacocca)의 경영하에 1983년말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1987년부터는 AMC를 인수로 지프 디비전을 더해 SUV와 미니밴 등 RV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하였으나, 1990년대 초 새차 개발을 소홀히 하고 항공기 메이커 인수 등 전과 같은 사업 확장으로 시장점유율과 매출이 큰폭으로 하락되어 내수시장에서 일본 메이커인 혼다에게 밀리게 되었습니다.
1998년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다임러벤츠와 합병으로 또 하나의 거대 자동차 기업인 다임러크라이슬러로 새롭게 출범해 현재 시장에서 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주) (Kia Motors Corporation)
기아자동차의 새로운 심볼마크는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영문 워드심볼마크(Word Symbol Mark)로 개발되었으며,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세계적 기업, 국제적 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기아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지구를 상징하는 유연하고 세련된 타원은 세계무대를 나타내며 타원 속의 영문 "KIA"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쉽고 동일한 발음으로 친근감을 느끼게하여 세계를 달리는, 세계속의 기아자동차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심볼마크의 색상은 태양의 정열을 상징하는 메인레드를 선정하여 생동감있고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기아의 힘찬 도약의지를 표현했습니다.
도요타 (Toyota Motor Corporation)
도요타자동차는 일본의 발명왕 도요타 사키치가 G형 자동방직기 특허권을 판 돈으로 그의 아들 키이치로에 의해 1933년 도요타자동직기제작소 내의 자동차부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37년 자동차제조회사로 독립한 도요타의 원래 회사명은 ‘도요다’였으나 더욱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도요타’로 변경하였습니다.
1938년부터는 고로모에 공장을 짓고 주로 트럭을 생산하는데 주력한 도요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사업기반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1950년 도산위기에 파업사태까지 겹치며 창립자인 키이치로 사장이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영악화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도요타는 한국전쟁의 발발로 미군으로부터 트럭 1천대를 발주받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1953년 TPS(Toyota Production System)의 도입과 그후 개발한 `크라운, 코로나`등의 승용차의 인기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1959년 승용차 전문공장을 건설하여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었으며, 1966년 소형차 ‘코롤라(Corolla)’를 출시하여 닛산을 누르고 일본 제일의 메이커로 우뚝섰습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더욱 많은 인기를 얻은 코롤라는 1983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누적생산 1천만 대를 돌파하였습니다.
1989년 북미시장 공략을 위해 `렉서스(Lexus)’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의 명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고, 다양한 급의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상위를 유지하면 자동차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도요타는 현재 자동차 시장뿐만 아니라 주택, 금융, 정보통신 쪽에도 진출하여 그 규모를 늘리고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Automobili Lamborghini S.p.A)
람보르기니의 심볼은 투우 문양으로 창립자인 페루치오가 태어난 때의 별자리가 황소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계 수퍼 스포츠카 시장의 대명사로 군림한 람보르기니는 최고의 성능과 값, 시대를 앞서가는 최첨단 스타일, 주문생산에 의한 희귀성 등으로 환상의 드림카입니다. 이러한 람보르기니의 탄생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에 의해서 입니다. 볼로냐에서 기술학교를 졸업한 후 공군정비병으로 일하며 좀더 전문적인 기술을 익힌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값싸고 낡은 군용트럭을 사들여 트랙터를 만들었습니다. 때마침 2차대전 후 피폐해진 이탈리아는 농업의 부활을 위해 많은 농기계가 필요했고 이러한 수요에 맞춰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센토에 작업장을 마련하고 48년부터 본격적으로 람보르기니 트랙터를 생산한 후 이러한 성공을 등에 업고 1963년 스포츠카를 제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페라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페라리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결점을 많이 보였습니다. 기계에 박식한 그는 이러한 문제점을 알아보기위해 페라리의 사장인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를 만나기 원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그러한 페라리의 무시에 자극을 받아 스포츠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람보르기니는 페라리 엔진 디자이너를 영입하여 페라리에 견줄만한 우수한 성능의 엔진을 개발하였습니다. 1966년 람보르기니는 제네바 모터쇼에 미우라(Miura)를 발표하였는데, 이 차는 0~100km에 이르는 시간이 불과 6.2초에 지나지 않았으며 최고 속도가 약 280km/h로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카였습니다. 1974년 생산된 카운타크는 최고 시속이 300km/h에 이르며, 지상 최고의 스포츠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페루치오는 1972년에 회사를 매각하였고, 이후 여러 회사를 거친 끝에 1998년 독일의 `아우디`가 인수했습니다. 그 후 최근에 와서 아우디가 폭스바겐에게 인수 합병 됨으로써 람보르기니는 현재 폭스바겐 산하에서 생산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람보르기니의 대표적인 모델로는 마우라와 카운타크 이외에도 디아블로, 최근 판매하는 자동차로는 무르치엘라고, 가야르도 등이 있습니다.
렉서스 (Lexus)
"도요타는 값싼 일본차"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급이미지의 모델을 위해 태어난 모델로 실용적인 자동차 모델을 대량 생산해오던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4년에 걸쳐 개발해 1989년 미국에서 발매한 도요타의 수출 브랜드 이름입니다.
롤스로이스 (Rolls-Royce Ltd.)
최고의 자동차 수식어에는 항상 롤스로이스(Rolls-Royce)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빠른 속도의 주행에도 시계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자동차, 탑승시에 흔들림없이 우아하고 부드럽게 달리는 자동차는 롤스로이스를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말들입니다.
이렇듯 영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롤스로이스는 1904년 귀족이자 사업가였던 찰스 롤스(Rolls)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엔지니어 헨리 로이스(Royce)라는, 두 사람이 만나 탄생되었습니다. 이들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두사람의 성을 합하여 자동차의 이름에 넣게 된 것입니다.
롤스로이스는 1907년 런던에서 출발하여 유럽을 쉬지않고 도는 2만4000㎞ 레이스에 출전하여 완주기록을 세웠는데, 수리비는 단돈 2.2파운드에 불과했습니다. 자동차 고장이 잦았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에 각종 언론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기계 예술’의 극치라고 크게 보도하여 만방에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 후 1915년 항공기 엔진의 생산을 개시하고 고급승용차를 제조하는 한편,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로서도 발전을 거듭하였고, 1949년에는 제트 엔진 개발, 1966년 `브리스틀시드레`를 매수해 세계 제2위의 항공기 엔진회사로 성장하였으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용 엔진 개발시 막대한 개발비용과 경영난으로 1971년 도산하였습니다. 그 후 영국 정부에서 이를 인수하여 경영을 맡았지만 1980년 비커스(Vickers Ltd.)에 흡수합병되었습니다. 1987년 영국정부는 롤스로이스의 주식을 민간에 매각하여 민영화한 후 현재에는 독일 BMW의 산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롤스로이스의 라이에이터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영감을 얻어 만든 것으로 쇠창살 하나하나 경험 많은 기술자들이 만들고, 차의 내부에는 최고급 스칸디나비아산 소가죽이 18마리 분량으로, 40명의 전문가들의 손바느질로 만들어 집니다. 이러한 장인정신의 의해 만들어진 차량의 구매자에게는 롤스로이스 차량의 역사책이 한권씩 붙어 나옵니다. 만들고 검사하는 전 과정을 이 책에 기록해 고객에게 넘겨줍니다.
롤스로이스는 최근까지도 영국왕, 인도 제독 등 귀족들에게만 차를 판매하는 부와 명예를 차지한 사람들의 차로 유명합니다. 일반 평민(?)이었던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롤스로이스사로부터 “우리 고객 명단에는 당신 이름이 없다”며 판매를 거부하기도 했을 정도로 롤스로이스의 고객선택에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러한 영국의 자존심인 롤스로이스는 BMW의 산하에 들어가 경영 합리화와 생산 증가가 이뤄졌지만, 1대를 완성하는데 10개월이 걸리고 1년에 6000대 정도만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르노삼성자동차(주) (Renault Samsung Motors Co. Ltd.)
르노삼성자동차의 엠블럼은 태풍의 눈을 표현한 것으로 소우주 속에서 고객 위주의 신 자동차 문화를 펼쳐나가는 약동감을 표출하고 있으며, 상하좌우의 대칭적 구조는 르노삼성자동차가 추구하는 안전성과 신뢰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마세라티 (Maserati)
1914년 12월 1일에는 볼로냐(Bologna)에서 "Societa anonima Officine Alfieri Maserati" 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마세라티는 자동차 경주를 통해 스포츠카로써의 명성을 쌓아나갔습니다.
1929년 V4로 최고속도 세계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시속 246.069km/h) 1934년 나온 티포 4CM은 1,100cc 최고기록인 222㎞를 기록하여 뛰어난 성능을 다시한번 대중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1937년 올시(Orsi) 패밀리는 마세라티를 인수하여 경영하였고, 1939년 8CTF가 인디애나 폴리스500 레이스에서 이탈리아 메이커 중에서 최초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룩하였습니다.
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마세라티는 공구나 스타크플러그, 전기자동차 및 부품 등을 생산하였고, 1957년 250F의 우승을 끝으로 레이싱에서 철수하였습니다.
1968년 프랑스의 시트로앵에 경영권이 넘어 갔으나, 그 후 이탈리아의 데토마소가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1993년 피아트 그룹에 편입된 뒤, 1999년부터 페라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Mercedes Benz)
럭셔리와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메르세데스 벤츠는 모터로 마차를 끄는 기술을 선보였던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와 가솔린 엔진의 특허를 등록한 칼 벤츠(Karl Benz)의 합병에 의해 1926년 설립되었습니다.
미쓰비시자동차 (Mitsubishi Mo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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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시된 마세라티 스파이더는 마세라티가 페라리 산하에 들어가 페라리의 기술을 받아 처음 만들어진 차입니다.
볼보 (Volvo Aktiebolaget)
스웨덴의 거친 환경에서 만들어진 볼보(Volvo)는 베어링 제조업체인 SKF에서 생산하던 볼 베어링의 이름으로 "나는 구른다(I roll)"라는 라틴어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부가티 (Bug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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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는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자동차 제조회사입니다. 밀라노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자전거 회사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이내 자동차에 매료되어 자동차를 생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01년 열린 밀라노 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상을 거머쥐며 자동차분야에서 인정받은 에토레 부가티는 각종 경주대회에 자동차를 출전시켜 우수한 성적으로 그 명성을 더해갔습니다. 특히 1924년에 발표한 직렬 8기통의 `타입 35`는 2천 번 이상의 레이스에 우승하며 부가티를 스포츠카의 전설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스포츠카에서의 명성은 차량의 판매에도 증진을 가져왔으며, 성능과 함께 합리적인 가격을 위해 일련의 차들의 플랫폼을 공유하여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한 성공 후 만들어진 부가티자동차 중 가장 유명한 모델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평가되는 "TYPE 41 르와이얄"있는데, 30년대 초반에 6대가 만들어졌으며 그 중 1929년에 생산된 차량은 국내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르와이알을 출시하던 시기 경제공황이라는 큰 시련을 겪었으며,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부가티의 경영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1991년 부가티는 EB110이라는 모델을 발표하면서 이태리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에 의해 부활되었지만 1996년 파산으로 지금은 폴크스바겐 산하에 있습니다. 이러한 부가티는 최근 출시된 8ℓ 16기통 1천마력이라는 엄청난 파워와 속도를 가진 `EB16/4 베이론(Veyron)`을 선보여 400km의 시험 주행에 성공하였습니다.
뷰익 (Buick)
1902년 미국의 데이빗 뷰익(David Dunbar Buick)에 의해 설립된 `뷰익모터자동차`(Buick Motor Car Company)는 제너럴모터스(GM)의 대표적인 자회사 중 하나입니다.
뷰익의 로고 원안에는 3개의 방패모양이 있는데 이것은 `트라이 실드`라 불리며 설립자 뷰익(Buick) 가문의 용맹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방패색상은 각각 3가지의 색상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우측에 있는 방패는 파란색, 중앙에는 백색, 좌측에는 붉은색으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뷰익자동차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베스트셀러 모델을 나타내는 것으로, 파란색은 `르 세이블`을, 백색은 50년대 자동차 디자인을 평정한 `인빅타`, 붉은색은 `일렉트라` 모델을 상징합니다. 뷰익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위의 차량모델들은 자동차 발전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들로 이런 뜻을 가진 뷰익의 로고는 195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뷰익의 경영권이 윌리엄 듀랜트(William Durant)에게 넘어간 후, 회사는 개편을 통해 1908년 캐딜락(Cadillac Motor Car Company), 올즈모빌(Oldsmobile), 폰티악(Pontiac)을 흡수/합병하여 제너럴모터스(GM)를 설립하면서 생산량은 급속하게 늘어났습니다.
1950년 8기통 고성능 엔진의 개발로 자동차업계에서 선두주자로 오른 바 있는 뷰익은 1963년 미국 최초로 대량생산 엔진을 장착한 모던클래식카이자 스포츠쿠페인 `리비에라`(Riviera)를 출시하여 시선을 끌었으며 현재까지 GM(제너럴모터스)의 자회사로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새턴 (Saturn)
일본에 밀리고 있는 소형차 시장을 지키기 위해 GM(제너럴모터스)에서 소형차 생산을 위해 만든 디비젼(Division)으로 1985년 설립되었습니다.
첫댓글 어휴 너무 많네요...다른건 나중에..ㅎㅎㅎ마크 알고싶으면 댓글에달아주세요~올려드릴게요
겜발라는 튜닝회사 아닌가요.,?? 차량 제조사가 아닌...
퍼온 느낌이 강한 ;; 로터스를 넣는게 겜발라보단 더 의미나 뜻으로는 재밋었을지도 ..
잘봤습니다...다읽는데만 10분정도 걸리네요;;좋은정보 ㄳㅇ~
포르쉐기록 R35가 짓밞았어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