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 초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보내겠다고 쪽지를 주었던 학생이 있다. 그 말을 나도 자주 상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만날 수 있었던 1년간 오늘도 만날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보냈다.
착하고 훌륭하고 매력적이고 재주 있고 귀여운 학생들이 많아서 행복한 한 해였다. 까페에 올리는 일기를 와서 읽어주는 학생도 올해가 가장 많았다. 가 닿는구나 생각하니 좋았다.
오늘 드디어 졸업을 하였구나. 3년간 중학교 생활을 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많은 우리나라 중학생들의 가혹한 삶을 생각하면 '정말'이라는 부사를 뺄 수가 없구나. 나보고 7교시까지 학교에 있었는데 또 학원 가서 10시까지 있으라고 하면 난 못해..).
그래서 너희의 졸업식은 쉽지 않은 3년의 시간을 잘 보낸 것과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다. 그래서 축하해야 하는데 슬펐다. 너희만 생각하면 온전히 축하해주어야 하는데 나와 너희의 만남에 대해서는 장례식이므로. 너희와 교실에서 함께한 시간이 이렇게 끝났구나. 너희는 이제 더 멋지게 성장해 나가겠지. 그래도 내가 기억할 너희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더이상 볼 수 없는, 앳된 중학생의 모습이지.
어제 까페에서 글을 쓸 때 눈물이 주룩주룩 나서 난처했다. 졸업식 할 때, 첫 번째로 서이와 우석이가 단상에 오를 때 위기가 왔다. 이렇게 정말 헤어지는구나 실감이 나서.
식을 진행하는 동안 나의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몇 분 남지 않았으므로, 하나 하나 충분히 눈에 담고 싶었다.
코로나로 마스크 쓴 채 만난 너희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정신없이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고, 우여곡절 많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끝을 맺었구나.
식 중간에 한 학생이 너무 긴장했는지 쓰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나중에는 일어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복잡다단한 존재이지만 본질은 모두 호흡이다. 숨을 잘 쉬고, 끼니를 잘 먹을 수 있으면 됐다. 정말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니. 교장 선생님 축사 중 지원한 고등학교에 합격하지는 못한 학생들을 위로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래서 몇몇이 웃으며 휘청이는 장면을 보았으나, 그건 정말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이지. 준비 과정에서 얻은 것이 분명히 있고, 실패해 본 것이 어쩌면 남들이 얻지 못한 더 귀한 경험일 수도 있다. 어딜 가든 거기서 잘 하면 된다(너희는 그럴 거고). 그냥 건강하게 3학년 마무리를 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대견한 일이다. 쓰러지지 말아요.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돼.
식이 끝나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만나는 학생들에게 졸업 축하 인사를 하고 몇몇 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사진 찍히기만 하고 내 핸드폰으로 찍는 것을 깜빡한 학생들이 있다. 다음에 누군가와 사진 찍게 된다면 일단 내 핸드폰부터 찍겠다고 해야겠다. 하나 하나 다 안아줄 걸 그것도 아쉽다.
민주, 민서, 유빈, 정현, 소윤, (김)민준, 송연, (박)주원, 윤진, 윤아, 은성, 지현, 다혜, 나영, (최)서연, 채환, 유담, 우진, 민영, 준서, (하)주원, 신수, 다윤, 창래, (최)서연, 민유, 민지, 다은, 보민, 재원, 주언, 승원, 진희와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내니 너희를. 졸업시키지 않고 싶다.
눈이 빨개졌던, 고개를 잠깐 돌리던 몇몇 아이들.
p.s.
전교 1등부터 9등까지 단상에 올라 상을 받았다. 그 중 준서만 유일한 남학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준서가 상 받을 때 (아마도 남학생들의) 박수 소리가 유난히 컸다. ㅋㅋㅋ
p.s.2.
서이가 어제 에피소드에 댓글을 달았다. '1/5 에피소드는 안 올라 오나용?'
이것을 한참 쳐다 보았다. 1/5은 5분의 1인가? 그럼 5분의 4 에피소드를 썼고 나머지를 올리겠다고 했던가? 혹시 이것도 중국어 암호인가? 그럼 검색해 볼까? 검색했더니 1/5에 대해 1월 5일이라고 나와서 비로소 이해했다. 어제 중국어 암호의 여파... ㅋㅋㅋ
p.s.3.
며칠 전 뮤지컬 담당 선생님께서 633 프로그램 뮤지컬 상영회 시간에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틀어줄 링크를 주셨다. 링크를 주실 때 절대 유포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 하셨기에 개인 소장이다. 우리 반은 아쉽게도 없지만, 내가 들어가는 반 중에 몇 개 반을 볼 수 있었다.
앳된 너희들의 모습을 이제 어디에서 보나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박제되다니. 흐뭇한 마음으로 틀었다. 아이들에게 기대하겠다고 했을 때 지승이가 눈 크게 뜨고 기대하지 말라고 극구 말렸는데, 엄... 그래... 지승이가 왜 말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ㅋㅋㅋ 내용이 잘 전달이 안 되고... 쿨럭... 솔직해서 미안해...
그래서 1. 기대감 → 2. 빨리 넘김이었는데,
그래도 어린 너희 모습이 나와서 너무 좋았다.
5반은 잠옷 입고 뚱땅거리는 모습에 귀여워서 심쿵... 마지막 부분에서 민준이가 동후의 뒤통수를 갈기는 것을 보았고, 역시 그는 '가만히, 평범하게'가 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8반 아이들 영상 중 마지막에 일시정지를 눌렀을 때, 나온 아이들이 카메라를 보아서, 그것이, 교실에서 나를 보았던 너희 모습이 되어서,
나도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p.s.4.
은성, 민주, 민지, 윤진이가 편지를, 윤아가 초콜릿을 주었다. 정은이는 나를 못 만났다고, 자기가 쓴 편지를 사진으로 보내 주었다. ㅠㅠ 2월 1일에 만날 때 달라고 했더니 "네??"라고 답장이 왔다. "네!!"의 오타일 것으로 해석한다. ㅋㅋ
편지를 오늘 가지고 왔다는 건, 어제 나를 생각하며 쓴 시간이 있었다는 것. 그게 너무 감동적이다... 어쩌면 이렇게 성숙하지...
- 정은이 편지에서: 원래 국어 과목에 자신이 별로 없었다고 해서 놀랐다. 너무나 논리적이고 풍부한 발표로 내가 정은이 발표에서 영감을 얻은 적도 많았는데. 혹시 그의 기준이 나보다 높은 건가... 그는 내가 자신을 예쁘게 봐 주어 고마웠다고 했지만 그는 그 어떤 선생님이 보더라도 예쁠 학생이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잘 할 거다.
- 은성이와 민주의 편지에서: 자신이 뭔가 나를 실망시킨 부분이 있었을까 걱정하는 부분이 있어서 놀랐다. 내가 여기에 환멸감 이야기를 하도 써서 그런 것 같다. ㅋㅋ 하... 예쁜 학생들이 걱정하지... 정작 환멸감을 준 학생들은 그냥 신경 안 쓰는데. ㅋㅋㅋ 교실에서 환멸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자기가 환멸감을 주지는 않았는지 채환이가 물어서 놀랐던 것이 떠오른다. 뭔가 '지도'할 부분을 이야기할 때 늘 지도가 필요없는 아이들이 눈 동그랗게 뜨고 긴장하며 듣던 것이 생각난다. 하...
- 민주의 편지에서: 그가 집에 갈 때면 저 여린 학생이 오늘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다. 늘 진심으로 '수고 많았다, 고생했다'고 생각하고 말했는데 그게 힘이 되었구나... 그는 내가 자신을 좋게 말해주고 생각해주어 고맙다고 했으나 정은이와 마찬가지로 그 어떤 선생님이 보아도 예쁠 학생인 걸(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으니 확실히 말해주어야겠다). 어제 내가 인생에 여러 일이 일어난다고 말한 것과 관련되는 유용한 팁을 주기도 했다. 그가 어떤 책에서 본 것인데, 하루의 마무리를 잘하면 그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든 좋은 하루로 기억된다고 한다. 힘든 하루였어도 자기 전이 행복하면 그 날은 그 나름으로 괜찮았던 하루가 된다고. 힘든 날이 생긴다면 자기 전에 행복한 일을 상기하거나 만들어 보라고. 그러면 좋았던 날로 기억된다고. 이런 팁은 다른 사람들도 널리 알았으면 좋겠어서 기록해 둔다.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렇게 초콜릿을 먹으며 너희가 준 편지를 읽고 음미하고 기록하고 있지. 행복해. :)
- 민지와 은성이 편지에서: 질문 만들고 생각 나누기, 첫머리 5분 독서가 좋았다고 한다. 수업을 할 때는 늘 의심하면서 한다. 이게 정말 가 닿는지. 내용이 의미 있고 방법은 효과적인지. 와 닿았다고, 와서 무언가 내면에 일으켰다고 하여 좋았다. 가 닿을 수 있도록 본인이 집중해 주어서 고맙고 대견하다.
- 윤진이 편지에서: 제자가 스승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것은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이므로, 훌륭한 어른이 되어 돌아오겠다는 말에 감동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좋은 사람(a)이라고 생각해 주었다. 내가 올해같이 좋은 반을 또 만나기가 어렵다며 염려한 것을 기억하고는, 좋은 사람한테는 늘 좋은 사람이 곁에 있으니 앞으로 만날 학생들도 좋은 학생들일 것이라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불안증이 잠시 해소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전제인 (a)가 참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아야겠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p.s.5.
글을 읽고 쓴다는 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나만 이렇지 않음을, 그도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혼자 쓰고 읽는다 하더라도 쓰는 자아가 읽는 자아에게) 연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읽고 쓰는 것은 외로움을 덜고 연결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내가 학생에게 환멸감을 느낀 이야기에 서이가 마음이 아팠다고 해 주어서 위로가 된 것처럼.
p.s.6.
바쁜 일정 속에서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해내야 하는 일을 끝내기만 하고 마는 것. 그렇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인지 제대로 느끼고 파악하고 정리하면서 살고 싶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혼자 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없어서 안타깝다. 아직 마치지 못한 일이 있고, 계속 누군가가 같은 공간에 있다. 오늘은 너희와 더 이상 한 교실에서 볼 수 없게 된 날인데. 이 생각만 하면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울 수 없어 아직은.
집에 일이 있어 졸업식 후 집에 들러 챙길 것을 챙기고 마포에 들렀다. 8시쯤에서야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고 문 앞에 서서 갔다.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누가 보았다면 실연이라도 당했나 했을지도. 아 맞지. 실연당한 날이지. 나에겐 매우 중요했던 걸 상실한 날이지.
p.s.7.
2월 1일 10시, 운동장에서 후기 일반고 배정자들은 다시 볼 수 있다. 일단 그걸로 위안 삼았다. 오늘 사진 찍을 때에도 그날 보자는 말을 하였다.
p.s.8.
어제 계속 생각났다, 아래 노래가.
이제 너희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그곳이 좋은 곳이기를(자신의 해석 속에 살아가는 것이므로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그곳이 좋은 곳이기도 해).
너를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음을 기억해 주렴.
그게 이제 너희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겠지.
https://youtu.be/ffaKCgngUTQ?si=qBzbF5yWTJuI86Fr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댈 사랑해요
그대가 떠나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댈 사랑해요
혼자 걷다가 어두운 밤이 오면 그대 생각 나 울며 걸어요
그대가 보내준 새하얀 꽃잎도 나의 눈물에 시들어 버려요
그대가 떠나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댈 사랑해요
혼자 걷다가 어두운 밤이 오면 그대 생각 나 울며 걸어요
그대가 보내준 새하얀 꽃잎도 나의 눈물에 시들어 버려요
그대가 떠나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댈 사랑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3_tmle4rO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