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 대통령.. 역사상 가장 청렴했던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을때 착용했던것들.. 그는 수선한 바지를 입은 해진 혁대, 고물 세이코 시계,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있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근대화 혁명가 박정희 전기)]에서 인용. 일국의 대통령이 해진혁대,수선한 바지,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 이 몬가? ★[1961~1969년도 업적] 1961년06월10일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 1961년06월11일 재건국민운동전개(국민의식개혁) 1961년06월14일 부정축재 처리법 공포 1961년07월03일 반공법 공포 1961년06월30일 능의선 개통 1961년07월14일 원자력개원 1961년07월22일 경제기획원신설 1961년08월03일 김포가도 포장 기공 1961년08월08일 황지지선 기공(1961.6.13~1962.12.10) 1961년08월19일 섬진강 수력발전소 건설 1961년09월21일 춘천수력발전소 기공 1961년09월23일 대한 중선창연(蒼鉛)자가제련공장 준공 1961년12월22일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1962년01월01일 연호를 서력으로 변경(연호에 관한 법률 제정) 1962년01월13일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1962년01월20일 상법제정공포 1962년02월01일 국민은행 발족 1962년02월02일 기술진흥 5개년계획 발표 1962년02월03일 울산공업지구설정 및 기공 1962년02월10일 국토건설단 창단 1962년03월01일 공문서의 한글전용실시(70년1월1일 관계법 제정) 1962년03월19일 핵분열 연쇄반응 일으키는 원자로의 임계도달 시험-양주군 노해면 1962년04월02일 농촌진흥청 발족 1962년04월30일 해양경비대창설 1962년05월12일 반공센터창설 1962년06월01일 무역진흥공사발족 1962년06월18일 건설부 신설 1962년07월13일 국민 의무교육 실시 1962년07월19일 국립소년직업훈련소 낙성 1962년09월10일 남양송신소 준공 1962년10월20일 해운센터기공식 1962년10월23일 한국케이블공업주식회사 송배전신 및 케이블공장 기공 1962년11월04일 광주디젤발전소 준공 1962년11월06일 동해북부선(옥계-경포대간)개통 1962년11월18일 과학자 우대정책 발표 1962년11월20일 제4시멘트공장건설 1962년11월25일 부정거래단속법을 제정 1962년11월28일 난민정착사업장 제방준공 1962년12월01일 마포아파트준공 1962년12월15일 김포,강화간 대교건설(~1970.1.26) 1962년12월24일 생활보호법제정 1962년12월28일 호남 비료 나주 공장 준공 1963년01월01일 교육자치제 실시 1963년01월10일 외자도입 강력추진 1963년01월18일 원호센터 준공 1963년01월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1963년02월01일 장충체육관 건립 1963년02월04일 지방문화재육성 1963년03월15일 동진강지역 종합개발공사 기공, 김해, 진도(63~69) 1963년03월21일 감사원 개원 1963년03월30일 원자로 가동식 1963년04월02일 무제한송전실시 1963년04월10일 부녀회관 건립 기공 1963년05월14일 남대문중수공사 준공 1963년07월20일 제대군인 개간농장 입주 1963년08월08일 한국나이론 공장 건설(대구) 1963년08월08일 국사교육통일방안 확정 1963년09월01일 철도청 발족 1963년09월01일 노동청 발족 1963년09월06일 국토종합개발계획조사착수 1963년09월06일 동대문 개축준공 1963년09월10일 문화재 보수 5개년계획확정 1963년09월17일 가족계획사업추진 1963년09월25일 직업재활원 개원 1963년09월26일 pvc 제조공장 기공 1963년10월10일 가정법원 개원 1963년12월22일 서독광부·간호원파견(1963.12.22~1966.1.30) 1964년01월01일 미터제 실시 1964년05월07일 울산 정유공장 건설 1964년05월07일 국립 중앙 의료원 설립 1964년07월01일 경주석굴암복원준공 1964년08월20일 감천화력발전소건설(부산) 1964년11월29일 울산 제3비료 공장 기공식-매암동, 충주비료와 미국 스위프트 투자단의 공동투자 1964년12월05일 제1회 수출의 날 제정, 1억불 달성/70년 10억불/77년 100억불/82년 200억불/85년 300억불/88년 500억불 달 1964년12월06일 서독방문(유럽국가 첫 방문), 8일 뤼프케 대통령, 9일 에르하르트 수상과 정상회담 1965년01월25일 제2한강교 개통 1965년02월24일 한국원양어선단 결단(원양어업추진) 1965년03월19일 방공 포병대대 창설 1965년03월23일 청소년 선도 국민 궐기 대회 1965년04월01일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확정 1965년06월01일 김해간척공사 기공 1965년06월22일 한일협정 정식조인(동경), 8월14일 국회비준(야당불참), 12월18일 비준서 교환(서울) 즉시 발효, 국교정상화 1965년08월31일 해인사 경판고 보수 1965년09월15일 제2 영월 화력발전소 준공 1965년10월15일 율곡사 및 율곡기념관 낙성 1965년11월13일 경호천 종합개발 준공식-칠곡군 북삼면 1965년11월23일 민방위법 제정(민방위대창설:1975.9.22) 1965년12월02일 식량증산 5개년계획 확정 1965년12월03일 서울·춘천간 도로포장공사 준공 1965년12월07일 진삼선 개통(사천~삼천포) 1965년12월16일 국내(텔레스)개통 1966년01월19일 정선선 개통(예미, 증산, 고한 간) 1966년01월27일 경북선 개통(점촌~예천 간) 1966년01월27일 한국과학기술원 설립 1966년02월04일 한국과학기술 연구소(kist)발족 1966년03월03일 국세청 발족 1966년03월03일 수산청 발족 1966년04월09일 인천제철공장 기공 1966년04월29일 경인공업단지 건설 1966년05월03일 울릉도 추산 수력발전소 준공 1966년06월08일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지구 전천후 농업용 수원개발사업 준공 1966년06월09일 팔당수력발전소 기공 1966년06월22일 한군군장비현대화계획발표 1966년08월03일 산림청 신설 1966년11월09일 김삼선 기공 1966년11월09일 충남선 기공 1966년11월28일 서울 분묘 보수 1966년11월30일 밀양 영남루 보수 1966년11월30일 서울 종각 보수 1966년12월06일 부여 정림사지 정비 1966년12월17일 아시아 개발은행 건설 1966년12월18일 법주사 대웅전 보수 1967년01월24일 청평·의암 ·화천 수력발전소 건설 1967년02월10일 대도시 그린벨트설정(서울, 부산 등) 1967년03월04일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기공 1967년03월30일 원자력청 발족 1967년03월30일 과학기술처 신설 1967년04월01일 구로동 수출 공업단지 준공 1967년04월13일 서해안 철도건설 1967년04월25일 종합민족문화센터 준공 1967년04월26일 안중근의사 동상 이안 1967년04월29일 천체과학관 준공 1967년05월01일 국립광업연구소 설립 1967년09월19일 구미전자공업단지건설 1967년09월23일 제1한강대교, 강변도로건설 1967년10월01일 국립묘지정화, 현충탑건립 1967년10월03일 포항종합제철공업단지기공(1973. 7. 3 완공) 1967년11월23일 한국수자원개발공사발족 1967년12월01일 농어촌개발공사발족 1967년12월20일 성산포 어업전진기지 준공 1968년00월 0일 포항항 건설(~1973) 1968년01월22일 대간첩작전본부발족 1968년02월07일 경전선개통 1968년02월11일 병기공장(m16소총)건설착수 1968년03월22일 석유화학계열공업 기공 1968년04월01일 예비군 창설 1968년04월13일 서울대학교 이전 건설 1968년06월13일 「레이다」기지 준공 1968년07월05일 방위산업육성3개년계획확정 1968년07월22일 중앙선,태백선전철화(~1974.6.20) 1968년07월23일 동해안공업도시개발착수(묵호,북평, 삼척) 1968년07월24일 해양주권선언발표(대륙붕 자원확보 및 개발) 1968년07월29일 축산개발 4개년계획 확정 1968년08월30일 영남화력발전소(울산가스터빈)건설 1968년09월09일 제1회 한국 무역 박람회 1968년02월01일 경부고속도로(대구-부산간)기공식 1968년11월01일 제주도 포도당공장준공 1968년11월08일 동양화학공업주식회사준공 1968년12월02일 소수서원 해체 복원 1968년12월0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1968년12월07일 지리산 등 9개지역국립공원지정 1968년12월11일 광화문복원 1968년12월16일 한국 투자개발공사 설립 1968년12월21일 경인·경수고속도로준공 1969년00월00일 교육제도개혁(중학교무시험, 고교평준화, 대학입시예비고사제) 1969년02월05일 농업진흥공사 발족 1969년02월15일 지하수개발공사발족 1969년02월15일 한국도로공사발족 1969년02월22일 농업기계화 8개년계획확정 1969년03월01일 국토통일원 개원 1969년03월01일 가정 의례 준칙 공포 1969년04월28일 현충사 중건 준공식 1969년04월28일 불국사 복원 정화작업(1969~1973) 1969?6월04일 부산 화력발전소 준공(21만kw) 1969년06월17일 마산수출자유지역공업단지조성 1969년07월03일 울산 알미늄 공장준공 1969년07월29일 서울신도시건설착수(한강이남.여의도.한강개발) 1969년08월19일 범어사 대웅전 보수 1969년10월07일 남강「댐」준공 1969년11월01일 농어촌근대화촉진법발표 1969년11월29일 관악산 기상레이더 건설 1969년12월26일 제3한강대교 건설 ★[말많던 유신 그러나 그의 업적은 눈부실정도로 아름답다.] 중화학공업정책 육성 선언(1973. 1. 12) 공업진흥청 신설(1973. 1. 12) 현대울산조선소 기공(1973. 3. 25, 제1호선 진수 : 1974. 2. 15) 중화학공업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온산, 창원, 여수~광양, 군산~비인, 구미 등 5개 대단위공업단지 조성 계획(1973. 3. 26) 춘천, 대전, 원주, 청주, 전주, 이리, 광주, 목포 등을 지방공업개발 장려 지구로 지정(1973. 5. 4) 중화학공업(철강, 석유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건설계획 확정(1973. 5. 24) 서울 부산에서 처음으로 가격표시제 실시(1973. 6. 1) 기능공 양성정책 수립(1973. 7. 10) 주안단지(5공업단지) 준공(1973. 7. 15) 정수직업훈련원 개원(1973. 7. 18, 현 서울정수기능대학) 호남종합화학기지 내 에틸렌계열공장 4개, 프로필렌계열 2개, 기타 7개 총 13개 공장건설계획 확정(1973. 8. 2) 구미전자공업 1단지 조성 완료(1973. 10. 5) 옥포조선소 기공(1973. 10. 1, 준공 : 1981. 10. 17) 이리 수출자유지역 착공(1973. 10. 17, 준공 : 1974. 12) 충주 제6비료공장 준공(1973. 10. 26)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창원, 온산, 옥포, 죽도, 안정, 여천 지정 (1974. 3. 27, 창원 : 종합기계공업기지, 온산 : 석유정제·비철금속 공업기지, 옥포·죽도·안정 : 조선공업기지, 여천 : 종합화학공업기지) 동남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4. 4, 창원, 울산, 온산, 안정국가 산업단지 관리)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1974. 4) 죽도조선소 기공(1974. 4, 준공 : 1980. 12. 5) 기업공개와 건전한 기업풍토 조성을 위한 박 대통령 특별지시 발표(1974. 5. 29) 주안단지(6공업단지) 준공(1974. 11. 5) 쌀의 완전 자급자족 달성(1976년) 대청다목적댐 기공(1975. 3. 27, 준공 : 1981. 6. 30) 여천석유화학단지 합동 기공(1975. 11. 10, 준공 : 1980. 1. 29) 통일벼보다 질이 좋고 다수확품종인 밀양21호와 23호를 개발하여 77년부터 통일벼를 없애고 신품종으로 대체할 방침을 수립(1975. 11. 20) 청평 양수댐 기공(1975년, 준공 : 1980. 12. 18) 근로자 재산 형성 저축제 실시(1976. 1. 19) 한국기술검정공단법안 마련(1976. 5. 18, 기술인력관리, 자격, 검정의 일원화) 포항제철 제2기 확장공사 준공(1976. 5. 31)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6. 6. 18) 국산자동차 포니 첫 수출(1976. 6) 반월 신도시 건설 발표(1976. 10. 2, 기공 : 1977. 3. 30) 특별소비세법 제정(1976. 12. 22) 초고압송변전시설 준공(1977. 4. 30) 월성 원자력 1호기 기공(1977. 5. 15, 준공 : 1982. 3. 10) 여수화력 2호기 준공(1977. 6. 30) 부가가치세 시행(1977. 7. 1)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우승(1977. 7. 10) 여수 제7비료공장(남해화학) 준공(1977. 8. 4, 기공 : 1973. 10) 서부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7. 11, 반월, 시화, 아산, 석문국가 산업단지 및 천안 외국인전용단지 관리) 연초댐 기공(1977. 11, 준공 : 1979. 12) 수출 100억 달러 기념식(1977. 12. 22)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1977년) 종합행정정보망 구성키 위해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 마련(1978. 2. 20) 전 국토의 토양정밀조사 완료(1978. 2. 23) 고리 원자력발전소 준공(1978. 4, 기공 : 1971년) 충주 다목적댐 기공(1978. 6. 3, 준공 : 1986. 10)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개막(1978. 8. 30, 부산) 주요 도시간 장거리 자동공중전화 개통(1978. 12. 31) 쌀 4천만 섬 수확(1977년) 인천화력발전소 3, 4호기 준공(1979. 4, 착공 : 75. 5) 고리원자력 3, 4호기 기공(1979. 4. 9) 원자력발전소 9, 10호기 울진에 건설키로 확정(1979. 6. 12) 온산 동제련소 준공(1979. 12. 11) 공산댐 기공(1979년, 준공 : 1981년) 삼량진 양수댐 기공(1979년, 준공 : 1985년) 수출국 1961년 25개국에서 163개국으로 확대(1979년) =================================================== ★[한국과학기술원 kist설립1966년]-이공계를 대육성.. [펌]경제원조속 kist 고집-대통령보다 많았던 과학자들의 월급이야기 '한국과학의 메카' 키워내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할 때다. 그 때 kist 연구원들의 봉급이 너무 많아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는 항의가 청와대까지 빗발쳤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kist에 들여온 최신 컴퓨터 시설을 보며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朴대통령은 한달에 한번꼴로 이 연구소를 방문했다 . 당시 초대 소장이었던 최형섭 박사가 청와대로 불려가 연구원들의 봉급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여줬다. . 朴대통령은 '과연 나보다도 봉급이 많은 사람이 수두룩하군' 하면서도 그 표대로 봉급을 주도록 했다. 당시 kist 연구원들의 봉급은 국립대학 교수의 세배였다. .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는 일화다. 朴대통령은 '개발도상국가에서의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 원수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미국 스티븐 데디에 박사의 연구결과가 그대로 맞는다는 사실을 입증케 한 대통령이었다. . 외국에서 밀가루 한 부대라도 더 얻어와야 했던 시기에 kist를 미국의 원조를 받아 설립했으며, 한국과학기술의 총 본산으로 키웠다. . kist는 그 뒤 한국생명공학연구원.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20개 가까운 전문연구소를 배출하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맏형'역할을 해왔다. . "kist는 정부 예산을 쓰면서도 정부의 회계 감사나 사업계획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자율적인 연구를 했다. 또 연구예산은 정부가 깎지도 않았다. 그 모두가 박정희 대통령이 전폭적으로 밀어줬기에 가능했다." 최장수 과기처 장관이기도 했던 최형섭 박사의 회고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 朴대통령은 kist를 설립한 뒤 3년여 동안 한달에 한번꼴로 들렀다.연구 현장이나, 연구동 신축 현장을 둘러보기도 하며 연구자들을 격려했다는 것이 그 당시 연구현장에 있었던 과학자들의 말이다. . 朴대통령은 당시 과기처 장관을 수시로 부르거나 메모를 보내 과기정책을 챙겼다. . 朴대통령이 서거하기 1년 전쯤인 1978년 11월 21일 최형섭 당시 과기처장관에게 보낸 메모에는 "중국이 과학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해외 화교 과학자들의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아시아개발은행(adb) 계모 이사의 편지를 동봉하고 계씨의 구상을 구체화할 것을 주문했다. . 朴대통령의 이런 관심을 받고 성장한 kist는 포항제철 설립,통신의 현대화, 중화학공업 기틀 마련 등 한국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 오늘날 한국의 과학기술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도 朴대통령의 작품이었다. . 중앙일보 박방주 기자 |
첫댓글 왜 영웅시대를 일찍 끝내는줄 모르겠네요...우리 부모님들이 하도 박정희를 싫어 하기에 보았더니, 아니더군요.저는 요즘 공부하는 마음으로 보고있네요.부모님 고향은 해남이지요. 왜 저런 박정희를 싫어하는지 이해를 못할때가 많네요^^
중앙일보.의 압박...
건설 공표 발표 이거 지금은 그때보다 10배는 많아요 이런걸 대통령 업적 이라고는 안하죠 국가총생산100억불도안될때하하고 비교될순없지만 참딱도합니다 그리박정희를 미화하고싶어서 그사람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갖춘건 맞지만 그사람이 한짖은 국가원수 가아니라 백정들도 안하는 짖거리를 햇어요
네 맞습니다.그때는 배고품에 굶주린때이지요.그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독재를 말하지만 지금에 견주면 독잴런지 모르지만 그시대에 한국을 배고품에서 건져내야하겠기에 독재라는 표현은 걸맞지않고 국민에 힘을 한곳으로 결집했다는 말이 맞을겁니다.배고파 보지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고행인지를 모릅니다
지금 영웅시대를 종영하려는 의도는 다른데 있다고 봐야합니다.4.15일이 보선이거든요. 박근혜와 박정희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해서 조기 종영을 결정한다고 봐도 무리는 아닌듯싶습니다. 어떤이는 박정희를 미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른들께 여쭈어보세요.미화인지 실화인지를요... 그것도 엠비씨에서 하는것인데...
배부르길 우선하는 돼지와 배고파도 하고싶은일 먼저하길 우선하는 소크라테스가 한 배를 탄 게 당시의 대한민국이었습니다. 박정희의 오류가 뭐냐면, 이렇게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구속했다는 겁니다. 단지 배부른 돼지가 되길 거부했다는 이유로 탄압을 당했으니...박정희는 욕을 먹을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람에겐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허황된 얘기입니다. 최소한의 의식주가 충족되야지 '사상'이니 지껄일수 있죠. 프랑스 대혁명이 왜 일어났습니까? 까놓고 말해서, 배고팠기 때문아닙니까? 당시 못먹는 사람에게 일자리 제공해주고, 밥 준 것.. 무지하게 큽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한 대통령입니다 유신이니 독재니 하지만 세끼만 굶어 보세요 자유니 사랑이니 그것 다 필요 없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내 나이 60 나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입니다.새마을로 이룩한 나라 외국의 많은 나라들이 본받았는지를 압니다.그분의 토대에서 우린 지금처럼 삽니다.
우리 부모님은 왜 박정희를 싫어 하는지 모르지만,저는 친구들한테도 권해볼거고 저도 다시 박정희를 그릴려고 합니다.앞으로 책도 많이봐서 진정한 박정희를 알고 싶네요. 배고푼자에게는 밥을,일자리 없는자에게는 일자리를,그러기에 그당시 배고풀때 우리나라를 이렇게 일으킨 사람은 누가 뭐라해도 영웅이라고 생각되여
우리 부모님은 역대 대통령중에 박정희 대통령만큼 한국을 이끈 사람이 없다고 하셨는데 ㅎ
체리쥬스님 부모님은 아는 정치인이 박정희밖에 없었나보네요. 공부좀 하시라고 하세요.
가난을 벗어나기위해서는 유신이나 독재도 다감당해야한다는 분도 있는데 그런말을 직접당하지 않은사람들의 철없는 말이구요 자유가 강탈당했을때 진짜 당신이 그따위말을 할수 있는지 억울하게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말잘못해서 감옥가고 내가 한고싶은 표현을 못하고 사는데 먹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리고 그시절 어느누
가 개혁에 조금이라고 힘썼던 대통령이라면 충분히 박정희 만큼의 성과를 이루어 냈을것이다.
아~ 역시 박통입니다.경제대통령
답답해서 한마디 합니다. 다소 무례하더라도 용서하시길.... 니덜이 60년대를 알어????
고려대 최상천 교수가 쓴.. "벌거벗은 박정희" 구독을 추천합니다.
모랐는데 요 및에 옻벋고 퍼레이드하시는분들보고 알았습니다.
ㅋㅋ박정희 대통령이 벌거 벗었어요? ㅋㅋ거기 그럼 박정희 누드 사진도 나오남요? 그럼 아프로 역대 대통령 들 모두 벗고 나오겠네요? ㅎㅎㅎ그럼 나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아~~ 글고 대머리 대통령 아저씨 벌거 벗은책 나옴 그거 사 볼래욤 ㅋㅋ 고마워요 윈님 .....ㅎㅎㅎ♪♬랄랄라 ♩
바람씨 이제 봤더니 변태네...
60년대먹고살기힘들엇다니까 우리가 굶고살앗는지아시나요 그당시농산물은수출최대뭄목중하나엿어요 물론미국으로부터 잉여농산물 밀가루 지원받어 학교에서 빵과우유 배급도받앗지만 먹을것이없어서 굶고산거아니에요 먹을종류가많지않아서 밥을지금으로서는상상하지못할정도로 많이먹엇어요 지금쌀1인당소비량의 2배정도
먹거리가다양하지못해서 특별히 바깥에서 사먹을것이 밥종류이외에는 다양하지못햇어요 그러니 밥만먹어댓죠 그런의미로 보면 충분히 먹지못햇다이지 굶고 그런것아닙니다 차라리 지금밥먹는양은 그당시로보면 굶고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