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자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원작 'K'의 표현이 들어간 부분을 표시해봤습니다.
뒷북일지도 모르고 잠잠해지는 분위기 속에 또 하나의 쓸데없는 돌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사건에 대한 정리의 의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올려봅니다.
K
作詞作曲 藤原基央
週末の 大通りを黑猫が 步く
주말의 큰길을 검은고양이가 걷고있다
御自慢の 鍵尻尾を 水平に 威風堂と
자랑감의 꼬리를 수평으로 펴고 위풍당당히
その 姿から 猫は 忌み 嫌われていた
그 모습때문에 고양이는 미움받고있었다
闇に 溶ける その 體目掛けて 石を 投げられた
어둠에 녹는 그 몸 눈에 띄면 돌을 맞았다
孤獨には 慣れていた 寧ろ 望んでいた
고독에는 익숙했다 오히려 바라고 있다
誰かを 思いやる 事なんて 煩わしくて
누군가에게 신경쓰는 일 따윈 귀찮아서
そんな 猫を 抱き 上げる 若い 繪描きの 腕
그런 고양이를 안아 올리는 젊은 화가의 팔
「今晩は 素敵なお チビさん 僕らよく 似てる」
"오늘밤은 근사하겠다 꼬맹아 우리들 잘 어울리네"
腕の 中もがいて 必死で 引っ 搔いて 孤獨という 名の 逃げ 道を
품에서 버둥거리고 필사적으로 밀쳐내서 고독이란 이름의 도망을
走った 走った 生まれて 初めての
달리고 달렸다 태어나서 처음받는
優しさが 溫もりが まだ 信じられなくて
상냥함이 따스함이 아직 믿을 수 없어서
どれだけ 逃げたって 變わり 者は 付いて 來た
아무리 도망쳐도 괴짜는 따라왔다
それから 猫は 繪描きと 二度目の 冬を 過ごす
그 날부터 고양이는 화가랑 두번째의 겨울을 지낸다
繪描きは 友達に 名前をやった 「黑き 幸」 ” ホ-リ-ナイト”
화가는 친구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검은 행복' "홀리 나이트"
彼の スケッチブックは ほとんど 黑盡くめ
그의 스케치북은 거의 검은색
黑猫も 初めての 友達に くっついて 甘えたが ある 日
검은고양이도 첫번째의 친구에게 들러붙어 애교 부렸지만 어느 날
貧しい 生活に 倒れる 名付け 親 最後の 手紙を 書くと 彼はこう 言った
가난한생활에 쓰러지는 이름 붙여준 아버지 최후의 편지를 쓰고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走って 走って こいつを 屆けてくれ
달리고 달려서 이걸 전해줘
夢を 見て 飛び 出した 僕の 歸りを 待つ 戀人へ」
꿈을 향해 뛰쳐 나온 나를 기다리는 연인에게)
不吉な 黑猫の 繪など 賣れないが それでも アンタは 俺だけ 描いた
불길한 검은고양이의 그림따윈 팔리지 않지만, 그래도 너는 나만을 그렸다
それ 故 アンタは 冷たくなった 手紙は 確かに 受け 取った
그 때문에 너는 차갑게 되었다 편지는 확실히 받았다
雪の 降る 山道を 黑猫が 走る
눈 내리는 산길을 검은고양이가 달린다
今は 故き 親友との 約束を その 口に 銜えて
지금은 없는 친구와의 약속을 그 입에 물고서
「見ろよ, 惡魔の 使者だ! 」 石を 投げる 子供
"저기 봐, 악마의 사자다!" 돌을 던지는 아이들
何とでも 呼ぶがいいさ 俺には 消えない 名前があるから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이름이 있으니까
「ホ-リ-ナイト」 「聖なる 夜」と 呼んでくれた
"홀리 나이트" '성스러운 밤' 이라고 불러주었다
優しさも 溫もりも 全て 詰め口んで 呼んでくれた
상냥함도 따스함도 모두 담아서 불러주었다
忌み 嫌われた 俺にも 意味があるとするならば
미움받던 나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この 日の タメに 生まれて 來たんだろう どこまでも 走るよ
이날을 위해 태어난 것이겠지 어디까지라도 달릴거야
彼はたどり 着いた 親友の 故鄕に 戀人の 家まで あと 數 キロだ
그는 도착했다 친구의 고향에 연인의 집까지 몇 킬로 남았다
走った 轉んだ すでに 滿身創痍だ
달리고 넘어졌다 벌써 만신창이다
立ち 上がる 間もなく 襲い 來る 罵聲と 暴力
일어설 틈도 없이 쏟아지는 욕설과 폭력
負けるか 俺は ホ-リ-ナイト 千切れそうな 手足を
질까보냐 나는 홀리 나이트 찢어질듯한 팔 다리를
引き 摺り なお 走った 見つけた! この 家だ!
끌고서 다시 달렸다 찾았다! 이 집이다!
手紙を 讀んだ 戀人は もう 動かない 猫の 名に
편지를 읽은 연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은 고양이의 이름에
アルファベット 一つ 加えて 庭に 埋めてやった
알파벳 하나 더해서 정원에 묻어주었다
聖なる 騎士を 埋めてやった
성스런 기사를 묻어주었다
K
JS고등학교
S모군
한 마리 검은고양이가 길을 걸어간다, 온몸이 어둠에 녹아버릴 듯 새카만 그 고양이는 다른 거리의 고양이들이 그렇듯, 푸석푸석한 털과,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실루엣, 그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지쳐 보였지만, 두 눈은 반딧불이 마냥 밝게 빛나고 있었다. 자긍심의 열쇠인 긴 꼬리를 빳빳하게 치켜들고 있는 모습은 비록 남루하지만, 몰락해버린 왕족이라도 되는 듯 위풍당당하게 보이게 했다, 아니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검은고양이, 게다가 위풍당당하기까지 한.
“에잇! 맞아라!”
“뭐야, 불길하게.”
날아드는 돌팔매질. 이런 괴롭힘과 고독함 따위 익숙해진지 오래다.
고양이는 날아드는 돌을 피해 몸을 날렸다, 예전에 입은 발목의 상처가 부서질 듯 쓰라려 왔지만, 그 정도는 개의치 않고 담장을 넘어, 울타리를 넘어, 공원 벤치를 돌아, 몸을 날렸다.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고양이가 서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나 무언가를 피해 달리기만 할 뿐, 온몸이 새카만 검은 고양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자(死者)의 사자(使者)라는 이유로 언제나 이렇게 돌을 맞을 뿐이다.
누군가가 있다는 건 성가신 일 일 뿐이야, 이런 고독 따윈 이미 익숙해 졌는걸, 동정 따위는 필요 없어.
어느새 자신의 털 색과도 같은 깊은 어둠 속에 마음을 꼭꼭 잠가버린 고양이는 스스로를 자위하고 체념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쯤을 달렸을까? 더 이상 짓궂은 아이들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고양이는 슬그머니 공원 풀숲으로 들어가서 자세를 낮추고 고개만 빠끔히 내밀고 주위를 살핀다.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야.
그렇게 얼마쯤을 살폈을까?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주위를 확인하던 고양이의 몸이 누군가에 의해 갑자기 허공으로 들린다.
“캬악~?”
“어이구, 이 작은 꼬마가 뭘 그렇게 살피고 계실까나?, 하지만 바로 뒤에 있던 나를 발견 못하다니 꽤나 둔한 꼬마로군.”
순간적으로 고양이를 들어 품에 안은 그 사람은 마치 고양이를 놀리듯 익살스럽게 말하며 담백한 미소를 살짝 머금었다. 나이는 한 이십대 중반쯤? 얼마나 오래 입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너덜너덜한 청바지, 후줄근한 카키색 점퍼에 검은색 야구모자, 얼굴 또한 굵은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있어 마치 거리의 부랑자 같은 인상을 주는 그런 사내였다, 하지만 은연중에 머금고 있는 담백한 미소는 왠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고나 할까? 마치 짓궂은 삼촌 같은 그 표정은 왠지 모르게 미워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캬악-”
순간적으로 잠시 이성이 마비되어 남자에 품에 안겼던 고양이는 눈 깜짝할 새에 다시 이성을 되찾고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미친 듯이 발버둥쳤다.
여기서 잡히면 죽는다.
“캬르릉- 캬악-”
미친 듯이 발톱으로 남자를 할퀴고 물어뜯었다, 남자도 놀랐는지 다급히 고양이를 품에서 밀쳐내 버렸다, 발작하듯 남자의 품에서 떨어져 나온 고양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공원길을 가로질러 주택가로 도망해 버렸다.
피가 살짝 흐르는 손등을 대충 옷에 문질러 닦으며 남자는 슬그머니 웃으며 중얼거렸다.
“꽤 거친 꼬마로군 그래.”
그리곤 고양이가 사라진 쪽을 향해 달렸다.
고양이는 미친 듯이 달렸다, 주위의 사물들이 휙 하고 뒤로 빨려 들어가듯 빠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한쪽 다리가 다친 채로는 속력이 잘 나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다리가 부서질 것만 같다, 이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싶다, 목에선 가르릉 거리는 작은 신음만 계속 나온다, 쉬고 싶다, 쉬고 싶다, 하지만 뒤에는 아까 그 이상한 사람이 계속 따라온다. 벌써 한 시간 째다, 아무래도 미친 사람 같다, 저런 인간에게 붙잡히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그렇게 생각하며 고양이는 계속 달렸다, 이제 저녁노을이 질 무렵, 하늘은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저 사람에게 잡히면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잡히는 게 두려운 건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쫓아온다는 사실이, 자신이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혼자가 편해,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고독이라는 이름의 탈출구를 향해 고양이는 미친 듯이 질주했다.
“헥, 헥, 어이~ 거기~ 이제 그만 좀 멈추는 게 어때? 나도 지쳤다고.”
뒤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따라온다, 이렇게까지 누구에게 주목받았던 적이 있었나? 이때까지 누군가 말을 걸어준 사람이 있었나? 나를 보고 웃어준 사람이 있었나?
왠지 이대로 쓰러져 저 품에 안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저 사람에게 이대로 잡혀버리길 바라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처음으로 느껴본 그 이상한 감정이, 그를 불러주는 그 상냥한 목소리가 못 견디게 믿을 수 없어서 고양이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아, 이대로 죽어버려도.
[우득]
순간적으로 다친 발이 꺾임과 동시에 고양이는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로 의식을 잃었다, 저 멀리서 그 사람이 놀란 눈으로 뛰어오는 게 보인다, 저 눈이라면, 저 마음이라면, 혹시라도, 믿어도 될까.
“꼬마야, 우린 참 닮았구나.”
쓰러져버린 고양이의 지친 몸을 감싸 안으며 그가 말했다.
가을저녁, 노을 속 검은 진주가 자그마하게 몸을 떨었다.
고양이는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뭔가 좋은 꿈을 꾼 것만 같다, 나른하고 몽롱한 정신이 취한 듯 기분 좋다.
술을 마셔본 적은 없지만.
따뜻한 뭔가에 덮여있는 몸, 그리고 기분 좋은 고소한 냄새, 그리고 기분 좋게 머리를 쓰다듬는 누군가의 손, 손, 손?
그 이질적이고도 낮선 감각에 정신이 번쩍 난다.
재빨리 눈을 뜬 고양이는 몸을 세워 주위를 경계했다, 아니, 경계하려 했다.
“캬악-”
순간적으로 왼쪽 앞발에 느껴지는 아득한 고통, 뼈가 파여 나가는 듯한 그 고통에 고양이는 몸서리를 치며 다시 주저앉았다.
“아직 무리하면 안돼.”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고양이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소리가 들린 위쪽을 바라본다, 그 사람이다, 여전히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는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그 사람. 거동할 수 없는 고양이는 그 자리를 재빨리 피하기보다는 잔뜩 웅크린 채로 털을 곤두세워 파르르 떤다, 부릅떠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그 사람을 노려보곤 으르렁댄다.
“캬아악.”
그 울음에 놀란 것인지 고양이를 안심시키려 그런 것인지 그 사람은 고양이에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그 사람의 입가에 아직도 미소가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후자일 가능성이 지배적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안심해, 위험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보다 이것 좀 먹어.”
그 사람은 자기 옆에 놓아둔 따뜻한 우유를 건넨다, 접시에 가득 담겨 따뜻한 온기를 모락모락 뿌려대는 흰 유혹.
아, 그 고소한 냄새는 저거였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우유에 온 정신을 빼앗긴 고양이는 어느새 자신이 경계태세를 풀고 멍청한 눈으로 그 우유를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그 사람이 ‘킥’ 하고 낮게 웃었다.
“많이 배고팠나보네, 자 이거 먹어.”
그 사람이 고양이의 앞에 흰 우유를 내려놓는다, 꿀꺽, 침이 넘어간다, 먹고 싶다, 벌써 삼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낮선 사람의 호의를 선뜻 수락할 수만은 없었다, 이 우유에 만약 독이라도 들어있다면? 혹시라도 살을 찌운 다음 잡아먹을 생각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먹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져 버렸다, 애써 우유에서 눈을 뗀 고양이는 다시 털을 곤두세우고 그 사람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무슨 수작이냐! 이 녀석!
“크르릉.”
“.....안 먹어?”
천진한, 그러나 짓궂은 웃음을 더욱 짙게 지으며 그 사람이 물었다, 짓궂은 목소리 가득 장난기를 담아.
한참을 그렇게 눈싸움을 하며 으르렁거리던 고양이는 그 천진한 미소에 질려버린 건지, 고소한 냄새에 고개를 이끌려버렸던 건지 자신도 모르는 새에 경계를 풀고 다시 멍청한 표정으로 우유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먹고 싶다, 먹고 싶다, 절대로 먹고 싶다.
만약 지금 이 고양이가 이 우유를 먹지 못할 운명이라면 운명은 정녕 잔인한 것이리라.
“아, 우유 다 식겠다, 뭐 안 먹는다면, 할 수 없지, 내가 먹는 수밖에, 아아, 아쉬워라 불쌍한 생명하나 구한다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굶어죽어 버리다니, 정말 아쉽지만 내가 먹어버리는 수밖에, 굶어죽은 고양이의 영혼을 위하여, 아디오스.”
마치 전후(戰後)의 음유시인처럼 익살맞게 지껄인 그는, 그러면서 접시를 들어 올렸다, 아니, 올리려 했다.
“크앙!”
멋대로 죽이지 마! 라고 생각하며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는 우유에 얼굴을 처박고 마시기 시작했다, 일단 살아야지.
발톱자국이 난 손을 주무르며 그 사람이 말했다, 여전히 천진한 웃음을 가득 띠고.
“뭐야? 먹을 거였어? 독 넣었을지도 모르는데?, 살찌워서 잡아먹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냐, 나도 먹고 싶어서 먹는 건 아니라고, 내 생존본능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먹고 있을 뿐이야, 내 의지가 아니라고, 본능의 짓일 뿐이야, 난 정말 먹고 싶지 않은데, 먹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면서도 고양이는 정말 맛있게, 엄청난 속도로 우유를 먹었다.
“진짜 배고팠나 보네.”
약간은 허탈하게 허 하고 웃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우유를 받아먹은 주제에 아직도 고양이는 담요 속에서 온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털을 잔뜩 곤두세우고는 그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봐.”
하고 그 사람이 고양이에게 살짝 다가갔다.
“캬아악!”
눈을 부릅뜨며 앙칼지게 울어대는 검은 고양이, 비록 내가 어쩔 수 없는 본능에 의해서 우유를 먹었지만, 더 이상은 안돼! 어서 여기서 내보내 줘!
“흐흠, 이거 왠지 미움 받고 있는 느낌인데.”
그 사람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한다.
“이봐, 아무리 그래도 치료까지 해주고, 재워주고, 식사까지 제공한 사람에게 너무 하는 거 아냐? 따지고 보면 네가 지금 날 주인님으로 모셔도 당연한 상황이라고.”
누가 주인이냐!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여기서 내보내 줘!
“캬악”
고양이는 더욱 털을 곤두세우며 으르렁댔다.
“...왠지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
“뭐, 어찌됐든.”
그는 옆의 너덜너덜한, 폐품 수거함에나 있을 듯한 낡은 소파에 기대앉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이고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놈의 웃음은 아주 얼굴에 새겨진 건지, 떨어질 줄을 모른다.
“사실, 나도 외로웠거든, 보시다시피 이 집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명색이 화가라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팔자고.”
그제야 고양이는 이 낡은 집 바닥과 벽을 어지르는 수많은 종이들이 그림이었다는 것은 알게 됐다, 이상한 그림들, 그는 담배연기를 한번 길게 뿜더니 말을 이었다.
“혼자라는 게 얼마나 편한지는 알지만, 얼마나 괴로운지도 뼈저리게 실감하거든.”
어느새 고양이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대신 삶의 지친 패배자의 고뇌가 얼굴 가득 드러나 있다는 것도, 그렇게 느낀 동시에 그가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툭 하고 고양이에게 던진다, 고양이는 순간 움찔 했지만, 자신의 앞에 떨어진 화가가 던져준 그 무언가를 자세히 살핀다.
작은 목걸이, 고양이나 개들이 하면 딱 맞을 듯한, 그리고 그 목걸이의 나무로 된 펜던트에는 정성스럽게 글씨가 음각 되어 새겨져 있다.
Holy night
성스러운 밤. 뭘까, 나와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듯한 이 글자는.
“이름 지어봤어, 아직 이름 없지?, 잘 어울려, 성스러운 밤.”
악마의 사도인 내게, 불행의 근원인 내게, 재앙의 화신인 내게 ‘성스러운 밤?’
고양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잔뜩 치켜세운 그 털도 가지런히 내린 채 홀린 듯 멍한 듯 그 목걸이를 주시했다.
“그래서 말인데....”
응? 그 사람이 다시 미소 짓고 있다,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의 따스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는 눈물이 나올 듯이 웃으며 말한다, 그때처럼 붉은 노을이다, 붉은 노을이 창문을 통해 화가의 얼굴을 눈물나게 비춘다, 울어버릴 듯 한 목소리로, 첫사랑을 하는 소년처럼 그가 고백했다.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래?, Holy night?"
두 번의 겨울이 지나갔다,
젊은 화가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검은 축복’ 홀리나이트(Holy night)
검은 고양이는 친구가 만들어준 목걸이를 한 채 항상 친구의 뒤를 따랐다, 친구가 웃을 때면 같이 웃었고, 친구가 힘들 때면 친구를 격려했다, 초라하고 지친 젊은 화가의 삶 속엔 언제나 검은 고양이 Holy night 가 있었다.
처음으로 말 걸어준 사람, 처음으로 안아준 사람, 처음으로 다정스레 불러준 사람, 그리고 첫 친구.
남루하고 가난한 화가의 초라한 작업실에는 온통 검은색 그림뿐, 불길한 검은 고양이 그림 따윈 돈도 되지 않는데.
“가르릉, 가르릉.”
검은 고양이 Holy night 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다가가 나지막하게 운다, 화가는 문득 그림을 그리던 목탄을 가슴팍 호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는 친구에게 말했다.
“응? 왜 그래? 배고파?”
친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방안 가득한 검은 고양이 그림만을 주시한다.
잠시 친구를 바라보던 화가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물론 돈은 안 되지.”
응? Holy night 가 화가를 쳐다본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 한 까맣고 반짝거리는 눈동자, 잠시 친구를 바라보던 화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거라고, 물론 지금은 그 돈이 없어서 쪼들리는 생활을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내 작품의 가치를 알아줄 사람이 나타날 거라 생각해, 그리고, 난 아직 꿈을 포기하기엔 너무 일러, 네가 검은색인 것이 어쩔 수 없듯이 내가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 네가 나를 만나 Holy night 가 된 것처럼 너 역시 나에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니까 말이야.”
고양이의 까만 눈동자가 친구의 서글서글한 눈동자를 주시한다, 뭔가 말하려는 듯 자꾸만 입을 오물거린다, 멋쩍은지 화가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 참, 내가 말하고도 참 닭살이네, 어쨌든 뭐 잘 되겠지,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어?”
응. 너라면 그러고도 남아, 고양이가 친구를 한심한 듯 쳐다보았다.
“아, 뭐야? 이거 계속 빤히 쳐다보고, 왠지 부끄러운데? 혹시 내 욕하고 있는 거야? 당연히 그럴 리 없겠지만, 하하하.”
화가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인다, 하하하 하고 웃을 때마다 보기 좋은 웃음이 얼굴 가득 퍼진다.
뭐가 그럴 리 없냐. 이 현실성 없는 녀석,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한심할 수 있을까.
“아아, 그럼 난 저녁 준비하러, 조금만 기다려.”
고양이는 조용히 화가의 뒷모습과 검은 그림들을 번갈아 보았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고 화가가 쏘아지듯 뛰어들어 왔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차가운 칼바람이 들이치는 현관문을 닫을 생각도 하지 않고 거의 넘어지듯 바닥을 뒹굴며 소리쳤다.
“만세!”
거실구석에 웅크린 채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자다 깬 고양이는 조용히 일어나서, 자리를 피해 작업실로 들어가려 했다. 저 친구가 드디어 미쳤군, 매일 라면만 먹어서 그런가.
한참을 뒹굴며 낄낄대던 화가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고는 아직도 웃음이 가시지 않은 듯한 말투로 헐떡대며 고양이를 불렀다.
“어이, 큭큭큭, 내 말 좀 들어봐, 하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정신이 나간 친구를 피해 조용히 낮잠을 자러 작업실로 들어가려 했던 고양이는, 친구의 부름에 마지못해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뭐냐 이 자식아.
낮잠을 방해받아 기분이 몹시 좋지 않던 고양이는 험악한 인상을 쓰며 화가를 주시했다.
뭐, 고양이의 인상이 험악해 봤자 어련하겠냐마는.
역시나 고양이의 험악한 인상이 통하지 않았는지 화가는 아직도 바닥에 몸을 비비적대며 웃으며 말한다.
“이봐, 드디어 내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생겼다고! 그것도 몽땅!, 대기업의 새로운 브랜드 홍보라는데, 내 그림을 광고용으로 쓰겠데! 믿겨져? 믿겨지냐고?, 선금도 받았다! 짜잔~ 여기 계약서!, 이젠 드디어 고양이용 사료도 사줄 수 있어!”
대단히 독특한 취향을 가진 기업인가 보군, 그래도 이제 밥은 제때 먹을 수 있겠어, 고양이는 생각했다.
“오늘 저녁 8시에 내 그림을 들고 다시 보자고 하니까, 그때 나가봐야지! 어차피 이미 계약은 끝났지만, 다시 한번 확인차원에서 보자고 하는 거니까 얼마 걸리진 않을 거야.”
그 이후로도 한참을 뒹굴며 낄낄대던 화가가 머리감는다, 목욕한다, 옷 갈아입는다, 등의 부산을 떠는 동안 고양이는 한숨 자둬야겠다고 생각하며 작업실로 조용히 담요를 끌고 들어갔다. 시끄러운 녀석, 잠도 못 자게 하다니.
그래도 잘됐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문득 눈을 떴다, 몽롱하던 정신이 불빛처럼 맑아지고 잠 속의 무거운 공기는 현실의 차갑고 신선한 공기로 다가온다, 물에 절은 듯 무겁던 몸은 어느새 생기를 되찾아 신선한 대기를 피부로 느낀다, 잠들기 전 마지막 기억은 매우 귀찮았지만, 저녁 약속으로 나가는 화가를 배웅한 것. 그 녀석 너무나 들떠 있었는데, 실수나 하지는 않았을는지, 설마, 다 잘될 거야, 녀석에게는 행운의 마스코트인 ‘Holy night’ 내가 있으니까.
고개를 들어 시게를 주시한 고양이는 지금이 벌써 밤 11시라는 것과, 차가운 안광을 뿜어대는 보름달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녀석, 너무 늦는 거 아냐?
열대 우림처럼 이리저리 엉켜있는 담요 속을 빠져 나온 고양이는 거실로 나갔지만, 고양이를 반기는 건 끈적끈적한 어둠과 기분 나쁠 정도의 차가운 적막, 사람의 온기라고는 어디에도 없다.
이상하다, 이렇게 늦을 리가 없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고양이는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거실의 낡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시게를 주시했다.
[째깍째깍]
시침은 무심하게 돌아간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시간에게 있어서 편애란 없지만 역시 동정 따위도 없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은 정말 무심하리만큼 정확하게 움직인다, 마치 자신이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 마음껏 발버둥쳐 보라는 듯.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다, 새벽 1시.
늦어! 고양이는 생각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꼼짝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쑤실 지경이다, 그렇다고 좀이 쑤시는 것을 못 참아서 일어나 버린 건 아니다, 단지 고양이 특유의 예지력쯤 되는 게 발동한 모양이다 왠지 감이 안 좋다.
약 5분간을 거실을 방황하며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리던 고양이는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벽을 타고 사뿐히 길바닥에 내려앉은 고양이는 발자국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함박눈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 좁은 밤거리에는 검은 고양이의 실루엣이 아름답고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젊은 발레리나의 움직임을 희롱하듯 아름답게 착지한 고양이는 눈길을 헤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의 달빛이 부끄러울 정도로 빛나는 눈을 번뜩이며 친구를 찾아 나선 한 마리 검은 고양이, 하나의 작은 밤과도 같은, 두 눈이 별처럼 빛나는 성스러운 밤 Holy night.
얼마쯤 달렸을까? 그리 오래 달리진 않은 듯 하다, 어두운 밤, 어지러운 골목, 더러운 뒷골목을 순수로 덮어버리듯, 검은 세상에게는 한없이 가차없는 냉혹한 흰 눈.
싸구려 임대아파트가 즐비한 이 빈민가에는 밤이 되면 지나다니는 개조차 없다, 적막하고, 좁고, 끈적거리는, 마치 거미줄 같아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미로처럼 엉켜있는 빈민가의 골목을 거의 다 빠져 나왔을 무렵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나름대로 멋을 내고 간다고 입고 간 단 한 벌뿐인 싸구려 나일론 양복, 인조가죽 구두, 그리고 고양이의 코에 시리도록 익숙한 맨솔담배, 사방에 널려있는 검은 고양이 그림들.
그가 틀림없다! 화가가 틀림없다! 친구가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데!
왜 누워있는 거냐고!
쏘아지듯 달려간 고양이는 친구에게서 낮선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비릿한 쇠 냄새,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혈향(血香).
조심스레 친구의 몸을 건드려 본다, 정신이 자꾸만 아득해지고 손이 떨린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움직이지 않고 있던 친구가 조심스레 눈을 뜬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몽롱한 눈초리. 다행이야! 살아있어!
“냐앙?”
친구를 부르며 친구의 몸을 탁탁 친다. 어서 일어나, 집에 가야지.
친구가 일어나는 대신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집중을 하고 듣지 않으면 듣지 못할 정도로, 잠꼬대 같은 말투.
“성야(聖夜)? 와줬구나, 그런데 어떡하지? 나...눈이 보이지 않아, 피를 너무 흘렸나보다.”
“캬앙!”
그 정도는 라면하나 먹고 자고 일어나면 나아! 그러니 어서 일어나란 말이다!
“그리고...어떡하지? 돈을 뺏겨 버렸어, 안 뺏기려고 했는데...역시...칼에 맞으니깐, 별...수...없더라, 사료도 사 준다고 했는데 ...미안.”
괜찮아! 괜찮아! 그건 선금일 뿐이고, 사료 같은 건 다음에 사 줘도 상관없잖아! 그러니! 그러니! 그러니! ...제발 좀 일어나 줘, 네 몸 위로 눈이 쌓이고 있다고!
뜨나 마나 한 눈이지만, 그것이 그의 생명의 증거라도 되는 듯 화가는 계속해서 눈을 뜨고 있었다, 여전히 초점 없는 몽롱한 눈이지만, 얼굴은 계속해서 웃고 있다, 아니, 웃으려 노력하고 있다, 양 입술이 천천히 올라간다, 조금씩, 조금씩, 됐다, 완전히 웃어버린 그는 말 그대로 ‘웃고’ 있었다.
“너무 나와 닮아서 그냥 둘 수 없었어, 마치 나의 반쪽인 듯, 아무리...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현실에 벽에서 무릎 꿇고 도망치는...마치 검은고양이 같은 내가, 그리고 네가, 너무나 견딜 수 없이 닮아있어서 넌 따라간 걸지도 몰라, 조금이라도 나를 인정받고 싶었기에, 너도 그랬기에 너한테 굳이 Holy night 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어준 걸지도 몰라, 마치 또 하나의 나 같아서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 역시 네가 없으면...안될 것 같아...서.”
“캬앙! 컁!”
그래! 난 네가 필요해! 너도 나 필요한 거 맞지? 그러니까 어서 집에 가자, 집에 가자고! 그렇게 느릿느릿 말한다고 누가 겁먹을 것 같아? 꼴사나우니까 당장 일어나! 오늘 나 저녁도 안 줬잖아!
몸을 살짝 돌려 바닥에 아주 드러누워 버린 화가는 자신의 가슴팍에 앉아 자신을 두드려 대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완전히 노출된 옆구리에선 아직도 검붉은 피가 꾸물대며 새어나온다, 너덜너덜한 싸구려 양복을 타고 차가운 눈 위에 흩어지는 그 비릿한 감촉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오히려 싸구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건 현실이다, 단지 ‘싸구려’ 라는 말로 감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잔혹하고 차가운 눈과 같은 현실, 비록 보이지 않는 눈이지만 고양이를 바라보려는 듯 그는 힘겹게 고개를 움직여, 눈동자를 움직여 고양이를 주시한 그는 고양이가 보이는 듯 말을 이었다.
“친구야, 미안해, 예전에도 미안했고, 지금...이러고 있는 것도 미안하고, 앞으로도, 옆에...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갑자기 목이 탁 하고 막혀왔다, 숨을 쉬기가 힘들다, 목이 막힌다, 자꾸만 일그러지는 얼굴을 애써 피며 고양이는 울었다, 미안하면 당장 일어나란 말이다! 장난은 그만 쳐! 진짜로 화난다!
“내 말...알아듣지? 왠지...그럴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 바보같이, 하, 참나,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 달려가...달려가서 전해 줘...편지를...내 서랍에...내가 항상 쓰던 그...편지... 내 고향에...날 기다리는...그녀에게 전해줄래? 꿈을 쫒아 뛰쳐나온 날 기다리는 내...그녀에게...고향에...어딘지는...알지?”
아예 눈을 감아버린 그가 쥐어짜듯 말했다, 숨쉬는 것조차 힘이 든 듯, 한마디, 한마디 쥐어짜며, 차가운 눈 속에서도 짓궂은 미소를 짓는다, 처음 만났을 때 노을 속에서 보여주던 그것과 같은 천진한 미소, 그때처럼, 그 모습으로 웃고 있는 그가 길게 숨을 내뿜었다.
“널...만...나서, 정말...좋았어...”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다, 더 이상...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눈을 감은 채로 웃고만 있다.
친구의 눈가를 따라 흐른 눈물이 내리는 눈과 섞여 빛난다, 친구는 웃고 있다.
일어나! 일어나! 제발! 그 웃는 얼굴로 다시 한번만 말해 줘! 아무 말이나! 제발! 일어나 줘!
“냐아앙!”
그와 만났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처음순간, 그리고 함께 웃던 일들과 함께 굶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익살스럽게 지나간다,
차갑게 식어버린 화가의 가슴팍에 검은 고양이가 한 마리 앉아서 울고 있다, 그리고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빈민가의 골목길엔 은빛 눈이 내린다, 모든 걸 덮어버릴 듯, 냉혹하게도, 차갑게도 눈물겹게 하늘하늘 떨어진다.
친구야, 잘 가.
눈이 내리는 산길을 검은 고양이가 미끄러지듯 달린다, 지금은 없는 친구의 약속을 입에 물고서 달린다, 달린다, 벌써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렸는지 온몸은 깡마르고 지친 얼굴에는 부릅뜬 눈동자만이 형형 히 빛난다.
얼마쯤 왔을까? 발바닥은 부르트고 이곳저곳 긁힌 상처에는 고름이 터져 흘러내린다, 그래도 달린다, 달린다.
앙다문 입에 물린 편지는 한번도 고양이의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쓰러질 것만 같다, 쉬고 싶다, 아니, 차라리 이대로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 돌을 던지는 사람들, 고양이를 덮쳐오는 온갖 욕설과 폭력.
“저것 봐! 악마의 사도다!”
“뭐야? 재수 없게!”
“입엔 뭘 물고 있는 거야? 틀림없이 어디서 훔친 거겠지, 도둑고양이 같으니라고.”
“꺄악, 저 털 좀 봐,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색이야.”
“죽여 버리자!”
뭐라 불러도 좋아, 내겐 지울 수 없는 이름이 있으니까, 성스러운 밤 Holy night.
성스러운 밤이라 불러주었다, 상냥함과 온기를 담아, 그 바보같이 웃는 얼굴로 내게, 내게 성스러운 밤이라 불러주었다.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목적지를 향해 달릴 뿐 혹사된 관절은 삐걱거리고 온몸의 근육은 터질 듯 아프다, 아니, 실제로 터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각조차 사라지고 있다, 정신은 몽롱하고 오로지 목적지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스스로를 추스를 정신조차 없는 채로 달린다, 그렇게 계속해서 달린다.
[파악-]
“맞았다!”
한 꼬마가 던진 돌에 맞았다, 버텨낼 힘조차 없는 몸은 낙엽처럼 날아가서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터진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왼쪽 앞발엔 감각이 없다, 어지럽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돌을 던진 꼬마 무리들이 구경이라도 난 듯 우르르 몰려온다, 잔인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비릿한 미소를 짓는 아이들.
달려야 해, 달려야 해.
“헤에, 이것 좀 봐라, 불길한 검은고양이다, 잡아죽이면 복이 올지도 몰라.”
야구모자를 쓴 한 꼬마가 말한다.
“아냐, 요 앞 한약방에서 검은고양이를 약재로 쓴다는데 거기다 팔아버리자.”
“일단은.”
그중 대장인 듯한 한 꼬마가 그렇게 말하고는 휘청거리는 검은 고양이의 꼬리를 잡아 들어올린다.
“일단은, 실컷 괴롭히다가 죽이자, 그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 이 녀석 뭘 물고 있는 거야? 편지?”
“뺏어! 태워버리자!”
파란색 잠바를 입은 꼬마가 몹시 즐거운 듯 말한다, 동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한 장난기로 가득한 철없는 꼬마들.
그들이 입에서 편지를 뺏어가려고 잡아당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난다. 안돼! 절대로!
순간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편지를 잡아당기는 손을 발톱으로 찍는다, 꼬마가 피를 흘리며 나가떨어진다, 그리곤 몸을 돌려 아직도 자신의 꼬리를 잡고 놀란 표정을 한 꼬마의 손목을 잡아 뜯는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 꼬마, 옆에 있던 꼬마들이 일제히 발길질을 시작한다, 채이고, 밟히고, 온몸에서 ‘우두둑’ 하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난다.
방금 나가떨어진 꼬마 둘이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친다. 죽여 버려! 죽여 버려! 불길한 검은고양이 따위 죽여 버려!
발길질은 갈수록 심해진다, 내장이 상했는지 목구멍에서 피나 흘러나와 편지를 적시기 시작한다, 다시 일어설 틈도 주지 않고 발길질이 계속된다, 벌써 온몸이 만신창이다.
질까보냐! 이 몸은 Holy night 라고!
“캬아아악!”
끊어질 것 같은 팔다리를 추스르고 필사적으로 달린다, 이젠 감각도 없어지는 턱에 더욱 힘을 주고서 편지를 악문다, 달리고 달려서 이 몸이 없어지더라도 달린다.
검은 고양이가 뛰쳐나간 자리엔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는 꼬마 둘과 덩달아 울기 시작한 꼬마들만이 남았다.
미움 받던 내게도 의미가 있다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거겠지, 언제까지라도, 어디까지라 든 달려 줄 테야.
죽음이 눈앞에서 손짓한다, 차가운 눈과 같은 흰 미소를 번뜩이며 고양이에게 손짓한다, 너무나도 눈이 부신 아름다운 미소지만 그런 차가운 아름다움 따윈 필요 없다, 어색하고, 투박한, 하지만 따뜻한 그의 미소가 좋아, 희고 차가운 아름다움 따윈 필요 없어, 검지만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한 미소를 원해.
이제 움직이지도 않는 팔다리를 질질 끌며 도착한 친구의 고향.
찾았다! 이 집이다!
조용히 눈 내리는 산골마을,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고 담장에는 담쟁이 넝쿨이 뼈만 남아 회색 돌담을 지키는 이 집, 친구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려주던 이 집.
친구가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던 이 집, 모든 게 똑같았다, 대문에 붙어있는 주소는 물론이고, 돌담 위 살구나무에 걸려있는 작은 까치집까지.
온몸을 질질 끌어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앞까지 기어간 고양이는 그제야 편지를 문 입을 벌렸다, 이빨도 다 부러져 있는지 편지는 생각보다 쉽게 톡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오늘도 그때처럼 함박눈이 하늘하늘 내린다, 아름답지만 차갑다, 반면 그는 남루했지만 따뜻했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의 그 사람, 그 사람이 지금 너무나 보고 싶었다, 갑자기 폭발하듯 외로움이 몰려온다.
무엇을 위해 달린 것일까, 무엇을 위해 지금을 살았는가, 무엇을 위해 여기서 눈을 감는가,
이대로 좋은가?, 이렇게 좋은가?
차가운 한기가, 흰 눈덩어리가 고양이의 몸을 덮는다, 하얀 사신(死神)이 차가운 미소로 고양이를 포옹한다, 차갑다, 춥다, 갑자기 온몸에 경련이 일어난다, 미친 듯 서글펐다, 이렇게 혼자서 쓸쓸히 사신의 품에 안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소름끼쳤다,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나는, 왜 살았던 걸까, 언제까지 살아있어야만 하는가, 나는 왜 혼자인가.
그의 미소가 떠오른다, 투박하지만 정말 멋졌던 그 미소. 언제까지나 그레이트! 하고 탄사를 외쳐줄 수 있는 그 미소,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미소.
언제나 난 혼자였어, 잠시나마 함께 라고 착각했던 거야, 결국엔 혼자인데.
눈을 감아버린 고양이가 흰색 사신의 소름끼치는 미소에 빨려 들어가려는 순간, 고양이를 뒤흔드는 따뜻한 손길.
“어머? 웬 고양이? 그리고, 편지?”
그리곤 몸이 번쩍 들렸다, 그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이 떠올라 정신이 번쩍 났다, 아니, 오락가락 하는 정신은, 그때라고 착각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정신을 추스르고 힘겹게 눈을 뜬다, 몽롱한 시각에 한 여성이 잡힌다, 걱정스러운 듯 고양이를 안은 채 내려다보는 그 까만 눈동자.
“참 예쁜 고양이구나, 불쌍하게도, 곧 병원에 데려가 줄게 조금만 참아.”
약간은 당황했지만 침착함을 유지한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대문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 따뜻한 품이 느껴진다, 옆으로 휙휙 스쳐 가는 주위 풍경에 차가운 바람과 눈이 고양이를 스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흰색 사신은 어느새 달아나 버린 지 오래다.
“하악, 하악, 조금만 참아, 조금만”
계속해서 고양이에게 말을 걸며 그녀는 달렸다, 고양이가 왔던 길을 되돌아서 달린다, 달린다.
“Holy night? 참 예쁜 이름이구나, 잘 어울려.”
마치 그에게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다시 힘겹게 눈을 떠 그녀를 바라본다, 빨갛게 상기된 두 볼, 여전히 까맣고 예쁜 눈동자.
달리던 그녀가 갑자기 멈추어 선다, 그리고 아직도 가쁜 숨을 내쉬며 고양이를 내려다보곤 말했다.
“하아, 하아, 다 왔어, 고양아, 이제 의사 선생님 만나러 들어가자.”
그리곤 그녀가 웃었다, 싱긋.
이제는 절대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그 미소, 혼자가 아닌 그 미소.
그의 풋풋한 미소다.
숨이 막힌다.
잘 움직이지도 않는 얼굴을 움직여 고양이도 같이 웃어주었다. 지금 자기 모습 굉장히 웃길 거라 생각하며.
그리고 고양이는 다시는 뜨지 않을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줘서 고마워, 친구야.
‘여어~ 너무 늦는 거 아냐?’
언제 나처럼 후줄근한 차림으로 그가 서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엔 웃음이 한가득 걸려있다, 바보 같은 녀석, 한번 죽은 녀석이 저렇게 실없이 웃어도 되는 거야?
‘늦기는, 네가 너무 빨리 간 거라고 멍청아.’
‘아앗, 그런가? 그보다 편지는 잘 전해줬겠지?’
‘물론!’
그가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헷, 데리러 왔어, 자, 가자.’
잠시 그를 빤히 처다 보던 고양이는 말했다, 첫사랑을 고백하는 소년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두근대는 마음으로.
‘이제는...헤어지지 않는 거지?’
그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소녀 같은 미소를 머금고는 따뜻하게 대답한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해바라기 같은, 성야(星夜)같은 거룩한 목소리로.
‘당연하지!’
마주보고 해맑게 웃어준 고양이는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검은 축복 Holy night.
차가운 칼바람이 물러나고 봄의 여신이 살포시 미소 지었다,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하늘은 그런 새싹을 질투하는 듯 나날이 푸르러만 진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도 오랜만에 활기가 돈다, 이리저리 뛰노는 아이들은 부모님의 잔소리도 싫게 들리지 않는다, 그 동안 얼어있던 밭을 갈며 마냥 즐거운 농부들, 굳었던 대지도 화를 풀고는 아지랑이를 내뿜으며 즐겁게 역동한다, 새들도 봄기운을 느끼는지 이리저리 지저귀고, 얼었던 개천이 녹아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태양은 자애로운 어머니 마냥 따스하게 빛나고 바람은 할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럽다, 마법 같은 봄의 교향곡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난히 살구나무가 많은 돌담 집에 담쟁이 넝쿨은 그 앙상한 뼈대에서 푸른 기운을 역동하고 살구나무는 봄바람에 노래하며 생명을 증명한다, 아름다운 그 집 젊은 아가씨는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가족을 위해 집안 일을 돕는다, 그렇게 봄기운이 완연한 이른 아침.
그 집 마당에는 알파벳 ‘K’를 더한 ‘성스러운 기사’의 묘비가 봄볕에 반짝이고 있었다.
Holy Knight.
-完-
첫댓글 달린다,달린다,달린다....................
가사가 군데군데 통째로 들어가있네요. K를 좋아해서 가사해석본을 아예 다 외우고 있는상태에서 저 소설이라는걸 봤는데 어이상실입니다.
제 블로그에 올려도 될까요?
에.. 음.. 제 개인적인 욕심입니다만, 블로그에 올리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이상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제가 제지할 권리가 있는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기분이 그렇다는겁니...[횡설수설]<-=_=
제생각이긴 하지만;; 이거 너무 티나는거 아닙니까 ?;;; 어이없군요;;
저도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관련글들이 넓은 곳으로 유포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지나치게 일이 벌어져서 모두가 상처 받고 있으니까요.
가사를 읽은분이라면 누구나 느꼈겠지만..저 가사를 읽는도중 한편의 영화 스토리가 머리속으로 지나가지 않습니까.. 저소설은 가사를 바탕으로 섰다기 보단 가사전체를 그냥 옮겨서 중간중간 이야기를 넣어 분량을 많이 만든것 뿐이군요.그리고 K란 가사가 너무도 완성도 높고 훌륭할 뿐더러 감동적이기까지 하기때문에
저정도 소설은 누구라도 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K가사를 바탕으로했다는것을 밝히기만했어도..!!범프 귀에 들어가는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되네요..저소식을 듣고 이젠 공연하러 오시지않을까봐 걱정됩니다.후지와라군이 받을 충격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ㅠ.ㅠ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가사에다가 이상한 말만 덕지덕지 붙인 것 같...;; 뭐-... 이정도로 그만두기로 하죠-_-;;
역시 달린다..달린다..달린다.. 하하하하 ;
제가 항상하는말이지만. 가짜는 쓰레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