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이 너무 많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좋은 음악을 찾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 돼버렸죠. 다양한 드라이빙의 순간, 당신의 기분을 더 업 시켜줄 상황별 음악을 골라봤습니다. / 글 차우진(음악평론가)
공간의 사전적 의미는 ‘비어 있는 곳’입니다. 반면 장소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곳’이죠. 같은 곳이라도 무언가가 벌어지느냐 마느냐에 따라 공간과 장소로 구분됩니다. 그래서 저에게 차는 공간이 아닌 장소입니다. 운전석에 앉으면 왠지 안심이 됩니다. 문을 닫으면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밀폐감, 그 단절의 감각이 좋아요. 시동을 켤 때의 떨림도, 잠시 켜졌다 사라지는 실내등과 계기판 불빛마저 사랑스럽습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짧은 여행을 가듯 빗길로, 꽃길로, 고속도로로 달립니다. 혼자거나 누군가와 함께였거나, 매 순간 그때마다 들었던 음악을 소개합니다. 모두 좋은 곡들입니다. 당신에게도 좋은 곡이 될 거라 믿습니다.
봄비 내리는 날의 드라이브
촉촉히 내리는 봄비는 어쩐지 몽환적인 느낌을 주죠. 추천곡은 이렇습니다.
Slowdive < Sugar for the Pill >
90년대의 드림팝을 대표하는 슬로우다이브의 2017년 신곡. 꿈꾸듯 흐르는 기타 리프와 몽롱하게 퍼지는 잔향이 아름다운 곡입니다. 빗길 드라이브 곡으로 무척 잘 어울립니다.
Ed Sheeran < Photograph >
에드 시런의 포크 송은 적당한 드라이브감이 돋보입니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면서 듣기 좋은 음악은 여럿 있지만, 이 곡은 특히 향수와 추억을 동시에 전해주는 곡이죠. 감상적인 풍경과도 잘 어울릴 겁니다.
Courtney Barnett & Kurt Vile < Over Everything >
호주 출신의 코트니 바넷과 커트 빌의 듀오 곡. 부드럽고 위트 있는 멜로디가 인상적입니다. 정박자의 리듬감과 유리창에 튀는 빗방울이 조화롭게 어울립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봤어요.
M83 < Wait >
프랑스 일렉트로닉 음악을 대표하는 M83은 우주 덕후로도 유명하죠. 이 곡이야말로 그 대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엄하고 신비롭고 아름답죠.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 이 음악을 들으면서 빗길을 달리다보면 문득 어디 머나먼 우주로 사라져버리고 싶어집니다.
정인 < 장마 >
이 곡은 빗소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인의 촉촉한 목소리. 근 몇 년 간 빗길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낸 가요 중 하나입니다.
헤이즈 < 비도 오고 그래서 (Feat. 신용재) >
비가 올 때는 왜 자꾸 그 사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곡. 비가 와서 그런 거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우리는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고속도로를 달릴 때
당신의 심장 박동수를 높여줄 노래들입니다. 단, 과속은 사고의 지름길이니 조심하세요.
Roosevelt < Moving On >
20세기의 한적한 감성과 21세기의 날카로운 느낌을 잘 섞어내는 루즈벨트의 대표곡. 시속 80~100km 구간에서 특히 잘 어울립니다. 곡의 분위기를 더 잘 느끼고 싶다면 심야 고속도로를 달릴 때 듣기를 추천합니다.
Of Monsters And Men < Dirty Paws >
판타지 같은 설정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포착하는데 능숙한 오브 몬스터즈 앤 맨의 곡입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도 삽입됐죠. 고속도로를 탈 때마다 모험을 떠나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곡이 없을 것 같군요.
Birdy < Wings >
버디의 곡 중에서도 꽤 록킹한 곡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고속도로를 탈 때 이 곡을 자주 들었죠. 비교적 한산한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따뜻한 남쪽을 상상할 때 좋은 친구가 되어준 곡입니다.
The 1975 < Robbers >
스타일리시한 프랑스 록밴드의 스타일리시한 곡. 섹시한 은행털이 커플이 나오는 뮤직비디오도 이 속도감에 한 몫 합니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와 배경으로 펼쳐진 산맥들을 상상하면서 이 곡을 들어보세요.
드림캐쳐 < Chase Me >
시속 100km 정도로 달리면 아이돌 음악이 은근히 듣기에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뜨고 있는 걸그룹 드림캐쳐의 노래를 추천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처럼 멋과 허세로 가득한 전자기타 속주가 기분을 업시킵니다.
방탄소년단 < DNA >
방탄소년단의 이 곡은 K-POP이라기보다 오리지널 팝에 가깝습니다. 한국어로 된 미국 팝 같은 느낌인데, 무겁지 않으면서 적당히 신나죠. 휙휙 지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오직 앞만 보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게 됩니다.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면서 말이죠.
느긋하게 해안도로를 달릴 때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달릴 때는 좀 멜랑콜리한 음악이 좋겠죠.
Camila Cabello < Havana >
2018년의 신인이라고 해도 좋을 카밀라 카벨로의 대표곡. 아름답고 섹시합니다. 느긋하게 해안도로를 달릴 때 틀어두면 혼자여도, 둘이여도, 여럿이여도 딱 분위기가 잡히는 곡입니다. 그리고 해산물을 먹으러 가는 거죠.
Aurora < Runaway >
신비로운 음색이 돋보이는 북유럽 출신 싱어 오로라의 목소리는 당신이 있는 곳을 순식간에 비현실적인 장소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 둘이서 어디 멀리 도망가자!’라는 마음으로 해안도로를 찾은 사람들을 위한 추천곡입니다.
Bon Iver < Holocene >
본 이베어의 꿈결같은 목소리는 이 곡에서 특히 돋보입니다. 4월과 5월의 해변은 사람들 대신 쏟아지는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만이 가득할 때죠. 이 곡과 함께 포항으로 가서 속초까지,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 걸 추천합니다.
Chvrches < Leave A Trace >
처치스의 음악은 적당한 비트에 멜랑콜리한 멜로디, 그리고 해맑은 음색이 특징입니다. 한국에서 해안도로로 가려면 대체로 산을 지나야 합니다. 첩첩이 둘러싼 산맥을 지나 바다가 등장할 때의 스펙터클한 풍경에 어울리는 곡이죠.
태연 < I (feat. Verbal Jint) >
태연의 이 솔로곡은 작정하고 만들었다는 인상입니다. 작정하고 광활한 풍경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이랄까요. 시원하게 뻗어가는 보컬과 아득하게 멀리 흩어지는 멜로디가 쭉 뻗은 해안도로를 달릴 때 무척 잘 어울립니다.
카더가든 < 섬으로 가요(Feat. 오혁) >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게 너무 지겹고 지겨워서 우리는 해안도로를 꿈꿉니다. 판타지 같은 그 느낌이 좋아서 바다가 그립죠.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곡을 보내보세요. 그리고 ‘오늘 저녁 드라이브 어때?’ 라고 물어보세요. 함께, 섬으로 가자고 말이죠.
벚꽃길을 달리고 있다면
벚꽃 드라이브는 그야말로 낭만의 극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러블리한 곡들이 어울릴 겁니다.
Sara Bareilles < Gravity >
벚꽃은 잠깐 피었다 순식간에 떨어집니다. 지친 퇴근길에 굳이 여의도 윤중로를 돌아서 집으로 가는 건 그 유한함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 이 곡을 틀어두면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유리창에 스르륵 미끄러지는 장면조차 경이롭게 보일 겁니다.
Tatsuro Yamashita < Someday >
80년대 일본의 시티팝을 대표하는 타츠로 야마시타의 대표곡. 먹고 사는데 큰 걱정이 없던 버블 경제 시대에 만들어진 예쁘고 사랑스러운 팝입니다. 잠깐 피었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벚꽃을 보러 햇살 쨍쨍한 아침부터 길을 나서는 우리들처럼.
Takeuchi Mariya < Plastic Love >
타츠로 야마시타의 아내이자 일본 팝의 여제로 불리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대표곡. 30년 전의 곡이지만 지금 들어도 세련된 감성은 여전합니다. 벚꽃이 흩날리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길에 어울리는 러브 송이죠.
Arcade Fire < Everything Now >
21세기의 록이란 이런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던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 해가 갈수록 잊히는 느낌이지만, 그 사운드의 임팩트는 여전합니다. 별 것 아닌 일상을 극적인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곡입니다. 노래 제목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지금’이 중요하죠.
여자친구 < 너 그리고 나 >
여자친구의 음악에는 판타지와 현실감이 적당히 섞여 있습니다. 한 10년 전 쯤의 기억과 추억을 현재와 뒤섞어버린다는 점에서 청춘 만화 같은 분위기도 있죠. 벚꽃과 무척 잘 어울립니다.
새소년 < 긴 꿈 >
2017년의 신인, 올해 가장 주목받는 밴드. 새소년의 <긴 꿈>은 나른하고 아름답습니다. 서정적인 가사도 너무 훌륭하죠. 새빨간 석양을 배경으로 흐드러진 벚꽃길을 이 곡과 함께 천천히 달린다면, 울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X 때문에 열받을 때
집에서, 회사에서, 친구 때문에, 애인 때문에. 스트레스 쌓일 때는 이 음악들과 함께하세요. 단, 난폭운전은 하지 마시고요.
선미 < 주인공 >
원더걸스를 떠난 선미는 <가시나>로 매드걸 콘셉트를 탁월하게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곡이 나왔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비트와 떼창 속에서 선미는 각성하는 여자를 연기합니다. ‘악역이라도 어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데’라고 말하는 것 같죠.
청하 < Roller Coaster >
클럽 댄스를 표방하는 곡입니다. 성질나고 열 받을 때는 다 됐고, 이런 노래를 크게 틀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곳에서 소리를 빽 질러버리면 됩니다. 운전석이야말로 이 험한 도시에서 내게 허락된 유일한 쉼터가 아니던가요.
Nujabes < Worlds End Rhapsody >
세계의 끝이 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다면 이 노래를 들어보세요. 재즈힙합을 대표하는 누자베스의 이 곡은 아름답게 사라져 가는 세계를 위한 송가입니다. 기분이 쳐지는 날이면 이 노래를 꼭 들어보세요.
Kings Of Convenience < I'd Rather Dance With You >
가볍게 몸을 흔드는 건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됩니다. ‘내가 춤은 좀 추지’ 하는 마음을 담아 비트에 몸을 맡겨보세요. 가볍고 귀여운 멜로디가 저도 모르게 춤추게 만들 겁니다.
Kanye West < Stronger >
다프트 펑크의 명곡을 샘플링한 카니예 웨스트의 이 곡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I know I got to be right now, Cause I can't get much wronger(내가 맞을 거란 걸 나도 알아, 난 더 이상 틀릴 수가 없거든)’. 묵직한 비트에 몸을 맡기면 ‘나 좀 짱인듯’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옆에 탔을 때
좋은 음악이 내 마음을 더 잘 전달해줄 때가 있죠. 한 마디 말보다 말이죠.
The Avalanches < Because I'm Me >
80년대의 흥취로 가득한 아발란쉐의 이 곡은 흥겹고 사랑스럽습니다. 진도를 좀 더 나가볼까 말까 하는, 약간은 어색한 관계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해줄 겁니다. “이 노래 뭐예요?” 라고 묻는다면 “함께 듣고 싶어서 골라왔어요”라고 답해보세요.
Missio < I Run To You >
분위기가 좀 잡힌 상태라면 분위기를 좀 더 우아하게 만들어 보세요. 투명하게 아름다운 고독감을 전해주는 이런 노래로 말이죠. 그 사람의 집까지 함께 가는 짧은 시간에도 특별한 분위기와 인상을 남기게 될지 모릅니다. ‘당신과 함께 더 많은 걸 나누고 싶어요’ 라는 메시지처럼 들릴 지도요.
Cigarettes After Sex < K >
2017년의 히트곡. 꿈꾸는 듯 영롱한 멜로디와 나른한 분위기가 자동차 안을 순식간에 낯선 곳으로 만들어버리는 곡이죠. 마찬가지로 “이 곡은 뭐죠?”라고 묻는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밴드 이름을 말하세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진가인 낸 골딘(Nan Goldin)의 대표작이 연상된다고 하면 더 멋있게 보일 겁니다.
Lorde < Perfect Places >
그게 어디든,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거기가 완벽한 장소겠죠. 불변의 진리입니다. 마침 로드의 목소리가 그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줍니다. ‘Now I can't stand to be alone. Let's go to perfect places(이제 혼자 있을 수 없어. 함께 완벽한 장소로 가자)’ 같은 가사는 묵직한 울림이 있습니다. 음악이 모든 걸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뭔가를 시작하게 해줄 수는 있을 겁니다.
검정치마 < Everything >
낭만성의 정점을 찍는 검정치마의 곡. 이 곡은 우회적인 고백의 송가입니다. 그러니 자동차의 속도를 좀 늦추고 그 사람이 이 음악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게 해주세요.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어요’라는 느낌으로.
볼빨간 사춘기 < 썸탈거야 >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그 사람이 잘 못 알아듣는다면 이런 노래는 어떨까요. 좀 직설적이지만, 요즘엔 은근한 변화구보다 직구가 더 효과적인 세상이니까요. 인상적인 후렴구인 “오늘부터 너랑 썸을 한 번 타~ 볼 거야”. 이렇게 따라 부르면서 옆 좌석을 빤히 쳐다보면... 생각해보니 상대가 좀 무서워할지도 모르겠군요.
첫댓글 전 남진.나훈아.배호노래만있으면 최고입니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