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오늘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심을 기념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승천은 물리적 개념이 아닌 신앙의 언어로써,
예수님이 오르신 하늘은 우주의 어느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신 자리를 뜻한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노갈매기 치앙은
"하늘은 장소가 아니고 또 그것은 시간이 아니야. 하늘은 완전하게 되는 거야."라며
젊은 조나단에게, 하늘이 시공을 넘어선 초월의 세계임을 일러준다. 하늘은 성경에서 어떤 곳일까?
성경에 드러난 "하늘"의 의미는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의 신앙에 지닌 의미를 드러낸다.
성경에서 하늘은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신적인 초월이나 무한함의 상징이다.
또한 신비로운 우주의 질서를 내포하며 완벽한 조화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천문학적 의미가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로 "하늘"은 하느님의 처소를 상징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을 떠나 땅으로 내려오신 분이 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고향인 하늘에 관해 자주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시며, 하늘나라에 관한 신비를 들려주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 누룩, 씨 뿌리는 이, 가라지, 밭에 숨겨진 보물,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그물, 포도원 농부, 혼인 잔치 등등과 같다고 비유하셨다.
당신 외에는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기에
하늘에 관하여 설명을 하자면 비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으로 하늘은 당신의 아버지인 하느님이 계신 곳이자,
당신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임을 분명히 일러주셨다.
그 결과 예수님의 고향인 하늘은 우리의 고향이 된다는 말씀이다.
즉 "인간의 영광과 운명이라는 궁극적 소명이 하늘에 있음을,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며 그분의 집임을 고백한다."(알렉산더 슈메만)
예수님이 올라가신 하늘, 그리고 자리하신 하느님의 오른 편이란 바로 하느님의 본성이다.
"하늘은 인간 존재와 하느님의 현존과의 접촉점이요, 하느님과 인간의 내밀한 만남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하늘은 인간의, 인류의 미래다!" (프랑수아 바리용)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이 고향인 하늘로 오르신 사건이 승천이다.
더욱이 하늘에서 오셨던 예수님은 혼자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시고,
당신을 구세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도 하늘에 오르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하늘을 그리워하는 이들이다.
이를 두고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서 구원자로 오실 것을 고대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키실 것"(필립 3, 20-21)
이라고 일러준다.
이렇듯 주님의 승천 축일은 곧 우리가 땅을 디디고 살지만 땅에 묶이지 말고,
주님께서 오르신 하늘로 마음을 드높이며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 2)에 대한 희망을 새롭게 하라고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시는 날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늘에 오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수님은 승천하시며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명하신다.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 즉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구원하신 일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행하신 일이었다.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처럼 우리가 하늘로 오르기 위해서,
땅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우리도 행하라고 이르신다.
이제 예수님이 땅 위에 계시지 않으니,
그 대신에 우리가 이 땅에서 당신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 하늘에 오르는 길이라는 말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 막바지에 부상자와 사망자가 날로 늘어 갔다.
부상자들을 더 이상 병원으로 후송할 수가 없어 성당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와중에 한 병사가 큰 부상을 당하여 의식을 잃은 채 성당으로 실려 왔다.
그 병사는 "한평생 3번(태어나서 세례성사, 결혼하며 혼인 성사, 죽어서 장례 미사) 성당에 가는"
부류에 속하는 냉담자였다. 며칠 후 깨어나 눈을 뜬 환자는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얼굴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고,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병사는 "이 몹쓸 놈의 전쟁이 십자가를 저렇게 만들었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십자가를 바라보다가 또 한 번 놀랐다.
예수님의 발아래 "사랑하는 형제여, 네가 나의 입과 팔과 다리가 되어 줄 수 없겠는가?"라고
쓰인 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 십자가는 전쟁통에 부서진 것이 아니라 애당초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십자가 아래 쓰인 말씀에 충격을 받은 그 병사는 지난날을 뉘우치고,
예수님 발치에 쓰인 말씀대로 예수님의 입, 팔, 다리 중 하나가 되기로 결심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병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자신도 행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주님의 팔, 다리, 눈과 귀가 되자 그 병사는 주님이 누리던 행복,
하느님 자녀로서의 기쁨, 하늘의 시민으로서의 평화를 누렸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하신 당부 말씀은
당신의 빈자리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말씀이다. 당신이 수행하시던 사명을 우리가 실행하라는 분부다.
그 일, 주님의 일은 우리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 그때 승천하신 주님은 우리가 함께 계신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라고 복음은 전한다.
둘째 독서에서 들었듯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님 몸의 전부가 아니라 한 부분이라도 넉넉하다.
팔이든 다리든, 손이든 발이든, 눈이든 귀든 예수님의 한 지체가 될 때,
주님께서는 복음 말씀대로 늘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
그 결과 머리이신 예수님이 오르신 하늘에 우리도 올라, 본래의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게 된다.
예수님이 선포하셨듯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가난한 이, 병든 이를 예수님이 사랑하셨듯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셨듯 우리가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셨듯 우리가 작은 일에 희생할 때,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의 빈자리를 우리가 대신하게 된다.
그때 우리도 아버지인 하느님이 계신 곳, 영원한 고향인 하늘에 오를 것이다.
[출처] 주님 승천 대축일 나해 -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작성자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