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키타 때문에
조 흥 제
통키타가 젊음을 키워 주었다.
방송에 나온 가수 김세환에게 사회자가 몇 살이냐고 묻자 74세라고 했다. 50대로 밖에 안 보인다고 하자 그는 ‘통키타가 미모를 키워 주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70년대에 날리던 쎄시봉 클럽의 막내라고 했다.
한국 음악계에 포크 열풍을 일으킨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등을 배출한 음악감상실 ‘쎄시봉’, 젊음의 거리 무교동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던 그곳에서 ‘마성의 미성’ 윤형주와 ‘타고난 음악천재’ 송창식이 평생의 라이벌로 처음 만나게 된다. ‘쎄시봉’ 사장은 이들의 가수 데뷔를 위해 트리오 팀 구성을 제안하고, 자칭 ‘쎄시봉’의 전속 프로듀서 이장희는……. 인터넷에서 쎄시봉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쎄시봉은 음악감상실이고 정식 가수들의 모임은 아니었던가 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이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활짝 열게 하는 것이다. 김세환은 해동방모임이라는 모임에도 참석하고 있다. 배우이자 연출가인 이해랑 가족들과 김세환의 아버지인 김동원 가족들, 그리고 연출가 윤방일의 가족들이 함께 만나는 모임이다. 연극계 거물들의 모임이 그들의 후손들 모임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어쩌면 오랫동안 깊이 있게 모이는 사람들과의 꾸준한 관계가 김세환의 인간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건 아닐까.
70년대 젊은 가수들은 남진, 나훈아,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전영록, 여자는 박인희, 혜은이가 얼른 떠오른다. 그 중에도 김세환은 항상 키타를 메고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어디서든지 키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니 늙을 겨를이 있겠는가.
나도 나이보다는 젊게 본다. 얼굴에 주름이 없어서이다. 나름대로 원인을 짚어 보면 속 썩이는 일이 생겨도 오래 머물지 않는 성격이어서인 것 같다. 나쁘게 말하면 집중력이 없다는 것이다. 크게 성공을 못하여 바보같이 생각되지만 건강에는 좋은 것 같다.
‘내일의 걱정이 오늘을 힘들게 한다.’는 금언이 있다. ‘지금은 행복하게 살아도 앞으로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머물게 되면 오늘이 행복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오늘 걱정은 오늘 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라.’는 구절이 있다. 이렇게 볼 때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것 보다 슬금슬금 비켜 가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가 직장을 퇴직하고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무얼 하고 살까. 글을 밥벌이 수단으로 쓰면 마음이 편할까. 아니다. 취미로 써야 즐겁다. 직장을 퇴직한 93년에 수필로 등단했다. 내가 수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웃 부서에 수필계에서 ‘바보네 가게’로 한창 날리던 박연구씨의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가까운 교보문고에 가면 가판대에 수필책들이 많이 있었고 좋은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푸근했다. 내가 수필을 쓰고 싶다고 박연구 동생에게 얘기했더니 제 형한테 얘기 했던가 보다. 그 형이 수필 3편을 써 오라고 했다. 세 편을 써서 보냈더니 신춘문예에 응모하라는 답이 왔다. 미역국 먹은 것이다. 그러던 중 수필과 비평지에서 수필 공부 할 사람을 모집한다고 하여 신청했다. 지도는 호남대학교 정주환교수가 했다. 일주일에 수필 한 편을 써서 편지로 보내면 고쳐서 보내 주었다. 나는 쓸 거리가 많아 일주일에 두 편씩 보냈다. 그랬더니 내 글씨가 엉망이어서 볼 수가 없다고 워드로 쳐서 보내라고 했다.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용산 전자상가에 가서 중고 워드를 사서 쳐서 보냈다. 그해 11월호에 ‘킁킁이와의 이별’이 등단작품으로 선정되었다면서 서울의 이철호선생을 찾아 가라고 했다. 수필과 비평은 서울의 이철호 선생, 호남대학교의 정주환 교수, 전주의 서정환 출판사 사장 등 세 분이 합작하여 발행했기 때문이다. 이철호 선생은 서초구에서 한의원을 하면서 명지대에 출강했다. 찾아 갔더니 남부 터미널 앞에 있는 진로백화점 문학반을 지도한다고 하여 등록했다. 그때 같이 공부한 모임이 ‘현대문학 문예동인’으로 아직까지 모임을 갖는다.
30년 동안 천방지축 날뛰었다.
뭔가 쓸 거리가 떠오르면 자료를 수집하고 구성하여 쓰라고 배웠다. 그게 정석이다. 헌데 나는 성격이 급한 건지, 성질이 못 돼 먹었는지 모르지만 우선 쓰고 본다. 순간적으로 왔다가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영감(靈感)을 붙잡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감이 빠져 나간 후에 쓰려면 애들 말로 ‘앙꼬 빠진 찐빵.’이다. 쓰다가 펜이 딱 멈추면 공책장을 덮는다. 안 되는 걸 붙잡고 있으면 골치만 아프고 안 써지기 때문이다. 쓰고 싶을 때 쓰면 연결이 된다. 그래서 글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영감이 쓴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내가 내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은 성격이 느려 터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되던 안 되던 쓰고 싶을 때 쓰는 글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세환씨도 사람인데 어찌 흔들림이 없었겠는가. 취미로 키타 치는 것이 아니라 키타 쳐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이어서 취미로 글을 쓰는 나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것이 즐겁기 때문에 만 가지 걱정을 통키타 속에 넣고 날려 버리기 때문에 근심-걱정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보다. 근심 걱정, 사람을 늙게 만드는 근원인지도 모른다.
첫댓글 선생님의 수필 출발 역사를 알게 되었네요.ㅎㅎ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모습, 정말 대단한 열정에 늘 감동입니다.
누가 시켜서는 못합니다. 잘 쓰려고 하면 주눅이 들어서 더 안써집니다. 써 놓고 수 없이 고치는 것이 좋던 싫던 내 작품 쓰는 습관입니다. 김미옥 선생님도 서정 수필 참 잘 쓰세요. 많은 발표 바랍니다.